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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걸어온길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노동조합운동의 발전

 

 
연도 월일 내용

1987

7~8월

많은 노동조합 결성(87년 한해 노조 2,675개에서 4,103개로, 조직률 12.3%에서 13.8%로 증가)

89년 노동조합 활동 가장 활발(노동조합수 7,883개, 조합원수 1,932,000명, 조직률 18.7%)

유일한 전국조직이던 한국노총을 거부하고 자주성과 민주성을 가진 노동조합의 연대조직 건설

여성, 제조업 중심의 노동조합에서 대공장, 사무전문직에도 많은 노동조합
건설 노동자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 향상

 

전노협, 업종회의와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건설

 

 
연도 월일 내용
1990 0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결성 : 14개 지역협의체와 2개 업종별 조직, 600여개 노동조합 20여만명의 조합원 포괄
1990 05월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 결성 : 14개 연맹 586개 노동조합, 200,197명 조합원으로 출발
1991 10월 ILO 기본조약 비준과 노동법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ILO공대위) 구성
1993 06월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결성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이 주축이 되어 발족, 1,048개 노동조합 420,409명 조합원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준비위원회 결성

 

 
연도 월일 내용

1994

11월 13일

민주노총준비위 결성 :
공동대표 권영길(업종회의), 양규헌(전노협), 권용목(현총련)
집행위원장 허영구(전노대 집행위원장)
95년 상반기 사회개혁 투쟁을 임금인상 투쟁과 결합하여 주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등 민주노조 진영의 전국중앙조직으로서 역할을 시작

7월부터 정책세미나, 단위노조대표자수련대회를 통해 강령, 규약에 대한 토론을 시작으로 조직 건설 본격 시작

조합원 1인당 1만원의 민주노총 건설기금운동 전개

95년 10월 제12차 대표자회의에서 민주노총 강령·규약(안)을 확정

민주노총준비위는 1년동안 13회의 대표자회의, 16회의 운영위원회, 40회의 집행위원회, 2번의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대회를 가지면서 민주노총 창립을 준비
 

 

민주노총 창립과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

 

 
연도 월일 내용
1995 11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창립. 가맹 866개 노조 41만여 명의 조합원의 조직으로 출발.

1996

12월 26일

노동법 개악에 맞서 역사적 총파업 전개. 1997년 2월말까지 총파업 돌입 노조 누적집계 3,422개 노조 3,878,211명, 1일 평균 파업 규모 163개 노조 184,498명.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 투쟁과 산별노조 건설을 향한 조직적 실천

 

 
연도 월일 내용
1997 외환위기 이후 강요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법제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협약 잠정합의안을 거부하고 밑으로부터의 투쟁 전개.
1998 은행 강제퇴출 반대 투쟁, 동아엔지니어링 퇴출 반대 투쟁,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만도기계노조 투쟁, 조폐공사 창 통폐합 반대 투쟁, 지하철 구조조정 반대 투쟁,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관련 투쟁, 한라중공업노조 파업, 자동차4사 노조 연대파업, 축협노조 투쟁, 신선대 우암 노조 투쟁, 철도 민주화투쟁, 롯데호텔노조 파업, 사회보험노조 파업, 금융노동자 파업, 대우자동차노조 정리해고 반대 투쟁, 항공사 노조 파업, 발전노조․가스공사노조․철도노조의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반대 파업
1999 1997년 국민승리21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1999년 진보정당 추진위원회에 조직적 힘을 싣기로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원내 진출의 기반을 마련.
2004 1997년 국민승리21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1999년 진보정당 추진위원회에 조직적 힘을 싣기로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원내 진출의 기반을 마련.
2006 금속, 보건, 언론, 공공, 사무, 건설 등 가맹조직의 산별노조 건설을 향한 흐름 형성.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조직화의 전면에 선 민주노총

 

 
연도 월일 내용

1999

1999년 33일간 파업투쟁으로 재능교사 노조 창립, 2000년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 투쟁, 캐리어사내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치열하게 투쟁하고 스스로 조직화의 길로 나서기 시작.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과 조직화를 전조직적 과제로 삼아 실천.
2003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손배가압류를 앞세운 노동탄압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한 삶이 이어져, 이에 온몸을 던져 저항하는 열사들이 끊이지 않음. 민주노총은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모아 가열찬 투쟁을 전개.
2006 노동의 양극화 정책과 이것이 낳은 노동자 연대성 약화, 정권의 공격에 맞서 연대성, 투쟁성 강화를 기반으로 비정규 악법 저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 투쟁을 전개.

 

조합원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민주노총

 

 
연도 월일 내용

2006

2006년 말 현재 629개 노조, 752,363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조직으로 성장.
산별노조 전환율(기업/산별) 75.60%, 대산별노조 가입율(기업/대산별) 67.67%로 새로운 산별 시대를 향해 전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인 자주성․민주성․연대성․투쟁성․현장성을 밑으로부터 복원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전민중적 과제인 한미FTA저지를 위한 투쟁의 전면에 서다
2007 5기 지도부가 탄생되고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의 현장대장정을 통해 지역과 산별조직의 현장 조합원들을 위원장이 직접 만났다. 민주노총의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방도는 오로지 현장 조합원의 힘을 세워내는 것에 있다는 믿음으로 출발해 시작한 현장대장정을 통해 전국을 돌며 조합원들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던 사업이었다.
2008 5월부터 본격화된 광우병쇠고기 저지 촛불투쟁과 결합하여 운송저지투쟁, 총파업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수배․구속되는 등 민주노총은 역사적인 범국민촛불투쟁에 적극 복무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재확인하고 그 역할을 높이기 위한 객관적 토대를 확대하였다.
2009 상반기 언론노조 총파업을 시작으로 박종태 열사투쟁, 쌍용자동차 투쟁 등이 이어졌으며 최저임금투쟁을 연중 사업화하는데 일정한 진전을 이뤘다. 또한 산별연맹의 자주적 투쟁 전개력과 지역별 투쟁이 일정하게 확장되었다. 하지만 연초 성폭력 사건 발생으로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조합원들의 실망으로 내적 위기가 심화되었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청년 민주노총으로 함께 살자!

 

 
연도 월일 내용

2010

6.2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 당선을 배경으로 학교비정규직 조직사업의 전국화와 지역적 결실이 큰폭의 조직화로 이어졌으며 대법원 불법파견판결이 기폭제가 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 연대는 노동계급의 단결투쟁의 전망을 밝게 해 주었다. 11월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조직화의 일환으로 시작된 전태일 평전 읽기 운동은 현장의 요구와 교육사업이 투쟁으로 이어지는 중요성과 가능성을 열어준 사업이었다.
2011 한진중공업 투쟁이 희망버스와 결합되면서 내부의 완강한 투쟁과 일반 국민대중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통한 노동운동 승리의 새로운 의미와 교훈이 담긴 투쟁이었다. 하반기 한미FTA저지 투쟁은 국회 진입투쟁과 확대간부 파업,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통해 민주노총의 조직대오가 투쟁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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