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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 부두하역 노동자들의 총파업 뒤안

작성일 2000.02.02 작성자 노동과세계 조회수 4621
부두하역 노동자들의 총파업 뒤안




"'인간'으로 살자면 싸울 밖에"


일방적 근로조건 저하에 분노 폭발, 민주노조 열망으로 이어져




전국운송하역노조의 전면총파업을 앞두고, 백척간두에 선 심정으로 결단을 다지고 있는 신선대와 우암터미널의 부두노동자들. 그들은 지난 두 달 새 그러려니 생각했던 기득권의 철옹벽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쏟아지는 언론의 우려와 비난, 수백명씩 몰려와서 "당신들 때문에 생계에 타격을 받았다"며 욕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는 한국노총 소속 항운노조 조합원들, 요리조리 피하기에만 바쁜 회사, 틀렸어도 한번 내린 해석과 지침은 바꿀 수 없다고 고집하는 노동부를 대하면서.




민주노조에 대한 소박한 희망, 법과 상식에 대한 막연한 믿음만으로 시작한 싸움이 이렇게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이젠 싸워서 세상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자신들이 바로 그 길에 서 있음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조합원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옛말처럼 회사가 답답하게도 그 꼴"이라며 "두렵기도 하지만 사용자의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한번은 해야 할 싸움"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조합원은 "힘들지만 이 정도는 각오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다. 그들은 민주노조 건설과 잃어버린 권리 찾기로 시작한 투쟁에서 '직장 민주화'라는 현실적 방향을 공유함은 물론 이제는 '노동행정 민주화'라는 더 높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이 빼앗긴 것은 근로조건만이 아니라 인생의 가치였다.


'3조2교대'가 '격주 2교대'로 바뀌어 근무시간은 월 76시간이나 늘었다. 반면 정부의 임금삭감지침으로 연간 임금총액은 되레 3백여만원 깍였다. 구조조정으로 인원이 1백여명 줄어 노동강도 역시 세졌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사업장 분위기는 말이 아니게 됐다. 관리자가 제멋대로 고과점수를 주면서 휴가도 회사가 정해주는 등 일방적인 작업지시가 만연해 현장노동자는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동료끼리 아부 경쟁을 벌이며 인간성이 피폐해져갔다.




문제는 조합원의 뜻과 무관하게 항운노조가 이 모든 것을 합의해 줬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분노가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 두 달 남짓 사이 많은 걸 배웠다. 우린 노예가 아니고 노동자다. 사람에겐 행동과 생각의 자유가 있는데, 우린 개돼지로 길들여지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조합원은 "10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느낌이다. 이제야 내 모습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민주노조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 "힘도 생기고 어깨 펴고 살게 됐다"며 민주노조를 세워낸 자긍심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노조에 대한 애정은 곧 항운노조에 대한 경멸과 분노로 연결됐다. 노동자들은 이제 "항운노조는 어용노조고 지도부는 노동귀족이다"고 내뱉듯이 잘라 말한다.


"지금까지는 집사람한테 회사일을 얘기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은 다 말했다. 노조 한다니까 극구 만류했지만 노동자인 남편이 인간취급도 못받고 있는 현실을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고 설득했다." 한 열성조합원의 말이다.




야간작업 대기실 의자를 잠자리로 삼아 웅크린 채 눈을 붙이며 살아왔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그들은 온 몸으로 인간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헌(부산노동자연합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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