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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3]노동열사 … 20년 동안 98명 '노동운동 불꽃'으로 산화

작성일 2000.09.18 작성자 대외협력실 조회수 3670
노동열사 … 20년 동안 98명 '노동운동 불꽃'으로 산화

□ 박정희 정권 시기 ( ∼ 70년∼ 79년까지 총3명 사망)
- 70년 : 1명 - 71년 1명 - 79년 : 1명

1) 전태일(1970년) : 70. 11. 13. 오후 1시 30분경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분신 결행, 밤 10시경 성모병원에서 불꽃으로 산화

2) 김진수(1971년) : 70. 12. 한영섬유 노동조합을 결성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시정을 촉구했으나 71. 3. 18. 노조를 파괴하려는 구사대에게 피습당함, 5. 17. 운명

3) 김경숙 (1979년) : 78. 3. YH노조 대의원 선출, 79. 8. 9. 신민당사 점거농성, 8. 11. 새벽 2시 2천여명의 경찰 신민당사 난입, 강제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운명.

□ 전두환 정권 시기( 80년∼ 87년가지 총18명 사망)
- 80년 : 1명 - 84년 : 1명 - 85년 1명 - 86년 3명 - 87년 12명

4) 김종태(1980년) : 80. 6. 9. 17시 50분경 이대앞에서 "노동3권 보장하라", "유신잔당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광주학살 의분을 호소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5) 박종만(1984년) : 84년 11월 노조 사무장의 부당 해고에 맞서 단식 농성에 돌입. 11월 30일 해고철회 요구를 위해 전무를 찾아갔으나 오히려 해고하겠다고 위협하자 이 소식을 들은 박종만 동지는 동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사무실에서 밖으로 뛰어나오며 "노동조합 탄압말라, 사무장을 복직시켜라,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라."고 외치며 분신. 오후 8시 30분경 운명

6) 홍기일(1985년) : 8월 15일 전남도청앞 금남로에서 '8. 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라는 유인물과 부모님과 형에게 보내는 유서를 뿌리면서 "광주시민이여! 침묵에서 깨어나라!", "학원안정법 반대투쟁에 결사적으로 나서자", "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 자살을 기도. 22일 임종

7) 박영진(1986년) : 동일제강 민주노조 건설에 핵심적 역할을 해낸 그는 신흥정밀에 입사하여 부당노동 행위 및 임금착취에 대한 항의중 해고 철회 투쟁을 벌이다가 경찰과 회사측의 폭압에 맞서 "근로기준법 지켜라, 노동3권 보장하라"며 분신 운명

8) 변형진(1986년) : 4월 30일 삼환택시의 부당해고에 맞서 오후 2시 30분경 회사앞에서 분신,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 5월 1일 운명

9) 신호수(1986년) : 6월 11일 인천시 남구 도화가스에서 근무 중 서울 서부서 형사들에 연행후 행방불명. 6월 19일 전남 여천군 대미산 동굴에서 변사체로 발견

10) 이순덕(1987년) : 86년 6월 28일 충청지역 교육민주화 실천 결의대회에 참가하는 등 충청지역 교육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가 끝내 파면. 87년 1월 3일 학교 계단에서 쓰러져 5개월간의 투병 생활 끝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

11) 표정두(1987년) : 86년 호남대 자퇴후 야학교사로 활동, 87년 2월 하남공단 신흥 금속에 입사, 3월 6일 세종로 미대사관 앞에서 "내각제 개헌반대", "장기집권 음모분쇄", "광주사태 책임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분신. 3월 8일 운명

12) 황보영국(1987년) : 79년 성지공고 중퇴,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 삼화고무, 태화고무 근무. 87년 5월 17일 부산 상고앞에서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호헌책동 저지하고, 민주헌법 쟁취하자"를 외치면서 분신. 5월 25일 운명

