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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회포럼(WSF) 참가기(1)~(20) 조합원 허영구 보고 글

by 대외협력실 posted May 05, 2003 Views 2651
세계 사회포럼(WSF) 참가기(1) : 떠나기 전야

1.18~ 1.19 : 열흘전 민주노총의 대협실장으로부터 WSF 참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민주노총 중앙지도부가 두산중공업사태나 1월말의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두고 해외출장에 나서기가 어려운 형편이니 민주노총 참가단의 일원으로 브라질을 다녀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간 지부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냈는데 해외출장이라는 뜻밖의 제의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다른 사람이 가능하면 먼저 보내라고 했다. 민주노총 중앙을 떠난 입장에서 민주노총을 대표한 참가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상집위에서 보고되고 내가 참여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발표자료문제라든가 몇가지 준비는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준비하지 못했다. 출장을 앞두고 국내 지방출장이라던가 집안에 일이 생겼다던가 하는 바쁜 일정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를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필요한 자료를 가방에 챙겨넣고 장시간 여행중에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전날 부탁한 전(former) 수석부위원장을 표시한 명함은 떠나는 날 아침 집에 두고 나왔다가 도중에 부랴부랴 되돌아가서 가지고 나오는 분주함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포럼에 참가한다는 설레임과 부담으로 동료들과 함께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25시간의 탑승이라는 사전통보는 받았지만 시속 1,000KM속도의 비행기로 만 하루 이상을 날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먼 거리고 또 얼마나 피로한 일인가?
유럽이나 미국 여행의 배가되는 비행시간이다.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4시간 대기하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LA공항에 도착하기까지도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다시 똑 같은 시간을 날아간다는 것은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LA공항에서는 단지 통과 여객일 뿐(transit)임에도 불구하고 9.11테러 이후의 안전점검을 이유로 입국수속과(immigration desk)에서 여권 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밟는다. 한줄로 서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부시의 액자사진이 걸려 있고 천장에는 대형 성조기가 몇 개나 늘어뜨려져 있었다.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듯했다. 공항관리들이 한사람 씩 부를 때도 "Hey!" 라고 외치며 손짓했다.

미제국(PAX Americana), 그 대제국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시의 전쟁반대, 세계화반대를 목표로 세계사회포럼(WSF)에 참가하는 우리들로서야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코 밑 쿠바의 가시가 항상 거슬렸는데 남미의 거대한 국가 브라질의 대통령에 좌파인 룰라가 당선되었으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테다. 거기다 내리 3회째 브라질에서 자본가들의 세계포럼인 다보스 포럼에 대항하는 WSF를 개최한다는 것이 더욱 거슬리는 일일테고 말이다.

거기다 이제는 WSF의 대륙별 회의가 개최되고 있고 이는 확대일로에 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여하튼 오만한 제국 미국으로부터 벗어난 비행기는 밤낮을 날아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로에 안착했다. 대기시간까지 무려 30시간이 넘는 장도의 종착역에 다달은 것이다. 기내에서 쪼그리고 앉아 무려 다섯 끼의 식사까지 했으니 정말 불편하고 힘든 여정이었다.

사업차 남미로 가는 사람, 브라질 축구유학을 떠나는 중3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목적으로 종착점에 다달았다 물론 그곳에서 다시 브라질내 여러 곳으로 흩어지거나 남미의 다른 나라로 또 비행기를 갈아타는 사람들과는 헤어지게 된다.

먼저 포르토 알레그레로 떠나는 전농이나 WTO반대 국민행동팀과는 며칠간 얼굴을 못보게 된다 우리는 3일전에 상파울로에 와있는 금속연맹팀과 합류하여 현지 일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공항에 내리니 금속연맹 국제국장이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다. 기내에서도 그랬지만 공항청사를 빠져 나올 때가지 도무지 영어라고는 사용하지 않는 나라였다. 일본인이 많이 살고 일본인 관광객이 많은 탓인지 일본어 안내방송은 자주 나왔다. 또 하나 스튜디어스 중 한국인이 있어 한국어 안내 방송도 들었는데 한국인의 남미행도 많이 늘어난 것을 반영한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제적으로 미국이 지배하고 있지만 1억7천만 인구로 자체적 경제를 꾸려가며 그 저항 또한 만만찮은 나라에 내린 첫날이다.



세계사회포럼(WSF) 참가기(2) : 500년 역사의 브라질에서

2003.1.19 현지시각 오전 8시가 넘어 공항을 나온 뒤 브라질금속연맹에서 준비한 차로 숙소에는 10시에 도착했다. 거대한 도시지만 브라질의 넓은 땅에 건설된 도시인만큼 넓은 모습이고 자연녹지도 풍부하게 보였다.

적도에 가까운 식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한국의 겨울과는 달리 초여름 날씨였다. 높은 산은 보이지 않지만 구릉이나 언덕에는 다닥다닥 집들이 들어서 있고 대규모아파트단지는 아니지만 군데군데 고층 아파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이 도시가 900여m의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숙소는 아담하고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유스호스텔과 같은 시설에 동네와 함께 위치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먼저와 있는 금속연맹일행들과 함께 근처 한식당 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비행기내에서 다섯 끼를 양식에 시달리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치전골, 비빔밥 등 다양한 식사로 땀을 뻘뻘 흘리며 오랜만의 우리음식을 접하듯이 했다.

여기 식대로는 비싼 편이지만 우리 나라 돈으로는 5~6천원 꼴이니까 가격은 적당했다. 유럽의 경우 한식은 대개 2~3만원에서부터 시작하므로 보통의 여행객들이 한번 이상 즐기기가 어려운 편인데 브라질의 음식값은 우리 같은 수준에서는 아주 적당했다. 60년대에 브라질에 와서 식당을 경영해오고 있다는 주인은 현지인 종업원을 고용하여 꽤나 성공한 듯 했다. 현대 재벌회장이나 유명 연예인, 정치인이 다녀가면서 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걸려 있었다.

사촌누님의 딸 내외가 상파울로에 있어서 떠나올 때 누님 댁에 전화번호를 확인하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자형은 얼마전 모 전자회사 현지지사에 근무하는 사위사무실에 무장강도가 들어와 물품도 털렸다면서 밤에는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엉망이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딸, 사위네 짐을 배로 부쳤는데 도착한지는 오래 되었는데도 찾으러 가면 차일피일 미루고 짐을 내주지 않는단다. 먼저 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아마 급행료같은 것을 원하는데 우리 나라 돈으로 몇 십 만원은 줘야 한다고 하면서 무질서한 측면이 많다고도 귀띔해주었다. 그러나 동네가 제법 잘 사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호텔근처라서 그런지, 아니면 대낮이라서 그런지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호텔로 들어오는 첫 시간부터 얘기로만 듣던 장면을 목격했다. 일요일이라 가게들은 거의 철시한 상태였는데 길가 셔터가 내려진 건물 바깥에 얼굴에 피가 범벅이 된 여자가 벽에 기대어 있고 두 대의 경찰차량이 비상등을 울리고 있었다. 권총을 겨눈 몇 명의 경찰이 건물내부를 향해 사격자세를 취하자 한 남자가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지나치는 차량에서 내다보면서 일단 우리 나라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고색창연한 유럽의 건물들과 현대식 아파트, 중산층의 단독주택, 그리고 서민들의 동네, 슬럼가의 판자촌들이 낙서에 뒤덮인 채 상파울로라는 대도시의 숲을 나누고 있었다.

