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아닌 '노동'이 먼저다
가사노동 서비스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부여에 대한 대변인 논평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로 ‘홈스토리생활’이 신청한 2021년까지의 가사노동 서비스에 실증특례를 부여했다.
심의위는 언론을 통해 가사 노동자 권리향상을 기대하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까지 했고,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도 “가사도우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된 것도, 플랫폼 업계가 노동자 직고용을 제안한 것도 처음”이라고 반겼지만, 이는 과도한 평가다.
가사 노동자는 여전히 어느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비공식’ 노동자다. 근로기준법이 가사 노동을 특정해 적용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가사노동을 오로지 사적 영역으로만 파악한 근로기준법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전근대 사회 유산이다.
법적 노동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홈스토리생활’은 현재도 구직사이트를 통해 가사노동자를 ‘프리랜서’ 형태로 상시모집하고 있다. 가사 서비스 시장 규모가 1조 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고, 지난 5년간 ‘홈스토리생활’을 통해 노동한 이가 수만 명에 달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신산업이라는 허울로 명확한 한계 없이 노동법을 면탈해주고 노동권을 잠식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고용노동부가 '사전 검증' 모델로 삼은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가사법)' 자체도 많은 쟁점을 가지고 있다.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가사노동자 노동권 보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실 고용주인 이용자의 각종 책임을 묻기 어려우며, 충분한 휴식 등 처우개선과 교육훈련 제공을 통한 고용유지 의무도 빠져있다. 가사법 통과가 가사 서비스 산업 활성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가사 노동자 노동권 보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국회 역시 가사 서비스 업체 대표가 규제 샌드박스 사업 신청을 하며 가사 노동 시장의 낙후된 구조, 계약 관계, 가사 노동자 처우 개선 필요성을 거론하는 지경인데, 언제까지 임무를 방기한 채 기업이 원하는 노동시간 확대와 노동개악 궁리만 할 생각인가.
이런 산적한 문제를 놔두고 탄근제 확대에 더해 선택노동제 개악을 영화 속 불량배 대사처럼 ‘묻고 더블로 가’라고 요구한 김학용 환노위 위원장을 생각하면 대체 환노위 위원장인지 경총 대리인인지 한숨이 나온다.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허용이나 별도 법률 제정으로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조차 미흡한 사업 발판을 마련해줄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과 가사노동 공식성을 확보해 저임금‧불안정 노동 보호방안을 강화해 가는 것이다.
2019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