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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동과세계 <여성마당 >

작성일 2011.02.21 작성자 여성위원회 조회수 3168

<노동과세계> [여성마당]은 민주노총 여성위원들과 여성조합원들이 함께 하는 꼭지입니다.

[에세이] "엄마 미안해"

[497호] 2011년 03월 29일 (화) 편집국 kctuedit@nodong.org

나는 현재 임신 중이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 사실 병원에 가서 수술까지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내가 임신을 중지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막연한 공포, 두 번째 이유는 나의 나이가 아직 너무나 어려 아직 날개도 펼치지 못한 상황적 이유, 세 번째 이유는 땡전 한 푼 없는 빈곤한 삶,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바로 우리 엄마였다.

임신 사실을 안 순간 예전에 여성 활동가들끼리 모이면 꼭 아이들도 함께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때, 도대체 이 여성들은 기혼 여성인데도 왜 항상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나, 그러고도 활동가인가, 남편들은 이 시간에 뭘 하길래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에도 애를 데리고 나오게 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다. 아이들이 모인 상황에서 모임과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리 만무했고, 그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여성들은 우리도 탁아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면 나는 또 속으로 이 여성들을 여성에 대한 육아의 책임을 전가하는 무식쟁이라며 비웃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언니들처럼, 엄마들처럼 살아야 한다니 정말로 끔찍했다. 

집에서는 집안일과 육아에 시달리면서 밖에 나와서는 노동조합 활동하는 그녀들이 이중적으로도 보였다. 자신의 가정부터 바꾸지 못해 제사 음식 준비 때문에 회의일정을 미루면서 노동조합은 이래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안에서부터 바꾸지 않으면 그건 거짓말이고 자신의 권리부터 찾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헛된 활동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백날 노동조합 활동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었다.  

여느 남성 못지 않게 활동을 잘하는 노동조합 여성 활동가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하는지 물어보았더니, 친정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도움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한 평생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시고 가사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한 어머니를 또다시 내가 편히 살기 위해 희생을 시킬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평소 나는 부모 자식간에는 독립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어머니에 관해서는 자식들이 다 장성하면 이제는 어머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답해도 모자랄 마당에 손자손녀까지 키워내라고 하다니, 자기 새끼 자기가 책임 못질 거면 왜 애는 낳는 것인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  

세상이 도와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여성운동하는 니가 더 잘알지 않느냐.. 맞다. 나도 잘 안다. 국가 정책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여성들의 현실이 특히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친정 엄마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녀들을 결코 나쁜년이라 욕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엄마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한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임신이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엄마는 여느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딸의 임신을 기뻐하며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희생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당연한 엄마로서의 역할이라 말하며 나를 여전히 설득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화도 내신다. 혼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하냐고 그러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냐고... 그걸 엄마된 입장에서 어떻게 보냐고.. 그런데, 여성운동하는 나기 때문에 모른척하고 그냥 엄마에게 기댈 수만은 없다. 여성운동을 떠나 여자니까, 마냥 철없이 굴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엄마와 나는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나의 임신사실이 여전히 슬프고 또 아리다. 임신 기간 내내 엄마에게 짜증과 화만 내던 내가 지면을 통해 진심을 처음으로 말하고 싶다. “엄마, 미안해...”

최성화 민주노총 여성담당/ 노동과세계 497호

 

[여성마당] 웃지 않는 서비스 왜?
백화점․할인점 연장영업 반대 그리고 주휴점제 시행을 촉구하며...
newsdaybox_top.gif [496호] 2011년 03월 17일 (목) 편집국 btn_sendmail.gif kctuedit@nodong.org newsdaybox_dn.gif

요즘 금요일 아침이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며, 어깨띠를 두르고 현수막과 피켓을 든 한국노총 롯데쇼핑노조 조합원들이 나와 캠페인을 한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을 이용하며 매일 힘들게 출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외치는 그들의 모습이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로 정말 '뭥미???'이다.