13) 김현욱(1987년) : 85년 진흥요업 근무. 87년 6월 민주화 대투쟁 적극 참여. 8월 1일 사랑방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참여.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14) 이대용(1987년) : 77년 인천 석남동소재 선학알미늄 입사. 86년 동양튜브에서 임금인상 30%쟁취 투쟁. 87년 8월 1일 산마루교회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에 참여하던 중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15) 박용선(1987년) : 85년 한국릴레이 근무. 백마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참여하던중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16) 유인식(1987년) : 87년 한국기독노동자 인천지역연맹 대표자회의 성원, 6월 대투쟁 적극 참여. 8월 1일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체육부장으로 참여.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17) 이석규(1987년) : 84년 대우조선 입사, 선각소조립부 근무. 8월 22일 임금인상과 노동조건개선을 위해 김우중 회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옥포아파트 사거리에서 동료들과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중 오후 2시 40분경 폭력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대우병원으로 옮겼으나 오후 3시 30분경 운명

18) 이석구(1987년) : 80년 조흥택시 입사. 87년 8월 31일 노동조합 재결성, 위원장에 선출. 9월 2일 오후 8시경 회사측의 노조 탄압중지 요구에 대해 사장의 성의있는 답변이 없자 이에 격분하여 신나를 끼얹고 분신, 9월 19일 운명

19) 김수배(1987년) : 86년 고려화학 입사, 살란트 기술부 근무. 87년 노동조합 사무장. 10월 16일 12시 40분경 노조탄압에 맞서 자재 창고 앞에서 분신

20) 김성애(1987년) : 86년 9월 12일 진흥요업에서 작업 중 화공약품에 의식을 잃고 반신불수. 87년 11월 3일 산재 중앙병원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투신, 운명

21) 박응수(1987년) : 82년 6월 투라가구에 입사. 87년 12월 5일 대전역 광장에서 경찰과 대치중 "후보단일화 하라"고 절규하며 분신 산화

□ 노태우 정권 시기(88년∼92년까지 총46명 사망)
- 88년 : 12명 - 89년 : 12명 - 90년 : 8명 - 92년 : 5명

22) 이대건(1988년) : 81년 마산 우성택시 입사. 88년 1월 6일 파업농성 19일째에 협상이 결렬되자 단체 협상 위반에 항의하며 회사 앞에서 분신. 1월 8일 운명

23) 정경식(1988년) : 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 87년 노조지부장 선거운동에 참여. 87년 6월 8일 실종. 88년 창원 불모산에서 유골로 발견. 민주노조 건설과정에서 타살로 추정

24) 김장수(1988년) : 87년 인천 경기교통 노조 조합장 활동중 해고. 88년 3월 1일 회사내의 부당해고에 맞서 단식농성중 분신. 88년 3월 9일 운명

25) 오범근(1988년) : 73년 후지카 대원전기 입사. 76년 프레스공으로 작업중 4손가락이 잘리는 산재를 당함. 당시 4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며 이후 수위로 근무. 88년 3월 10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파업농성 과정중 구사대에 의한 타살로 추정

26) 최윤범(1988년) : 88년 고려 피혁 노조위원장 선출. 88년 4월 24일 해고 징계에 맞서 작업거부중 철야 농성. 88년 4월 25일 관리자들과 몸싸움중 분신. 88년 4월 30일 운명

27) 장용훈(1988년) : 87년 전남 순천 현대교통 택시운수회사 입사. 88년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행위와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여 분신. 88년 5월 30일 운명

28) 문용섭(1988년) : 86년 서울 광무택시 입사. 88년 6월 9일 회사비리 폭로 과정에서 구사대의 폭행으로 운명

29) 문송면(1988년) : 87년 야간공고 진학을 위해 영등포 협성계공(주)에 입사. 88년 2월 8일 휴직계 제출. 3월 14일 수은중독 진단받음. 4월 7일 노동부 서울 남부지방사무소에 산재 요양신청서 제출. 노동부, 산재요양신청서 처리 지연. 6월 29일 여의도 성모병원 직업병과로 전원함. 점차 약화. 88년 7월 2일 운명. 당시 나이 만 15세

