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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어떤 정년퇴임식-고용승계투쟁 중인 삼미특수강 세사

작성일 1999.12.13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8165
< 보도자료 >




어떤 정년퇴임식




고용승계투쟁 중인 삼미특수강 세사람 오늘 여의도 농성장에서




1. 시루떡 맞추랴, 맛난 막걸리 받아오랴, 돼지머리 사고 귤 사러가랴… 여의도 민주노총 농성장이 오늘따라 바쁩니다.




오늘은 포철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3년 가까이 상경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남 창원시 신천동 66번지 삼미특수강 동갑내기 노동자 강성철(姜聲哲 57 / 가공공장)·이만수(李萬水 57 압출공장)·기유광(奇兪光 57 가공공장)씨의 정년퇴임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19시30분 여의도 국회 앞 민주노총 농성장) 함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후배들이 없는 돈을 모아 금반지도 하나씩 맞춰놓았습니다. 셋 중 이만수씨는 산재로 허리를 다쳐 창원 집에서 요양하고 있어 사람편으로 반지를 전해줄 예정입니다.




정년퇴임식은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사장을 대신해 그동안 세 사람이 청춘을 바쳐 회사와 나라경제 발전을 위해 일해온 노고를 치하하고, 함께 참석한 사람들이 막걸리 한 잔씩 돌리며 이 날을 기념하는 순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2. 강성철씨와 기유광씨는 지난 75년에, 이만수씨는 76년에 당시 '잘 나가는 대기업이던' 삼미특수강에 입사해 청춘을 바쳐 30년을 하루같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96년 포항제철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면서 이른바 위장된 자산매매 방식을 빌어 이들을 포함해 587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로부터 만 3년 동안 해고를 도저히 인정못하겠다는 182명이 십여차례 서울 상경투쟁을 벌이며 복직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97년 12월17일 중앙노동위원회 복직판정에 이어 올해 1월22일 서울 고등법원에서도 포철이 삼미를 산 방식은 자산매매가 아니라 명백한 영업양도양수이므로 소송을 낸 182명 전원을 복직하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하지만 포철이 법원 판결에 따르지 않고 상고했고 대법 판결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세 사람은 원직복직 농성장에서 정년퇴임식을 열게 된 것입니다.




3. 오는 12월16일 목요일이면 삼미특수강 고용승계 투쟁이 만 3년을 맞는 날입니다.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3년에 걸친 고용승계 투쟁은 그 자체가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의 발가벗은 자화상이자, IMF사태에 가위눌린 우리 노동자들의 눈물어린 기록입니다. 열차례가 넘는 서울 상경투쟁, 집단 장기기증, 44명의 20일에 걸친 아사 단식투쟁, 넉달에 걸친 서울역 노숙투쟁, 20만명의 고용승계 촉구 서명참여… 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포철 본사인 포스코, 국회, 여야 세당사, 노동부, 당시 포철 김만제 회장 집, 현 유상무 회장 집, 심지어 왜곡보도를 내보낸 언론사 앞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속, 구류, 벌금 등 182명 가운데 모두 34명이 사법처리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4. 하지만 가장 큰 고통은 짧지 않은 세월로 가정이 흔들리고 노숙에 가까운 생활로 건강이 파괴되는 일입니다.




182명 가운데 삼미에서 20∼30년씩 일한 사람이 절반이 넘고 이들 나이는 40이 다 넘어 아이들이 모두 중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가출하는 아이들, 이혼, 생계곤란… 결국 복직판결을 받은 182명 가운데 한 사람인 이 광수 씨가 올해 6월5일 부당해고에 따른 가정파탄을 비관해 목을 메 자살하기 까지 했습니다.


또 부당하게 해고된 뒤 힘겨운 복직싸움 과정에서 건강상태가 몹씨 안좋아져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최근 이들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녹색병원(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 결과 세운 산재전문병원)에서 이들에 대해 무료로 건강검진과 삶의 질 변화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상당히 충격받을 만한 결과가 나와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5. 포철의 삼미인수가 자산매매냐 영업의 양도양수냐 하는 문제는 법조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뜨거운 논쟁과 치열한 토론 주제로 자리잡아왔습니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다뤄진 것은 물론,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은 언론이 없었고, 감사원·국세청도 이 문제를 고민한 끝에 영업양도양수라 결론내렸으며, 김대중 대통령조차도 중노위 판결대로 처리토록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는가 하면, 여야 국회의원 37명과 경남도의원 43명의 대법원 재판 촉구 건의서 제출은 물론, 3년간 노동계 투쟁의 주요한 요구였고 아직도 그러합니다. 어느덧 이 문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승계 의무의 선례가 된다는 명분으로 포철 뿐 아니라 재계 전체가 대법 판결을 앞두고 치열한 로비와 사전 정지작업을 펼치며 자산매매로 막판 뒤집기하려는 보이지 않는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법 판결을 앞두고 포철의 논리를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한 대학교수 논문이 발표되어 민주노총과 삼미특수강노조에서 오는 23일경 이 문제로 공청회를 열 계획이어서 다시한번 불꽃튀는 논쟁이 벌어질 듯 합니다.


<끝>




<삼미특수강 고용승계 투쟁 일지>




1996년 12월 16일 회사측의 일방적인 회사 분할 매각 발표


1997년 2월 17일 포항제철이 자산매매 형식으로 삼미 인수 계약


1997년 3월 24일 부터 10월말까지 1,2차에 이은 3차 상경투쟁(새정치 국민회의 삼미와 진상 조사단 구성 활동, 명동성당 집단 단식농성, 포철의 삼미특수강 위장 정리해고 철회와 고용안정 공동대책 위원회 구성활동, 공청회, 국회에 문제해결 청원서 제출,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장기 기증 및 44명 집단 단식 농성 돌입(20일간)


1997년 12월 17일 중앙 노동 위원회 전원 복직 승소 판결 (부당해고 이므로 원직에 상응하여 복직 시켜라)


1998년 4월 22일 민주노총 지도부 면담중 단 병호 부원장의 사태해결 촉구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중앙 노동 위원회의 판결을 존중하여 즉각 해결토록 하였으니 조치가 있을 것이다라고 함


1998년 5월 21일 부터 9월 24일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투쟁


1998년 6월 5일 민주노총과 정부간 노정합의-정부와 노사정위원회는 관계당사자간(정부,포철, 삼특노조,금속산업연맹)의 만남을 주선하여 원만히 해결토록 노력한다.


1998년 7월 23일 민주노총, 한국노총 두 위원장과 김 원기 노사정 위원장 철야교섭으로 노정합의-포철 계열사(협력업체 제외)에 우선 취업 시키고 관련 재판이 끝나면 결과에 관계없이 본인이 원할 경우 창원 특수강으로 취업 시킨다.


1999년 1월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전원 원직 복직판결


1999년 6월 5일 부당해고로 인한 가정파탄으로 이 광수 해고 노동자 목메어 자살 (복직판결 받은 182명중 1명)


1999년 7월 1일 국회의원(37명),합리적이고 조속한 재판촉구(대법원 계류)를 위한 건의서' 대법원에 제출


1999년 9월1일 창원 특수강과 노동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2년간에 걸친 26차례의 교섭 결렬


1999년 9월 11일 고용승계 투쟁 1,000일 기념집회 포스코센타 앞에서 가짐


1999년 10월 5일부터 상경투쟁 계속 진행


1999년 12월 6일부터 민주노총 3대 요구안에 삼특문제 걸고 민주노총과 함께 국회앞 동계 철야 농성 투쟁을 전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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