일요일은 일정이 없어 시내관광에 나섰다. 관광이래야 선물을 사거나 백화점 등 번화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운동권 아니랄까봐 항상 교양(?)이 될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먼저 야자수나무와 따뜻한 지방의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으로 쭉쭉 뻗어있는 파울리스따 박물관을 찾았다. 브라질 독립전쟁의 영웅들의 동상과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황토 빛 벽돌로 만들어진 박물관에는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무료입장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브라질은 1500년에 포르투갈 함대에 발견됨으로써 세계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포르투갈은 원주민을 내륙부로 내몰고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들여와 사탕수수 재배를 시작하였다. 최초의 수도는 살바도르였다. 17세기 말, 미나스제라이스 중남부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금경기는 브라질의 내륙지방을 열어놓고 도시화를 부추겼다. 리우데자네이루는 금광 지대의 무역항으로서 번영하였고, 1763년에는 200년간 수도였던 살바도르가 리우데자네이루에 자리를 넘겼다. 브라질의 경제는 포르투갈의 수탈에 의해 악화되었는데 이에 대한 브라질 사람들의 분노는 독립의지로 자라났다. 1822년 브라질의 섭정 황태자였던 돈 페드루가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독립 브라질의시대가 열렸다.(남아메리카, 계몽사, 1996)

포르투갈본국과의 독립전쟁의 영웅들이었기에 그들 역시 얼굴 생김새로 보나 이름으로 보나 포르투갈 인들이었다. 단지 브라질 현지에서 태어나서 자란 포르투갈인들일 뿐이었다. 오직 포르투갈어로만 되어 있는 안내지까지 하여 사전에 포르투갈어를 모르고서는 별도의 공부없이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나라였다. 주위에는 많은 아이스크림 장사, 야자수 열매를 파는 노점상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많은 경우 연을 날리고 있었다.

또 일단의 청년들은 야자수열매로 서로 공차기 패스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 솜씨가 여간하지 않았다. 삼바축구의 나라, 펠레와 호나우도의 나라로서의 사전지식이 쉽게 눈을 밝혀 주었다. 박물관에서 브라질축구에 더 익숙하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수천개의 축구클럽, 한국의 어린 소년들이 축구유학을 오는 나라, 세계경제 9위의 대국이면서 광활한 나라 그러면서도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 미국의 경제침략과 지배로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 그러면서 남미에서 좌파블럭을 형성할 정도로 정치적 변화를 선도한 PT당 룰라의 대통령 당선으로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나라, 브라질은 이제 뜨거운 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50여 온갖 인종들이 뒤섞여 그 정체성의 갈등을 겪으며 500여 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세계 7대 동물원에 속한다는 상파울로 동물원은 자연의 밀림 속에 자리잡은 동물원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야 자유를 억압당한 채 더위에 졸고 있었다. 동물원입구 주변에는 우리나라 어느 노점상 거리와 다르지 않게 도시 언저리에서 척박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 몸짓이 가슴에 와 박혔다.

우리를 태운 차는 닭장이라 불리는 슬럼가와 골목골목 빼곡이 들어선 빈민들의 삶의 모습, 특히 일요일날의 일상을 피상적으로나마 볼 수 있게 지나치고 있었다. 우리 나라 60년대의 동네가게 같은 곳에는 남자들이 더위에 지쳐 웃통을 벗은 채 술을 마시거나 놀고 있었고 아이들 역시 달동네의 비좁은 골목에서 재잘대고 있었다. 빛바랜 간판, 허술하고도 엉성하게 지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슬럼가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사시사철 따듯하거나 더운 나라이기에 망정이지, 얼어죽지 않는 조건의 빈곤이라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방글라데쉬에서 10도미만의 영상의 날씨에도 수백명의 서민들이 얼어죽었다는데 열대지방 사람들의 빈곤과 날씨의 상관관계 또한 있을 법하다. 일행은 상파울로주에 있는 에스따디오 운동장, 소위 5월 광장으로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스텐드로 둘러쳐진 운동장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지 굳게 닫혀있었다. 1978 브라질에서 민주노조가 태동하기전 자동차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서 이곳 운동장에 모여들었고 바깥에는 경찰이 주둔하고 대치하고 있을 때 금속노조위원장 룰라는 사용자들과 근처 금속 ABC지역노조 사무실 (Sindicato Das Metalur Gicos Do ABC)에서 협상을 통해 입장을 관철시켰다고 했다.

ABC는 상파울로주 공단의 3각지역을 이루는 지역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룰라가 사용자와 협상할 때 당시 정부는 사용자들에게 협상하지 말 것을 종용했으나 당시는 자동차산업경기가 좋았던 탓에 사용자들의 양보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기로 CUT의 ABC지역노조 사무실은 이후 금속연맹을 비롯한 민주노조건설의 요람이 되었고 이후 모든 산업으로 민주노조운동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87년 민주노조운동의 태동과 같은 시기의 일이라 괜히 동류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최근의 룰라의 대통령 당선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급한 기대까지 갖게 만드는 것은 욕심인가? 브라질과 우리의 조건이 같은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많기에 어디까지나 참고하면서 우리의 조건에 맞는 민주노조강화와 산별노조건설, 정치세력화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운동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언덕을 오르는데 30대중반의 남자가 이런저런 관심으로 물어왔다. 포르투갈어라 말이 통하지 않았던 차에 마치 안식년을 맞아 이곳에 미리 와있다 금속팀과 조우한 카톨릭대 조돈문교수의 통역으로 이러저런 얘기를 듣게 되어 더욱 생생한 그날의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9세때 이 근처에 살았는데 당시 룰라가 이끄는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대오와 경찰의 대치 상황 목격담을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물론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는 지금 룰라정부의 지방정부에서 인력개발부(Human Resource Dept.)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한때 10년간 PT당원이었고 이념적으로는 맑시스트라고 했다. 5월광장을 둘러보고 오던 길에 일행들은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일요일이라 닫힌 ABC노조 건물주위에서 몇장의 사진촬영을 했다.