30) 성완희(1988년) : 86년 태백시 강원 탄광에 입사. 87년 파업시 노동자 대표로 선출되어 파업을 승리로 이끔. 88년 2월 경비직으로 부당전직 당했다가 투쟁으로 원직복귀. 88년 6월 동료해고자 복직을 위해 시위에 돌입. 88년 6월 29일 노조사무실에서 5명이 단식농성중 어용노조 대의원등의 각목 습격에 맞서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7월 8일 운명

31) 송철순(1988년) : 87년 1월 세창물산 입사. 88년 6월 노조 창립과 함께 사무장으로 선출. 88년 7월 15일 파업기금마련 연대집회 준비로 현수막 설치중 추락. 운명

32) 이문철(1988년) : 86년 대원여객 입사. 88년 10월 부당하게 해고 당함. 88년 11월 1일 부당해고와 연장근로 수당 미지급에 항의투쟁중 분신. 11월 6일 운명

33) 배중손(1988년) : 구미 금성사 근무. 87년 8월 회사측의 휴업조치 이후 어용노조의 민주화와 임금 인상 파업농성에 앞장서 투쟁. 이후 강제출장 명목의 납치. 정신병원 입원. 88년 5월 복직. 88년 11월 14일 운명. 회사의 고도의 노무관리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

34) 최완용(1989년) : 83년 인천에서 공장생활. 87년 산업재활원 방문, 환자들을 위로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재해자들과 삶을 같이함. 89년 계양구 소재 흥업사에서 손가락 4개가 짤리는 산업재해를 당함. 89년 4월 9일 부평 철마산에서 산재없는 세상을 열망하며 분신

35) 김윤기(1989년) : 83년 국민대 입학. 86년 5월 5.3 인천 투쟁에 참가하여 구속되어 1년형 선고. 88년 7월 덕진양행 입사. 88년 11월 노조 결성, 위원장으로 선출. 89년 4월 23일 민주 노조 사수과정에서 회사측과의 협상결렬 항의, 분신

36) 김종수(1989년) : 88년 7월 (주)서광 구로공장에 입사. 89년 1월 쟁의부장 임명. 89년 4월 18일 노동운동 탄압분쇄, 임금인상 완전쟁취, 서광 구로지구의 독자적 운영 쟁취등을 내걸고 파업 시작. 5월 4일 회사측의 탄압에 맞서 "무노동 무임금 철폐", "민주노조 사수", "동지들을 탄압하지 말라"고 외치며 분신. 운명

37) 이상남(1989년) : 84년 현대 엔진 공업에 입사, 상기철구 공장 기능직 사원 근무. 87년 9월 12일 현대중공업 구사대 차량에 깔려 중상. 89년 5월 16일 612일간의 사투 끝에 운명

38) 조정식(1989년) : 82년 서울대 입학. 84년 7월 제적, 범아산업에 취직. 86년 인천 진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 시작함. 87년 11월 반제동맹사건으로 구속, 3년형 선고. 89년 영전기계에 취업. 89년 5월 24일 공장에서 산재로 운명

39) 이상모(1989년) : 86년 광주 직업훈련원 수료. 대우조선 입사. 89년 5월 29일 대우조선 제3기숙사 7동 옥상에서 "대동단결 대동투쟁 원직복직, 임금인상 확실하게 쟁취하자."를 주장하며 분신, 투신

40) 박진석(1989년) : 84년 인천 직업훈련원 수료, 대우조선 입사. 88년 진주 방송통신고등학교 입학. 89년 5월 29일 구사대 가입을 강요하자."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며 항의, 분신, 투신

