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 ...
한겨레신문 [ 사회 ] 2000. 4. 24. 月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 4·13총선은 직접적으론 국회의원을 뽑는 정치과정이었지만,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에도 평가하고 모색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겼다.
그 과제는 총선연대를 앞세운 시민운동의 낙천·낙선운동,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을 내세운 민중운동의 진보정당 실험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에 맞닿아 있다.
총선과정에서 두 운동진영 사이에 일정한 갈등양상이 나타난 점에 주목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을 주제로 대담을 마련했다.
민중운동쪽에서는 민주노동당 부대표이기도 한 양경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시민운동쪽에서는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참석했다.
대담은 20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6층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렸는데, 할 말이 많았던 탓인지 열띠게 진행됐다.
그 흔한 덕담 한마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대담은 총선연대운동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엇갈렸다.
조=시민운동은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최소주의운동’으로 정치권에 대한 심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68.6%에 이르는 높은 낙선율(수도권 95.5%)과 밀실공천 제동 등 정치문화 전환의 강제, 탈정치주의를 표방하며 합법적 제도권운동에 머물던 시민운동이 정치적 쟁점을 중심으로 연대해 사실상 시민불복종운동으로까지 나아간 것은 큰 성과다.
사회운동 전반을 고려할 때 ‘최소주의적 운동’이지만, 시민운동만을 놓고 보면 ‘최대주의운동’이기도 했다.
반면 인적청산에 중심을 두면서 민중적 정책 의제들이 부각될 사회적 분위기를 축소시킨 측면이 있고, 민중운동 등 기층운동과 연대성을 지속시키지 못한 것은 한계다.
그러나 이는 ‘의도하지 않은 한계’였다.
낙선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정치개혁의 양날개로 보는 게 필요하다.
양=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높인 것이나 87년 6월항쟁 이후 무방비 상태로 쌓여가던 보수정치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을 공론화한 점,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한계를 일정하게 돌파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보수정치권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패다.
이는 기본적으로 시민운동의 ‘친자본-보수적 개혁’노선 탓이다.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비정규직 노동자 급증(54%)과 극빈층 증가 등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에 따른 민중생존권 악화였다.
그러나 총선과정에서 불거진 자동차산업 해외매각 등 공공역역의 문제에 대해서조차 시민운동은 외면했다.
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같은 정치개혁의 본질적 지점에 대한 총선연대의 소극적 대응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총선연대는 낙선운동이라는 대안없는 정치에 대한 네거티브운동에 포지티브운동을 결합하지 못했다.
이런 식이라면 총선연대가 4년 뒤에 지목해야 할 낙천·낙선대상자는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
반면 민중운동의 진보정당 실험에 대해선 “진보정치의 구체적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는 등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양=어느때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국제통화기금 사태 뒤 계층분화 심화와 보수정치에 대한 민중적 불만 고조, 노조의 합법적 정치활동 등이 그렇다.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조직적으로 참여한 첫번째 정당운동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대중적 진보정치운동의 교두보 확보, 노동대중의 정치의식 고양,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알린 점 등은 성과다.
21개 출마 선거구에서 평균 13.1%를 득표하는 등 당위를 넘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성과다.
반면 민중적 의제를 구체적으로 부각하지 못하는 등 민주노동당의 지향점을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각인하지 못한 점 등은 한계다.
농민·청년·학생 등 진보적 대중을 결합시켜 외연을 확대하고, 지역과 조합에서의 일상정치사업 등 대중정치사업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준비가 매우 부족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울산북구 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조직구조, 노동현장과 당의 결합력 문제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
대중조직과 정당의 관계 정립 문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상호 독립적 관계’라 정리했다.
그러나 한국적 조건 속에서 현실적으로 당 건설과 기반 구축의 초기에 민주노총이 상당한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대단히 구체적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은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계급적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보수정치의 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의 계기 마련이라는 국민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진보정당운동은 노동대중과 굳건한 결합, 중간층 대중 획득이라는 상충하기도 하는 두가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한국에선 주체형성기이므로 노동대중과의 전면적·급진적 결합에 중점을 둬야 한다.
