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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작성일 2007.08.23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6453
식량은 인간과 인간사회에서 매우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식량은 인간을 생존하게 하고 역사를 계승한다. 철학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연대와 번영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환경의 조화를 만든다.

식량의 조건은 이러하다.

첫째, 지속성이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옛 말이 있다. 지난 날 보리 고개를 경험했던 배고팠던 시절에는 아이들도 아침에 일어났다. 저녁에 먹은 멀건 죽이나 국수로는 밤을 모두 샐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잘 먹든 못 먹든 식량이 중단 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둘째, 평등성이다. 식량은 보편적 인권이다. 이를 식량인권이라 불러도 좋겠다. 물론 충분한 영양과 질 좋은 음식물을 공급하는 것이어야겠지만 기본은 평등해야 한다는 점이다. 옛 말에 있는 놈은 배 터져 죽고 없는 놈은 배곯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동막골>이라는 영화를 보면 한국전쟁 중에 강원도 산골에서 평화로운 마을이 존재한다. 그 비결에 대해 마을 촌장은 “잘 멕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감자나 옥수수만으로 얼마나 잘 먹였겠는가? 평등하게 먹였다는 의미다.

셋째, 안전성이다. 식품안전은 식량의 주요조건이다. 병든 동, 식물을 재료로 한 식량은 인간의 건강을 해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문제 역시 동물성 사료를 먹인 쇠고기가 인간에게 가져 올 재앙 때문이다.

넷째, 공공성이다. 농업은 생명, 환경, 생태, 문화, 역사, 철학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식량이 사적 소유관계를 중심으로 생산되고 공급된다면 공공적 성격은 사라진다. 식량이 철저하게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량의 의미는 왜곡된다. 공동체적 삶의 기초가 무너진다.

다섯째, 민중성이다. 이는 식량이 가져야 할 민중적 성격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량은 자본계급에 의해 소유되어 공급 판매된다. 당연히 이윤을 발생시키고 잉여착취의 수단이 된다. 전 지구적으로 식량공급이 과잉되더라도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식량은 폐기되고 한 쪽에서는 대량으로 인류가 굶어죽는다.

여섯째, 사회적 보호다. 아무리 식량이 자본주의 방식으로 생산된다 하더라도 농업의 특성상 사회(국가)적 보호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WTO DDA 협상이 결렬된 것도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간의 이견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140핵타를 경작하는 농민도 부업을 한다고 했다. 미국은 몇 십 핵타 정도의 경지 소유농가는 소농에 속한다. 그렇다고 200~300핵타의 대농 역시 정부의 보조나 지원 없이는 농업경영을 계속할 수 없다. 하물며 1~2핵타 면적의 한국농가는 말 할 것도 없다.

현 시기 식량문제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한국사회 체제문제이자 자본주의체제문제다.

첫째, 상품으로서의 생산과 소비문제다. 식량생산이 시장 지향적이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에 따라 농가소득이 결정되고 농업의 지속성 여부가 판가름 난다. 품질 좋은 유기농산물을 생산했다 하더라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그 농산물은 판매되지 않는다. 따라서 값싼 수입농산물에 밀리고 만다.

둘째, 식량 낭비문제다. 식량이 상품화되면 이윤을 위해 경쟁적으로 판매된다. 이제 아파트 단지마다 음식쓰레기 통이 넘쳐난다. 한 공장 식당에서 처리되는 하루 한 사람의 잔반은 42그램(108원)이었다. 이것은 물로 씻겨 내려간 양을 제외한 최소한의 것이다. 만약 이를 전 국민에게 환산한다면 약 5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실제 음식점에서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를 포함하면 연간 약 1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있다. 10조원이면 이북의 2500만 주민이 1년간 먹을 식량이라 한다. 따라서 우리가 통계로 얘기하는 식량자급률 25% 역시 버려지는 식량을 포함하는 수치다. ‘시골밥상’이라 붙여진 식당에 가면 반찬이 수무가지나 된다.

셋째, 불평등의 문제다. 한 편에서 10조원의 음식이 버려지면서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도시락을 싸 가지 못하는 결식아동이 수십만에 이른다. 아동 3명 중 한 명이 비만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영양실조로 굶고 있다. 과잉섭취와 과소섭취가 문제다.

식량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첫째, 자본주의 시장을 탈피해야 한다. 한국의 농업, 농촌, 농민문제를 자본주의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망상이다. 그것도 세계화되는 자본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둘째, 공공(公共)산품으로서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식량의 공공성을 확립해야 한다.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지역적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신토불이(身土不二)나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所)처럼 자신이 사는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는 신선한 농산물을 제 때 공급하는 것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넷째, 농민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농민(farmer)을 농업인(agricultural manager)이라 부르고 시장경쟁에 몰아넣었다. 추곡수매 등 정부의 농업보호나 보조정책을 폐지하고 농민을 기업인으로서 만들고 있다. 이는 농민의 존재를 소멸시킬 것이다.

다섯째, 국가권력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 농업을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 유통, 가공,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권력을 성격을 바꿔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농업’이 아니라 ‘공공농업’으로 전환하고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제기된 ‘국민농업’보다는 공공농업 또는 민중농업으로 개념화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사회포럼 2007, <식량주권 대토론회>(2007.7.7)에서 필자가 발표한 토론문을 재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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