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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평화농성단 아메리카NO]7월 27일 칠곡 왜관 캠프캐럴 미군기지 앞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 농성 선포

작성일 2011.08.03 작성자 아메리카NO 조회수 2202
평화농성을 선포하며 황선 대표의 결의 시

 

 

매립지

이 나라는 그랬던 거다.

독초 우거진 밀림도 아니고

전투 중은 더더욱 아니지만

나무거나 사람이거나

싸그리 말려 죽어도 일 없는

그런 나라였던 게다.

벗은 등에

쌀가마니 선심이라도 쓰는 양

턱턱 얹어주고

군모 가득히

옥수수죽이라도 담아주듯

퍼주던 에이전트 오렌지

빛깔도 곱고 촉감도 보들한 그것이

아무렴 비료는 되도

설마하니 독이려구

트럭 꽁무니를 따라 뛰면

휘휘 뿌려주던 쪼꼴레또처럼

개 같이 굴어도 달콤하기는 하겠지.

베트남 밀림에서 소진시키지 못한

총탄이 이 나라 미군기지 창고에서

수수년년을 버티듯

고엽제 그것은

임진강, 낙동강, 춘천의 호수,

순이네 우물아래 스미고 스며

어디에 묻었는지 모른다는

뻔뻔한 대답

그 잔인한 낯짝 앞에

하반신 마비의 아버지와

간암으로 죽어간 아버지와

그 모든 것을 물려받은 아들과 손주와

세상 최대 아토피 환자들과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숱한 아기들과

이렇게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에도 없다는

에이전트 오렌지는

여기 우리 핏 속을 흐르고

대대손손 이어질

유전자 속에 매립돼 있다.

 

 

2011년 7월 26일 황선

 

 

 

 

 

 

결의문을 대신하여 모든 이에게 부치는 황선 대표의 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감옥의 독방에 있을 때였다. 공안검사로부터 5년인가 구형을 받고 돌아와 분노를 삼키며,

후에 새끼를 낳아 키우더라도 저런 짓은 시키지 말아야지... 공부 잘 한다 애지중지 키워서 기껏 권력에나 빌붙고 공동체, 애국애족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이 사람사냥이나 다니는 저런 족속으로는 키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보안법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속으로나마 비웃으며 그런 결심을 굳히다가, 문득 ‘우리 부모님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으셨을까?’에 생각이 미쳤다.

 

우리 집은 경찰직을 가업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친척 중에 경찰공무원이 많았던 집안이었다. 아버지도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릴 적부터 오직 경찰관이셨다. 그런 아버지의 첫 아이였던 내가 안기부 직원들에게 결박당해 수갑을 차고 검찰청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로비를 서성이고 있던 아버지의 표정이란, 세상에게 버림받은 노인의 표정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그 때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어떻게 이 아버지를 이렇게 배신 할 수 있니. 내가 평생 수갑과 같이 살아왔으나 내 딸이 내 앞에서 수갑 찬 모습을 보리라곤 차마 상상도 못했다.”

검사실을 향해가는 나를 향해 “제발 무조건 잘 못했다고 빌어라.” 하는 당부도 거듭 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키우고 싶지 않으셨다. 대학생 방북대표가 되어서 휴전선을 넘고 감옥으로 가는 딸을 당시의 어떤 아버지인들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애지중지 키워서 대학 나오고 좋은 혼처 얻어서 시집가 사는 것이 최상의 인생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아버지에게 나라는 딸은 다른 길을 가도 너무 멀고 색다른 길을 간 것이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버지가 너무 봉건적인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복잡하고 험한 한국사회에서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이야말로 얼마나 오래고 간절한 꿈이었겠는가. 자식이 그저 무사히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겪지 않고 사는 것은 부모님들의 당연한 기원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필요 이상 관심을 갖거나 옳고 그른 것을 시비하려들거나 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신세를 스스로 볶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을 터였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세상 더 할 나위 없이 똑똑해도 공안검사라는 일은 안 시키겠다, 는 생각은 그저 울분을 삼키기 위한 혼자생각인 것이다. 세상은 생각대로만 가지도 않고 특히 자식은 뜻대로 다듬기 힘든 존재들이다.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독거감옥에 앉아있는 나를 생각하니 나중 일이지만 어미가 됐을 때에 대한 걱정이 미리부터 찾아온 것이다.