또 울산북구 후보경선 과정의 ‘합법적 반칙’ 등 노동자정치운동에도 윤리성 문제가 드러났다.
자기헌신과 대동단결을 통한 정치력 강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정치 발전의 최대 장애물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지역주의 문제로 넘어갔다.
조=극우보수세력이 지역주의라는 방어막 뒤에서 권력상실에 저항하고 있다.
최근의 지역주의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보수-진보’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 왜곡 고착현상이다.
영남의 몰표는 원래 저항적이었던 부산경남의 지역주의가 3당 합당 뒤 대구경북의 극우보수-패권적 지역주의에 포섭된 결과다.
호남의 지역주의도 진보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지역주의는 궁극적으론 진보정당의 진출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
시민운동의 탈지역주의운동은 이를 위한 저변을 넓히는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보수정당 일색으로 후보간 차별성이 없어 선택 폭에 제한을 받은 상황에서 나타난 지역투표의 양상이다.
이를 그냥 지역감정-지역주의라 재단하는 것은 문제다.
제도정치권이 보수정당 일색인 한 지역주의는 여전할 것이다.
민중적 의제와 보수정당 심판을 정확히 제기하지 않는 한 지역주의를 없애기 어렵다.
총선연대가 지역주의를 문제삼고 있지만 ‘친자본-보수적 개혁 노선’을 띠며 보수정당에 대한 전면적 심판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대담의 끝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이었다.
연대의 필요성엔 이견이 없었지만, 구체적 방식에선 차이가 났다.
조=6월항쟁 이후 일반민주주의적 공간이 확장됐다.
시민운동이 운신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오랜 반독재 민중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민중영역으로 환원되지 않는 일반민주의 영역이 있다.
이 부분을 개량적 투쟁의 영역 또는 도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시민적 전선(일반민주영역)과 민중적 전선(민중영역)은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두 전선을 분리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시민운동은 건강성을 훼손당할 수 있고, 민중운동은 영역확장에 곤란을 겪게 된다.
상호개입이 절실하다.
또 하나 시민적 전선의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쟁점이 복합적이고 운동체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민중운동은 노동정치 이외에 생활정치, 환경정치, 성정치 등 새로이 떠오른 운동영역에 어떻게 진보적으로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민중운동은 시민운동과 전략적 동맹을 생각하기보다 시민운동단체의 이질성과 복잡성, 한계를 전제로 사안별로 유연한 연대를 모색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자체에는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가 동의하겠지만,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시민운동단체가 민중운동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적 의제의 주변화 현상, 새로운 빈곤문제와 고용악화 등 사회개혁투쟁을 위한 연대전선이 절실하다.
또 1인2표제, 전국 정당명부제를 비롯해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부패방지법 등 미완의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두 운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양=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선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한 공동대응이다.
부패방지법과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민생에 밀착한 ‘대안의 정치’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또 지지세력이 있는데도 의석이 없다는 이유로 정당등록을 취소시키는 정당법 개정, 정당명부식 투표제 도입 등 보수정치에 균열을 내는 정치개혁에도 함께 해야 한다.
시민적 전선과 민중적 전선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나 노선과 방향의 차이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의견을 달리하는 시민운동과는 연대할 수 없다.
그건 시민운동이 아니다.
시민도 농민의 자식이고 노동자다.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맞선 지하철파업에 대해 ‘시민의 발, 불편’ 운운하는 시민단체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겠나. 대담은 2시간30분 만에 끝났다.
특기할 대목은 ‘성공적이었다’는 일반적 평가와 달리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시민운동에 대해 양경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낮은 조직률과 기업별 노조체계 등 부족한 주체역량에도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민중운동의 힘겨움과 외로움 탓일까. 대담이 끝난 뒤 양 부위원장이 속얘기를 꺼냈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시민운동은 우회로’라며 ‘언젠가는 민중운동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죠. 그 ‘언젠가는’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진보정당의 구체적 가능성이 드러난 바로 지금.” 정리 이제훈 기자nomad@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jskim21@hani.co.kr
한겨레신문 [ 사회 ] 2000. 4. 24. 月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 4·13총선은 직접적으론 국회의원을 뽑는 정치과정이었지만,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에도 평가하고 모색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겼다.
