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뜨거운 감자 탈북자 문제 - 민족통신 사진기사 바로가기
[진단]뜨거운 감자 탈북자 문제
2000년6월15일은 우리 민족 분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날이다. 단군자손 한겨레의 숭고한 뜻을 따라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을 위한 획기적 선언을 내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두 지도자는 남과 북의 통일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원칙 아래, 남과 북의 통일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했으며, 이산가족과 비전향장기수 등 인도적 문제를 풀어나가며,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 서로의 신뢰를 다지고, 이를 위한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우리시대] 분단이야 말로 인권학대의 ‘원죄’
이후 남북관계의 협력 교류는 놀라운 것이었다. 6·15시대 우리 민족은 화해와 통일의 씨앗을 키우며, 그 씨앗이 자라 통일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수구냉전 세력은 이 역사적 선언과 교류 협력을 마치 민족의 장래를 그르치는 것으로 악랄하게 선전하며 반통일, 반민족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종교인의 뜨거운 감자 ‘탈북자 문제’
6·15선언을 반대하는 구실 가운데 하나는 탈북자에 대한 문제이다. 체제에 대한 반대이든, 범죄 후의 도피이든,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행동에서든 탈북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사회라도 그 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은 있는 법이고 북이 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을 한 것은 사실이고 중국에 살고 있는 연고자들을 찾아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려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경우 공작정치와 북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자들의 과장된 음모일 것이겠지만 말이다. 또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많은 선교와 종교단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과연 이들의 활동이 종교적인가’하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에 문제는 없는가? 무엇이 참으로 민족과 전 인류의 인권을 위한 종교인의 봉사인가?
황장엽
지난 8월30일자 <연합뉴스>는 “미주 탈북난민인권보호협(이사장 유천종 목사)은 29일 북한 노동당비서를 지낸 황장엽씨를 상임고문에 추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단체는 많은 유사한 단체 가운데 하나이지만 유독 나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황씨를 고문으로 추대한 저의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 때문이다.
이 단체는 99년 4월경 창립됐으며, 아직 회칙이나 정관은 없는 유천종 목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임원으로는 부회장에 윤순규 전 해군제독(버지니아 거주), 서병선 뉴욕가곡협회장, 정제임스 휴스턴한인교회 장로 등 3인, 사무총장에 전 북버지니아한인회장, 총무에 박관이 버지니아 새마음교회장로 등이며, 황장엽과 김윤국 전 한국영락교회 담임목사를 상임고문으로 두고 있다. 이 단체의 회원은 주로 노인들과 반공동지회, 워싱턴재향군인회, 한국전참전동지회원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하는 일은 탈북자 난민지위부여를 주장하며 주미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거나, 미 의회 의원들을 방문하고, 탈북자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성명서 등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탈북자 관련 싱크탱크격인 아시아 태평양인권협회를 조직해 연구와 세미나 등을 개최 준비 중이다.
참고로 유천종 목사는 메릴랜드한인교회협의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미주반석교회의 담임목사이다. 미주반석교회는 유목사의 지나친 정치 편향적인 활동으로 신자수가 수십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기가 순수하고 방법이 올바른가
이제는 민족문제의 바른 해결을 위하여 어쩌면 종교인에겐 ‘뜨거운 감자’인 탈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종교적으로 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종교인들로서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자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 마땅히 권장해야 하다. 비록 파렴치한 범죄자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라고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개미 하나, 파리 하나도 죽이기를 꺼리는 생명철학을 존중하는 필자의 생각으론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동기의 순수성이며 시기와 그 방법이다. 악마는 언제나 ‘천사의 얼굴’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까닭이다. 또한 지금은 군수산업체에 얽힌 부시정권이 노골적으로 가상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시기인 까닭이다.
탈북자의 문제를 다룬 최근의 신문기사를 인터넷 신문에서 추적해보니 <조선일보>가 10건이요, <중앙일보>가 6건이었다. 탈북자 운운하는 자들은 수구냉전 세력이며 이들은 한결같이 반통일 반민족을 일삼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종교인으로 구제하는 일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한다면 누가마다하겠는가? 무작위로탈북자 문제를 내세우는 자들은 이북정권이 마치 악의 정권인양 선전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누가 악의 정권이고 누가 악의 화신이었는가?
