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1회 민주노총 성평등학교가 열렸다.
모든 사업을 공문으로 처리하는 민주노총의 사업특성상 늦게 내려온 공문은 감히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지들에게 조차 함께 가자는 말을 꺼내기가 뻘쭘하다. 더군다나 장소가 강화도라니?!... 모두들 “지방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말 아니냐”며 가지 않아도 지극히 정당하다는 논리로 이용한다. 산별연맹 가맹산하조직의 임원은 물론 정책, 여성, 교육, 선전, 조직, 미조직을 담당하는 간부 전원이 참가대상이라 하니 또 한번 난리 부르스다. 오래전부터 임원이, 간부가 먼저 성평등의식을 갖어야 한다고 노래는 불렀지만 막상 민주노총성평등학교 대상자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지역본부 운영위회의에 “제1회 민주노총 성평등학교” 참가자 를 조직하자는 안을 올렸다. 모두들 ‘뜨아’하는 표정이라니.., 결국 참가자가 거의 없을 거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부랴 부랴 여성위원장님과 의논한 끝에 지역본부는 여성위원장과 나 금속지부의 여성담당동지가 함께 가는 것으로 했다.
울산에서 강화도까지 가는 길은 진짜 멀다. 직접가는 차편이 없어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앞으로 가서 또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만 한다. 아침 7시 5분 새마을호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금속동지는 어젯밤 뭘 했는지 내내 잠만 잔다. 여성위원장과 나는 소곤소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음료수도 사먹고 찐 달걀도 사먹었다. 참,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차안에서 밥도 사먹었다. 맛은 별로.., 기차로 5시간 40분(새마을호가 연착하는데 더 놀랐다) 영등포역에서 10분정도 걸어서 민주노총 앞 도착, 늦진 않았다. 강화도에 가는 버스안에서 함께하는 동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부분 처음보는 동지들이어서 이름을 들어도 기억은 하지 못한다.
강화도 오마이 스쿨까지 1시간 30분정도. 장장 7시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성평등학교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남성동지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민주노총 중집성원 중 참가한 동지는 경기본부장님 한분이었다. 모두들 너무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들어서 인지 뵙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든게 지금 민주노총인거 같다. 첫 번째 강사로 나선 김은주 부위원장의 진지한 표정이 무겁다. 민주노총에 성평등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민주노총 전 간부들과 함께하기를 소망하는 건 무리일까? 그래도 “민주노총의 성평등 과거와 미래”라는 주제를 차분하게 잘 정리했다. 이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졌고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여성노동자들이다. 우리 민주노총이 제대로 된 미래를 맞기 위해서도 조직내 성평등 문화를 실천하는 건 더 이상 미룰일이 아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 중엔 아직도 여성, 평등, 성, 문화, 소수자 등의 단어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동지들이 많다. 너무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럼 조직의 성평등은 정녕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 가야하지? 전교조의 박경화 동지는 참 쉽게도 잘 풀어나간다. 성평등의 관점에 대해 “우리는, 세상의 모두는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같은 것을 찿고, 배척하지 않고 들어 준다면 이루지 못할것이 뭐냐는 것이다. 선생님 동지도 참..., 제일 쉬우면서도 제일 힘든 과제를 우리 앞에 던져 놓으셨다. 밤 시간엔 분반토의를 마치고 서로 친해질 수 있는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뒷풀이 시간이야 말로 가장 토론이 활발하다. 서로 숨김없이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정말 좋은 동지들이란 생각이 든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 다함께 뒷풀이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다음날 떠난 강화 역사 기행에서 인터넷과 뉴스에서만 보던 이시우작가를 만났다. 볕은 따가웠지만 가는 곳 마다의 역사를 민중의 눈으로 말씀하신다. 저렇게 많은 얘길 하려면 정말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그 분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다. 공부도 할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고, 돈도 벌수 있고, 하고 싶은일을 할 수 있다는 건 가장 큰 행복 아닌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동지들이 더 많다. 우리는 이미 자본의 노동통제와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있고, 살기 위해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특히 민주노총 가맹 산하조직의 임원 간부들은 너무 바쁘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보인다. 한다고 하는데도 잘 풀리는 일이 없다. 한발짝 양보하고, 뒤도 돌아보고, 자기자신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동지들이 되었으면 싶다.
특히 조직의 성평등이 내가, 가족이, 동지가, 이웃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첫 걸음이라고 하면 우리 조합원들 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