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든 남북한 충돌과 대립의 진원지는 서해 5도 인근의 북방한계선 해역 NLL(Northern Limited Line)이다. 과연 한반도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는 화약고 NLL을 그대로 둔 채, 현재처럼 강력한 군사적 응징 태세만 확립하면 국가 안보는 해결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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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백승기
서해 백령도 앞에 펼쳐져 있는 NLL.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북한의 장산곶이다.처음에는 한국군의 ‘북침’ 막으려 설정
평화를 모색하려면 NLL의 어제와 오늘을 냉정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체 NLL은 언제부터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었을까. 국내외 각급 사전에는 한반도 서해상의 NLL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직후 클라크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북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 경계선.’ 1953년 7월27일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에는 남북한 사이에 육상 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상 경계선은 빠져 있었다. 유엔군이 정전협정 체결 전 북한과 연해 수역 협상을 벌였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합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분쟁의 불씨는 여기에서 잉태했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육상 경계선(MDL)만으로 정전협정을 체결한 직후인 1953년 8월30일, 남북한 사이에 해상 군사 충돌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군사 비밀 지도에 일방적으로 NLL을 그었다. 동해 NLL은 육상 군사분계선을 그대로 수평 연장선으로 그어 애초 별 마찰의 소지가 없었다. 그러나 서해 NLL은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5개 섬과, 북한 옹진반도 중간선을 기준으로 해서 한강 하구부터 서북쪽으로 좌표 12개를 따라 연결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클라크 사령관의 일방적 NLL 통보는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 제5조 부칙 61항에 규정한 ‘본 협정에 대한 수정이나 증보는 반드시 조인 쌍방 사령관들의 상호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에 비추어, 협정 위반 시비를 부를 법한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한은 유엔군사령관이 충돌 방지선이라며 일방적으로 들이민 서해 NLL에 관해 당시는 물론이고, 초기 20여 년 동안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 해군 전력은 동해와 서해 전역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종전 무렵 보잘것없는 해군력을 지닌 북한으로서는 서해 북방한계선이 사실상 이승만 대통령이 틈만 나면 공언하던 ‘북진’을 막을 안전판으로 보였다. 실제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회담에 반대하며 단독 북진을 불사하겠다던 이승만 정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한 장치로 한국군 단독으로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게 막을 한계선이 절실히 필요하던 터였다.
이와 관련해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11월2일 미국 국방성·국무성·CIA가 공동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보낸 문서 ‘대리 응징 계획안’에 따르면 한국에서 이승만 정부가 단독 북진을 추진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잘 나타나 있다. “남한이 비무장지대 내외 또는 그 북쪽에 있는 북한군이나 중국군에 일방적 군사 공격을 가할 경우 미국 육·해·공군은 그런 행동을 직간접적으로 일절 지지하지 않고, 남한에 대한 모든 경제원조를 즉각 중단한다. 모든 유엔군 산하 부대 지휘관들은 휘하 장병이 그런 교전 상태에 말려들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일체의 조치를 취한다. 이런 조치와 동시에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북쪽 공산군에 대해 앞으로 절대로 일방적 군사행동을 감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문서로 기술한 서약서를 받는다.”
“북한의 NLL 침범, 정전 위반 아니다”
이를 보면 당시 서해상 전쟁 재발 가능성에 관한 한 미국은 남한 측의 계획적 북진을 훨씬 우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LL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어진 것이다. 이는 30여 년간 주한 유엔군사령관 특별 군사고문을 지낸 이문항씨(80)의 회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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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는 서해 5도 지역이 유엔군사령관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영해 3마일 선을 그었을 뿐이다. 북한이 3마일 안에 들어오면 위반이라는 표시다. 북한은 12마일을 주장하고 우리는 3마일을 주장해서 정전협정에 해상 분계선을 못 만들었다. 당시 합의를 못했기 때문에 영해가 몇 마일이라는 규정도 없이 흐리멍덩하게 돼 있다. 애초 북방한계선이라는 용어는 남한 측에서 그 선 이북을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지, 북쪽에서 내려오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북한은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NLL 구획에 대해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전협정 체결 20년이 흐른 1973년 10월과 11월 북한은 총 40여 차례에 걸쳐 서해 NLL을 침범한다. 더 나아가 황해도와 경기도 경계선 북쪽 수역은 자기네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서해 5도를 출입하는 남한 선박은 사전 허가를 받으라고 요구한다. 이어 1977년 7월에는 ‘200해리 경제수역’과 ‘해상군사경계선’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를테면 뒤늦게 NLL 무력화 공세를 편 셈인데, 1999년 연평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이런 공세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간헐적인 엄포성 도발로 치부되었다(연평해전 발발 직후인 1999년 9월 북한은 이른바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하고, 이 수역에 대한 자위권 행사를 천명했다).
