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미국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 그 공격적 기조의 불변이 문제이다
[특집]미국이 일으키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반대<4> △재미언론인 김민웅 목사 ⓒ길벗교회
미국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은 그 기본이 북한의 무장해제와 이에 근거한 지배전략이다. 보다 근원적인 전략 의도는 이를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허리를 겨냥할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한 장기적 패권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과 직접 대치하는 것은 분명 부담이 있기에, 미국이 일단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는 <북한 위협론>이다. 중국 공략의 징검다리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 위협론>의 논리는 간단하다.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무장체제가 미국과 세계 평화에 중대한 위험요소가 되고 있으니 이에 제동을 걸고, 미국이 제안하는 방식대로 북한의 기존질서를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위험요소의 거세 작전이라고 하겠다.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무장해제와 지배전략
그 방식의 핵심은 김정일 체제의 방어능력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약소국 북한이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인 최소한의 정당방위능력조차도 침략적 공격능력이라고 비난하는 국제적 네거티브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부시정권의 이해와 궤를 같이 하는 독점 대자본의 대변자인 타임과 뉴스위크는 2003년도 벽두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보다 더 위험하다는 논조로 카버 스토리를 꾸몄다.
이러한 고립작전을 펼치면서 미국은, 그 실체가 분명치 않은 이른바 국제사회는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미국의 구상을 지원,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대북 압박용 국제공조> 발상이다.
북한은 이렇게 “국제사회의 요구”로 포장된 이 미국의 구상에 순종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의 양자택일만 남은 셈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보면 북한은 중국과의 패권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차적으로 점령하기 위한 미국의 희생 제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의 희생>은 결코 <남의 안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반도 전체의 운명이 자칫 전쟁의 화마에 끌려들어갈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열강정치에 또다시 휘말려 들어갈 수 있음을 뜻한다.
2003년 1월 들어 부시정권이 대북 대화기조로 돌아서고 있는 듯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북한의 굴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이른바 <북 핵 위기>라는 것도 미국의 대북 특사 제임스 켈리가 “대화를 내걸고 방북한 과정에서” 명확한 증거나 북한 측의 공식적인 인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터져 나온 사태이다. 한마디로 북 핵 위기는 한반도 긴장고조와 대북 해체전략을 위한 미국의 작품이다.
미국식 대화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 부시정권의 대화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강공과 대화를 초점 없이 오가는 듯해도, 그것은 그때그때의 상황과 분위기에 따른 외양적 제스처의 차이에 불과할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북한의 주권을 유린하고 그 체제 유지력을 분해하면서 패권적 기조를 대세로 만들어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접근을 관철하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즉, 미국의 대북 정책이 가지고 있는 공격적 자세는 북한만이 그 상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의 지배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 민족 전체에 대한 위협적 공세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하루 속히 소위 한-미 공조라는 자해적 선택을 거부하고 민족공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핵무장으로만 따져도 미국 자신이야말로 세계평화의 최대 위협이며, 핵 확산 방지를 내걸고 실제적으로는 핵무기 독점을 지향하면서 핵무기 철폐운동을 묵살하고 있으니, 이 같은 미국의 현실은 그 패권적 제국의 위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제국의 미소는 믿을 바가 못 된다. 제국이 무기를 내려놓고 웃으며 함께 마주 하고 있다 해도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약소국의 정직한 현실이다.
부시정권의 대북 압박정책은 한반도 전체를 위협
제국의 선의(善意)란 없다. 이에 대하여 일체의 환상을 갖지 말아야, 우리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확실한 대응과 함께, 민족 전체의 운명을 지켜낼 수 있는 방책을 도모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응이 너무 극단적이 아닌가 하지만, 생존의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국가와 체제가 선택하는 방식으로서는 도리어 신중한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불가침 조약 체결이라는 제안을 통해 한반도에서 지난 50여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적 현실을 조성하자고 일관해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도리어 이에 대하여 부정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미국 부시정권이다. 누가 평화를 원하고, 누가 전쟁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이로써 명백해진다.