민족통일을 저해하는 단독정부를 먼저 세운 것이 누구였는가? 일제에 항거한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참애국자들을 제거하고, 일제의 앞잡이를 내세워 정권을 창출한 자가 누구이었는가? ‘통일’이 아닌‘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반도의 허리를, 하나의 민족을 갈라놓고 지금도 천사인 양 행동하며 선량한 인권들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빌붙어 정권을 유지한 자는 누구이며, 정권을 잡아보려는 자는 누구인가?
황장엽을 고문으로 내세우고 그를 초청하는 저들의 동기는 무엇인가? 결국 탈북자 문제가 민족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선전하려는 그 의도는 무엇인가?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위하여 수십, 아니 수백만의 인권을 무시 학대하고, 전쟁을 일으켜 고철 폭탄으로 무차별 융단폭격을 하여 수십만을 살상한 자들은 누구인가? 결국 저들은 맹목적인 애국을 강조하며 남의 나라 인명을 무차별 살상하는 부시정부를 돕는 외에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무슨 도움을 주고 있는가?
민족문제를 올곧게 해결하려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고 노력하는 김대중 정부의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 자들, 증오와 불신을 조장하고 오도하며 정권을 잡으려는 냉전수구 정치세력을 직간접으로 돕는 외에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도우려면,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 기회에 종교인은 인권의 참 주소가 어디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수천만의 인디안을 살상하고, 보호소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그들을 묶어 놓은 나라, 약소국을 분단시켜 통치하고 있으면서도 때만 되면 남의 나라 인권을 들추며 압박하는 나라,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기회가 있으면 전쟁을 일으키려는 지금의 강경 부시정권. 이들은 결코 인권의 참주소가 아니다. 중생을 긍휼의 눈으로 본 석가, 문둥병자, 창녀, 눈먼 병자 등을 감싸안으며 인간으로 찾은 예수, 헤롯에 대해 ‘여우’라 하시며, 바리새인과서기관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 일갈하신 예수, ‘사차그라하’정신, 곧무저항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 생명경외의 사상 가운데 자신의 영화를 버리고 아프리카로 가 인술을 펼치며 산 슈바이처, 비폭력 무저항으로 수백 아니 수천만의 인권을 찾게 한 마틴 루터 킹목사, 인도의 캘커타 거리에서 죽어가는 인간들을 먹이며 씻기며 ‘하느님을 위하며 아름다운 것’을 남긴 칼카타 수녀, 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무명, 익명의 성자 성녀들에게 인권의 참주소가 있어야 한다.
유천종 목사를 비롯한 단체들이 참으로 순수한 동기에서 그들을 돕고저 한다면“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문지상에 떠들며 냉전수구세력들의 놀이에 놀아나지 말라고 외치고 싶다. 순수한 동기로 돕는다면 그들은 그들대로의 몫을 하는 일이다. 목자의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목자의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더 중요한것은 예언자의 사명이다. ‘광야의 소리’다.
참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민족 전체의 인권을 찾는 일이다. 자주하는 나라로 우리나라가 서기까지는 참 인권은 없기 때문이다. 분단되어 외국군대가 활개치며 무고한 어린아이를 죽이고도 목을 곧추세우는 나라에 어디 참 인권이 있겠는가? 민족의 장래를 우리끼리 결정하지 못하고 등뒤에 미국이 숨은 유엔이라는 허울좋은 기구에 맡겨야 하는 나라, 불평등한 행정협정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에 참 인권은 없다. 종속된 경제로 언제 어떻게 파산할 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기회만 있으면 피땀흘려 모은 돈으로 값비싼 군장비를 사들여야 하는 나라의 그 어디에도 참다운 인권은 없다.
분단은 인권학대의 ‘원죄’
문제는 탈북자를 돕는 것이 최선의 인권보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단을 조장하고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에 침묵하며, 지금도 인권이란 구실아래 우리 동족의 인권을 짓밟고 말살하려는 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참 인권의 현주소는‘분단’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은 인권학대의 ‘원조’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분단은 인권학대의 ‘원죄’다. 원죄를 외면하고 다른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이요 사기다.