첫날부터 강행군이었다. 시차극복을 위해서는 한국의 밤 시간인 이곳의 낮을 뜬눈으로 보내야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기사에게 부탁하여 이곳의 부자동네를 통과해달라고 했다. 앞의 슬럼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골목 곳곳에 사설 경호 초소가 배치되어 있고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대저택들이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채 일요일의 풍요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한쪽에서 "와, 차가 4대다!"라는 일행들의 탄성이 울려퍼진다.

저녁식사 이후의 일정에 대한 협의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와 빈곤의 세계화, 그 무거운 담론을 가슴에 담고서 잠자리에 든다.



세계사회포럼(WSF)참가기(3) : 상파울로시의 빈곤퇴치...2000만이 굶주리는 브라질


<상파울로 시청 방문>
상파울로는 브라질 최대도시다. 인구 1,100만의 서울 규모다. 90년대 중반 PT당이 집권하였고 도중에 우익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재집권 한지 2년째다. 시장은 첫 번째이어 이번에도 여성시장이다. 시장이 근무하는 청사(mayor office)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청 건물에서 시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지방자치개발 노동담당비서, 실업문제 담당, 통합담당 그리고 금속연맹(CNM)에서 파견된 여성간부와 우리측(12명)이 함께 하였다. 먼저 폭스바겐에서 27년간 근무한 경력을 가진 지방자치 개발 담당자는 31개 구의 부시장을 만나 기업, 노조, 시민단체를 조정하는 일을 담당한다.

실업문제담당자는 1년전 앙뜨레아市 시장이 암살당할 당시 함께 근무했고 그 이전에는 노조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그는 브라질 민주노조운동의 출발점이 된 ABC공단 금속노동자 출신이다.

상파울로 통합담당자는 실업자 등 소외자의 통합과 참여를 위해 일하는데 시민단체 등과 시 운영을 연결한다. 사회적 프로그램(social program)은 ①실업자→ 일자리 제공 ②소규모 자영업자의 일자리나 기술 교육 훈련 등이다.

상파울로 시는 빈곤문제 퇴치를 위하여 크게 3가지 프로그램을 계획, 운영하고 있다. 첫째는 재분배, 둘째는 소외된 집단의 통합, 셋째는 지역단위개발 지원프로그램이다.
1)재분배 프로그램
현재 상파울로에는 9,800개의 빈민촌에 200만이 존재한다. 상파울로를 중심으로 하는 메트로 폴리탄에는 200만의 실업자가 있는데 상파울로 시내에만 100만명이나 된다. 월 최저 생계비 25~30불 미만이 100만명에 이른다.

<재분배 프로그램>

ㅇ최저생계비 이하, 가족지원 0~15세, 구단위
ㅇ직업훈련, 6~20세, 구단위
ㅇ장기실업자대상, 8개월이상, 21~39세, 월 95$, 3~9월 지원
ㅇ다시 시작하는 경우 다른 분야진출, 3~4년 장기실업자 재교육, 40세이상, 구단위

96개 구를 31명의 부시장이 담당한다. 먼저 명단을 확보하고 둘째 금전을 지원하며 마지막으로 재취업훈련이다. 30만 가구포함을 목표로 하며 현재 28만 가구가 이 프로그램에 적용받고 있다. 상파울로 시의 경우 실업자 평균 11개월만에 재취업되며 40세 이상의 경우는 4년만에 재취업된다.

<소외된 집단 통합프로그램>

ㅇ기회연대, 협동조합--> 공장설립, 일자리 창출(가게, 페인트...)
ㅇ민중은행, 방글라데쉬 모델(신협?), 대출
ㅇ프로그램을 알리고 교육, 참여

*)목표는 재분배 프로그램과 동일

<지역단위 개발 지원프로그램>
ㅇ지역
ㅇ상파울로

실행을 위한 4가지 기준은 ①빈곤 ②폭력 ③거주상태 ④인구고 노조는 소외된 집단, 지역단위 프로그램에 동반자로 참여한다. 예산의 경우는 시, 두 개 노조, 시민단체가 참여하는데 시가 90%, 노조와 시민단체가 10%를 부담한다.

시 전체 예산에 대한 비중은 4%다. 시 예산 분포를 보면 18만 공무원과 2만명 퇴직자의 임금, 연금 포함 20%, 교육 30%, 보건 18%, 시 적자의 국가은행의 상환 13% 등 81%를 빼면 실제운영은 19%고 빈곤문제에 4%를 제외하면 15%다.(교육, 의료는 법으로 정해진 비율임)

이 프로그램(new program) 은 PT당 시장취임후 2년동안 추진되었다. 그러나 8년전 PT당 집권시에 분산 운영되었던 것을 기초로 하면서 이번에 통합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지난 번 우익계열의 시장때는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았다. 현재 상파울로 주 정부는 우파가 집권하고 상파울로 시는 좌파인 PT당이 집권하고 있다. Rio de Janeiro는 500가구를 시범적으로 출발한 반면 상파울로는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PT당은 당의 방침으로 참여 예산제를 모든 시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주민 참여율을 보면 부유한 지역은 낮고 가난한 지역은 높은 편이다. 예산 배분과 관련해서는 총회 개최를 통해 결정되는데 예산 증액의 요구가 높다. 역시 재원확보가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교육문제를 보면 만족스런 상태는 아니지만 만 14세까지(중)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6세까지의 유아교육에 치중하는 교육투자를 하고 있다. 우익시장 때에는 학교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컨테이너 박스에서 가르치기도 했는데 PT당에서는 빈곤한 가구 학생에 대해 교복, 급식 제공과 통학출퇴근 제공 등 100만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맞벌이 부부를 위해 보육기능까지 담당하는 학교운영과 이용을 꾀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빈곤퇴치 프로그램은 새로운 삶을 위한 자활에 초점을 맞추면서 프로그램의 통합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31개 구를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세계사회포럼(WSF)참가기(4) : 집권을 이룬 룰라의 노동자당(PT당)

100만명의 당원으로 4차례에 걸친 대통령 출마로 금년 1월1일 집권당이 된 PT(빼떼) 당사를 방문했다. 상근인원 120명이 근무하는 5층 건물은 여느 거리의 건물들 사이에 서 있었다. 집권당사에 경찰이 한명도 서 있지 않은 우리와는 아주 낯선 장면이었고 출입이 아주 편안했다. 옛날 같았으면 룰라도 만났을 당사지만 지금은 집권당이 되어 모든 당직자는 자리를 비웠거나 정부로 들어간 탓인지 국제국장도 없었고 국제담당자인 아나마리아 스튜어트(여)씨가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대담시간도 1시간 남짓 밖에 안될 정도로 바빴다.

권력을 잡은 집권당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포괄적으로 그간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공통분모로 PT당과 교류해 온 연장선상에서 룰라 대통령당선의 전략, 전술,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먼저 질문했다.

