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3일 성평등강좌 4강의 주제는 ‘한국사회의 식민성과 남성성’이었다. ‘남성성’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 때문일까, 30명의 참가자 중 남성 참가자가 무려 6명으로 20%에 달했다.
어제 강의를 정리하기에 앞서 고백부터 할 게 있다. 지난해 성평등강좌 제목인 ‘여성의 눈으로 세상읽기’에 대한 반성이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그 제목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면 안된다는 것. 특히 세상을 여성의 눈으로만, 남성의 눈으로만 바라보면 안된다는 것. 세상을 읽는 방식은 눈으로 할 수도 있고, 몸으로 할 수도 있고, 소리로도 할 수 있다는 것.
비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읽는 방식이 ‘눈’ 밖에 없다는 편견, 남성 입장이 아닌, 여성 입장으로 보자고 하는 이야기가 또다른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뜻이다.
정희진 강사는 이날 강의 주제가 “이번 연속강좌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주제”이며 “여성주의가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이유”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저출산 정책이 여성에게 불리하냐, 유리하냐는 논쟁이 있다. 가족계획은 1970년도에도 있었다. 출산과 섹스가 분리된게 고작 50년 밖에 안됐다. 콘돔의 발명 때문이다. 여성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숫자의 자녀만 가질 수 있는 엄청난 변화였다. 남자가 피임에 동의하기만 한다면. 그러나 1970년대 ‘둘만 낳아 잘기르자’,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라는 구호까지 만들며 가족계획을 했던건 여성을 위한건 아니었다. 1960년에 카이로에서 세계인구회담이 열렸다. ‘국가’를 정말 걱정했던 박정희가 입을 줄여야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족계획을 시작한거다”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꼭 봐야 할 책이 박정희 자서전과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라고 생각한다. 운동권은 이런 책을 진짜 안본다. 왜 대중이 박정희에 열광하는지, 박근혜가 인기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시 돌아가서 여성 중심의 가족계획이 아니라, 인구학 차원에서 입을 줄이기 위한 가족계획이었다는 것이다. 5자녀에서 2자녀로 줄면 여성의 노동이 해방되거나 남는 시간을 사회적 노동을 위해 투자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핵가족 중심주의를 가속화시켰다. 1명의 자녀에게 매진해서 계급을 재생산하고 있다.”
“여성이 일을 하면 남녀 권력관계가 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일을 하니까 밥도 잘해야 한다는 주장. 사실 남자들이 현모양처만 원해도 ‘착한 남자’다. 광화문에 나가서 아무 남자나 붙잡고 물어봐라. 아이 잘 기르고 남편 잘 돌보기만 하는 여성을 누가 원하나. 현모양처 플러스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섹스도 잘해야 한다.”
“여성주의자들은 시민권으로서 노동권이 필요하다고 봤다.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이 경제력이 있어야 탈출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권을 확보한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난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일하는데 넌 여행가려고 돈 버냐는 시각이다. 단적으로 KTX 여승무원 투쟁에서 드러났다고 본다. 그 문제가 쉽지 않았던건 여승무원의 노동이 ‘불필요한 노동’이라는 여성노동에 대한 편견이다.”