그 과제는 총선연대를 앞세운 시민운동의 낙천·낙선운동,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을 내세운 민중운동의 진보정당 실험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에 맞닿아 있다.
총선과정에서 두 운동진영 사이에 일정한 갈등양상이 나타난 점에 주목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을 주제로 대담을 마련했다.
민중운동쪽에서는 민주노동당 부대표이기도 한 양경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시민운동쪽에서는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참석했다.
대담은 20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6층 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렸는데, 할 말이 많았던 탓인지 열띠게 진행됐다.
그 흔한 덕담 한마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대담은 총선연대운동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엇갈렸다.
조=시민운동은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최소주의운동’으로 정치권에 대한 심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68.6%에 이르는 높은 낙선율(수도권 95.5%)과 밀실공천 제동 등 정치문화 전환의 강제, 탈정치주의를 표방하며 합법적 제도권운동에 머물던 시민운동이 정치적 쟁점을 중심으로 연대해 사실상 시민불복종운동으로까지 나아간 것은 큰 성과다.
사회운동 전반을 고려할 때 ‘최소주의적 운동’이지만, 시민운동만을 놓고 보면 ‘최대주의운동’이기도 했다.
반면 인적청산에 중심을 두면서 민중적 정책 의제들이 부각될 사회적 분위기를 축소시킨 측면이 있고, 민중운동 등 기층운동과 연대성을 지속시키지 못한 것은 한계다.
그러나 이는 ‘의도하지 않은 한계’였다.
낙선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정치개혁의 양날개로 보는 게 필요하다.
양=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높인 것이나 87년 6월항쟁 이후 무방비 상태로 쌓여가던 보수정치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을 공론화한 점,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한계를 일정하게 돌파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보수정치권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패다.
이는 기본적으로 시민운동의 ‘친자본-보수적 개혁’노선 탓이다.
이번 총선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비정규직 노동자 급증(54%)과 극빈층 증가 등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에 따른 민중생존권 악화였다.
그러나 총선과정에서 불거진 자동차산업 해외매각 등 공공역역의 문제에 대해서조차 시민운동은 외면했다.
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같은 정치개혁의 본질적 지점에 대한 총선연대의 소극적 대응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총선연대는 낙선운동이라는 대안없는 정치에 대한 네거티브운동에 포지티브운동을 결합하지 못했다.
이런 식이라면 총선연대가 4년 뒤에 지목해야 할 낙천·낙선대상자는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
반면 민중운동의 진보정당 실험에 대해선 “진보정치의 구체적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는 등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양=어느때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국제통화기금 사태 뒤 계층분화 심화와 보수정치에 대한 민중적 불만 고조, 노조의 합법적 정치활동 등이 그렇다.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이 조직적으로 참여한 첫번째 정당운동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대중적 진보정치운동의 교두보 확보, 노동대중의 정치의식 고양,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알린 점 등은 성과다.
21개 출마 선거구에서 평균 13.1%를 득표하는 등 당위를 넘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성과다.
반면 민중적 의제를 구체적으로 부각하지 못하는 등 민주노동당의 지향점을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각인하지 못한 점 등은 한계다.
농민·청년·학생 등 진보적 대중을 결합시켜 외연을 확대하고, 지역과 조합에서의 일상정치사업 등 대중정치사업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준비가 매우 부족했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울산북구 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조직구조, 노동현장과 당의 결합력 문제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
대중조직과 정당의 관계 정립 문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상호 독립적 관계’라 정리했다.
그러나 한국적 조건 속에서 현실적으로 당 건설과 기반 구축의 초기에 민주노총이 상당한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대단히 구체적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운동은 노동자운동의 정치세력화라는 계급적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보수정치의 개혁과 지역주의 극복의 계기 마련이라는 국민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진보정당운동은 노동대중과 굳건한 결합, 중간층 대중 획득이라는 상충하기도 하는 두가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한국에선 주체형성기이므로 노동대중과의 전면적·급진적 결합에 중점을 둬야 한다.