탈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분단이원죄다. 우리나라 군사비의 1/10만 줄여도 탈북자 문제는 없어진다. 아니 북의 우리 형제자매들을 옥죄는 미의 경제봉쇄만 없어져도 탈북자문제는 해결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조미관계만 개선되면 탈북자 문제는 해결되고 통일은 앞당겨진다. 문제는 과거 반세기가 넘도록 증명된 어떤 환경에서도 ‘북은 굴복시킬 수 없는 나라’임을 알면서도 북이 무너져 흡수통일 되기를 바라는 자들, 그리고 분단하여 계속 자기들의 배를 채우려는 외세 미국, 그리고 여기에 빌붙어 민족의 장래보다는 자신들이나 잘 살려는 자들, 또한 민족문제의 본질을 파악,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침묵 방관하는 비겁한 우리에게 있다.
십자가, 그해결의 비법
필자가 먼저 살던 로스엔젤레스 근교 글렌데일에는 포레스트론 공원묘지가 있다. 그 정상에 세계에서 제일 큰 성화가 있다. 5층 높이의 대형 그림인 이 성화는 폴란드가 19세기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일 때 정치인 페트루스키가 화가 얀스키에게 부탁하여 그린 그림이다. 신약성경의 인물을 총망라하여 그린 그림의 제목은‘십자가’이다. 흥미있는 것은 이 그림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달린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묘사 되어있다. 제국주의에 맞서 십자가 정신으로 싸워 나라를 지키자는 결의로 그는 이 그림을 구상했던 것이다. 유천종 목사를 비롯해 탈북자돕기에 나서 야단스럽게 구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과연 민족의 십자가를 질 각오가 되어 있는가? 기독교의 진수는 바로 ‘십자가’인데!” 참으로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기도한다면, 참으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참으로 인권을 찾기를 원한다면 목자의 목소리에 예언의 소리를 실어라. 예언의 소리없이 우리나라에 참다운 인권은 없다.
● 백승배 목사
민족통신 편집위원 활동 중에 있으며 저서로는 <아! 내고향 우리고향> <십자가 위에서 들려온 소리> 등이 있다
글 백승배 미주 웨스트 아나하임 교회 담임목사
[출처: 우리 2002/12 31호]
민족통신 1/29/2003
[진단]뜨거운 감자 탈북자 문제
2000년6월15일은 우리 민족 분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날이다. 단군자손 한겨레의 숭고한 뜻을 따라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을 위한 획기적 선언을 내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두 지도자는 남과 북의 통일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원칙 아래, 남과 북의 통일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했으며, 이산가족과 비전향장기수 등 인도적 문제를 풀어나가며,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 서로의 신뢰를 다지고, 이를 위한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우리시대] 분단이야 말로 인권학대의 ‘원죄’
이후 남북관계의 협력 교류는 놀라운 것이었다. 6·15시대 우리 민족은 화해와 통일의 씨앗을 키우며, 그 씨앗이 자라 통일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수구냉전 세력은 이 역사적 선언과 교류 협력을 마치 민족의 장래를 그르치는 것으로 악랄하게 선전하며 반통일, 반민족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종교인의 뜨거운 감자 ‘탈북자 문제’
6·15선언을 반대하는 구실 가운데 하나는 탈북자에 대한 문제이다. 체제에 대한 반대이든, 범죄 후의 도피이든,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행동에서든 탈북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사회라도 그 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은 있는 법이고 북이 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을 한 것은 사실이고 중국에 살고 있는 연고자들을 찾아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려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경우 공작정치와 북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자들의 과장된 음모일 것이겠지만 말이다. 또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많은 선교와 종교단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과연 이들의 활동이 종교적인가’하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에 문제는 없는가? 무엇이 참으로 민족과 전 인류의 인권을 위한 종교인의 봉사인가?
황장엽
지난 8월30일자 <연합뉴스>는 “미주 탈북난민인권보호협(이사장 유천종 목사)은 29일 북한 노동당비서를 지낸 황장엽씨를 상임고문에 추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단체는 많은 유사한 단체 가운데 하나이지만 유독 나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황씨를 고문으로 추대한 저의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 때문이다.
