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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월드컵, 국민사기극

작성일 2002.05.23 작성자 교육국 조회수 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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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제대로 보기 - 월드컵, 국민사기극

* 이글은 전국공무원노조 기관지 [공무원노조] 2호에 실린글입니다.


축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대중 스포츠다.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축구를 보며 고단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장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좀체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 미국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카메룬, 나이지리아, 세네갈 등)에 패배할 수 있다. 빈민가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들(펠레, 마라도나, 호나우두 등)에 환호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대리 만족감을 느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축구는 종종 통치자들의 유용한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고대 로마 지배자들이 대중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콜로세움(노천 원형 극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음식과 오락을 제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월드컵을 국운융성 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노사평화 협정을 체결 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해고와 생활수준 하락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항공 파업을 막기 위해 항공 산업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려 한다.
노점상들은 다국적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생존 자체를 위협당하고 있다. 월드컵 상암 경기장은 그 곳에서 살던 9백 세대의 도시 빈민을 쫓아낸 뒤에 지어졌다.
김대중 정부는 테러로부터 월드컵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정부는 파업과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제약하는 테러방지법 을 제정하려 한다.
김대중 정부의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월드컵이 평화의 제전이라는 주장을 무색케 한다. 테러방지법 은 미국이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 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다. 월드컵이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 민족주의, FIFA, 다국적 기업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다. 각국 통치자들은 월드컵을 이용해 국민의 단결 을 호소한다. 그리고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부추기려 애쓴다.
그 때문에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관하는 축구 대회들에서는 민족주의가 과장되게 표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곤 한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벌인 축구 전쟁 이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1969년에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 맞붙었다. 두 나라의 경기는 경기장 밖 전쟁(소위 5일 전쟁)을 촉발시켜, 수천 명이 사망했다.
축구 경기는 두 나라의 통치자들이 국내 위기를 전쟁으로 돌리는 구실이 됐다. 엘살바도르는 인구 밀도가 아주 높다. 게다가 상층의 열네 가문이 대부분의 땅을 소유했다. 여러 해 동안 농민들은 불법 을 무릅쓰고 온두라스로 이민갔다. 그 곳에서 미개간 땅에 농사를 지었다.
정치적 불안정에 직면한 온두라스 정권은 토지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온두라스 정권은 대토지 소유자나 미국 과일 회사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기보다는 30만 명의 엘살바도르 무단 토지 점유자들에게서 토지를 몰수했다. 이것이 전쟁의 배경이었다.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는 부패한 사교 클럽이다. 주앙 아벨란제는 24년 동안(1974-1998년) FIFA를 지배했다. 아벨란제는 파시즘과 군부 독재에 매우 관대했다. 그는 1936년에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경험을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 이라고 말했다.
아벨란제는 1980년 올림픽위원회 선거에서 사마란치를 지지했다. 사마란치는 십대 때부터 파시즘 운동에 가담했던 파시스트였다. 이 자는 1975년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36년간 파시스트 정권에 충성했다.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거대한 상품이다. 그래서 월드컵은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 관계에 따라 운영된다.
FIFA는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JVC, 후지, 캐논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공식 후원 업체들이었다. 소니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 때 마케팅 독점권을 따냈다.
코카콜라는 월드컵 2002와 월드컵 2006의 청량 음료 스폰서 권리를 따냈다. 그 대가로 FIFA에 10년 동안 1억 달러(약 1천3백억 원)를 지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아디다스도 10년 동안 1억 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FIFA와 계약을 맺었다. FIFA는 그 대가로 심판복에 아디다스의 삼색선 상표를 부착하게 했다.
월드컵 브랜드 독점권을 얻기 위해 공식 협찬사가 지급한 평균 액수는 4천만 달러(5백20억 원)이다.
이들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축구 규정을 바꾸고 경기 수를 늘린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방송국들은 0대 0 무승부가 되면 국내 시청자들이 TV 채널을 돌릴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더 많은 골이 터질 수 있도록 골대 크기를 늘렸다.
공식 협찬사들의 이윤을 위해 월드컵 출전국 수가 늘어났다. 경기가 많아지면 기업체들의 광고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식 후원사들의 주머니는 그만큼 두둑해질 것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부상의 악몽에 시달린다.
다국적 스포츠용품 산업들은 제3세계에서 아동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수십만 명의 파키스탄과 인도 어린이들이 축구공을 만든다. 어린이들이 공 하나 만들고 받는 돈은 대략 100~150원이다. 2002년 월드컵 공인 축구공 피버노바도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만들었다.
월드컵은 다국적 기업들의 돈 잔치다. 월드컵 입장권은 16강전이 최저 11만 원에서 24만 7천 원이다. 개막전은 최저 16만 5천에서 최고 55만 원이다. 이것은 공식 가격다. 암표 가격은 벌써부터 1백만 원을 웃돈다.
우리 나라에서 월 평균 급여가 1백만 원 이하인 노동자 수는 7백만 명이다. 50만 원 미만인 노동자 수는 1백72만 명이다. 40만 원 미만인 노동자만 하더라도 1백만 명이 넘는다. 이러니 대다수 노동자들이 월드컵 경기장에 갈 수 있을까.

■관전법

때로 축구는 대중의 저항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파시스트인 프랑코가 지배했던 스페인에서 축구는 저항의 수단 노릇을 하곤 했다. 프랑코는 바스크 독립 운동을 가혹하게 억압했다. 1970년대 초 바스크에서 축구 경기는 민족주의와 반프랑코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이 됐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팀이 미국 팀에게 이기기를 바랄 것이다. 오만한 미국을 축구 경기에서라도 꺾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오만불손한 강대국에 대항하는 약소 민족의 저항은 정당하다. 이것은 진보적 민족주의다.
그러나 폴란드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가 될 것이다. 이들 나라들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강대국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맺자. 월드컵은 뇌물, 승부 조작, 판정 시비, 다국적 기업들의 돈벌이, 마약 밀매, 경기장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월드컵 경기에 열광한다. 험난한 세계로부터 잠시라도 탈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럼에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모든 스포츠 경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국가 간 경쟁과 적대가 아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애와 연대에 기초한 사회가 아닐까?
동료들과 함께 월드컵을 보면서 이면에 감춰져 있는 월드컵의 또 다른 측면을 얘기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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