지난 해 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이른바 <맞춤형 봉쇄전략> 구상이 흘러나오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에 대하여 <역 봉쇄 전략> 발언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대북 포위망에 일정한 균열을 냄으로써 전쟁으로 가는 상황에 방어벽을 설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여론 조성에 열을 내던 부시정부와 미 언론들은 한국의 저항에 직면하자 일단 멈춤으로 사태를 관망국면으로 전환했다. 대북 압박정책의 근본은 바꾸지 않고 대화의 형식은 취하는 전술적 대응을 한 것이었다.
부시정권은 북한에 대한 침공 의사가 없으며 대화의 뜻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북한의 핵무장 프로그램 포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내걸었다. 불가침 조약 체결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한 채, 북한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면 이야기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라는 것도 상호 관심사의 교환과 논의, 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 쪽에는 제네바 합의 파기와 관련해서 일체의 책임이 없고 또 거론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틀 속에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규칙 위반에 대한 북의 이실직고와 미국의 대북 통제강화”에 다름이 아니다.
미국, 한반도 위기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왜곡 극심
미국은 “잘못된 또는 악의적 행동에 대한 대가나 보상은 없다”면서 북한이 핵 감시체제 원상복구와 핵동결조처 유지를 한다고 해서 경제적 원조나 기타 체제보장과 관련된 협상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과 논리는 핵문제의 근본과 관련해서 사태를 완전히 왜곡하고 오도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핵발전소 건설을 통한 에너지 자체 개발이라는 주권국가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했을 때에는 그 포기로 인한 손실에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핵무기 개발 우려를 인정하고 핵 동결조처를 취했다면, 에너지 문제해결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은 상대에게 권리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쪽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의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대가, 보상 등의 말로 규정하려는 것은 결국 미국이 북한의 경제개발에 근본 동력인 에너지 문제해결을 파탄내고 그에 더하여 핵 공격을 포함한 선제공격전략 철회에도 불응함으로써 대북 정책의 본질이 철저하게 외부적 압박에 의한 붕괴전략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자체개발이라는 주권적 권리 포기 요구에 대한 책임 마땅
만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미국은 당연히 핵동결조처가 재 유지되는 경우 이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이행할 것을 밝혀야 하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정책 철회를 명시한 국제적 협약을 만들어내는 일에 주저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부시정권은 북한에 대한 공격 의사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함으로써 이것을 대북 공격 의사가 없음을 확정하는 근거로 삼으려 든다면, 이와 동일하게 북한도 핵 투명성을 위한 사찰 수용은 거부한 채 “핵무기 개발 의사 없다”라는 말로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미국 부시정권은 자신의 행동방식에 적용되는 논리와 동일한 가치를 북한의 자세에 대하여 부여하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서로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 부시정권은 북한의 핵 동결조처가 국제적 구속력이 있는 틀 속에서 해결되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대북 공격 정책의 철회를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방식으로 확정해야 상호 동등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에 이를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자체 개발이라는 주권적 권리를 포기한 북한에 대하여 그 포기를 요구한 당사자로서 마땅한 책임을 즉각 이행해야 할 것이며 그럴 의사가 없다면, 더 이상 북한의 에너지 자체개발에 장애를 조성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을 북한에게 두려는 근거가 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 발언은 현재까지 그 어떤 증거로도 확인된 바 없으며, 그 발언의 진정한 의도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핵 공격까지 가능한 선제공격의 대상이 될 경우 핵무기 개발까지를 포함하는 정당방위 조처의 의지를 표방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확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자신의 체제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주변 환경의 평화적 개선에 노력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때 핵 대결을 자초하게 될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 이외에는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도발유도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에 있다. 