41) 이종대(1989년) : 88년 기아산업 노조 대의원 당선. 89년 1월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배재정씨 해고시 복직운동을 벌임. 89년 3월 25일 복직, 임금인상 쟁취를 위해 투쟁, 노조 민주화를 위해 헌신. 89년 7월 3일 노조 사무실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89년 7월 8일 운명

42) 최성조(1989년) : 89년 남성 흥진 노동자로 무노동 무임금 분쇄 결의대회 참가로 불구속. 89년 8월 2일 파업도중 구사대 폭력으로 구타당하여 실신(2차례 뇌수술) 89년 8월 5일 운명

43) 강현중(1989년) : 87년 경동산업 입사. 88년 5월 디딤돌이라는 친목회를 구성하여 회장으로 활동. 89년 경동 노조 민주화 투쟁 파업에 참여. 89년 9월 회사의 부당징계조치에 항의농성. 89년 9월 4일 노무이사와의 담판이 결렬되자, 노무이사에게 신나를 끼얹고 함께 분신한 뒤 불붙은 몸으로 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 노동자는 승리합니다." 라고 절규. 89년 9월 9일 운명

44) 김종하(1989년) : 85년 인천 경동산업 입사. 89년 4월 임금인상 대책위원으로 활동. 89년 5월 디딤돌 친목회에서 적극적 활동. 89년 8월 디딤돌 친목회 임원에 대한 부당한 징계에 항의하여 농성투쟁중 분신. 89년 9월 15일 운명

45) 이재호(1989년) : 88년 협신사 입사. 89년 10월 29일 회사의 상상을 불허하는 폭력과 반인륜적 행위에 맞서 노조 재건을 위해 활동하던중 피살

46) 배주영(1990년) : 85년 경북대 졸업.봉화여고 부임. 87년 11월 안동교협 창립, 부회장에 피선, 활동중 청송지역 산골마다 찾아다니며 조직작업. 88년 12월 청송 영양교협 창립. 총무부장 역임. 89년 해임후 진보에서 자취하며 전교조 활동을 계속함. 90년 2월 19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운명. 91년 유고집 '그 숨결 남아 아직 청송같이 푸르른데' 출간

47) 강민호(1990년) : 85년 한신대 입학. 86년 건국대 애학투 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 87년 구로구청 부정개표 사건으로 2년 선고. 90년 대붕전선 입사. 90년 4월 4일 야간작업중 기계에 휘말려 운명

48) 이영일(1990년) : 89년 (주) 통일 입사. 90년 5월 3일 회사측과 경찰의 지속적인 탄압에 분노, 항의하며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투신

49) 최태욱(1990년) : 90년 5월 9일 해고. 5월 14일 원직 복직. 5월 30일 재차 해고. 7월 8일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분신. 7월 14일 투병중 운명

50) 최동(1990년) : 80년 성균관대 입학. 84년 부천에서 노동운동 투신. 89년 인노회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구속. 90년 8월 7일 한양대에서 분신

51) 박성호 (1990년) : 89년 안산 금강공업 (주)에 입사. 90년 8월 10일 노조 결성시 노조부위원장으로 선출. 90년 8월 30일 회사측의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공고에 맞서 농성중 경찰의 폭압적 진압에 의해 전신 70%의 화상. 9월 11일 운명

52) 원태조(1990년) : 89년 안산 금강공업에 입사. 90년 8월 10일 노조 결성시 후생복지부장으로 추대. 90년 9월 18일 운명

53) 김봉환(1991년) : 77년 원진레이온 입사. 90년 퇴사후 1차 쓰러져 말을 더듬기 시작. 90년 11월 사당의원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의증 및 고열압으로 진단받음. 노동부와 회사측 요양 신청 거부. 91년 1월 5일 노동부로부터 요양신청서 접수 통보 받음. 91년 1월 5일 운명

54) 신용길(1991년) : 89년 7월 전교조 부산지부 결성식에서 축시를 낭송해다는 이유로 구덕고에서 파면. 89년 8월 출근 투쟁을 하던 중 경찰에 연행.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발병한 위궤양으로 병보석. 90년 1월 전교조 부산지부 교과위원장. 91년 3월 9일 동아대 부속병원에서 위암으로 운명

