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탐방]용역 폭력과 싸우는 기륭분회 노동자들
문형구 기자

△기륭분회 조합원들의 농성천막 안 ⓒ민중의소리 정택용
서울지하철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린 뒤, 구 대우어패럴 자리(현 마리오아울렛)에서 독산역 방향으로 5분쯤 걷다보면 기륭전자(주)가 나온다. 매일 아침 이 곳에서는, 구로동맹파업의 기억을 더듬듯 밥그릇과 꽹과리를 두드리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여성 노동자만 스무명 남짓한 집회대오. 그런데 사회자 바로 앞에 용역 하나가 떡허니 버티고 섰다. "좀 비켜봐요~ 왜 거기 서서 그래!"
한 여성 노동자의 항의에, 파란 마스크와 검정색 썬글라스를 낀 용역의 손이 냅다 머리 위로 올라간다. 보통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은 건장한 사내의 위협에 움찔할 수 밖에 없지만, 곧바로 주위에 있던 여성 노동자들이 달려든다. 시커먼 용역들도 이내 욕지거리를 하며 다가선다.
"야이 놈들아 때려라 때려. 그래 오늘도 맞아보자"
"니들은 엄마 누나도 없냐?"
개머리판 같은 손. 철거현장에서 왔다는 'H'엔터테인먼트 용역들의 치켜든 손과 구둣발이 무섭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들이 돌아가야 할 공장은 차마 고개를 돌려 쳐다볼 수 조차 없을 것.
"특수부대 출신들에다 3단 이상의 무술 유단자들이라는데.. 때리면 맞아야죠. 연대 단위가 없을 땐 저렇게 나와서 어슬렁 어슬렁 시비를 걸어요. 아주머니 한 분은 119에 실려갔다 온 이후론 밤에도 잠을 못자고, 폐쇄공포증인가.. 좁아서 버스를 못타요."(최은미 조합원)
하루가 멀다하고 맞으니 차라리 맞는 날이 편하다. 맞지 않고 조금이라도 움츠러 들었다 싶으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또 분한 마음에 잠조차 잘 수 없었다. 애시당초 타협이 아닌 싸움을 선택했으니 맞을지언정 고분고분 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 10원
네비게이션과 위성수신 라디오, GPS 등을 제작하는 기륭전자(주)는 2005년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한 주목받는 중소기업. 이 곳 계약직 노동자들의 초임은 최저임금보다 단 10원이 많은 641,850원.

△파업과정에서 용역, 전투경찰(아래)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기륭분회 조합원들 ⓒ민중의소리
"기륭 노동자들의 현실이에요. 지난해 7월초에 노조 가입원서를 돌렸는데 10분 만에 생산직 205명 가운데 180여명이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동안 기륭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부당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죠."(김소연 분회장)
기륭전자의 생산직 300여명 중 정규직은 10여명 뿐이었고 직접고용 계약직이 40여명, 파견이 250여명이었다.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는 지난해 8월 기륭전자(주)와 인력공급업체 휴먼닷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이에 기륭 노동자들도 정규직화 싸움에 들어갔다.
입사 6년차 정옥희씨는 몇명 안되는 정규직 노조원 중 한 명.
"제가 입사할 땐 3개월 수습 지나고 나서 바로 정규직이었는데, 어느 순간 파견직이 하나 둘씩 들어오게 됐어요. 근속이 짧다보니 능률은 저하되는 걸 알 수 있는데.. 회사는 그것보다는 눈에 밉보이면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쪽을 원했던 거에요. 인간으로서가 아닌 기계의 소모품으로 시키면 시키는데로 일해라. 조장 반장이 지시를 하면.. 사실 부모님 같은 나이의 노동자들도 많은데 회사에만 오면 막 대하고 무시하고.."
"처음에 할 때는 이렇게 길어진다는 느낌은 없이 시작했죠.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니 현장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겠구나. 이제와서 알았지만 회사는 끄떡도 안하고 노동부도 그걸로 그만이었습니다. 회사는 오히려 더 탄압을 많이 하더라구요."(정옥희 조합원)
회사는 노조 결성 후 노조원 대부분을 계약해지했고 대화에조차 응하지 않았다. 회사가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직장폐쇄를 하건, 노조가 55일간 공장을 점거하건 노동부는 묵묵부답, 돌아온 것은 공권력 투입과 김소연 분회장 구속, 104억 손배청구였다.
