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를 의심하라-차이는 권력이 만드는 것”
5월9일 오후 3시 예정 대로 성평등 연속강의 2번째가 시작됐다. 예상 대로 1강때 참석했던 참가자들이 모두 참석하진 못했다. 그래도 새로운 참석자를 포함해 25명이 참석했다. 때가 때이다 보니, ‘조직, 정파, 여성주의’라는 이날 강의주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역시 우리는 너무 일정이 바쁘다.
“공부는 안하고 일만 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항상 보면 노동조합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노동해방’이 안된 것 같다.”
불성실(?)한 수강생들에 대한 질타로 강의는 시작됐다.
“1강의 주제는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라, 자신에게 집중하라였다. 오늘 주제는 이 강의를 전적으로 믿지 말라. 참고만 하라는 것이다. 우선 최근 통합진보당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터질게 터졌는데 하필 이정희 대표가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부정선거가 계속 있었는데 이제 터진 것 같기도 하다. 목적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게 어떻게 보면 좋은거구, 어떻게 보면 잘못된 거구”
“악몽이다”
“노동자가 볼때는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 의원은 다 다르다. 노동자가 한목소리를 내도 13석 밖에 안되는데, 이대로 가도 승산이 없을거 같은데, 자기들끼리도 그러고, 도둑질을 하려면 잘하던지…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창피하다. 우리 신랑부터 나한테 창피하다고 한다. 싸우다 그런 일이 발생한건지, 내막이 궁금하긴 하다”
“세 분이 이야기가 제가 상상했던 내용과 너무 다르다(웃음). 어디가나 갈등과 싸움은 장난이 아니다. 여성주의자들도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될 때 통합진보당과 맞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했다.”
정희진 강사는 우선 아래 4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사례1.
마서즈 비니어드라는 섬이 있다. 포도밭이 많은 이 섬을 발견한 함장이 딸의 이름을 딴 ‘딸아이(이름)의 포도밭’이라는 뜻을 가진 섬이다. 이 섬은 80% 이상이 청각장애인이다. 그래서 섬의 공식언어가 수화다. 이 섬에서 불어나 영어를 공식언어로 하자는 주장은 엉뚱한 이야기일 뿐이다.
사례2.
백인중심의 흑인노예 사회에서 흑인들은 목화 따는 일이 전부다. 백인들이 영국과 프랑스 전쟁에서 영국이 이길까, 프랑스가 이길까 논쟁하면서 흑인들에게 어느 편이냐고 강요한다면? 흑인들은 노예 해방을 위해 뭉쳐서 토론해야 하는데 백인들 의제인 영국과 프랑스 전쟁을 놓고 흑인들끼리 싸우고 있다면?
사례 3.
르완다 내전에선 투씨족과 후투족이 서로 싸우고 죽인다. 문제는 서로 구분도 못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유산으로 부족갈등이 생긴 것인데, 100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들의 문제가 됐다. 후투족이 투씨족을 대량살상한 감정을 갖고 반대로 또 죽인다.
사례4.
‘쓰리타임즈’라는 유명한 대만영화가 있다. ‘장첸’과 ‘서기’가 시대를 달리 해서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 시대는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첸은 부잣집 양반지식인이지만, 부인은 구시대 사람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장첸은 서구문명이 밀고 들어오는 청나라의 운명을 고민하고 지적방황을 하면서 신세대 기생인 서기와 동거하면서 많은 대화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포주에 속해 있는 서기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는 장첸에게 “중국 민중을 구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구해달라”고 말할 때이다.
“이 4가지 사례에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우린 가부장제 사회에 살고 있다. 남성은 조금 편할 것이다. 여성은 처지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규범, 문화, 임금, 성 등등등 인생 자체가 힘든게 사실이다. 이게 어려운 이야기인가? 남성들은 이것 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다모라는 드라마에서 이서진이 했던 대사에 여성들은 열광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약자가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 강자가 먼저 알아주고 공감했던 것이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이 아프다고 하면 보통 ‘왜 아프냐’고 물어본다. 제일 얄미운건 ‘나는 하나도 안아파’라고 하는 것. 아니면 왜 징징거리냐고 하던가, 아프다는 이유로 아웃시킨다.”
“문제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진보 혹은 좌파와 제일 잘 안맞는다는 것이다. 모든게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새는 진보를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진보인데 동성애자를 혐오한다, 진보인데 학벌주의자다, 진보인데 외모지상주의자다, 진보인데 장애인을 재수없어 한다, 진보인데 서울중심주의자다. 이게 진보인가? 진보진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경상도 태생의 서울대 출신이 많다”
“우익인데 페미니스트가 있다. 집안살림도 다 한다. 좌파인데 집에선 부인을 폭행한다. 뭐가 진보일까? 대부분 이런 사례를 들면 예외라고 한다. 아니면 그 사람은 원래 그랬다고 한다.”
“진보는 계급과 민족을 내세운다. 그러나 계급과 민족은 학벌, 외모, 장애인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아웃풋(output)'이어야 한다. 문화 자체가 진보와 여성은 갈등적이다. 레닌과 함께 활동했던 콜론타이는 레닌한테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낙태문제가 심각하다고 봤다. 건강과 생명에 위협적인 문제니까. 그래서 여성들 소모임을 만들어서 피임교육을 했다. 근데 레닌은 공개적으로 왜 그런 소소한 문제에 여성들을 동원하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원리 핵심으로 보면 여성이 능력이 뛰어나면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만나본 여군들은 군인을 택한 이유가 의외로 여성차별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더라. 군대는 계급중심이기 때문에 가장 남성중심적 집단인 군대가 여성차별이 없다고 한다.”