롯데쇼핑노조와 롯데백화점이 공동 기획한 생뚱맞은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은 하필 서비스연맹이 ‘백화점․할인점 연장영업 반대 및 주휴점제 시행 촉구 캠페인’을 하는 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만 한다.
 
백화점 서비스노동자는 보통 9시쯤 출근하는데 평일은 8시까지, 주말이면 밤 9시, 10시까지 일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하루 11시간은 기본이고 연장영업을 하는 날에는 13시간을 서서 일한다. 그러고 나면 다리는 퉁퉁 붓고, 예쁜 구두안의 발은 통증을 호소하고, 실내 먼지와 과도한 조명으로 눈은 뻑뻑지기 일쑤다. 제품을 진열하기 위해 창고를 오가며 상자를 옮기다보면 팔․다리․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이마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수 있다. 고객과 마찰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그 일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일로 백화점 담당과 본사 관리자에게 추가로 깨지기 때문이다.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속병 든다.
 
언론에서는 연일 백화점업계가 ‘하루 매출 신기록 행진’ ‘연일 기네스 매출... 최고 32% 대박’ 등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상 최대의 매출은 하루 13시간이 넘게 일한 이들의 피눈물로 이뤄낸 신화다.
 
그래서 더 이상 당할 수 없다고 일어났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 할 것을 요구하며, ‘연장영업 반대! 주휴점제 시행!’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2009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전국 백화점에서 하고 있으며, 서비스노동자의 폭발적인 호응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까지 관심을 갖고 지지를 받고 있다.
 
연장영업 반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자 빅3 백화점 중 하나인 롯데백화점에서 총대를 멘 모양이다. 한국노총 소속의 롯데쇼핑 노조와 회사가 합심하여 이 캠페인을 막고 나선 걸 보면 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기업 이익만을 위한 무분별한 연장영업을 막아내고, 건강하게 일 할 권리․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그날까지 이들의 캠페인은 멈추지 않는다.
 
정민정 서비스연맹 여성국장/ 노동과세계 496호
 

[기고]

"성당새마을금고...투쟁 멈추지 않을 것"
newsdaybox_top.gif [495호] 2011년 03월 02일 (수) 편집국 btn_sendmail.gif kctuedit@nodong.org newsdaybox_dn.gif

대구 성당동 새마을금고 앞에 가면 129일 째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7명의 여성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에 금고가 교섭을 해태하고 조합간부들과 산전산후 휴가 중인 여성 조합원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성당새마을금고 분회는 2009년 6월에 만들어 졌다. 설립 시 직원 11명 중에 전체 여직원 7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구조적인 성차별문제와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박현 분회장은 20년 동안 근무하였지만 6급에서 5급으로 단 1단계 승진했다. 성당새마을금고 임원들은 “할머니들 때문에 금고수익이 저하된다” “어디 여직원들이 차를 몰고 다녀”라며 일상적으로 여직원들을 비하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조합원이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왜 미리 보고 하지 않았냐?”며 “그만 두지”라고 비아냥거렸을 때였다. 실제로 금고는 출산휴가 신청자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했다. 여직원들은 분개했고, 논의 끝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는 노동조합만 만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새마을금고의 조합원 구조가 문제였다. 새마을금고의 조합원들은 동네 슈퍼 아저씨, 채소가게 아주머니, 새시가게 아저씨 등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일정 자격 조건이 되는 사람들이 이사와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청하면 이사장은 이사회에 물어봐야 한다고 미뤘다. 2009년 10월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고 4개월 하고도 열흘을 금고 앞에서 투쟁하였지만 금고는 끝내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조합은 복귀를 결정했다. 조합원들이 복귀하자마자 금고는 분회장과 부분회장을 해고하고 본격적으로 조합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 경북 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금고는 해고자들을 복직 시킨 후 다시 지점폐쇄와 정리해고를 결정했다. 이사회는 ‘수익이 줄었다’는 구두보고만 듣고 구)본점 건물을 폐점하는 것을 승인했다. 여성조합원들을 해고시키기 위한 구실을 만든 것이다. 정리해고를 막고 단체협약을 쟁취하기 위해 조합원들은 또다시 2010년 10월 1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금고는 “단체협약은 금고(안)대로, 정리해고는 법대로 하자”며 우겼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다시 정리해고가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해고회피방안, 합리적 대상자 선정에 있어서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금고는 해고자를 복직시키지 않고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상태다. 또다시 금고는 말한다. “해고자문제는 교섭대상이 아니다”라고....
 