PT당은 1989년 직접선거로의 민주주의가 진전되었을 때 대통령에 첫 출마하여 결승에 까지 진출하였는데 그 당시에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선거 당시에 언론의 일방적 왜곡이나 편파보도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민중들의 뜻은 당시의 정권과는 멀어져있었다. 그러던 차에 콜로드 대통령 부정부패에 대한 탄핵이 민중의 힘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전 정권에서 재무장관이었다가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카르도스는 통화안정에 치중하면서 레알화를 통용시켰다. 1990년대 카르도스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사회적으로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을 카르도스가 통화안정에는 주력했지만 민중의 생활과는 무관했음이 확인되었다.

그간 PT당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반대였다. 2002대통령선거는 변화(change)에 대한 열망의 반영이었다. 금융의 이해관계보다는 민중의 이해관계가 더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기아제로정책'이 주요하게 설정되었다.

기아퇴치에 필요한 재원문제 해결방안에 대해 재정문제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채문제는 카르도스정부의 유산이다. 재무장관은 매우 천천히 (very slowly)진행시킬 것이고 채무이행에 대한 약속도 지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경제성장의 과제는 구조개혁인데 세제개혁, 토지개혁, 수출증대를 꼽고 있다. 특히 수출증대는 경제성장과 관련되는데 부채문제 해결과 사회정책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투기 구입도 중단하기로 했다.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받아들여 교육, 세제, 기아퇴치 그리고 존엄성(dignity)을 지켜 낼 것이다. 노조개혁과 관련해서도 룰라와 금속전위원장 (디바) 그리고 전국의 노조간부가 2차례에 걸친 합동회의를 통해 시대의 변화에 맞는 노동법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법은 1940년에 제정된 것으로 변화에 맞춰 개정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카르도스때는 노동법 개악에 맞서 CUT나 PT가 반대해 왔다. 선거기간 동안 룰라는 연설에서 자신은 노조출신이지만 전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충족하도록 하겠다고 한 내용을 상기시켰다.

실업이 확대되면서 노조의 협상력은 저하하였다. 이제 노조도 사회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기득권이 있다면 사회전체에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세(tax)와 관련하여 룰라는 CUT 내부에서 철폐를 주장해 왔고 찬반이 있어 왔지만 CUT는 철폐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PT 당 룰라의 당선은 결정적으로 선거연합과 상대방 후보진영의 분열이 결정적이었다. PT당은 자유당인 PL의 알렌카를 부통령으로 지명하고 연합정권을 탄생시켰다. 소위 자본가와 연합하되 민족자본과 민족산업이라는 내용으로 노동계급과의 연대를 모색한 것이다. 이는 그간의 PFL의 카르도스 정권이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알렌카 역시 카르도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PT+ PL)의 연합정권이 기존의 PT당이 추진해 온 정책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연합을 추진할 때 PL이 PT의 정책을 전원 수용했다는 것이다. 김대중과 김종필, 노무현과 정몽준의 정책공조 상황과는 다르다는 뜻일테다. 말하자면 PT당의 노동자 중심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거다. 그러면서도 당과 정권은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남미의 좌파와 브라질 정권의 성격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었다. 한때 룰라의 모라토리엄선언 가능성도 백지화되었고 당선 직후 워싱턴 방문 등의 예를 들어 CUT의 노동자 계급성이나 PT 당의 노동자중심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룰라는 그 이전에도 수차례 워싱턴을 방문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전체문제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변화는 해야하고 또 변화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목표)적 원칙에 타협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기아 부채장관을 신설하는 등 빈곤문제해결 등에 적극 나설 것이라 했다.

룰라정부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회주의, 사민주의 등) 룰라는 항상 자신은 브라질 노동자라고 답변했다한다. 굳이 말한다면 PT는 '좌파정당'이지만 연합정권인 룰라 정권은 '중도좌파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이념과 체제문제보다 사회적 필요에 집중할 것이라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대해 온 PT당과 룰라에 대해 미국과 초국적 자본의 자본철수와 세제개혁에 따른 부유층의 재산 해외 도피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No!)고 답변하면서 전환기에 매우 신중하게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2년만에 집권에 성공한 CUT와 PT 당 그리고 역경을 딛고 대통령이 된 룰라, 노동조합원 농민 , 청년, 여성, 반인종주의자, 사회운동가, 레즈비언, 게이, 교회 등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각 위원회로 모여 100만 당원의 승리를 일궈낸 소위 남미의 좌파 블록을 확대하면서 '중도좌파정권'을 탄생시켰다.

민중들의 이해와 요구, 빈부격차, CUT를 비롯한 노동계급의 협력문제, 초국적 자본과 미국압력, 자본가와 연합한 정권의 한계 등 수 많은 난관이 룰라의 앞길에 놓여 있다. 1년전까지만 해도 PT당의 능력있는 시장과 지도자들이 우익분자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엄혹한 분위기에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을 달려왔다면 집권 후의 과제는 더 큰 실험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사회포럼(WSF) 참가기 (5) : 브라질 자동차 부품공장 노동자들

일행은 자동차부품(공장인) 의 나카타(NAKATA) 공장을 방문했다. 브라질의 재벌가가 운영하던 이 공장은 우리나라의 IMF위기와 비슷한 시기인 5년전 다국적 기업인 DANA에 인수되었다. 인수당시 공장은 DANA측에 100% 인수되었는데 인력은 전원 승계되었다고 한다. 공장은 그대로 보존되었고 족벌체제의 문제경영에서 투명 경영으로 바뀌고 노무관리도 나아졌다고 사측 관계자는 말한다.

이 회사는 세계에 300개 현지 공장을 가지고 있고 남미에는 30개 사가 있는 회사다. 이곳 메니저는 브라질에 3개 공장을 책임지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에서 노사간 문제가 되고 있는 모듈화(module)가 진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부품공장은 모듈회사(module company)에 자동차 부품을 주로 공급하고 있다. 부문은 서스팬션이 주종이다. 물론 DANA내부에도 모듈공장이 있어 가격차이에 따라서는 외부에서 부품을 구입하여 조립하기도 한다.

DANA는 남미시장의 50%을 차지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생산량의 13%를 수출했으나 금년에는 20%수출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는 룰라 정부의 수출 장려 정책목표와도 일치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세계시장에서 최대 경쟁자는 한국이라고 했으며 이곳 매니저는 2년전 협력과 관련하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DANA는 각 공장별로 생산부품에 따라 독립적 경영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설계는 자동차공장의 설계를 받거나 자동차공장과 부품공장의 협력에 의해 작성하거나 공장자체적으로 하거나 하는 3가지 방식이 있다고 했다. 납품하는 부품의 종류는 1300여개인데 이는 각각 다른 차종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라 한다. 공장내부에는 한국의 여느 공장과 다름없이 보안경과 소음방지 귀마개를 한 노동자들이 또 다른 찰리채플린이 되어 기계와 함께 쉴새 없이 프레스로 찍어내고, 깍고, 갈고 그리고 포장하고 옮기고 있었다.

