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념 지키기 위해 투쟁 포기 못해요"
[인터뷰]KTX 투쟁 선봉장, 민세원 KTX열차승무지부장 정웅재 기자
85일 넘게 '파업'투쟁 중인 KTX 여승무원들. 그들은 요즘 등에 '우리는 KTX 승무원입니다'라고 쓰인 파란 반팔 티를 맞춰 입고 투쟁 현장을 다닌다.
지난 15일자로 260여 명의 승무원들이 정리해고 됐지만, 철도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요구와 그들의 투쟁이 정당하기에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때문에 20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서울 용산 철도노동조합 사무실 등을 거점으로 삼고 정리해고 철회ㆍ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2라운드 투쟁'에 나섰다.
정혜인 부산 KTX열차승무지부장과 정지선 KTX열차승무지부 대변인 등이 단식을 시작한 바로 다음날인 25일, KTX 투쟁을 최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민세원 KTX열차승무지부장을 모처에서 만났다. 민 지부장은 이번 투쟁과 관련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어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하다.
기자가 약속장소를 찾았을 때 민 지부장은 남편과 통화중이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남편이 외조는 잘 해주시냐?'고 물었다.
"잘 하고 있죠. 신랑이야 내 사람이고 사랑해서 결혼했으니까 이해하죠. 시부모님이 반대하시면 힘들텐데 시부모님이 이해해주세요.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있을 때도 오셔서 응원도 해주시고..."
사적인 질문을 좀 더 하려 했으나 '정중히 사양한다'는 말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용불안과 인력착취 구조.."이 정권을 이해할 수 없어요"
80일 넘게 한뎃잠 자면서 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다. 한명숙 총리,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찾아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여승무원들의 호소를 외면했고,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현재까지도 "대화는 할 수 있으나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KTX관광레저의 정규직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
정당한 투쟁이지만, 상대가 있는 싸움이기에 꽉 막힌 상대에게서 커다란 '벽'을 느끼진 않을지 궁금했다.
"사실 5월 들어서 큰 벽이 있음을 실감했어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직접고용관계가 아닌 (간접고용으로 인해) 이리 저리 책임을 미루는 구조가 있다는 것도 몰랐죠. 한국철도유통과 철도공사에서 이리, 저리 치이고 인간다운 대접을 못 받아 투쟁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공사와 정부가 서로 떠넘기고 있어요."
"자신의 권한 밖이라는 이철 사장의 말이 핑계라고 생각했는데, 핑계가 아닌 현실이 존재한다는 거죠. 기획예산처가 공사 평가를 할 때 인건비 수치를 낮춰야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위탁을 하면 200만원이 들고, 직접고용을 하면 100만원이 든다고 해도 위탁을 하려고 해요. 위탁비용은 사업비로 책정이 되는 반면, 직접고용비는 인건비로 책정돼서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민 지부장은 "인건비 수치를 낮추려고 노동자가 고용불안과 인력착취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라며 "이 정권이 노동자인 국민을 상대로 왜 이런 정책을 펴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꼬집었다.
어쨌든 공사와 정부가 물러서지 않는 상황에서 KTX 관광레저 정규직안을 받아들이는 대한 고민은 안 해 봤을까?
"네 안 해봤어요" 단호했다.
"그럴려면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죠. 힘들게 조합원 출혈을 감수하면서...370명이 시작한 투쟁을 현재 230여 명이 하고 있는데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면 왜 이러고 있겠어요?"
"신념을 택한거죠. 노예로 살아봤고, 테러리스트가 될 순 없잖아요?"
그는 "(대한민국 사회는) 노동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신념을 버리던가, 노예로 살던가, 아니면 테러리스트가 되던가,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목을 조르고 있어요."라며 "저희는 신념을 택하고 있어요. 노예로 2년간 살아봤고...테러리스트가 될 순 없잖아요?"라고 반문했다.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찾아 끊질긴 투쟁의 길을 나선다는 것은, 현재 우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이 증언하듯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이 버겁고 힘든 것 사실이죠. 그러나 신념을 버릴 수 없다는 중심을 지키고 있어서 계속 투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안타까운 것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승무원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투쟁 자체가 버거워서, 연행이 무서워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저희 조합원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요. 정부와 사용자가 이를 조장하고 있죠."
다시말하면 "KTX 승무원으로서 일한만큼 대가를 받고 제대로 일 하고 싶어서 투쟁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승무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 지부장으로서 마음이 아프"다는 것.
'신념'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던 민 지부장은 몇 가지 이유를 더 보탰다.
"조합원이 원하기 때문이고, 이 투쟁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거에요. 조합원들도 정규직 KTX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미 동지애로 그리고 이 투쟁이 맞으니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에요."
여러모로 힘든 투쟁이지만,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신념을 위해 생활하는 (KTX 투쟁을 지원해주고 있는) 철도노조 국장들을 알게 된 것과 이번 투쟁을 통해 남은 인생의 중심을 잡았다는 민세원 지부장.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안 해요"
2라운드 투쟁에 나서면서의 각오를 묻자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거죠. 적어도 제가 포기하지 않으면 다수가 됐던 소수가 됐던 동지들이 같이 갈 것이라고 믿고 정부정책이라는 것이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불변으로 유지돼 왔던 역사가 아니잖아요?"라고 답한다.
민 지부장은 "결과가 언제 나올 것인지가 문제이지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며 "공사와 정부가 외주화를 고집한다면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재차 다짐하듯 "저희들이 열심히 투쟁해서 꼭 그렇게 만들거에요."라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