이 단체는 99년 4월경 창립됐으며, 아직 회칙이나 정관은 없는 유천종 목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임원으로는 부회장에 윤순규 전 해군제독(버지니아 거주), 서병선 뉴욕가곡협회장, 정제임스 휴스턴한인교회 장로 등 3인, 사무총장에 전 북버지니아한인회장, 총무에 박관이 버지니아 새마음교회장로 등이며, 황장엽과 김윤국 전 한국영락교회 담임목사를 상임고문으로 두고 있다. 이 단체의 회원은 주로 노인들과 반공동지회, 워싱턴재향군인회, 한국전참전동지회원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하는 일은 탈북자 난민지위부여를 주장하며 주미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거나, 미 의회 의원들을 방문하고, 탈북자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성명서 등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탈북자 관련 싱크탱크격인 아시아 태평양인권협회를 조직해 연구와 세미나 등을 개최 준비 중이다.
참고로 유천종 목사는 메릴랜드한인교회협의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미주반석교회의 담임목사이다. 미주반석교회는 유목사의 지나친 정치 편향적인 활동으로 신자수가 수십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기가 순수하고 방법이 올바른가
이제는 민족문제의 바른 해결을 위하여 어쩌면 종교인에겐 ‘뜨거운 감자’인 탈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종교적으로 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종교인들로서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자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 마땅히 권장해야 하다. 비록 파렴치한 범죄자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라고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개미 하나, 파리 하나도 죽이기를 꺼리는 생명철학을 존중하는 필자의 생각으론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동기의 순수성이며 시기와 그 방법이다. 악마는 언제나 ‘천사의 얼굴’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까닭이다. 또한 지금은 군수산업체에 얽힌 부시정권이 노골적으로 가상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시기인 까닭이다.
탈북자의 문제를 다룬 최근의 신문기사를 인터넷 신문에서 추적해보니 <조선일보>가 10건이요, <중앙일보>가 6건이었다. 탈북자 운운하는 자들은 수구냉전 세력이며 이들은 한결같이 반통일 반민족을 일삼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종교인으로 구제하는 일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한다면 누가마다하겠는가? 무작위로탈북자 문제를 내세우는 자들은 이북정권이 마치 악의 정권인양 선전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누가 악의 정권이고 누가 악의 화신이었는가?
민족통일을 저해하는 단독정부를 먼저 세운 것이 누구였는가? 일제에 항거한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참애국자들을 제거하고, 일제의 앞잡이를 내세워 정권을 창출한 자가 누구이었는가? ‘통일’이 아닌‘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반도의 허리를, 하나의 민족을 갈라놓고 지금도 천사인 양 행동하며 선량한 인권들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빌붙어 정권을 유지한 자는 누구이며, 정권을 잡아보려는 자는 누구인가?
황장엽을 고문으로 내세우고 그를 초청하는 저들의 동기는 무엇인가? 결국 탈북자 문제가 민족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선전하려는 그 의도는 무엇인가?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위하여 수십, 아니 수백만의 인권을 무시 학대하고, 전쟁을 일으켜 고철 폭탄으로 무차별 융단폭격을 하여 수십만을 살상한 자들은 누구인가? 결국 저들은 맹목적인 애국을 강조하며 남의 나라 인명을 무차별 살상하는 부시정부를 돕는 외에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무슨 도움을 주고 있는가?
민족문제를 올곧게 해결하려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고 노력하는 김대중 정부의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 자들, 증오와 불신을 조장하고 오도하며 정권을 잡으려는 냉전수구 정치세력을 직간접으로 돕는 외에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도우려면,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 기회에 종교인은 인권의 참 주소가 어디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수천만의 인디안을 살상하고, 보호소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그들을 묶어 놓은 나라, 약소국을 분단시켜 통치하고 있으면서도 때만 되면 남의 나라 인권을 들추며 압박하는 나라,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기회가 있으면 전쟁을 일으키려는 지금의 강경 부시정권. 이들은 결코 인권의 참주소가 아니다. 중생을 긍휼의 눈으로 본 석가, 문둥병자, 창녀, 눈먼 병자 등을 감싸안으며 인간으로 찾은 예수, 헤롯에 대해 ‘여우’라 하시며, 바리새인과서기관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 일갈하신 예수, ‘사차그라하’정신, 곧무저항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 생명경외의 사상 가운데 자신의 영화를 버리고 아프리카로 가 인술을 펼치며 산 슈바이처, 비폭력 무저항으로 수백 아니 수천만의 인권을 찾게 한 마틴 루터 킹목사, 인도의 캘커타 거리에서 죽어가는 인간들을 먹이며 씻기며 ‘하느님을 위하며 아름다운 것’을 남긴 칼카타 수녀, 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무명, 익명의 성자 성녀들에게 인권의 참주소가 있어야 한다.