한 쪽 벽면에는 부품이 적립되어 있는데 천장에는 가지런히 부품의 전세계적 공급망을 보여주듯 TRATORES, IF DO BRISIL, FIAT, G.M, VOLKSWAGEN, FORD DO BRASIL, MERCEDES BENZ, VOLVO, SCANIA 등 보내질 자동차 회사들의 명패가 걸려 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자본은 국제적인 체인망을 형성하고 언제든지 부품을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완성차에서 납품가 인하요구(cost reduction)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공장관계자는 그것은 계속되는 요구라고 했다. 이 공장의 공급처는 폭스와겐이 가장 많고 완성차에 50%, 부품업체에 50%를 납품하고 있다고 했다. 공급업체중 FIAT가 가장 까다롭고 그 다음이 폭스와겐이라 한다. 공장내부에는 목표량, 생산량, 효율성, 기여도, 노동자 결근율 등이 도표로 그려져 게시되어 있었고 노동자들은 그 경영목표달성의 일원으로서 함께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한쪽에는 수동식 기계에 매달려 사람의 손이 많이 들고 있는데 그 곁에는 완전 자동화된 기계에서 쉴새없이 서스팬션에 들어갈 부품들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었다. 작업의 공정이나 부품내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가장 짧은 것은 프레스에서 사람의 손이 쇳조각을 들고 집어 넣은 뒤 찍어나오는 시간이 2.9초로 주위에 누가와도 모를 정도로 끊임없고 쉴 새 없는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저렇게 하루 퇴근시간이면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공장은 주변 시가지를 끼고 있었지만 땅이 넓은 나라답게 여유가 있어 보였고 온대지방에다 여름이라 야자수나무랑 숲과 잔디가 어우러져 바깥에서 보면 굴뚝을 제외하면 전혀 공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축구장으로 주로 사용될 운동장에는 잔디는 아니었지만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휴게실에는 일단의 노동자들이 T.V를 통해 축구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우리를 안내하던 공장관계자는 한국축구실력이 상당한데 오늘 한번 경기해 보겠냐며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공장의 직원은 비정규직 240명 포함 1,240명이다. 정규, 비정규직 동일임금이 적용된다. 노조는 정규직 1,000명중 300명(30%가입률)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여성은 전체 직원의 20%수준이다. 족벌경영시절에는 노조조직률이 20%였다. 노조전임자는 5명이다.(60명당 1명) 상근간부의 연간교육시간은 240시간이다. 공장내 노조사무실은 따로 없지만 휴게실이나 출입은 자유롭다. 이 사업장은 현 회사에 인수된 이후 2년만에 토요일 근무와 임금을 둘러싸고 6개월간의 교섭 끝에 부분파업이 있었고 대부분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었다. 따라서 노조의 힘이 센 곳이었다. 파업이후 노사관계는 오히려 좋아졌고 식당의 식사조건 등 모든 것이 나아졌다. 지역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분회고 조합원 남녀비율은 70:30이나 지도부 비율은 90:10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들은 회사측 매니저와 관리직원 등 5명과 노조위원장과 대의원, 브라질 금속노총(CNM) 사무총장 등이 함께 한 자리에서 질의 응답한 내용이다.

3박4일간의 상파울로 일정을 마치고 저년 8시 20분 세계사회포럼이 열리는 포르토 알레그레로 향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끼어 있었고 소형 비행기는 많은 희망을 싣고 날아가고 있었다. 공항에 내릴 때부터 전세계에서 몰려온 참가자들은 행사 안내 전단이랑 지도 등을 받아들고 제3회 세계사회포럼의 들뜸으로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포르토 알레그레의 여름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애버트재단에서 마련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반대하려 먼 곳까지 온 사람들은 피곤한 휴식을 취한다.



세계 사회포럼(WSF) 참가기(6) : 10만의 행진 물결(Another world is possible !)

제3차 세계사회포럼(WSF)이 열리는 날이다. 포르토 알레그레는 140만여명이 사는 항구도시다. 2001, 2002년에 이어 다보스 포럼에 대항하는 반세계화와 반신자유주의 포럼의 상징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브라질에는 노동자계급 정당(PT)의 집권이 이뤄지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졌다.

세계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지하철역(MASSON)앞 광장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구호나 복장 할 것 없이 그야말로 형형색색이다. 그 중에서도 브라질의 PT당과 CUT는 집권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힘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하기야 그 자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정말 축제의 의미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획일적 구호나 퍼레이드가 아니라 강함과 유연함, 무거움과 가벼움, 진함과 옅음이 조화를 이루었고 10만여명의 대오가 마치 長江의 물이 꿈틀거리며 흐르는 것 같았다. 특히 남미사람들의 정열적인 연설과 율동은 이 날의 출발을 힘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국참가단은 민주노총(금속연맹, 사무, 언론포함) 10명과 여러 시민단체 등 25명정도가 참가했는데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러가지를 준비한 것이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이 한국대표단 근처로 몰려와 사진촬영을 하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CNN을 비롯한 외신은 항상 이라크 전쟁과 북핵문제를 톱뉴스로 타전하는 현실이니 한국에 대해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월드컵 축구대회이후 더 알려진 것 같았다. 특히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상이 더욱 깊어진 것 같고 지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꼬레아노?냐고 물었다. 상파울로에만도 100만의 일본인이 살고 있고 일찍이 브라질 개척에 나선 일본인들은 농토 면적만해도 일본 국토 농지면적의 3배를 소유하고 있다. 꼬마들도 '아리가또'라고 외칠 정도로 일본인이 많은 브라질에서 한국이 많이 알려져 있다니!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 브라질을 너무 먼 나라로 알고 있다. 하기야 고맙습니다라는 포르투갈어가 오브리가두(Obrigado)니 비슷한 면도 있기도 하지만

모두가 특색을 띠고 있었지만 한국 나름의 운동문화를 반영한 옷차림과 구호들을 선보였다. 거의가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일색인 남미에서 영어는 그야말로 생소한 언어였고 영어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어보면 거의가 왠 영어? 하는 식이다. 언어체계가 완전히 다른 한국은 영어 못하면 바보취급을 받기 쉽상인데 쥐꼬리만한 영어실력이라도 발휘할라치면 도무지 통하지 않아 답답하다가도 그래 영어 못하는 사람 만나니 영어에서는 해방된 것같아 좋다. 그러나 우리는 불어, 독일어도 이제 슬슬 자취를 감추고 중국어가 부상하고 있는데 이 거대한 대륙 남미에 이렇게 강력한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수억의 인구와 함께 역동하는 대륙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째든 우리는 고작 영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대표단은 지난 반세기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듯 그 외국어와 문화도 영어와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국대표단도 WSF의 핵심구호인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를 필두로 → 이라크 공격 반대, 다음 목표 : 북한 (Stop the war on IRAQ, Next target : north Korea)
주한미군 철수(U.S troops out of Korea)
미사일 대신 의약품(Not missiles, but medicines)
이라크 어린이는 무엇을 원하는가?(What IRAQ children need?)
이라크 공격 반대(Don't attack Iraq )
새만금간척 반대(No reclamation Saeman geum)
글리백 약가를 인하하라(Cut down Glivec price medicines for people)

