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경찰청이 내부 논의를 거쳐 지난 16일 집회에 사용된 ‘대나무 깃대’를 ‘죽창’으로 통일해 부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발언과 한승수 총리의 한마디, 강희락 경찰청장의 대전방문 등 시시때때로 튀어나온 ‘죽창’이 드디어 공식 채택된 셈입니다. 대전경찰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멀쩡한 대나무 깃대를 ‘죽창’으로 작명했다니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자기들끼리 모여 ‘하늘은 노란색’이라고 우긴 것을 두고 이런저런 말을 더하고 싶진 않으나, 이 ‘작명사건’이 민주노총을 음해하기 위한 의도로 진행됐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돼지눈엔 돼지만 보인다?
경찰이 제시한 근거는 이렇습니다. 집회 뒤 수거한 대나무 깃대 중 20여개의 끝이 예리하게 절단돼 있었다는 점과, 일부 대나무 깃대의 끝이 수 갈래로 갈라져 있어 찌르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점입니다. 경찰도 잘 알고 있다 시피, 당일 집회신고서 상에 기재된 만장 개수는 총 3천개였습니다. 무슨 기계로 짜르는 것도 아니고 3천개의 대나무를 자르다 보면 조금씩 다른 각도로 잘리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중 고작 20여개의 ‘불량품’을 두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죽창’ 운운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끝이 갈라진 깃대 역시 처음부터 갈라져 있던 것이 아니고 우발적인 충돌 속에 경찰 방패 등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리 된 것인데, 그러면 경찰 역시 ‘죽창 제조 공범’이란 말입니까?
457명 연행, 구속은 20명, 지도부 체포영장도 기각.. 무리한 과잉진압.수사
경찰이 ‘죽창’이란 용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457명을 기세등등하게 연행했지만 정작 영장청구 대상자는 32명에 불과했고, 또 그 중 12명은 기각되자 과잉진압의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화물연대와 운수노조 지도부 7명에 대한 체포영장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검찰과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도 이 무리한 수사에 편승해 억지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죽창’으로 사회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이들은 바로 정부와 경찰, 보수언론입니다. ‘폭력’ 운운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야 말로 큰 ‘폭력’이며, 이에 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 바로 집회입니다. 이런 국가의 폭력이 계속되는 한 경제위기 극복도 요원한 일이 될것입니다.
무학대사는 이태조에게 ‘부처 눈에는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이 말을 잘 곱씹어 보고, 사회불안 조장과 민주노총 음해를 당장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