유천종 목사를 비롯한 단체들이 참으로 순수한 동기에서 그들을 돕고저 한다면“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문지상에 떠들며 냉전수구세력들의 놀이에 놀아나지 말라고 외치고 싶다. 순수한 동기로 돕는다면 그들은 그들대로의 몫을 하는 일이다. 목자의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목자의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더 중요한것은 예언자의 사명이다. ‘광야의 소리’다.
참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민족 전체의 인권을 찾는 일이다. 자주하는 나라로 우리나라가 서기까지는 참 인권은 없기 때문이다. 분단되어 외국군대가 활개치며 무고한 어린아이를 죽이고도 목을 곧추세우는 나라에 어디 참 인권이 있겠는가? 민족의 장래를 우리끼리 결정하지 못하고 등뒤에 미국이 숨은 유엔이라는 허울좋은 기구에 맡겨야 하는 나라, 불평등한 행정협정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에 참 인권은 없다. 종속된 경제로 언제 어떻게 파산할 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기회만 있으면 피땀흘려 모은 돈으로 값비싼 군장비를 사들여야 하는 나라의 그 어디에도 참다운 인권은 없다.
분단은 인권학대의 ‘원죄’
문제는 탈북자를 돕는 것이 최선의 인권보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단을 조장하고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에 침묵하며, 지금도 인권이란 구실아래 우리 동족의 인권을 짓밟고 말살하려는 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참 인권의 현주소는‘분단’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은 인권학대의 ‘원조’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분단은 인권학대의 ‘원죄’다. 원죄를 외면하고 다른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이요 사기다.
탈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분단이원죄다. 우리나라 군사비의 1/10만 줄여도 탈북자 문제는 없어진다. 아니 북의 우리 형제자매들을 옥죄는 미의 경제봉쇄만 없어져도 탈북자문제는 해결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조미관계만 개선되면 탈북자 문제는 해결되고 통일은 앞당겨진다. 문제는 과거 반세기가 넘도록 증명된 어떤 환경에서도 ‘북은 굴복시킬 수 없는 나라’임을 알면서도 북이 무너져 흡수통일 되기를 바라는 자들, 그리고 분단하여 계속 자기들의 배를 채우려는 외세 미국, 그리고 여기에 빌붙어 민족의 장래보다는 자신들이나 잘 살려는 자들, 또한 민족문제의 본질을 파악,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침묵 방관하는 비겁한 우리에게 있다.
십자가, 그해결의 비법
필자가 먼저 살던 로스엔젤레스 근교 글렌데일에는 포레스트론 공원묘지가 있다. 그 정상에 세계에서 제일 큰 성화가 있다. 5층 높이의 대형 그림인 이 성화는 폴란드가 19세기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일 때 정치인 페트루스키가 화가 얀스키에게 부탁하여 그린 그림이다. 신약성경의 인물을 총망라하여 그린 그림의 제목은‘십자가’이다. 흥미있는 것은 이 그림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달린 모습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묘사 되어있다. 제국주의에 맞서 십자가 정신으로 싸워 나라를 지키자는 결의로 그는 이 그림을 구상했던 것이다. 유천종 목사를 비롯해 탈북자돕기에 나서 야단스럽게 구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과연 민족의 십자가를 질 각오가 되어 있는가? 기독교의 진수는 바로 ‘십자가’인데!” 참으로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기도한다면, 참으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참으로 인권을 찾기를 원한다면 목자의 목소리에 예언의 소리를 실어라. 예언의 소리없이 우리나라에 참다운 인권은 없다.
● 백승배 목사
민족통신 편집위원 활동 중에 있으며 저서로는 <아! 내고향 우리고향> <십자가 위에서 들려온 소리> 등이 있다
글 백승배 미주 웨스트 아나하임 교회 담임목사
[출처: 우리 2002/12 31호]
민족통신 1/29/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