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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롯데노조, 한국노동운동사 다시 썼다

작성일 2000.08.18 작성자 노동과세계 조회수 2728
롯데노조, 한국노동운동사 다시 썼다

'경찰투입→굴복'역사 마감…'버티면 이긴다' 선례 남겨
비정규직·정규직화, 일방중재조항 삭제도 소중한 성과

6월9일 파업에 들어간 뒤 70일을 넘기며 불볕더위 속에서 대정부·대자본 투쟁을 펼쳐온 민주노총과 호텔롯데노조(위원장 직무대행 김경종)가 롯데재벌과 지난 14일 밤9시부터 교섭에 들어가 타결국면에 들어섰다.

노조집행부와 핵심조합원 징계 문제와 관련해 회사쪽은 전조합원의 10% 징계를 고집하고 있으며 노조쪽은 징계최소화를 요구하고 있어 마지막 고비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노조의 오랜 투쟁으로 끌어낸 나머지 합의사항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노조는 IMF 이후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계약직·임시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으며, 악명 높은 노조통제장치인 일방중재조항을 관에 넣어 땅속에 묻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찰력투입을 통한 파업진압 → 지도부 구속 → 산발적 가두투쟁 → 무기력한 업무복귀로 이어진 노조투쟁의 굴욕적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물리력을 동원한 노동통제수법은 자본과 권력의 오랜 '전가의 보도'였다.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정부는 노조파업에 대규모 경찰병력을 투입해 민주노조를 탄압해왔다. 80년대 현대중공업노조부터 최근의 만도기계노조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조직력과 투쟁력을 자랑하던 내로라는 민주노조들도 경찰진압 앞에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이른바 공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눈물을 머금고 후일을 기약했던 것이다.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조직력을 복원할 때까지는 온갖 굴욕을 참아내야 했다.

호텔롯데노조가 마침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것이다. 정부가 곤봉과 방배, 원시적 폭력, 인신구속으로 짓밟더라도 조합원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파업대오를 유지하면 정부-자본을 교섭에 끌어내고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돈과 권력,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으로도 노동자의 단결·투쟁을 꺾을 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노정관계를 새롭게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호텔롯데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뤄냈다. 입사 3∼4년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번 입단협이 타결되는 대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97년 9월 입사자는 올 9월에 전환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6∼7년 이상 연봉계약직으로 정규직과 임금차별을 받아온 노동자들을 포함해 이번 단체협상이 끝나는 대로 1백13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바뀐다.

사실 비정규직으로서 3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병원노조들이 대부분 1년 뒤 정규직전환을 명시하고 있고, 민주노총 소속 대형 호텔의 경우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현실에 견줘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회사쪽은 파업전부터 "절대 안된다"고 버텨왔고, 정부의 중재안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로 평가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차별과 고용불안정이 호텔롯데의 완강한 투쟁과정을 통해 전사회에 여론화했다는 점도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이밖에 2000년 입사자중 이번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채용이 취소됐던 조합원들도 한 달 안에 원상복귀된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큰 수확이다. 올해 4월 입사했다가 파업초기에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20여명이 모두 제라지를 찾게 된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대부분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때 결성돼 파업 즉시 직권중재에 회부되는 필수공익사업을 빼고는 중재의 고통을 겪은 노조가 드물다. 민간사업장의 일방중재조항은 군사독재 시절 한국노총이 소속노조에 시달한 단체협약 지침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투쟁을 이끌 수 없었던 당시 한국노총은 차라리 일방중재를 통하는 게 그나마 얻을 게 있다는 인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조가 강력한 대중투쟁에 나서면서 일방중재는 노동자의 요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변했다.

한진중공업노조 부산사업장의 경우 해마다 일방중재 조항으로 고통을 겪어오다가 올해 노조를 통합하면서 이를 없앴다. 강력한 노조를 자랑하는 ㄷ노조도 아직 일방중재조항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롯데노조는 민주집행부가 들어선 뒤 첫 싸움에서 이를 없앤 것이다.
정경은 joungke@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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