자꾸 건드리고 이리저리 목을 조르다보면 상대가 저항하게 되어 있고, 이 정당 방위적 저항을 공격적 행위로 매도하면서 전쟁개시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는 것에 미국 부시정권의 대북압박정책이 가지고 있는 가공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앞으로도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기 전까지는 조건과 기회만 되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은 언제든 배제할 수없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이미 북한에 대한 공격이 정당하다는 여론과 논리를 상당한 정도로 확보한 상황이며, 이를 근거로 대북 공격의 기습성과 전격성을 발휘할 수도 있음에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전쟁 고조 여론 조성전술은 그때그때 즉시 강하게 제동을 걸어야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그 어떤 시도도 따라서 그 즉시즉시 강력하게 대처하여 그 기세를 그 시점에서 최대한 꺾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기도가 어느새 하나의 기정사실로 굳어져 전쟁발발의 환경이 강화됨으로써 이를 되 돌이키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1917년 이후 1936년에 이르는 근 20년의 세월 속에서 1차대전이 끝난 다음,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깊어지고 파시즘 세력의 집결이 가속화되면서 하루하루 전쟁의 길로 치달았던 역사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다행히 남한 내에 전쟁발발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그간 심화됨으로써 사태의 대처능력이 달라지긴 했으나 전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공격준비를 거의 완료한 상태에 있는 미국 부시정권의 현실을 직시하면, 정세를 안이 하게 볼 여력이 없다.
미국의 대북 압박 내지는 봉쇄정책의 근본을 문제 삼고 이를 거부하는 노력과 접근이 없고서는 우리의 그 어떤 중재나 주도권 발휘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기반조성에 도움을 주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날 한반도의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반전평화운동이 미국 부시정권의 제국주의적 야만을 폭로하고 이를 저지하는 노력과 결합함이 없이 추상적 방식으로, 또는 전쟁에 대한 포괄적 반대로 관념화될 때에는 전쟁의 마수는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대응방식에 교묘하게 뻗쳐 들어와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결국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의 각종 변형된 선택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반전평화 운동은 오늘날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야만과 대치할 때 의미획득
실로 오늘의 한반도 현실에 당면한 전쟁의 위협을 소멸하고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패권전략을 무력화시키려면 우리의 모든 반전평화운동의 역량은 미국 부시정권의 대한반도 정책이 가지고 있는 위선과 기만, 그리고 노골적이거나 또는 은폐된 폭력성을 그 대상으로 삼아 남북 민족 전체의 명운을 걸고 미국의 대 한반도 지배정책을 해체,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거나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중재안 식의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적 입장을 근거로 당당하게 평화체제의 형성을 주도하는 동시에 남북 경제의 민족적 기반 확보를 위한 각종 지원과 상호협력을 보다 강화하는 것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부시정권의 논리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는 한, 우리의 선택은 결국 대북 압박공조에 동조 내지 협력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하여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를 바꾸도록 요구하는 작업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을 일이다.
그것은 제국의 군대가 이 땅에서 동맹군의 명분으로 동맹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려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질 수 없는 조건부터 변화시키는 역량 성장과 병렬적으로 진행되지 않고서는 성취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최소한의 출발점인 것이다.
김민웅 목사는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경복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1982년 미국으로 와서 델라웨어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정치철학)을 마쳤으며,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로부터 기독교 윤리학 박사학위를 수여하였습니다. (박사논문: 제국의 윤리에 대한 투쟁)
수원대 강사, [코리아 타임스] 기자, [미주동아] 기자, 뉴욕 목요기도회 총무, 뉴욕신학대 강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미국 뉴저지에 있는 길벗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 내의 독자들을 위하여 [한겨레신문], [한겨레 21], [시사저널], [말], [내일신문], [신동아] 등에 전환기의 지성을 밝히는 명칼럼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물 위에 던진 떡] (1995), [패권시대의 논리] (1996), [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한 문명사적 반론] (1996) 등이 있습니다.