→민주노총은 자신의 요구를 살려
신자유주의 세계화 빈대(Stop neoliberal globalization)
공공부문 사기업화 반대(Stop privatization of public industries)
비정규직의 정규직화(No more temp workers but full time workers)
한국대표단(WSF- South Korean-Delegation)

그 중에서도 우리들은 시민단체에서 준비한 티셔츠와 민주노총이 준비한 투쟁조끼를 입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
전쟁반대(No to war)
신자유주의 반대(No to neoliberalization)

전쟁반대(No to war)가 새겨진 조끼와 머리띠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머리띠 문화와 익숙한 우리와 달리 그들은 대부분 몸 전체가 운동권 분위기였기에 머리띠를 살 수 있느냐, 줄 수 있느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과 바꿀 수 있느냐는 등 주문이 많았다. 몇십개(벌) 밖에 준비하지 않아 도저히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가 없었다.

그 대신 함께 기념촬영을 하거나 그들의 촬영에 모델이 되는 것으로 한시간 이상을 보냈다. 간간이 한국어로 구호를 외치다가 영어로 외치기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등 참가자들은 마음껏 대회의 분위기에 함께 하였고 행진에 함께 했다.
역사 건물에는 Porto Alegre
-Forrum Social Mundial
Embraces the world
Another world is possible 의 구호가 대회의 의미를 선포하고 있었다.

브라질 참가자들은 커다란 천에다 resistire preciso
viva o Brasil!을 써서 참가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제 나의 행진 주위에서 눈에 띤 그것도 대부분 영어로 쓰여진 구호나 주장들을 옮긴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쓰여진 주장들은 대부분 지나칠 수 밖에 없었지만 대회의 취지와 대부분 일치하는 내용들임에 틀림없었다.

Bush = Hitler
Bush, Putin = Super terror → Peace!
Oil war !
America "latina"?
No multiracial
Stop Bush cowboy Atila, PAZ
Stop the war coalition
Stop the war now
Contra los Fundamentalismos
TVBoca, Fundamental
= Your mouth Fumdamental
Against fumda mentali는.
War is the defeat of humanity
democracy=separation between state and religion.
Stop the WTO and FTAA!
STop corporate globalization.
Our world is not for sale!
Contra O golpismo!
Nazis, Yanquis o judios. (어떤 참가자는 이 부분엔 항의)
No mas pueblos elegidos!
Mono teismos crean Facismos.
No war, no hunger!
MST : 브라질 무토지 운동
One world, one fight
USA, world's Coup
Water is life.

전철역에서 목적지 Youth Camp 까지는 4㎞정도다 .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도로를 꽉 메운 인파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우리의 전국단위 노동자대회시 사용하는 선도차량 위에는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열정적인 연설이 계속되었다.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미국의 경제침략과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이 펼쳐졌다.

한국대표단도 대오에 끼어 열심히 그러나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얼굴에는 모두 No War 라는 물감글씨를 쓰고 "War is no, peace is yes"를 외치며 함께 나아갔다. 행진도중에 떠나올 때 함께 한 전농대표단과 도 만났고 개인적으로는 97년 유럽민중대회(네덜란드)에서 통역문제로 고생하고 있을 때 프랑스 사회과학원에서 유학중이던 곽은경씨를 6년만에 다시 만났다. 이제는 프랑스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남미지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 당시 차남호(노동과 세계)편집국장과 함께 한 출장이었는데 이후 신문을 보내주기로 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받아보고 있다는 얘기에 매우 반가웠다. 재작년 대우자동차 김우중 체포조 프랑스 파견때도 함께 하였고 민주노총과는 인연을 많이 쌓았다. 이곳 먼 브라질에서 가두행진을 함께 하면서 운동의 세계화를 생각했다.

목적지에는 무대가 있고 넓은 초원 위에는 10만여명의 참가자들이 문화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의 큰 집회와 마찬가지로 주위에는 노점상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정말 자유롭게 집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잘라놓은 수박, 간단한 스넥종류, 구워 놓은 꼬치(쇠고기) 등이 3헤알(1$)내외니 우리로서는 부담없는 가격이었다. 왠만한 뷔페식당도 5헤알정도면 거뜬하게 한끼를 떼울 수 있고 택시를 타도 왠만한 거리는 15헤알 내외면 도착할 수 있다. 버스요금은 1.25헤알(3000원미만)이니 우리나라보다 싸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흩어져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무대에는 커다란 지구 그림에 "Another world is Possible"이 여러나라 언어로 씌어져 있었고 그야말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바디랭귀지로 이 대회의 의미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포르토 알레그레는 오랫동안 PT 당이 집권한 주에 속한 도시였고 이제는 노동자당이 집권까지 한 마당이니 이 대회는 원활하면서도 어쩌면 상대적으로 긴장이 떨어져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남미는 아직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격렬한 변화의 움직임을 하고 있는 곳이고 그 만큼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주변 곳곳에서 원주민인 인디오가족들이 노래를 부르며 테이프를 팔거나 전통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 낯선 땅에 동양인으로서 또 성장과 경쟁과 효율로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고 서양화로 질주하면서도 봉건적 지배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혼란스런 나라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역시 이곳에서는 낯선 이방인이 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반미가 너무나 자유스러운 땅에서 노동자가 권력을 획득한 땅에서 우리들의 운동과 우리들의 머리속에 든 이상이 얼마나 이중적이며 호사스러운 것인가도 생각해 본다. 이제 일주일간 세계사회 포럼의 바쁜 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세계인의 문제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국내문제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쳐 모든 것을 잊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참가한 몇 명이라도 직접보고 느낀 반세계화 운동을 우리의 운동속에 접목시켜 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혹시 우리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고 미제국주의를 반대하면서 힘의 관계에서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거나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보편가치를 잠시 유보한 채 그 지배울타리 속에서 종속과 복종이라는 현실 속에서 물질적 삶을 향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새삼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성과라 할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가 이곳 소득 5천불의 삶보다 낫다는 아무런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들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2,000만명이 굶주리는 땅 브라질은 미국의 남미에 대한 단물 빨아가기 수십년이 낳은 결과라면 미국 땅 역시 4,000만명이 의료보험 혜택에서 배제된 채 굶주리고 있다면 이건 국가나 민족 단위를 넘어서는 문제 아닌가? 빈곤의 세계화가 선후진국, 허구적 평균 국민소득 수준을 넘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고 자본의 국가권력은 이를 빌미로 민중을 동원하여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회생불능의 상태에까지 몰아가면 개발의 채찍을 가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미국의 이라크침공은 분명히 오일 전쟁이지만 그 오일선의 수요국가들은 모두 전쟁의 협조자로 방관자로 인간의 삶을 파탄내는데 공범자가 되고 있다.

