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평화농성단]농성단 참가 소감-카이스트 학생 곽민욱
숨기면 숨길수록 심각해지는 것들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발목을 다친 일이 그랬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발목을 크게 접질렸는데 이를 어머니께 말씀드렸다간 혼이 날 거라는 괜한 걱정에 두 달 간 이 사실을 숨겼다. 통증은 갈수록 심해져서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다리를 저는 게 어머니의 눈에 띄어 나는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2주면 끝났을 치료를 세 달 동안이나 해야 했다. 물론 당연히 혼이 나기도 했는데 발목을 다쳐서가 아니라 숨길 게 따로 있지 멍청하게 다친 걸 숨겼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군이 고엽제를 묻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정부의 반응을 나는 사실 이해할 수 없다. 내 상식선에서 생각했을 때 이번 의혹에 대해 정부가 응당 해야 할 일은 굉장히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한 국가의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후처리를 책임지며 미군 측의 잘못임이 확실하게 드러나면 미국에게 정당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 만약 이번 일이 부당한 SOFA 협정이나 주한미군의 주둔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 이번 의혹이 주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도 있는 이상 이와 같은 대응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 타격을 덜 받을까 이리 저리 재보고 있을 시간적 여유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이번 왜관에서 있었던 집회를 통해 이러한 상식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강력한 뜻이 정부에게 전달되었기를 바라지만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움직임에 내 힘을 보탤 것이고 많은 다른 이들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6일 저녁 왜관역 앞에서 뜻을 하나로 모았던 사람들, 7일 캠프 캐럴 앞까지 다 함께 걸어갔던 사람들, 오늘도 열심히 걷고 토론하고 고민하며 행진을 계속하고 있을 통일 대행진단 분들, 황선 선배님을 비롯한 아메리카노 농성단 분들. 왜관에서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의지가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전해짐으로써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나아가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