성당새마을금고 분회 조합원들은 오늘도 매일 아침 천막을 치고, 저녁에 천막을 걷으며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조합원 7명이 손 꼭 잡고 당당히 복귀해서 유니폼 입고 출근하는 것’이 소망이고 유일한 바램이다.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은 여성으로 차별받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조직이며,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다시 한 번 용기를 심어준 고마운 조직이다. 또한 많은 동지들의 연대와 관심을 가져다주는 공동체이다. 노동조합 조합원으로써 승리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새마을금고 분회 조합원들은 현장으로 돌아갈 수 때까지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끝.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신은정 조직국장(여성·법규담당)

[쇳소리]
3.8 세계 여성의 날에 묻는다
"남성들이여, 함께 싸울 준비는 돼 있는가"
newsdaybox_top.gif [494호] 2011년 02월 21일 (월) 편집국 btn_sendmail.gif kctuedit@nodong.org newsdaybox_dn.gif

전순옥 씨는 ‘노동자 전태일’의 동생이다. 그는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란 책을 통해 ‘여성해방과 노동운동의 민주화에 헌신한 70년대 젊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짚는다.

우리는 다를까. ‘노동자대투쟁’하면 누구나 87년 현대엔진을 시작으로 들불처럼 타올랐던 중공업, 대공장, 남성 중심의 투쟁을 쉽게 떠올린다. 반면 70년대 선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안타깝게도 잘 모르거나 알아도 스쳐간다. 심지어 ‘조합주의’ ‘경제주의’였다고 깎아내린다.
 
이 당시 1천명 이상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한 여성은 5~60%였는데, 섬유, 전자, 신발류 등 3분야에서 73%나 됐다. 그러나 처우는 매우 비참한데다 차별까지 받았다. 면방업에 대한 섬유노조의 임금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의 약 90%는 10만원 이상 월급을 받았고 15만원 이상도 20%가 넘는 반면, 여성의 57%는 5~6만원, 4~5만원도 18%나 차지했다. 여성 임금은 남성의 절반이었다.
 
인간적인 대우도 포기해야 했다. 토끼장 같은 공장 감옥 안에서 잠 안 오는 약을 먹어가며 하루 13~16시간 장시간 노동을 매일 버텨야 했다. 심지어 2천명이 일하는 공장에 화장실이 달랑 세 곳인 곳도 있었다. 관리자한테 성폭력, 폭언도 넘쳐났다. 이마저도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 ‘8시간만 일하자’ ‘결혼해도 일하고 싶다’ '노조를 인정하라‘를 외쳤다.
 
콘트롤데이타에서는 상여금을 사무직, 생산직 차별 없이 똑같이 받아냈다. 여성이 결혼하면 ‘당연히’ 회사를 떠나야 했던 관행에 맞서, 77년에 한 대의원의 결혼을 계기를 싸운 결과 ‘결혼퇴직제’도 없앴다. 삼성제약에선 생리휴가, 산전후휴가 쟁취와 남성 관리자의 권위적이고 성차별적인 폭력, 폭언을 개선시켰다. 동일방직, YH무역, 반도상사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업장에서 ‘임금인상’ ‘8시간 노동’ ‘노조 민주화’ ‘모성보호’ ‘성차별 개선’ 등을 위해 일어섰다.
 