55) 박창수(1991년) : 90년 7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당선. 91년 2월 제3자 개입금지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서울구치소 수감. 91년 5월 4일 의문의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 5월 6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56) 윤용하(1991년) : 89년 성남피혁 근무, 민주화운동 직장 청년연합 회원으로 활동. 91년 5월 10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전남대에서 분신. 5월 12일 운명

57) 이진희(1991년) : 91년 6월 8일 인천 삼미기공에서 임금인상 보고대회 도중 노동조합측의 타결안에 분노하여 분신. 6월 15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

58) 석광수(1991년) : 86년 인천 공성교통에 입사. 91년 6월 14일 회사측의 성실한 교섭 자세를 촉구하기 위한 치량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적인 조합원 연행에 항의 6월 15일 분신. 24일 운명

59) 유재관(1991년) : 90년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 남부 노동반 반장, '인사연' 제8차 정기총회 준비위원. 91년 6월 27일 공권력의 '인사연' 사무실 침탈소식을 듣고 급히 나오다가 3층에서 실족 사망

60) 김처칠(1991년) : 90년 합동물산 노동조합장 당선. 91년 조합장 재선. 91년 8월 22일 조합원들이 축구를 하다 한강에 공을 빠뜨리자 동지가 공을 건지겠다고 들어갔으나 탈진 실종. 행주대교 근처에서 시신 인양

61) 권미경(1991년) : 90년 (주)대봉에서 미싱공으로 근무. 91년 12월 6일 어용노조의 협조 속에서 30분 일 더하기 운동, 구사운동과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노동통제강화에 맞서 공장 옥상에서 투신자살

62) 임희진(1992년) : 89년 신암중 부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 해임. 90년 강남강동 지회 교육선전부 활동. 92년 암으로 운명

63) 박복실(1992년) : 81년 태창 메리야스 노조위원장으로 당선, 민주노조 활동을 전개. 87년 전주 노동자의 집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 90년 전북노련 지도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였으나, 91년 6월 위암수술을 받게 되었고 8개월간의 투병생활을 하다가 92년 3월 운명

64) 오원석(1992년) : 지병인 간암으로 8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 교육민주화운동에 앞장섬. 90년 전교조 경북지부, 인천지부로부터 참교육상 수상. 90년 9월 지병인 간암으로 운명. 92년 4월 18일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에 참교육비 세워짐

65) 윤재영(1992년) : 전대협 결성 주도, 89년 수배중 대전 샛길 청년회 창립주도, 92년 10월 10일 노동운동을 하던중 천식으로 인해 운명.

66) 최성근(1992년) : 88년 부산 평교사협의회 참가로 교육운동 시작. 90년 전교조 부산지부 사립지회 동래 지구장. 91년 전교조 대의원 사립지회 서구지구 대의원. 92년 12월 13일 지병인 간암으로 운명

67) 이광웅(1992년) : 82년 군산제일고 국어교사로 재직중 이른바 '오송회' 사건에 연루, 5년동안 옥중생활. 87년 군산 서흥중에 복직. 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92년 12월 22일 지병인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운명

□ 김영삼 정권 시기 (93년∼97년까지 총26명 사망)
- 93년 11명 - 94년 5명 - 95년 : 4명 - 96년 : 5명 - 97년 : 1명

68) 정운갑(19993년) : 88년 삼미특수강 입사. 90년 노조4대 대의원으로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열심히 활동. 92년 임금동결 거부, 인원감축 반대 파업 투쟁시 암말기 진단을 받고도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이 투쟁. 93년 1월 25일 병상에서 운명

69) 채희돈(19993년) : 89년 인천 남일금속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활동. 92년 12월부터 남일금속 회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 93년 2월 20일 새벽 6시경 과로가 겹쳐 뇌경색증으로 운명