- 길벗교회 (http://www.gillbott.org/)
2003년01월09일 ⓒ민중의 소리
[특집]미국이 일으키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반대<4> △재미언론인 김민웅 목사 ⓒ길벗교회
미국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은 그 기본이 북한의 무장해제와 이에 근거한 지배전략이다. 보다 근원적인 전략 의도는 이를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허리를 겨냥할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한 장기적 패권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과 직접 대치하는 것은 분명 부담이 있기에, 미국이 일단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는 <북한 위협론>이다. 중국 공략의 징검다리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 위협론>의 논리는 간단하다.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무장체제가 미국과 세계 평화에 중대한 위험요소가 되고 있으니 이에 제동을 걸고, 미국이 제안하는 방식대로 북한의 기존질서를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위험요소의 거세 작전이라고 하겠다.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무장해제와 지배전략
그 방식의 핵심은 김정일 체제의 방어능력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약소국 북한이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인 최소한의 정당방위능력조차도 침략적 공격능력이라고 비난하는 국제적 네거티브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부시정권의 이해와 궤를 같이 하는 독점 대자본의 대변자인 타임과 뉴스위크는 2003년도 벽두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보다 더 위험하다는 논조로 카버 스토리를 꾸몄다.
이러한 고립작전을 펼치면서 미국은, 그 실체가 분명치 않은 이른바 국제사회는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미국의 구상을 지원,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대북 압박용 국제공조> 발상이다.
북한은 이렇게 “국제사회의 요구”로 포장된 이 미국의 구상에 순종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의 양자택일만 남은 셈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보면 북한은 중국과의 패권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차적으로 점령하기 위한 미국의 희생 제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의 희생>은 결코 <남의 안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반도 전체의 운명이 자칫 전쟁의 화마에 끌려들어갈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열강정치에 또다시 휘말려 들어갈 수 있음을 뜻한다.
2003년 1월 들어 부시정권이 대북 대화기조로 돌아서고 있는 듯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북한의 굴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이른바 <북 핵 위기>라는 것도 미국의 대북 특사 제임스 켈리가 “대화를 내걸고 방북한 과정에서” 명확한 증거나 북한 측의 공식적인 인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터져 나온 사태이다. 한마디로 북 핵 위기는 한반도 긴장고조와 대북 해체전략을 위한 미국의 작품이다.
미국식 대화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 부시정권의 대화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강공과 대화를 초점 없이 오가는 듯해도, 그것은 그때그때의 상황과 분위기에 따른 외양적 제스처의 차이에 불과할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북한의 주권을 유린하고 그 체제 유지력을 분해하면서 패권적 기조를 대세로 만들어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접근을 관철하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즉, 미국의 대북 정책이 가지고 있는 공격적 자세는 북한만이 그 상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의 지배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 민족 전체에 대한 위협적 공세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하루 속히 소위 한-미 공조라는 자해적 선택을 거부하고 민족공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핵무장으로만 따져도 미국 자신이야말로 세계평화의 최대 위협이며, 핵 확산 방지를 내걸고 실제적으로는 핵무기 독점을 지향하면서 핵무기 철폐운동을 묵살하고 있으니, 이 같은 미국의 현실은 그 패권적 제국의 위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제국의 미소는 믿을 바가 못 된다. 제국이 무기를 내려놓고 웃으며 함께 마주 하고 있다 해도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약소국의 정직한 현실이다.
부시정권의 대북 압박정책은 한반도 전체를 위협
제국의 선의(善意)란 없다. 이에 대하여 일체의 환상을 갖지 말아야, 우리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확실한 대응과 함께, 민족 전체의 운명을 지켜낼 수 있는 방책을 도모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응이 너무 극단적이 아닌가 하지만, 생존의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국가와 체제가 선택하는 방식으로서는 도리어 신중한 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불가침 조약 체결이라는 제안을 통해 한반도에서 지난 50여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적 현실을 조성하자고 일관해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도리어 이에 대하여 부정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미국 부시정권이다. 누가 평화를 원하고, 누가 전쟁을 지향하고 있는지는 이로써 명백해진다.