공장에서 끌려나온 뒤 시작된 이들의 농성도 벌써 243일차를 맞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대다수가 여성노동자인 기륭분회 노조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측의 폭력이다.

△호루라기를 부는 정옥희 조합원(가운데) ⓒ민중의소리 정택용
"대부분 여성이다 보니 회사에서 또 용역들이 보기엔 우리가 약하잖아. 입에 담지 못할 욕.. 머리에 침을 뱉기도 해요. 가장 속상한 게 여성이고 힘이 없으니 물리력으로 당한다는 것.. 쟤네들 표현으로 한주먹거리도 안되니.."(윤종희 조합원)
지난 3월 6일엔 용역들이 집회 도중 여성노동자들을 정문 안으로 끌고 들어가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저녁 7시경인가 회사가 정문을 열더니 물대포를 쏘면서 끌고가려고 해요. 분회장이랑 나랑 또 한 언니랑 세 명. 분회장은 총무한테 목이 졸리고 흥희 언니는 상의가 벗겨지고, 저는 분회장 언니 데리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바닥에 계속 내동댕이 쳐졌어요. 저는 많이 다친 건 아니지만 용역들이 어깨를 잡고 패대기를 쳐서 어깨에 멍이 들고.. 몇일 동안 너무 아팠어요."(최은미 조합원)
-경찰은 없었나요?
"전경차가 두 대나 공장 안에 있었는데도 다들 구경만 하더라구요. 정보과 형사들도 여러명 바깥에 서 있었는데, 밖에서 끌려갔다고 막 뭐라 하니깐 그제서야 안으로 들어왔어요. 현행범이니까 연행해 가라는데도 안 하고.. 나중에 회사는 자기들이 감금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진입한 거라고 고소했어요."
정보과 형사들 역시 사측의 시설보호 요청에는 기민하게 반응하지만, 여성노조원들에 대한 폭행에 대해서는 사측에 대고 어쩌다 한마디 할 뿐이다.
"업무방해로 고소를 해야지 이렇게 물리적으로 하면 안된다니까! 피해 입은 사람이.."(경찰발언, 3월 6일 집회)
경찰의 방관 속에 119에 실려가는 조합원은 부지기수. 한번은 조합원 한 명이 꼬리뼈가 부러지고 용역의 무전기에 찍혀서 머리에 '구멍'이 났다고 한다.
"생계 때문에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관두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회사가 끊임없이 폭력으로 너무 지치게 만들어서.. 이제는 구사대가 앞에 보이면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요.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분하지 않나.."(정옥희 조합원)
"내가 다른데 가도 똑같고, 그러면 우리 한번 끝장 보는 투쟁을 해보자. 굳은 결의만 남았죠."(윤종희 조합원)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간다"
윤종희 조합원의 말마따나,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각오해야 했던 건 해고와 직장폐쇄, 당장의 생활고와 또 없는 돈이나마 적금과 보험으로 설계해두었던 미래의 계획을 반납하는 아픔만이 아니었다. 사측과 공권력의 폭력에 움츠러들지 않고 맞서 싸워야 했던 10개월의 시간.
또 이땅에서 비정규직으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떤 희망도 없다는 의미였다고. 그래서 덜 지치고 지금까지 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을 탓하며 농성장을 떠난 동지들도 많았지만 새 봄을 맞은 두 평 남짓의 천막엔 지금도 웃음이 가득하다.
늦은 저녁, 농성장의 귀염둥이 최은미 조합원이 어디서 배웠는 지 손수 만든 케익을 내놓았다.
"위원장님 줄려고 만들어 왔는데 실패야, 실패.. 모양이 개떡(거친 보리 싸라기 따위를 반죽하여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밥 위에다 얹어 찐 떡)같애.."