70) 정영상(19993년) : 89년 전교조 결성으로 복수여중에서 해임, 전교조 안동지회 부지회장. 90년 단양지회로 전출하여 활동. 93년 4월 14일 현장 방문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여 자던 중 새벽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운명

71) 정영부(19993년) : 89년 진주 대동기계공고 해직, 전교조 초대 진주지회장, 서부경남국민연합준비위원장 역임, 진주신문 창간논설위원. 90년 제1회 전교조 참교사상 수상. 93년 5월 13일 지병으로 운명

72) 조경천(19993년) : 81년 한양합판 입사. 88년 5월 한양합판 노동조합 설립에 중추적 역할 담당. 91년 7월 노동조합 회계감사로 일하던 중 해고. 92년 7월 인천지방법원에서 해고무효 판정으로 승소. 93년 4월 고법에서도 승소했으나 희사측 복직 묵살. 5월 19일 심장마비로 운명

73) 고정자(19993년) : 78년 원진레이온 입사후 처리 정련과에서 15년간 근무. 91년 직업병 증세 발견. 93년 5월 21일 직업병으로 운명

74) 박미경(19993년) : 89년 대구 삼인중학교 영어강사로 근무. 91년 2월 부당해고. 93년 2월 전교조 대구지부 학생부장으로 활동. 93년 6월 26일 약2개월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운명

75) 서영호(19993년) : 86년 현대자동차 입사. 91년 3대 집행부 정책연구부장, 교양지 "단결과 전진" 편집위원. 92년 1월 21일 경찰침투 대비 바리케이트 설치중 차량사고로 해성병원 입원. 의식불명인 상태로 520여일을 투병하다 끝내 93년 7월 1일 운명

76) 김주리(19993년) : 82년 이화여대 정외과 입학. 89년 우진상사, 진영물상입사. 92년 해고자들과 함께 '미모사' 설립. 93년 7월 미모사에서 작업중 화재로 인하여 화상. 8월 8일 화상 후유증으로 운명

77) 임혜란(19993년) : 88년 고려대를 중퇴하고 노동운동에 투신. 91년 인천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공간 제공 및 기독교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인천노동 선교문화원 창립에 참여. 92년 9월 백혈병으로 입원, 투병생활. 93년 9월 9일 신촌세브란스에서 운명

78) 최웅(19993년) : 87년 경동산업 입사. 89년 경동산업 해고, 인해협에서 간사로 활동. 90년 인천민중교육연구소 실무간사로 근무. 92년 인천민중연합 노동자위원회 활동. 93년 인천민중연합 부설 '우리' 노동상담실 노사부장으로 근무. 93년 10월 26일 신혼여행 중 사고로 운명

79) 김성윤(1994년) : 80년 상호운수주식회사 입사. 86. 12.∼92. 12.까지 상호운수노동조합 선거관리위원장과 고문역임. 94년 1월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를 작성하고 자결.

80) 김상옥(1994년) : 86년 구로 동일기업 노조설립 투쟁으로 구속. 88년 한국민주노동자연합 편집위원. 90년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노동분과 국제분과 연구원. 92년 한국민주노동자연합 홍보부장. 94년 2월 19일 위암으로 운명

81) 최성묵(1994년) : 86년 평택 시외버스인 서울여객입사. 노조대의원으로 활동. 90년 성보여객입사, 노조대의원, 노사위원, 상집위원 활동. 94년 3월 11일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 탄압에 항거. 분신. 운명

82) 김낙성(1994년) : 91년 한국통신노조 개혁모임에 참가. 92년 4월 서울지방본부 대의원 피선. 92년 7월 서울지역 노민추 결성. 93년 11월 전국 노민추 결성. 93년 12월 복지후퇴 및 직선제사수 투쟁위원회 구성. 94년 4월 17일 백혈병으로 운명