 

그 때 나는 미혼이었지만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 나라 분단이 계속되고 쓰레기 정치, 민중들에 대한 억압이 계속되는 한, 나는 미래의 내 아이들이 양심수로 감옥에 있을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하기로 했다. 법정에 양심수로 선 자식을 보는 순간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겠는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람사냥을 하는 소위 사회지도층이 된 자식은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심각하게 걱정까지 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부모님의 희망과는 딴 판으로 커버린 나라는 딸처럼 통일운동가의 아이들이 모두 민족과 사회의 진보에 투신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결심을 또 한 번 강하게 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공평하지 못한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한 우리의 후대들 역시 노예로 살 수 있다는 위기감.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생각을 또 한 번 강하게 한 것은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을 접하면서였다.

 

미선이 효순이가 비참하게 스러지고 살인자 미군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대한민국이 미군의 천국임을 다시 한 번 과시 할 때, 이 나라는 미국이란 나라를 한 번도 미워해 본 적 없는 아이들조차 언제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을지 모르는 나라다, 라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미선이 효순이가 반미운동가였으면 미군의 전쟁훈련에 반대하기위해 장갑차 앞을 가로막고 투쟁 중이었다면 조금 쯤 덜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은 아직 이 나라의 형편에 대해 고민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까지 열사로 몰아가는 수준이었다.

 

개인의 삶이 역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잘 나가는 사회에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만은 90여개의 미군기지가 있는 나라, 노동자들의 삶이 고공크레인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나라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고엽제 사건이 터졌다. 애초 나뭇잎을 말려죽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화학무기인 고엽제가 이 나라 땅에 몰래 매립됐다. 지금에야 그런 사실이 알려져서 주한미군 측과 정부가 나름 땅도 깨적이고 물도 뽑아보고 시늉은 하지만 화학무기 고엽제는 이미 이 나라사람들 핏 속을 흐르고 유전자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터이다. 그 많은 드럼통을 어느 섬, 어느 바다, 뉘 집 뒷산에 다시 묻었는지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저들의 뻔뻔한 대답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자식을 보면서도 그게 팔자려니 가슴을 쳤을 사람들이 얼마였으며, 아직도 설마설마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인가.

 

고엽제 매립은 숱한 미군범죄를 새삼 더 들먹거릴 것도 없이, 한국을 타고 앉은 미군과 우리의 관계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미군과 우리의 운명이란 것은 노력해도 여차하면 비껴갈 수 있는 안타까운 관계 정도가 아니라, 몇 초만 어긋났어도 면할 수 있었다고 함부로 이야기 하기도하는 사고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식여하와 상관없이 이 나라 사람들의 모든 부분을 옭아매고 규정하고 있는 족쇄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으며 대를 이어 고통을 강요한다.

 

왜관 뿐 아니라 벗은 등에 등짐을 져서 손수 고엽제를 뿌렸다는 길고 긴 민통선, 철원, 의정부, 부천, 춘천... 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은 이 역사적 악연으로 인해 받은 온갖 고통을 다 개인의 몫으로 감당하며 살거나 혹은 죽어갔을 것이다.

이제 막 여름 방학을 시작한 두 딸과, 15년 만에 집에 돌아와 아직도 가정과 세상에 적응 중인 남편을 뚝 떼어놓고 내가 이 여름을 낯선 고장 왜관에서 견뎌보려는 것은 이처럼 부지불식 간에 제국주의 미국의 희생양으로 살 수 있는 많은 사람들, 많은 후대의 운명이 너무나 억울한 까닭이다.

 

저들의 뻔뻔한 변명과 오만을 더는 참기 싫은 까닭이고 가해국 미국의 비위를 건드릴까 납작 엎드린 피해국 정부의 비굴함이 더는 봐주기 힘든 지경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북아 전진기지였던 전국의 미군기지가 어떻게 “양키 고 홈” 함성 울리는 자주의 근거지로 되는지 직접 보고싶은 까닭이다.

 

나의 여름은 뜨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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