"실패는 실 감을 때나 쓰는 말이고,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니까"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집회 현장에서 가장 밝고 떠들썩하기로 유명하다. 바로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가을 공장 점거 당시의 모습 ⓒ민중의소리 정택용
2006년04월25일 ⓒ민중의 소리
[탐방]용역 폭력과 싸우는 기륭분회 노동자들
문형구 기자

△기륭분회 조합원들의 농성천막 안 ⓒ민중의소리 정택용
서울지하철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린 뒤, 구 대우어패럴 자리(현 마리오아울렛)에서 독산역 방향으로 5분쯤 걷다보면 기륭전자(주)가 나온다. 매일 아침 이 곳에서는, 구로동맹파업의 기억을 더듬듯 밥그릇과 꽹과리를 두드리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여성 노동자만 스무명 남짓한 집회대오. 그런데 사회자 바로 앞에 용역 하나가 떡허니 버티고 섰다. "좀 비켜봐요~ 왜 거기 서서 그래!"
한 여성 노동자의 항의에, 파란 마스크와 검정색 썬글라스를 낀 용역의 손이 냅다 머리 위로 올라간다. 보통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은 건장한 사내의 위협에 움찔할 수 밖에 없지만, 곧바로 주위에 있던 여성 노동자들이 달려든다. 시커먼 용역들도 이내 욕지거리를 하며 다가선다.
"야이 놈들아 때려라 때려. 그래 오늘도 맞아보자"
"니들은 엄마 누나도 없냐?"
개머리판 같은 손. 철거현장에서 왔다는 'H'엔터테인먼트 용역들의 치켜든 손과 구둣발이 무섭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들이 돌아가야 할 공장은 차마 고개를 돌려 쳐다볼 수 조차 없을 것.
"특수부대 출신들에다 3단 이상의 무술 유단자들이라는데.. 때리면 맞아야죠. 연대 단위가 없을 땐 저렇게 나와서 어슬렁 어슬렁 시비를 걸어요. 아주머니 한 분은 119에 실려갔다 온 이후론 밤에도 잠을 못자고, 폐쇄공포증인가.. 좁아서 버스를 못타요."(최은미 조합원)
하루가 멀다하고 맞으니 차라리 맞는 날이 편하다. 맞지 않고 조금이라도 움츠러 들었다 싶으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또 분한 마음에 잠조차 잘 수 없었다. 애시당초 타협이 아닌 싸움을 선택했으니 맞을지언정 고분고분 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 10원
네비게이션과 위성수신 라디오, GPS 등을 제작하는 기륭전자(주)는 2005년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한 주목받는 중소기업. 이 곳 계약직 노동자들의 초임은 최저임금보다 단 10원이 많은 641,850원.

△파업과정에서 용역, 전투경찰(아래)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기륭분회 조합원들 ⓒ민중의소리
"기륭 노동자들의 현실이에요. 지난해 7월초에 노조 가입원서를 돌렸는데 10분 만에 생산직 205명 가운데 180여명이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동안 기륭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부당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죠."(김소연 분회장)
기륭전자의 생산직 300여명 중 정규직은 10여명 뿐이었고 직접고용 계약직이 40여명, 파견이 250여명이었다.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는 지난해 8월 기륭전자(주)와 인력공급업체 휴먼닷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이에 기륭 노동자들도 정규직화 싸움에 들어갔다.
입사 6년차 정옥희씨는 몇명 안되는 정규직 노조원 중 한 명.
"제가 입사할 땐 3개월 수습 지나고 나서 바로 정규직이었는데, 어느 순간 파견직이 하나 둘씩 들어오게 됐어요. 근속이 짧다보니 능률은 저하되는 걸 알 수 있는데.. 회사는 그것보다는 눈에 밉보이면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쪽을 원했던 거에요. 인간으로서가 아닌 기계의 소모품으로 시키면 시키는데로 일해라. 조장 반장이 지시를 하면.. 사실 부모님 같은 나이의 노동자들도 많은데 회사에만 오면 막 대하고 무시하고.."
"처음에 할 때는 이렇게 길어진다는 느낌은 없이 시작했죠.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니 현장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겠구나. 이제와서 알았지만 회사는 끄떡도 안하고 노동부도 그걸로 그만이었습니다. 회사는 오히려 더 탄압을 많이 하더라구요."(정옥희 조합원)
회사는 노조 결성 후 노조원 대부분을 계약해지했고 대화에조차 응하지 않았다. 회사가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직장폐쇄를 하건, 노조가 55일간 공장을 점거하건 노동부는 묵묵부답, 돌아온 것은 공권력 투입과 김소연 분회장 구속, 104억 손배청구였다.