83) 임종호(1994년) : 89년 금성사 창원대로 가두투쟁으로 1차 구속. 91년 1년 6개월의 실형만기로 석방. 92년 총액임금제 분쇄를 위한 굴뚝논성을 벌이다 2차 구속, 쟁의조정법과 업무방해로 실형 10월, 재판도중 법정 모독죄로 3년 실형 선고. 94년 9월 18일 진주교도소에서 운명

84) 양봉수(1995년) : 90년 현대 자동차 입사. 92년 2월 성과분배투쟁 관련으로 해고. 93년 1월 원직 복직. 95년 2월 의장2부 마르샤 투입관련 회사측의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라인정지건으로 두 번째 해고. 95년 5월 12일 공동소위원연합 2기 출범식 참석을 위해 정문 진입시 경비들의 폭력적인 저지에 항거하며 본관정문 앞에서 분신. 95년 6월 13일 대구 동산병원에서 31일간 사투 끝에 운명

85) 박삼훈(1995년) : 82년 대우조선 입사. 95년 6월 21일 사측의 살벌한 노동통제와 노무관리, 부당한 탄압에 맞서 분신후 투신, 운명

86) 서전근(1995년) : 철도 민주화를 위해 95년 9월 4일 분신후 운명

87) 조수원(1995년) : 86년 대우정밀공업에 병역특례로 입사. 91년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과 해고. 93년 마포 민주당사에서 38일간의 단식투쟁. 95년 12월 15일 민주당 서울시 지부에서 목을 매 자결.

88) 김시자(1996년) : 84년 한전부속병원 입사. 89년 3월 전력노조 한일병원 지부위원장 피선. 93년 3월 위원장 재선. 96년 1월 13일 어용노조의 부당한 징계에 맞서 분신, 운명

89) 김왕찬(1996년) : 91년 한국통신 제주고산 전화국 노조지부장으로 활동. 94년 본사직할 본부 위원장 피선, 서울로 이전함에 따라 독신으로 노동조합 활동. 96년 3월 23일 운명

90) 유구영(1996년) : 88년 영등포 기계공단 노동조합 사무국장. 93년 서울지역 노동조합 협의회 정책실장. 95년 민주노동정책 기획실 정책부국장. 96년 5월 2일 새벽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암으로 운명

91) 오용철(1996년) : 88년 5월 서울 개봉전화국 발령, 어용노조 퇴진을 위한 "전민현"건설. 91년까지 어용퇴진, 위원장 직선제 과나철을 위해 전국적인 '노민추'활동. 91년 '체신부 부당간섭 저지투쟁위원회' 결성. 95년 민주노조 활동으로 서울구치소구속 수감. 96년 6월 18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운명

92) 박문곤(1996년) : 96년 11월 10일 전국교사대회 및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전복사고로 운명

93) 홍 장 길(1997년) : 73년 연회교통(현 국민캡) 입사. 92년 노조 상임위원 재임. 94년 노조 고문으로 선임 활동. 97년 국민캡 휴게실에서 사측의 부당행위에 맞서 음독자결. 운명

□ 김대중 정권 시기 ( 총 5 명)
- 98년 : 2명 - 99년 : 3명

94) 최 명 아(1998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86년부터 인천에서 현장활동을 하며 89-95년까지 인노협 교육부장, 조직부장으로 활동. 95년 민주노총 조직1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98년 2월 정리해고 반대투쟁중 과로로 운명

95) 최 대 림(1998년)
85년 대우조선에 입사하여 13년간 근속하며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98년 2월 13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하면서 건조중이던 배위에서 분신 투신운명하심.

96) 김 종 배(1999년)
공공연맹 교육실장 교통사고로 운명

97) 정 성 범(1999년)
전노협 활동, 지병으로 운명

98) 배 동 복(1999년)
영창악기노조 풍물패 활동 임단투기간 철야농성을 마치고 귀가도중 교통사고로 운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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