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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평화농성단]농성단 참가 소감-전남대학교 학생 김태현

작성일 2011.08.12 작성자 민권연대 조회수 2461

[왜관 평화농성단]농성단 참가 소감-전남대학교 학생 김태현

 

아메리카No를 다녀와서...

 

지난 8월1일부터 7일까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다녀왔습니다. 왜관은 지금 난리가 났는데 지난 5월에 주한미군 퇴역군인 스티브가 이곳 왜관의 캠프캐롤기지에 고엽제를 매립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증언을 했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그 이후에도 정부는 이 엄청난 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진상규명을 머뭇거리는 모습이었으며, SOFA협정에 의해서 우리가 조사하지 못하고 그나마 한미공도조사단을 꾸려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전격적인 조사가 아니라 토양검사, 지구물리탐사와 같은 미국측이 원하는 방식대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속시원한 결과를 얻지 못한채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왜관에서 농성투쟁을 하는 것에 잘못하지만 자그마한 일손이라도 보태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가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왜관투쟁을 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결심을 얻은 것은 저였습니다. 왜관에서 일주일 농성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 내가 그 동안 머리로만 말로만 학우대중을 위하여 살자라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되었습니다.

왜관의 고엽제 피해는 제 생각보다 훨씬 컸었습니다. 왜관역에 한두시간만 있어도 쉽게 볼 수 있는 정신지체 아이들, 발음하기 어려워하거나 얼굴을 찌푸려야 말을 할 수 있는 어르신들. 그리고 왜관주민들의 불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두 사례가 있는데, 하나는 칠곡군청 공무원이 자기 신혼집이 미군기지 옆 주공에 얻었는데 그 아파트 아직 상수도가 아닌 지하수를 쓴다고 이번 사건 진실이 빨리 밝혀졌으면, 차라리 고엽제가 아니라 비소, 청산가리면 좋겠다는 말,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농성장에 고생한다며 자기 집앞에서 따온 오이를 주시려는데 "이거 여기서 난 건데, 괜찮겠냐"며 고엽제 농산물 의혹으로 우리에게조차 조심스럽게 건네주던 그 오이.

그리고 실천현장에서 맞주친 주민들의 높은 의식과 불만들. 이 나라에서 학벌좋고 깨나 배웠다는 대학생, 교수, 지식인들도 제대로 꿰뚫거나 말하기 어려워하는 한미관계의 본질들을 주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배운것도 없이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삶에서 직접 느꼈을 한미간의 불평등때문이었겠지요. 더 슬펐습니다. 미군애들은 시끄러운 오토바이 굉음을 내며 경찰차를 추월하고 파출소앞을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고 동네꼬마가 공좀차고 놀다가 미군차에 공부딪혔다고 경찰서 무궁화 한개가 출동해서 대신 사과하는 것이 일상인 마을.

미국은 그리 고마울 것 없는 더런 놈의 나라라고, 지들이 묻어놓고 사실 숨기련갑다고 한미공동조사단의 목적을 이미 알고 있는 주민들. 하지만 미군기지에서 식민지나라의 백성들처럼 살아왔던 것이 그들의 삶이였기 때문일까, 감히 미국에게 그 말을 못하고, 사과하라 보상하라 제대로 책임지고 조사하라란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 왜관 캠프캐롤에 무언가(what)를 묻긴 했었고 그것을 도로 파내어 어디로(Where) 옮기긴 했지만 기록이 유실되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미국과 식민지관료들. 그들에게 그런 중요한 기록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사과할 의향이 있냐고, 그리고 캠프캐롤에 묻은 것이 무어이고 그게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조사할 생각있냐고 물어도 뻔뻔스럽게 대답하던 미국과 식민지관료들.

그 순간 조선의 통치국교였던 중국의 유학이 미국의 기독교로만 탈바꿈하고 일본말 배우라고 강요하던 학교가 영어를 강요하는 것으로 바뀌고 이 나라 농민들 때려잡던 왜군과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던 용산 그 자리에 미군이 대신 주둔해 있을 뿐이라는, 내 조국은 아직도 식민지라는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 이전에 저는 몰랐을까요? 아뇨,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다른 친구들, 후배들에게 이런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하기도 하고 교양도 하고 강의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 이렇게 가슴아파하고 눈물까지 글썽여 본 적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머리로만 알고 말로만 떠들어댔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반성을 해봅니다.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서 왜관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배우고 깨닫게 되니 그제서야 그 사실이 머리가 아닌 진리로 발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정신은 '아메리카No'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서 실천 속에서 검증된 진리입니다. 이번 왜관 농성에서 저는 이 두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왜관 주민들의 그 삶, 그 눈물 잊지않고 이곳 전남대학교에서 학우대중들을 진실로 만나내고 그들 속에서 실천하면서 학우대중들이 처한 그들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현실, 절박한 문제와 삶들을 느끼고 이해하고 대중들이 직접 자신들의 운명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때 전남대는 이 한반도 이남땅에서 가장 '아메리카No' 향기가 그윽한 곳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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