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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보도

<자료3>다른 여성 피해자의 자술서

작성일 2000.03.31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3402
<다른 여성 피해자의 자술서>





저는 19일 저녁 늦게 민주노총 사무실에 갔었습니다. 그곳에 민주노총 신문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조합원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집으로 가는 길에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가는 도중에 친구가 화장실에 급히 가야겠다고 해서 저 혼자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덕 위에서 갑자기 순찰차가 급히 내려오다가 제 앞에서 딱 멈춰서더니 앞, 뒷문이 벌컥 열리면서 "현행범으로 체포하니 빨리 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는데, 아래쪽에서 친구가 의경에게 잡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무슨 일로 이러는 거냐, 왜 우리가 차에 타야 되는 거냐'고 이유를 물으니 '지금 들고 있는게 뭐냐, 당신들은 지금 선거법 위반으로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것이니 빨리 타지 않으면 강제로 태우겠다'고 했습니다. 그 중 한 경찰은 계속 반말로 일관하며 우리가 차에 타는 것을 거부하니까 험악한 눈초리로 우리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잔말 말고 빨리 타! 위에서 너희들 모두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안타면 강제로 태울꺼야!"라고 소리치며 소매를 잡고 강제로 태우려고 하였습니다. 또 한사람이 잡혀오면서 우리 셋은 차에 타는 것을 거부했고, 체포하는 명확한 이유를 밝혀달라고 했지만 무조건 타라고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찰차가 세 대, 봉고차가 한 대, 트럭이 한 대 이렇게 경찰 50여명이 몰려와서 우리를 에워싸서 어쩔 수 없이 차를 탈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를 타고 간 곳은 남부경찰서 수사계였는데 우리 세 명 말고 여러명이 더 잡혀와 있었고, 자리가 없다며 우리를 조사계로 보냈습니다 .그 때가 새벽 2시경이었던 것 같은데 조서를 쓴다고 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당혹스러운 마음에 많이 힘들었지만, 억울하게 잡혀온 것이 너무 분해서 조서 쓰는 것에 응했습니다. 조사는 새벽 6시쯤 끝났는데, 그 후에 잡혀온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어딘가로 데리고 가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어도 가면 안다고 잘 대답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두려웠지만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철문을 지나서 들어간 곳은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감옥처럼 창살이 빙 둘러쳐 있는 곳이었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유치장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런 곳에 올 정도로 큰 죄를 지었나? 나는 우리 조합원 주려고 민주노총 신문을 챙겨온 것 뿐인데'하는 억울한 생각과 난생 처음 감옥같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는 충격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게다가 화장실도 앉은 채로 고개만 들면 남자 의경들이 왔다갔다하는 바깥이 훤히 보이는 나즈막한 칸막이 안에 있는 것을 쓰라고 하는데, 어찌나 당혹스러운지... 여자들은 여경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자해위험이 있으니까 몸수색을 한다고 했습니다. 몸수색은 소지품을 꺼내고 양말을 벗고 허리띠와 브래지어를 풀고 간단하게 겨드랑이와 허리쪽을 손으로 훑으면서 검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커텐도 없는 창문으로 누가 볼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같은 여자라고는 하지만 내몸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대는 것이 꺼려 졌지만 어쩔 수 없이 응했습니다.




저는 그때 생리중이었고 잡혀올 때 집에 가던 중이라 여분의 생리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여경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생리대를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여기 남자들(유치장 안에 있는 의경들)한테 달라고 해라, 그런 거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고 하며 주지 않았습니다. 유치장 안에 갇히고 나서 밤새 조사 받은 것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우리는 잠을 자려고 했는데 기상시간이니까 일어나라고 하며 잠을 자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철창 쪽으로 등을 보이고 벽만 보고 앉아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차디찬 마룻바닥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비참하고 힘들었습니다. 나중엔 여자들은 냉에 걸릴 수도 있다며 모포를 깔고 앉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유치장 안이 너무 추워서 온종일 덜덜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후쯤 변호사님이 오셔서 우리 8명이 한꺼번에 접견을 하게 되었고 접견 후에 다시 유치장에 들어갈 때 다시 몸수색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여자 셋은 점심을 먹으러 간 여경이 올 때까지 식사도 못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1시간이나 기다려 여경이 왔는데 처음 몸수색하러 들어갔던 작은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해할 위험이 있어 몸수색을 할테니 옷을 다 벗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놀라서 '속옷도 벗어야 하냐, 지금 우리는 여기 유치장 안에서 변호사를 만나고 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겠냐'면서 거부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생리중이라고 이야기했는데도 그 여경은 '같은 여자끼리 뭐 어떠냐'면서 팬티까지 다 내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새벽에 몸수색할 때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면서 계속 거부하자 그 여경은 '여기 규칙이다, 자꾸 그렇게 거부하면 남자의경을 대동하고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이 너무 당혹스럽고, 아무리 같은 여자라지만 어머니한테도 보여주기 힘든 생리중인 나의 속옷을 남에게, 그것도 경찰에게 강제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규칙이라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책임자를 불러달라'고 했고, 유치장 책임자라는 무슨 계장이란 사람이 와서 '왜 쓸데없이 대응을 하느냐, 지금 면회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냐'면서 마치 몸수색을 거부하는 우리 때문에 면회가 늦어지는 것처럼 말하며 '몸수색은 여자의 질 속에 위험한 물질을 숨기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빨리 협조하고 면회하자, 남자들도 다 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제가 계속 울고있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경은 다른 두 사람의 웃옷을 어깨까지 다 걷어올리고 아래도 속옷까지 다 내리게 한 후 질 속에 위험한 물질이나 담배를 숨기고 있을 수 있으니 앉았다 일어났다를 다섯 번 씩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커텐도 없는 창문이 신경 쓰이고 생리중이라서 웃옷만 걷어올리고 있으니까 그 여경이 빨리 팬티를 내리라고, 다 기다리고 있다고 재촉해서 팬티를 내리고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리중 이니까 앉았다 일어났다를 할 필요 없다고 하며 다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여경의 말이 너무나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신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온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도 당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유치장에서 그런 식으로 몸수색을 해야한다는 법이 있다면 나 같은 일을 당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면회를 한 후, 우리는 또 몸수색을 해야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여경이 없다며 그냥 들여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몸수색을 안 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호사를 만나고 나면 몸수색을 하면서 면회를 하고 나면 몸수색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경이 없으니까 몸수색은 안 해도 된다는 식의 그들의 규칙(?)에 너무 분노했습니다.





민주노총 신문을 소지한 죄(?)로 현행범으로 체포당했던 우리 8명은 결국 불구속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남부경찰서 앞에서는 매일 민주노총의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지만, 집회장소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갔을 때, 구호를 외칠 때마다 그 때 일이 자꾸 떠올라서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이 떨려와 도저히 사람들 속에 서있을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게다가 더욱더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여경들과 형사들이 우리를 보고 비웃으며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수치심과 분노에 몸이 떨려 정말 저들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니고서는 저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면 그때 일도 잊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불쑥 불쑥 그때 일이 생각나 몸서리쳐 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 이렇게 자술서를 쓰는 것도 저에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의 바램은 우리를 부당하게 체포하고, 편의를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유치장에 가두고, 수치스러운 몸수색까지 강요한 그들이 하루 빨리 법의 심판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저와 같은 경우를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저도 수치스러운 기억을 잊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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