지난 해 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이른바 <맞춤형 봉쇄전략> 구상이 흘러나오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에 대하여 <역 봉쇄 전략> 발언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대북 포위망에 일정한 균열을 냄으로써 전쟁으로 가는 상황에 방어벽을 설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여론 조성에 열을 내던 부시정부와 미 언론들은 한국의 저항에 직면하자 일단 멈춤으로 사태를 관망국면으로 전환했다. 대북 압박정책의 근본은 바꾸지 않고 대화의 형식은 취하는 전술적 대응을 한 것이었다.
부시정권은 북한에 대한 침공 의사가 없으며 대화의 뜻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북한의 핵무장 프로그램 포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전히 내걸었다. 불가침 조약 체결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한 채, 북한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면 이야기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라는 것도 상호 관심사의 교환과 논의, 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 쪽에는 제네바 합의 파기와 관련해서 일체의 책임이 없고 또 거론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틀 속에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규칙 위반에 대한 북의 이실직고와 미국의 대북 통제강화”에 다름이 아니다.
미국, 한반도 위기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왜곡 극심
미국은 “잘못된 또는 악의적 행동에 대한 대가나 보상은 없다”면서 북한이 핵 감시체제 원상복구와 핵동결조처 유지를 한다고 해서 경제적 원조나 기타 체제보장과 관련된 협상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과 논리는 핵문제의 근본과 관련해서 사태를 완전히 왜곡하고 오도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핵발전소 건설을 통한 에너지 자체 개발이라는 주권국가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했을 때에는 그 포기로 인한 손실에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핵무기 개발 우려를 인정하고 핵 동결조처를 취했다면, 에너지 문제해결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은 상대에게 권리를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쪽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의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대가, 보상 등의 말로 규정하려는 것은 결국 미국이 북한의 경제개발에 근본 동력인 에너지 문제해결을 파탄내고 그에 더하여 핵 공격을 포함한 선제공격전략 철회에도 불응함으로써 대북 정책의 본질이 철저하게 외부적 압박에 의한 붕괴전략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자체개발이라는 주권적 권리 포기 요구에 대한 책임 마땅
만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미국은 당연히 핵동결조처가 재 유지되는 경우 이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이행할 것을 밝혀야 하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정책 철회를 명시한 국제적 협약을 만들어내는 일에 주저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부시정권은 북한에 대한 공격 의사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함으로써 이것을 대북 공격 의사가 없음을 확정하는 근거로 삼으려 든다면, 이와 동일하게 북한도 핵 투명성을 위한 사찰 수용은 거부한 채 “핵무기 개발 의사 없다”라는 말로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미국 부시정권은 자신의 행동방식에 적용되는 논리와 동일한 가치를 북한의 자세에 대하여 부여하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서로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 부시정권은 북한의 핵 동결조처가 국제적 구속력이 있는 틀 속에서 해결되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대북 공격 정책의 철회를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방식으로 확정해야 상호 동등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에 이를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자체 개발이라는 주권적 권리를 포기한 북한에 대하여 그 포기를 요구한 당사자로서 마땅한 책임을 즉각 이행해야 할 것이며 그럴 의사가 없다면, 더 이상 북한의 에너지 자체개발에 장애를 조성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을 북한에게 두려는 근거가 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 발언은 현재까지 그 어떤 증거로도 확인된 바 없으며, 그 발언의 진정한 의도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핵 공격까지 가능한 선제공격의 대상이 될 경우 핵무기 개발까지를 포함하는 정당방위 조처의 의지를 표방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확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자신의 체제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주변 환경의 평화적 개선에 노력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때 핵 대결을 자초하게 될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 이외에는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도발유도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에 있다. 