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이후로 뚝 끊겼는데, 삐라까지 날리면…"
[르포] '전쟁' 불안에 휩싸인 파주 임진각
김경환 기자 kkh@vop.co.kr 입력 2011-03-08 21:19:43 / 수정 2011-03-08 21:57:228일 낮에 찾은 임진각 평화누리에 있는 편의점 주인은 '요새 손님이 없느냐'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꺼냈다.
평일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이날 임진각을 찾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70대의 노부부가 전망대에 올라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었고, 간간히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와서 전세계 어디에서도 못볼 '분단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었다.
넓은 주차장에 차량은 몇 대 없었고, 주말이면 한참 아이들로 흥성거릴 놀이기구들도 가동을 멈춰 있었다. 경칩이 지났지만 임진각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임진각 평화누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8일 임진각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민중의소리
"평소에는 주로 중국과 일본인이 많이 와요. 주말에는 가족단위로 오는 경우도 많고. 그런데, 연평도 사건에 구제역까지 겹치면서 지난 겨울에는 손님이 없었어요. 그나마 요새는 날씨가 풀리니까 조금씩 오는 거지."
편의점 주인은 며칠전 무장한 경찰들이 임진각을 찾아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철모를 쓰고 총까지 들고서.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는 간간히 경찰들이 훈련을 온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북측은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대표 명의로 남측에 통지문을 보내 '심리전이 계속되면 자위권 수호 원칙에 따라 임진각 등을 조준사격해 격파하겠다'고 경고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자 접경지역인 파주는 그야말로 '전쟁전야'였다. 상당수의 파주시민들은 불안감에 라면 등 생필품을 챙겨놓기도 했다. 한참이나 떨어진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져도 그런데, 임진각에 포탄까지 날아온다면 어찌 될지 안봐도 뻔하다. 임진각 평화누리에 입주한 상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새는 대북전단 보낸다고 해서 손님들이 불안하니까 아예 오질 않아요. 걱정되죠. 북에서 포를 때리면 우리가 피해 받을지도 모르니까. 포탄이 어디 떨어질지 어떻게 알아."
식당을 운영하는 김병섭(63)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이지만 김씨의 식당 안에 자리한 손님들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5~6년 동안 식당을 해왔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연평도 사건 이후에 손님이 한 3분의 2는 줄었어요."
근처에서 식당과 가게를 운영하는 황승연(51) 씨라고 사정이 다를리 없었다. 대북전단 얘기를 꺼냈더니 얼굴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것 때문에 파주시가 난리예요. 상인들도 다 반대합니다."
손님이 없는데도 황씨는 초벌로 익힌 핫도그에 반죽을 묻혀 튀김가루에 굴린 뒤 끓는 기름에 튀겨댔다.
"아마 삐라 못 날릴거예요. 공무원들이 막을 거고…. 이장단들도 반대하고 있잖아요."
잠시 뜸을 들이던 황씨는 그래도 희망을 내비쳤다. 주민들이 반대하는데 보수단체들도 쉽게 대북전단을 보내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며칠전 문산읍 이장단협의회(회장 박찬호)에서는 파주시에 대북전단 날리기 행사가 더 이상 임진각에서 이뤄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북측이 임진각을 거명해 조준사격을 하겠다고 공언한 데 대해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피해가 크기 때문에 적어도 임진각에서는 대북전단을 날리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동석 문산읍 마정3리 이장은 "여기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을 보내는 게 알려지고, 북에서도 대남방송으로 폭파하겠다는 소리도 하고, 안좋은 쪽으로 자꾸 보도가 나오다보니 주민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문산읍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이장단협의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아무래도 관광객이 줄어드니까 그럴 거다"라며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8일 낮 임진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철조망에 걸린 태극기와 소원지 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민중의소리
파주시측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파란색 점퍼를 맞춰입은 수십여 명의 파주시 공무원들이 버스 몇 대에 나눠 타고 임진각을 찾았다. 이 공무원들은 유사시에 임진각의 상인들과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현장 훈련을 하러 온 참이었다.
파주시의 한 공무원은 이날 공무원들의 훈련에 대해 "만일의 상황이 발생할 시 어떻게 주민들을 대피시킬지 행동요령을 확인하기 위해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 70명이 임진각 주변에 있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그 인원이 가서 상인들과 민간인들을 대피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행동요령을 확인하기 위해 임진각을 찾았다는 설명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는 못하느냐고 묻자 이 공무원은 "군에서 요청이 오기 전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임진각에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인재 파주시장, 군 관계자를 비롯해 주변상인들과 주민들, 이장 등이 모여 대북전단 문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문산읍 이장단협의회 총무를 맡고 있는 황범하 사목1리 이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파주)시장님이 대북전단을 보내는 건 위험요소가 되니까 반대한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생계에 직결되니까 반대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간담회는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 지사는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만 했을 뿐 대북전단 살포를 막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유북한운동연합측은 조만간 임진각을 찾아 대북전단을 날려보낼 예정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임진각은 공공의 장소로 주민이 반대한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전단 날리기 행사를 할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황 이장은 이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진각을 나서는 길, 봄이 온지도 모르고 불어대는 겨울바람에 작은 차가 휘청거렸다.

8일 낮 임진각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전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을 찍고 있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