첫날 길거리음식점에서 민주노총 참가단은 간단한 맥주한잔으로 첫날 개막식을 평가하면서 다음날을 위하여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세계 사회포럼(WSF) 참가기(7) :포르토 알레그레市 교사의 90% 노조에 가입

3국노조 워크샵 : PUC 대학(14:30 ~ 18:00)
남반구 새로운 노조문화
- 정치,경제적 전망, 목표, 주요전략, 성공사례

이 워크샵에서 본인은 민주노총을 대표하여(1부토론) 민주노총사업계획에 근거한 내용들을 소개하였다. 전망과 목표 관련해서는 민주노총은 사회과학적 개념이나 체제로서 정리하고 있지는 않으나 평등사회건설, 반전평화와 자주 그리고 연대를 주요한 목표로 설정한다. 평등은 빈부격차 척결과 노동계급 연대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대기업노동자와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들간의 평등 실현이다.

자주는 초국적 자본의 공세에 경제주권을 상실하고 미국의 군사패권 강화와 이로 인한 분단 고착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권회복 민족의 자주통일을 실현하는 일이다. 연대는 산별노조건설과 민중, 시민단체 간의 연대 강화와 반신자유주의, 반전평화, 국제연대를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는 일이다.

주요 전략은 다섯가지로 설정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 분쇄, 둘째, 여성, 중소연세 비정규직 조직화 산별노조 건설, 민주노총 혁신 강화, 셋째, 민중연대 전선 구축과 제민주세력의 연대강화, 넷째, 민족자주권 쟁취와 조국의 평화적 통일, 다섯째,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강화로 정치세력화를 실현하며 민중주도의 자주정부를 수립하는 일이다.

성공과 실패사례를 소개하면 민주노조의 강화, 산별노조 건설의 진전(조합원 41%),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와 차별철폐의 정치쟁점화, 롯데호텔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투쟁으로 남녀고용평등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정규직화 등이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최근 의 실패사례는 국가기간 산업 해외매각과 공기업 민영화 등을 막아내는데 실패하였고 고용, 임금, 시간 등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조직률을 높여 내지 못하고 정체상태에 있는 점이다.

이어 남아공노총(COSATU)대표가 발표한 내용요약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남반구 노동자의 의미규정으로 빈곤, 질병, 부채, 독재, 국제적 합의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수준의 문제까지 포함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피해자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경제적, 정치적 종속성이 심화되고 있다. 좌파나 사민주의 정부하에서 그러하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국적 자본의 폐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남아공노총은 이제 홀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연맹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첫 번째 전략은 시민단체와의 연대다. 차별하면 안된다. 노동자계급과의 연대 가능성이 시작되었다. 노조는 임금, 노동조건 뿐만이 아니라 그리고 조합원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국가전체를 보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법적 제도를 통해 정부, 의회, 정당과도 교류하는 것이다. 초기 단계부터 법안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동맹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은 독립성과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해치지 않는 방향에서다.

짐바브웨에서 증명되었듯이 참여, 간섭, 비판이 없으면 몰락할 수 밖에 없다. 유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과정에서 예산, 빈곤, 질병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초국적 자본에 대해서는 저항하면서다. 조직은 독립적이지만 법적 절차에는 참여해야 한다. 역시 조직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조직력이 없으면 아무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조합비를 걷는 만큼 확신을 줘야하고 봉사해야 한다.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연대해야 한다. 회의에 국한하면 안된다. 하나의 노조가 문제점에 직면하면 개입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CUT나 KCTU가 어려움에 처하면 연대해야 한다.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그리고 문서로만 교류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성공전략사례는 COSATU 탄광노조간부가 관리직까지 흑인이 진출할 수 있는 법제정이나 AIDS퇴치, 건강과 안전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브라질 노총(CUT) 조직국장이 발표했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국제교류가 시도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새로운 노동조합주의가 필요하다. 브라질 노총은 1988년까지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국가의 정책에 반대했을 때 탄압받았고 지도부는 구속되었다. 그러나 단위노조는 재정여건이 좋았음으로 새로운 노총을 건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국가의 탄압에 맞서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이 시작되었다. 지난 20년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출발하였다. 계급에 기반을 둔 노동조합이었다.

상파울로주, 리오그란데주, 은행노조 그리고 또 다른 일부지역에서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상파울로주 ABC지역 공단노조가 했다. 물론 그 중심에 지금의 대통령 룰라실바가 있었다.

과거의 노조와는 단절했다.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띄었다. 노자간 갈등뿐만 아니라 국가의 변혁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위기때 정부는 CUT를 통제했고 그 과정에서 노조는 성장했다. 이 80년대에 새로운 국가수립의 전망으로 관료적 친정부적 노조에서 완전히 민주적인 노조로 탈바꿈시켰다.

1989년 선거에서 노조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 노조의 구조변화가 계속되었다. 노조의 강력한 정책은 신자유주의와 대립하였다. 브라질의 경제성장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제국들은 강력한 관세를 부여하며 저지했다. 석유산업과 전력산업의 독점 반대 는 실패했고 공산주의가 허물어졌을 때 우리는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정부는 무분별한 개방을 시도하였고 중소기업은 몰락했다. 경제의 세계화 모델에 따라 민영화에 직면했다. 새로운 노조설립이 어렵게 되었다.

브라질의 조직률은 30%이나 포르토 알레그레 교사노조의 경우는 90%다. 90년대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노조는 저항의 전략을 수립했다. 새로운 노조운동으로 브라질 노동계급을 하나로 묶어 나갔다. 저항의 정치뿐만 아니라 새롭게 나아갈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기존 노조지도부에는 존경이 없었다. 그러나 정책의 변화로 새로운 노조주의를 수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많은 동맹을 수립하고 명확한 정치적 목표와 신중한 전략을 수립했다.

이제 세계사회포럼(WSF)에 노조참여률이 높은 것도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KCTU와 남아공의 COSATU와 동맹을 맺어왔다. 새로운 변화다. 전세계적 조직화, 사회동맹을 전개하며 국가나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주성 문제는 염려하지 않고 있다. 브라질은 현재 옳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있어 기존의 논리를 사용할 수 없다. 500년의 브라질 역사에서 지난 10년간의 신자유주의시대에 우리는 투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지난번 선거에서 CUT가 역사상 처음으로 룰라를 지지하였다.