“나만 잘 살기보다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생각하며 싸웠다고 자부한다. 목숨 걸고 싸웠고 그 덕분에 민주노총도 탄생했다” 당시 청계피복에서 일했던 신순애 씨의 증언이다.
 
다가오는 3월8일은 세계사회주의자들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노동자의 참혹한 환경과 여성 차별엔 국경이 따로 없다. 1900년대 미국 여성노동자들도 저임금에 하루 12~14시간씩 일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선거권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다 1908년 3월8일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 여성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10시간 노동’ ‘노조 결성의 자유’ ‘여성 선거권 보장’ 등을 걸고 무장군인, 경찰에 맞서 싸웠다. 이로부터 3.8 여성의 날이 탄생했는데 주요 시위는 전쟁 중에 일어났다. 러시아에서는 여성들의 시위가 러시아 혁명을 촉발하기도 했다.
 
노동자 투쟁에도 국경이 없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 노동자 사이에도 국경이 없는가.
 
박승희/ 민주노총 여성위원장
 

[여성마당 6]

 백순애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

<노동과세계 493호>

 타워크레인을 탄 지 벌써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남대문, 동대문, 평화시장 등에서 시다(미싱 보조)와 미싱사를 했었다. 힘들고 암울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빛도 없고 환풍기도 없는 먼지가 자욱한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작업환경에서 아침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제대로 된 월급 한번 받아본 적 없다. 야근수당이 뭔지도 몰랐다(그땐 근로기준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환경 덕분에 노조에 눈을 떴고, 낮은 처우와 차별에 싸우면서 질긴 근성도 몸에 배었다.

 타워크레인을 타면서 노조를 만든 뒤 벌써 만 10년이 되었다. 일요일에 가족들과 같이 있고 싶어 ‘일요휴무투쟁’을 했고, 임금인상과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투쟁한 결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 하지만 아직도 건설현장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기 만하다.

 탈의실 없는 남성노동자들은 신문지 한 장을 탈의실 삼아 옷을 갈아입는다. 빠듯한 점심시간, 쉴 곳이 마땅치 않아 합판이나 스티로폼을 깔고 잠시 쉰다. 그나마 남성 노동자들은 잠시 쉴 곳도 작업 후 씻을 수 있는 샤워실과 다량(?)의 화장실을 확보하고 있지만, 여성노동자들은 그나마 적은 화장실도 사수해야 할 지경이다. 옷을 갈아 입을 때도 남성노동자들과 같은 컨테이너에서 얇은 합판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갈아입던가, 아니면 월남치마를 겉에 두르고 작업복을 갈아 입는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일하다보면 땀이 흘러내리다 못해 소금끼가 겉옷에 쪄들어 하얗게 변해도 씻을 곳은 화장실 세면대뿐이다.

 또한 건설현장의 특성상 남성들이 많기 때문에 거친 말투, 남성끼리 통하는 음담패설은 말 할 것도 없다. 듣기 싫다고 하면 “다 알면서 왜 빼냐”며 한 소리 듣기 일쑤다.

 노조는 건설 현장에서 큰 힘이다. 혼자 싸워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노조를 만들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노동자의 원칙이다. 그 잣대의 기준이 변해선 안 된다. 때론 투쟁의 길이 너무 힘들어 포기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이들끼리 같이 울고, 웃으면서 다시 투쟁 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줄 때 절로 기운이 솟는다.

 세상은 점점 무관심 속으로 빠져든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아주 쉽고 어려운 결정들을 한다. 그건 대놓고 하는 노동 탄압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원칙을 세웠지만 원칙을 깨는 사람들도 수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원칙을 지키는 법 또한, 투쟁 속에서 배웠다. 처음 우리가 선택 했던 많은 결정들과 원칙을 함께 지켜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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