자꾸 건드리고 이리저리 목을 조르다보면 상대가 저항하게 되어 있고, 이 정당 방위적 저항을 공격적 행위로 매도하면서 전쟁개시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는 것에 미국 부시정권의 대북압박정책이 가지고 있는 가공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앞으로도 북한과 미국 간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기 전까지는 조건과 기회만 되면 다시 고조될 가능성은 언제든 배제할 수없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이미 북한에 대한 공격이 정당하다는 여론과 논리를 상당한 정도로 확보한 상황이며, 이를 근거로 대북 공격의 기습성과 전격성을 발휘할 수도 있음에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전쟁 고조 여론 조성전술은 그때그때 즉시 강하게 제동을 걸어야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그 어떤 시도도 따라서 그 즉시즉시 강력하게 대처하여 그 기세를 그 시점에서 최대한 꺾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기도가 어느새 하나의 기정사실로 굳어져 전쟁발발의 환경이 강화됨으로써 이를 되 돌이키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1917년 이후 1936년에 이르는 근 20년의 세월 속에서 1차대전이 끝난 다음,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깊어지고 파시즘 세력의 집결이 가속화되면서 하루하루 전쟁의 길로 치달았던 역사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다행히 남한 내에 전쟁발발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그간 심화됨으로써 사태의 대처능력이 달라지긴 했으나 전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공격준비를 거의 완료한 상태에 있는 미국 부시정권의 현실을 직시하면, 정세를 안이 하게 볼 여력이 없다.
미국의 대북 압박 내지는 봉쇄정책의 근본을 문제 삼고 이를 거부하는 노력과 접근이 없고서는 우리의 그 어떤 중재나 주도권 발휘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기반조성에 도움을 주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날 한반도의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반전평화운동이 미국 부시정권의 제국주의적 야만을 폭로하고 이를 저지하는 노력과 결합함이 없이 추상적 방식으로, 또는 전쟁에 대한 포괄적 반대로 관념화될 때에는 전쟁의 마수는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대응방식에 교묘하게 뻗쳐 들어와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결국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의 각종 변형된 선택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반전평화 운동은 오늘날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야만과 대치할 때 의미획득
실로 오늘의 한반도 현실에 당면한 전쟁의 위협을 소멸하고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패권전략을 무력화시키려면 우리의 모든 반전평화운동의 역량은 미국 부시정권의 대한반도 정책이 가지고 있는 위선과 기만, 그리고 노골적이거나 또는 은폐된 폭력성을 그 대상으로 삼아 남북 민족 전체의 명운을 걸고 미국의 대 한반도 지배정책을 해체,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거나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중재안 식의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적 입장을 근거로 당당하게 평화체제의 형성을 주도하는 동시에 남북 경제의 민족적 기반 확보를 위한 각종 지원과 상호협력을 보다 강화하는 것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부시정권의 논리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는 한, 우리의 선택은 결국 대북 압박공조에 동조 내지 협력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하여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를 바꾸도록 요구하는 작업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을 일이다.
그것은 제국의 군대가 이 땅에서 동맹군의 명분으로 동맹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려도 아무런 제재가 가해질 수 없는 조건부터 변화시키는 역량 성장과 병렬적으로 진행되지 않고서는 성취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최소한의 출발점인 것이다.
김민웅 목사는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경복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1982년 미국으로 와서 델라웨어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정치철학)을 마쳤으며,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로부터 기독교 윤리학 박사학위를 수여하였습니다. (박사논문: 제국의 윤리에 대한 투쟁)
수원대 강사, [코리아 타임스] 기자, [미주동아] 기자, 뉴욕 목요기도회 총무, 뉴욕신학대 강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미국 뉴저지에 있는 길벗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 내의 독자들을 위하여 [한겨레신문], [한겨레 21], [시사저널], [말], [내일신문], [신동아] 등에 전환기의 지성을 밝히는 명칼럼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물 위에 던진 떡] (1995), [패권시대의 논리] (1996), [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한 문명사적 반론] (1996) 등이 있습니다.
- 길벗교회 (http://www.gillbott.org/)
2003년01월09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