“지난주 강의에서 돈 잘버는 남편 있는 전업주부가 부럽다는 말을 해놓고 그날 집에 가서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그 이야기를 더 설명하려고 하는거다. 보통 일반 여성들의 욕망이 돈 잘 벌면서 구타하지 않고 외도 하지 않고 나만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전업주부다. 이 모델이 지배통념이 되고 있다. 남성들은 왜 사랑이나 로맨스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아나? 남성에겐 권력을 가지면 성과 사랑과 존경이 같이 따라온다. 그러니 사랑 자체에는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여성은 출세하면 여성은 질시해서 떠나고 남자는 무서워서 떠난다. 여성에겐 사회생활 모델이 없다. 한명숙은 누이 캐릭터고 전여옥은 악녀 캐릭터, 이 외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 여성들이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남자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렇게 해도 행복하지 않다는걸 알게 된다. 그러고 나니 다시 가부장제 모델에서 사는 여성을 부러워하게 된다. (구타 피해여성의 경우 인간으로 맞지 않아야 할 권리 보다 참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등의 여성의 도리에 민감해 한다.) 문제는 돈 잘 벌면서 구타하지 않고 외도 하지 않고 나만 사랑하는 남편의 전업주부는 0.0000001%라는거다. 존재하지 않는 신화다. 그런데 모든 국가 정책과 노동운동의 방향이 이 신화를 전제로 가고 있다. 가족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생산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국가 정책은 4인 가족기준을 모델로 생산된다. 가족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역할 모델이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으니까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성의 노동, 여성노동권이 여성 개인이 시민권을 가진 남성과 연계를 맺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족 수입증대’를 위한 것이라면 왜 여성이 노동을 해야 하나? 청와대는 ‘여성능력 확대’, ‘인적개발’ ‘사회참여’ 등의 용어로 이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고정희 시인이 시 중 ‘남성과 같이 사는 것은 사자로부터 길들여지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사자’는 ‘남성’이 아니다. 이 시를 보구 펑펑 울었었다. 여성이 겪는 고통이 있다. 동성애자, 장애인, 환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정, 사회, 국가, 노조, 언론도 도움을 안준다. 고통 자체를 모른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비난한다. 도움을 안주는 곳이 변화해야 하는데 변화하지 않으니까 여성이 스스로 변한다. ‘자아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보통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스스로 변한다. 나 본연의 상태로 시어머니를 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에서는 ‘사자’는 이런 시스템을 뜻한다”
“여성들은 이런 시스템에서 일부는 저항하고, 일부는 ‘명예남성’이 되기 위해 ‘이중노동’을 감내한다. 장애인도 투쟁하거나 아님 ‘인간승리’를 해야 한다. 운동의 기본목표는 자신의 건강과 행복과 성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노동은 무엇으로 귀결되는가. 가족 수입증대로 사교육과 직접 연결된다. 또한 노동의 성격과 질이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장을 세우고 홍보, 마케팅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보듯이 공장과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다. 지금은 노동자가 돈을 벌지 않는다. 금융과 정보가 돈을 벌고 있다. 지금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민주의는 무엇인가?”
“보통 전근대, 근대, 후기근대 식으로 시기를 구분한다. 조선시대, 구한말, 개발독재, 글로벌 자본주의 등. 시기 구분이라는게 칼 자르듯 나뉘는게 아니라 항상 한 시대에 모든 성격이 혼재돼 있다. 경합할 때 어느쪽이 시기 성격을 상쇄하느냐에 따라 시기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의식과 글로벌 자본주의 의식이 상충할 때 지금은 글로벌 자본주의 의식이 강하다.”
“쌍용차 사태, 용산 사태, 민간인 사찰 같은 문제가 중요할까? 반공사회, 감시사회, 직접억압, 독재정권 사회에서는 자유를 억압한다. 이에 직접 저항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솔직히 운동하기가 편했다. 쌍용차, 용산, 민간인사찰 등이 중요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심각한 비인간적인 문제다. 문제는 현재 우리사회 억압구조가 직접 억압구조가 아니라는데 있다. 내가 불편한 지점은 우리 사회가 이미 ‘자발적 종속’으로 계급투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 사태들이 우리 사회를 직접 억압구조인 것처럼 규정하고 이해하게 만든다는데 있다.”
“식민성 자체가 젠더적 형태를 갖고 있다. 모든 권력관계는 성별이 모델이다. 약자는 여자, 강자는 남자로 상징된다. ‘기지배 같은 놈’이라거나 ‘남자 못지 않은 여자’ 같은 말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소설과 영화는 모두 여성이 외세에 몸을 팔아 한국 남자를 먹여살리는 이야기다. 근데 여성의 상처나 고통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상처받은 남자들의 자존심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 영화나 소설을 10시간 동안 말할 수 있다. 최근에 대표적인 영화가 김기덕 영화들이고. 이것이 한국사회 주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운동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급적 타자인 남성이 약자와 연대하지 않고 다른 남성과 경쟁하는 것이다.”