신자유주의는 단숨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회정치와 민주주의는 참여 민주주의를 통해 변화해 나갈 수 있다. 이곳 포르토 알레그레는 그간 참여 예산제를 실시해 왔다. 민영화문제가 심각하지만 아직 국가전체가 민영화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농지개혁, 주택, 의료 등에 새로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CUT는 800만 조합원(3,700개노조)을 대표하며 교섭의 내용과 관련해서 2,000만 노동자를 대표한다. 아동노동, 관제노동 등에서 연대정신하에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COSATU의 정책을 CUT 많이 참고할 것이다.
방청석에서의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상파울로지역 여성은행노동자 : 40만명 금융노조소속이다. 여성노동자 비율이 53%다. 임금이 남성보다 낮다. 남반구 노조연대를 맺어야 한다. 룰라정부하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얘기한다면 인종차별 문제(여성, 흑인), 빈곤, 질병, 전쟁반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리오데자네이로 거주 교육노동자 : 전세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노조가 관료화되었다. 새로운 노동조합주의를 위해서는 실천, 행동, 연대가 필요하다.

-CUT는 역사적 임무를 완성했다. 새로운 과제가 놓여있다. 지도부가 정부에 있는데 CUT와 정부와의 관계는? 그리고 남반구 노조 통합 방안은?

-남미지역 관광화학 국제노조근무 : 한국의 비정규직과 불법노동자 비율은?

-CUT와 COSATU와 같이 낙관성에 의존하면 안된다. 정부에 요구를 강제해야 한다.

-독일노조 : CUT얘기는 너무 희망적으로만 느껴진다. 한국은 ILO조약을 안지키고 있다. 대통령 선거후 한국의 기대는 무엇인가?

-캐나다. : 반시자유주의와 남반구노조 전략은? 지역적 전략에서 대상과 전망은?

이상의 토론과 질의에 대해 3노총의 발제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CUT : CUT는 역사적 임무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장된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COSATU : 지역적 통합과 명확하고 솔직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인종주의는 위험하다. 탄광노동자가 사고를 당하면 흑, 백인 노동자 모두 죽는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KCTU : 자본의 세계화는 미국화의 다른 표현이다. 전세계의 1일 무역거래량은 금액으로 자본투기거래의 1/100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노동자들의 이동은 쉽지 않다. 우리들이 이곳에 오는데 비행기로만 30시간을 날아왔다. 그 비용만 해도 한국노동자의 평균 2달치 월급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의 세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구체적 투쟁에 노동자의 연대가 필요하다. 인터넷을 통한 세계노동자대회도 수시로 개최해야 한다. 가능한 세계노동자 신문을 제작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56%고 불법노동자는 이주노동자 40만명으로 취업자의 2%수준이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인 노무현은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아니었다. 민주노동당은 4%지지를 얻었는데 20년전 PT당과 비슷하다. 노무현은 스스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과 친미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그에게 기대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당선자 스스로 기대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지역전략과 관련해서는 아시아 지역의 연대는 매우 취약하다. 한, 중, 일 간의 여러 조건의 차이, ASEAN과 동남아 지역, 서남아시아지역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WSF의 지역포럼을 통해 지역전략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반구노조 연대회의(SIGTUR) 등을 자기조직의 주요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사회포럼(WSF) 참가기(8) : 룰라대통령의 연설

2부토론은 민주노총의 이회수대협실장이 한반도 전쟁 분위기와 미제국주의에 의한 한잔도 평화위협 등의 내용으로 발표가 있었다.(내용은 민주노총 대협자료 참조)

이어 COSATU의 2부토론이 있었다.
COSATU는 조직률이 낮다. 실업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개방화에 따른 결과다. 공공부문의 예산 축소로 실업이 증가하였다. 원칙적으로는 노조에 문제가 있다. 사회보험전략이 요구된다. 정부와 중앙차원의 노사정법률이 있다. 이것은 산업부문의 전략이다. 필요한 요구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노조보다 아이디어가 더 없다는 점이다. 사용자도 그렇다. 집권 초기 16% 실업률이 지금은 30%에 달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30%의 실업률상태에서 노조이익은 불가능하다. 실업자에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정책역량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현장과 멀어질수록 어렵다. 합의없이도 정부와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선 순위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단체와의 연대 강화해야 하나 사회운동이 강하지 않은 상태다. 특정부문은 정부에 들어감으로써 약화되기까지 했다.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에 대한 조직내 이견도 존재한다. 많은 사회단체들이 정부내에 들어갔다. 세계화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국가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DDA(특히 서비스 부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

CUT(Rafael Freire Neto 조직국장): 룰라정부의 성공과 CUT와의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국제금융기구와의 단절을 꾀하기는 어렵다. 현재 외채는 물론이고 내체 또한 많다. 그것은 지난 8년간의 까르도스 정부정책의 결과다. 브라질은 지금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토지가 독점되어 있다. 2000만명의 국민이 굶주리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불황을 야기했다. 사회적으로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없어졌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노조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절대적인 지지만 보낼 수는 없다. 급변하는 변화의 프로그램에서 볼 때 능력이 있어야 한다. 룰라가 부르주아 정권이라고 보는 전투주의자는 소수다. CUT는 정부각료인선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자율은 25~25.%%로 높다. 재무장관 선임문제는 빈곤퇴치의 문제(No hunger)와 관련된다. CUT가 사회적 동맹을 맺어야 한다. WSF에는 1,700가지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인 대외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어제 행진시에 '룰라는 다보스에 가지마라.' '룰라는 남미공동체에 참가하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다. 베네주엘라의 파업문제가 있긴 하지만 산다니스타, 에콰도르, 남아공 등에서 승리했다. 40~50개의 급진조직은 독재정부의 산물이다. 좌파정부는 그냥 1회성으로 지나가는 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룰라에 대한 의문과 관련하여 긍정과 부정으로 분리할 문제는 아니다. 변화의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더 이상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굶주림은 없애야 한다.

이어 방청석의 질문이 있었다.
브라질내 사회운동이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주자유지역과 부시전쟁은 잘못이다. →답변 : 브라질내에서 토지점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농지개혁은 차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CUT는 집단적 교육을 시행한다. 사회운동세력은 강화돼야 한다. 사회운동, 좌파의 과제, 남미국가들의 과제는 '반미'과제다. 그러나 신비주의로는 도움이 안된다.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

PT당의 승리와 개혁의 준비상태는?
한국에서 반미감정과 통일에 영향은?
세계화 주체는 미국행정부인가?
→답변 : 반미감정은 통일에 도움된다. 전쟁반대 인터뷰에 73%국민이 찬성했다. 대북 적대적이었던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46%지지 밖에 얻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초국적 자본, 군산복합체, 부시행정부 등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4시간여에 걸친 토론이 끝나고 우리는 첫날 행진 종착지였던 젊은이 광장에서 룰라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PUC대학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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