또 울산북구 후보경선 과정의 ‘합법적 반칙’ 등 노동자정치운동에도 윤리성 문제가 드러났다.
자기헌신과 대동단결을 통한 정치력 강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정치 발전의 최대 장애물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지역주의 문제로 넘어갔다.
조=극우보수세력이 지역주의라는 방어막 뒤에서 권력상실에 저항하고 있다.
최근의 지역주의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보수-진보’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 왜곡 고착현상이다.
영남의 몰표는 원래 저항적이었던 부산경남의 지역주의가 3당 합당 뒤 대구경북의 극우보수-패권적 지역주의에 포섭된 결과다.
호남의 지역주의도 진보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지역주의는 궁극적으론 진보정당의 진출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
시민운동의 탈지역주의운동은 이를 위한 저변을 넓히는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보수정당 일색으로 후보간 차별성이 없어 선택 폭에 제한을 받은 상황에서 나타난 지역투표의 양상이다.
이를 그냥 지역감정-지역주의라 재단하는 것은 문제다.
제도정치권이 보수정당 일색인 한 지역주의는 여전할 것이다.
민중적 의제와 보수정당 심판을 정확히 제기하지 않는 한 지역주의를 없애기 어렵다.
총선연대가 지역주의를 문제삼고 있지만 ‘친자본-보수적 개혁 노선’을 띠며 보수정당에 대한 전면적 심판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대담의 끝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이었다.
연대의 필요성엔 이견이 없었지만, 구체적 방식에선 차이가 났다.
조=6월항쟁 이후 일반민주주의적 공간이 확장됐다.
시민운동이 운신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오랜 반독재 민중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민중영역으로 환원되지 않는 일반민주의 영역이 있다.
이 부분을 개량적 투쟁의 영역 또는 도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시민적 전선(일반민주영역)과 민중적 전선(민중영역)은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두 전선을 분리하는 것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시민운동은 건강성을 훼손당할 수 있고, 민중운동은 영역확장에 곤란을 겪게 된다.
상호개입이 절실하다.
또 하나 시민적 전선의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쟁점이 복합적이고 운동체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민중운동은 노동정치 이외에 생활정치, 환경정치, 성정치 등 새로이 떠오른 운동영역에 어떻게 진보적으로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민중운동은 시민운동과 전략적 동맹을 생각하기보다 시민운동단체의 이질성과 복잡성, 한계를 전제로 사안별로 유연한 연대를 모색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자체에는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가 동의하겠지만, 신자유주의적 질서 재편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시민운동단체가 민중운동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적 의제의 주변화 현상, 새로운 빈곤문제와 고용악화 등 사회개혁투쟁을 위한 연대전선이 절실하다.
또 1인2표제, 전국 정당명부제를 비롯해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부패방지법 등 미완의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두 운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양=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선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한 공동대응이다.
부패방지법과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민생에 밀착한 ‘대안의 정치’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또 지지세력이 있는데도 의석이 없다는 이유로 정당등록을 취소시키는 정당법 개정, 정당명부식 투표제 도입 등 보수정치에 균열을 내는 정치개혁에도 함께 해야 한다.
시민적 전선과 민중적 전선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나 노선과 방향의 차이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의견을 달리하는 시민운동과는 연대할 수 없다.
그건 시민운동이 아니다.
시민도 농민의 자식이고 노동자다.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맞선 지하철파업에 대해 ‘시민의 발, 불편’ 운운하는 시민단체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겠나. 대담은 2시간30분 만에 끝났다.
특기할 대목은 ‘성공적이었다’는 일반적 평가와 달리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시민운동에 대해 양경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낮은 조직률과 기업별 노조체계 등 부족한 주체역량에도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민중운동의 힘겨움과 외로움 탓일까. 대담이 끝난 뒤 양 부위원장이 속얘기를 꺼냈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시민운동은 우회로’라며 ‘언젠가는 민중운동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죠. 그 ‘언젠가는’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진보정당의 구체적 가능성이 드러난 바로 지금.” 정리 이제훈 기자nomad@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jskim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