공장에서 끌려나온 뒤 시작된 이들의 농성도 벌써 243일차를 맞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대다수가 여성노동자인 기륭분회 노조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측의 폭력이다.

△호루라기를 부는 정옥희 조합원(가운데) ⓒ민중의소리 정택용
"대부분 여성이다 보니 회사에서 또 용역들이 보기엔 우리가 약하잖아. 입에 담지 못할 욕.. 머리에 침을 뱉기도 해요. 가장 속상한 게 여성이고 힘이 없으니 물리력으로 당한다는 것.. 쟤네들 표현으로 한주먹거리도 안되니.."(윤종희 조합원)
지난 3월 6일엔 용역들이 집회 도중 여성노동자들을 정문 안으로 끌고 들어가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저녁 7시경인가 회사가 정문을 열더니 물대포를 쏘면서 끌고가려고 해요. 분회장이랑 나랑 또 한 언니랑 세 명. 분회장은 총무한테 목이 졸리고 흥희 언니는 상의가 벗겨지고, 저는 분회장 언니 데리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바닥에 계속 내동댕이 쳐졌어요. 저는 많이 다친 건 아니지만 용역들이 어깨를 잡고 패대기를 쳐서 어깨에 멍이 들고.. 몇일 동안 너무 아팠어요."(최은미 조합원)
-경찰은 없었나요?
"전경차가 두 대나 공장 안에 있었는데도 다들 구경만 하더라구요. 정보과 형사들도 여러명 바깥에 서 있었는데, 밖에서 끌려갔다고 막 뭐라 하니깐 그제서야 안으로 들어왔어요. 현행범이니까 연행해 가라는데도 안 하고.. 나중에 회사는 자기들이 감금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진입한 거라고 고소했어요."
정보과 형사들 역시 사측의 시설보호 요청에는 기민하게 반응하지만, 여성노조원들에 대한 폭행에 대해서는 사측에 대고 어쩌다 한마디 할 뿐이다.
"업무방해로 고소를 해야지 이렇게 물리적으로 하면 안된다니까! 피해 입은 사람이.."(경찰발언, 3월 6일 집회)
경찰의 방관 속에 119에 실려가는 조합원은 부지기수. 한번은 조합원 한 명이 꼬리뼈가 부러지고 용역의 무전기에 찍혀서 머리에 '구멍'이 났다고 한다.
"생계 때문에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관두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회사가 끊임없이 폭력으로 너무 지치게 만들어서.. 이제는 구사대가 앞에 보이면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요.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분하지 않나.."(정옥희 조합원)
"내가 다른데 가도 똑같고, 그러면 우리 한번 끝장 보는 투쟁을 해보자. 굳은 결의만 남았죠."(윤종희 조합원)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간다"
윤종희 조합원의 말마따나,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각오해야 했던 건 해고와 직장폐쇄, 당장의 생활고와 또 없는 돈이나마 적금과 보험으로 설계해두었던 미래의 계획을 반납하는 아픔만이 아니었다. 사측과 공권력의 폭력에 움츠러들지 않고 맞서 싸워야 했던 10개월의 시간.
또 이땅에서 비정규직으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승리하지 못한다면 어떤 희망도 없다는 의미였다고. 그래서 덜 지치고 지금까지 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을 탓하며 농성장을 떠난 동지들도 많았지만 새 봄을 맞은 두 평 남짓의 천막엔 지금도 웃음이 가득하다.
늦은 저녁, 농성장의 귀염둥이 최은미 조합원이 어디서 배웠는 지 손수 만든 케익을 내놓았다.
"위원장님 줄려고 만들어 왔는데 실패야, 실패.. 모양이 개떡(거친 보리 싸라기 따위를 반죽하여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밥 위에다 얹어 찐 떡)같애.."
"실패는 실 감을 때나 쓰는 말이고,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니까"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집회 현장에서 가장 밝고 떠들썩하기로 유명하다. 바로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가을 공장 점거 당시의 모습 ⓒ민중의소리 정택용
2006년04월25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