“식민성이란 쉽게 말해 노예근성이다. 노예근성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대칭 단어로 쉽게 말하면 노동자의식 혹은 여성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교안에 써있는 PMC는 Private Military Company를 말하는 것이다. 군사 다국적 기업, 군사주식회사다. 군대는 합법적 폭력집단이다. 지금은 군대가 국가에 소속돼 있지 않고 PMC가 엄청 많다.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김선일씨 같은 경우도 PMC 소속이었다. 아무리 나쁜 국가라도 군대가 국가에 소속돼 있는게 그나마 좀 낫다. 미국 영화들은 요새 대부분 PMC와 애국주의자들간의 액션이다.”
“영어로 소령은 major, 대령은 captain이다. 소령은 다른 나라를 침략했을 때 시를 통치할 수 있다는 뜻이고, 대령은 수도를 통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major가 영어로 시장이기도 하다. 군사주의, 식민주의 반영한 뜻이다. 영어로 식민은 colonize, plantation인데, plantation은 심는다는 뜻도 있다. 한자로도 植民, 사람을 심는다는 뜻이다. 이주시키다. 자기 땅에서 떠난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이명박을 심는다. 무서운 말 아닌가? 철학자 중에 좋아하는 프란치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라는 책이 있다. 원래 제목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인데 김남주 시인이 번역을 멋지게 한 것 같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했다는 것은 내가 내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식민이라는 용어는 정신분석,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말이다.”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투표인증샷에 대해 선관위가 제재한다고 했을 때 트위터에 ‘내 권리를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라고 썼다. 참 똑똑한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내 권리를 두려워한다’ 정확한 표현 아닌가. 식민성이 반대는 반자본가 의식 같은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돼야 한다. 근데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른다.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때 자원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 봉하마을이 있는 지역에서 이번 총선때 새누리당 김태호가 당선됐다. 총리 인사청문회때 수많은 비리가 나왔지만, 그 중 제일 악질은 도청 직원들을 자기 집 가정도우미로 썼다는 이야기였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대중을 이해하려면 식민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노예근성에 반대되는 말로 노동자의식 보다 가까운 말은 ‘유목적 주체’라는 것이다.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 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한 미국영화에서 한 친구가 ”니 동생은 무슨 일 하니?”라고 질문하니까, ”내 동생은 게이야“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건 저 사람은 누구니라고 물으면, 저 사람은 여성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나 똑같다. 게이면 24시간 게이 정체성만 있나? 여러분은 24시간 매순간 노동운동만 생각하나? 여러분 자체가 노동운동 액기스인가?”
식민성이란? 국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관계에 적용됨.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는 상태. 지배자의 규정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지배자를 욕망, 동일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상태. 지배자가 삶의 모델이 됨.(*5월23일자 교안에서)
“우린 이해받고 싶어서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근데 이해받고 싶어서 이야기했는데 차별의 근거로 작동된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24시간 생각하는게 ‘식민성’이다. 일상적 관계, 사회연대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모두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노총에 있는 여러분이 경우 모두 일반 서민들 보다 누군가를 억압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그룹이다.”
“사람들은 억압에 대해 저항, 적응/협상, 회피(술, 담배, 마약 등등), 무관심으로 반응한다. 무관심, 소위 말해 쿨한 사람이 제일 싫다. 쿨한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초기를 지나면 저항하는 사람들도 분열하게 된다. 억압에 강력히 저항하던 사람들이 영웅주의에 빠지거나 자결하거나, 지배자와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등...”
“지배자와의 관계에서, 억압적 관계에서 나를 정의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다이어트 같은 것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페미니즘이 남자처럼 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대기업 제조업 남성들이 중산층, 화이트 칼라와 동일시하고 부러워하면 파워를 키우는게 중요해지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저항하면서 적을 닮아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든 유형이 저항이 마찬가지다. 저항의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하자.”
이제 마지막 강의만 남아있습니다. 다음주 강의 주제는 ‘현실 사례 분석’입니다. 다음주는 강의가 끝난 후 조촐한 다과와 함께 수료증 수여식과 평가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합니다. 5월 한 달간 함께 즐겼던 ‘지적 쾌락과 상상력’을 같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5월30일 수요일 오후 3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입니다.
송은정 민주노총 여성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