서해 NLL 일대가 남북한 사이에 긴장의 화약고로 떠오른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래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았던 1970~1980년대에도 서해가 주목을 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분쟁이 발생했다면 그곳은 어김없이 동해였고, 1990년대 중반까지도 서해 NLL이 국방 안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극히 낮았다. 북한 어선이 수시로 남쪽으로 월선하고 우리 또한 수시로 북쪽으로 들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평화의 바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NLL은 국민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용어였다.
그런 NLL이 갑자기 분쟁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1996년 김영삼 정권 때였다. 그해 7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들이 ‘NLL이 대체 뭐야?’ 하고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야당이었던 천용택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 함정이 NLL을 수시로 침범하는데, 국방부가 북한이 자기 어선을 보호하다 우연히 월선한 것이라며 북한을 변호하고 있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며 문제가 안 된다”라고 답변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1992년 남북 합의서에서 불가침 구역으로 설정해놓은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발언을 국방부 장관이 한 것은 중대한 사태다. 김영삼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의 망언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장관을 즉각 해임하라”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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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휴전 46년 뒤인 1999년 6월15일 남북한 해군은 NLL에서 첫 교전을 벌인다. |
그러나 이양호 장관은 당시 NLL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던 몇 안 되는 군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판문점 연락 장교단을 맡으면서 유엔사나 미군도 NLL을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야당의 안보 공세에 대해 대표적 보수 언론이라 할 <조선일보>는 이튿날 해설 기사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NLL은 휴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30일 유엔사 측이 최접경 수역인 백령도·연평도 등 6개 도서군(群)과 이를 마주하는 북한 측 지역과의 중간 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국제법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력 충돌을 우려해 양측이 ‘힘의 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으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 사항은 아니다’라고 한 것은 맞다.”
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보수 정권은 물론 대표적 보수 언론조차 NLL 침범 문제를 국제법 위반이나 영해 침략 또는 도발로 간주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NLL을 마치 국제법적 영토선인 것처럼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요즘 태도에 비춰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천공항 건설 뒤 NLL 안보적 가치 급부상
그뿐이 아니다. NLL 문제에 대해서는 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도 지난 수십 년간 국제법적 정당성을 한 번도 주장한 적이 없다. 유엔군사령부는 남북한 해군이 몇 차례 충돌한 이후에도 판문점 군사정전위나 미국 정부 처지에서 ‘북방한계선’ 자체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주한유엔군사령관 특별고문으로 1960년대 초반부터 1996년까지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회담을 지켜본 이문항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1992년부터 정전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1990년대 말쯤 판문점에서 정전위 장성급 회담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한국 측은 NLL이 기정사실화된 경계선이라고 주장했고, 북한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미군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국 측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그 문제는 앞으로 남북 간에 더 논의를 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당시 그 회의록을 내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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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연평도를 둘러보고 있다. |
1999년 이후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서해교전과 해전, 그리고 지난달 연평도 포격전에 이르기까지 NLL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한 사이에 전쟁을 불사하는 초강경 대립만이 난무하면서 NLL은 언제고 전면전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를 공포의 괴물로 떠올랐다. 서해에서 피어오른 화약 연기에 성난 민심은 이명박 정부에 강력한 군사적 대비 태세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빈틈없는 대비 태세는 기본 중 기본이다. 강력한 대비 태세만으로 서해 NLL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를 영구히 지울 수는 없다. 남북한이 하루빨리 대화 테이블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현재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한 국제사회는 남한을, 대화 능력을 상실한 채 ‘전쟁 불장난’에 놀아나며 세계 불안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분쟁 국가로 치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또다시 한국은 NLL을 둘러싸고 주권 국가로서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여지조차 박탈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벌써 그런 불길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싱크탱크인 미국 국제정책센터 아시아프로그램국 셀리그 해리슨 국장은 연평도 포격전이 전면전 위협으로 치닫자 이렇게 주장했다. “남북한의 서해 분쟁을 끝내려면 미국이 분쟁 지역에서 NLL이라 불리는 해상 경계선을 약간 남쪽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NLL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한군 동의 없이 유엔군이 급히 도입한 선이다.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가 미국에 주한 유엔군사령관 지명 권한을 준 만큼 미국에는 NLL을 재설정할 권한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남북 양측과 NLL 해상 경계선 재설정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