“정치적 노선이 형성되는 원리는 권력이다. 성매매 문제가 있다. 성매매를 놓고 누구는 성노동이라 하고 누구는 성폭력이라 한다. 둘 다 성매매를 해결할 수 없는 규정이기 때문에 틀렸다. 성노동은 남성 중심의 규정이고, 성폭력은 부자 여성 중심의 규정이다. 성노동이든, 성폭력이든 그런 규정으로는 가난한 여성 입장의 성매매는 해결되지 않는다.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구별도 마찬가지다. 식민지와 자본주의가 함께 들어온 우리나라 상황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다른 나라 민족을 짓밟아온 미국에서는 NL이 뭐가 필요하겠나. 그러나 이제는 NL, PD 구별은 이유와 원인도 모르는 감정 그 자체 상태가 돼 있다”
“모든 정치와 권력의 문제는 누가 차이를 규정하는가다. 차이를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힘있는 사람이다.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말이 ‘차이가 차별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힘있는 자들이 차이를 규정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크릿가든이라는 드라마에서 현빈이 ‘부자들은 불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차이를 원한다’고 한 말도 있다. 그래서 명품이 중요해진거 아닌가”
NL 대 PD : 진보의 방법
김태촌파 대 양은이파 : 개인 친소관계. 유치하지만 가장 강력, 학벌 지역 등
조중동 대 한겨레 :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대 한국여성단체연합 : 여자보수 여자진보
“이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녹색당, 성소수자당, 여성당 같은 구별만 의미 있는 차이일 뿐이다. 의미 없는 차이라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구별에 따른 차이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구체성에서 나온 차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민생과 상관 없는 이데올로기 싸움일 뿐이다.”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부장제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녀 노동자가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남성들은 성별 구별이 우선된다. 남녀 임금차이가 100대 60이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이런 차이가 있어야 100을 유지할 수 있다. 60 받는 사람이 있는데 110으로 올려달라는 이야기가 먹히겠는가. 젠더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은 자본가이다. 자본가와 동일시하면서 성별 구별을 우선하는 것은 사회운동을 망치는 남성 노동자이다”
“다른 의미와 다른 원리로 차이가 구성됐다. 구분이 모두 소용없다는 것이 아니다. 형성 원리와 형성의 효과에 대해 사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이다. 전쟁세대가 북한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는 것은 경험에서 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경험해보지도 않거나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형성원리를 알았을 때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다”
“보통 남성이 여성 보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더 크다. 왜 그럴까?”
답변 : “소수라서”, “익숙치 않은데서 오는 불편함”
“동성애는 성별질서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남녀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녀가 구별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차별이 작동할 수 있다. 유럽은 노동운동이 활발한데, 미국은 왜 그렇지 않을까? 흑인이라는 타자가 있기 때문에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자의식이 떨어지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 왜 공포를 갖게 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젠더는 사회를 조직하는 기본원리다. 단순한 임금협상에서 차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kinship(친족체계)는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기업의 경영원리 등 모두 kinship과 연관돼 있다. 젠더를 건드리면 모든 인식론이 무너진다고 볼 수 있다.”
“가족, 국가, 사회 모두 젠더를 기반으로 이뤄져 있다. 민주노총이 성별분업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일주일도 못버틸 것이라고 본다. 일반 회사는 한 열흘 버틸 것이다. 성별이란 구별이 모든 차이와 구별을 더욱 불붙이게 되는 것이고 유지하게 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 차이와 구별을 더욱 부각시킨 것이다.”
“남성이 자신을 구체적 인간으로 고민하기 보다 자신을 보편적이고 초월적 존재로 인식해야만 NL이나 PD 같은 관념론이 나오게 된다. 여성문제는 사소화하고 싶어 한다. 남녀 당사자 문제로 몰고 가고 싶어한다”
“최근 이승기 나오는 더킹투하츠라는 드라마에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가 있다. ‘한국놈들은 원래 분열하는 놈들이다. 남북으로 분열하고, 동서로 분열하고’ 이건 식민주의적 발언이다. 모든 나라는 지역갈등이 다 있다. 아열대부터 1년 내내 눈오는 지역까지 있는 일본은 더 심하다. 그래 우리는 너무 분열적이야. 분열하지 말고 통합해야 해 하는 생각 자체가 식민적 발상이다. 니들은 분열 안하냐고 반문하는게 올바른 자세다.”
“구별 자체는 나쁘지 않다.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대안인가? 대안이 될 수 없다.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핵심은 의제를 의심하라는 것이다. 아젠다 셋팅(agenda setting)이라고 한다."
정희진 강사는 이날 강의하면서 여성주의를 공부했던 목표가 “사회적 논쟁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제 강의를 들은 후 계속 드는 생각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논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이다. (끝)
ps: 정희진 강사는 이날 12,000원에 판매되는 [페미니즘의 도전]을 ‘저자 가격’이라는 8,000원에 저자 싸인과 함께 판매해주셨다. 이날 모두 매진됐으나, 다음 강의 때도 같은 가격으로 판매하시겠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미리 사지 마시길.
송은정 여성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