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어디로 가야하나?"
최근 들어 민주노총 총연맹 사업 중에 자발적 조직이 되는 것은 ‘성평등강좌’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3강도 여전히 참가자들의 뜨거운 분위기로 시작됐다.
이날 정희진 강사가 5강을 모두 참석한 사람들에겐 소정의 상품을 주기로 공언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20여명이 계속수강을 하고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보강되고 있어 매회 30여명, 총 50명이 강의를 듣고 있다.
처음에 3강 주제인 ‘자본주의 변형과 계급, 성별의 역학변화’라는 제목을 참가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앞서 2번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날 강의도 무척 기대하게 됐다.
강의주제만 중심으로 발췌해보겠다.
“자본주의 변화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 변화에 계급과 성별이 원인과 결과에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노동과 여성노동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냐의 문제이다. 현재 교육, 고용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는데 이건 노동운동 전체와 연관돼 있다”
“50~60년대 군대와, 70~80년대 군대, 그리고 지금의 군대는 완전히 다르다. 70~80년대에는 ‘군대 가야 남자된다’, ‘사람된다’는 말이 있었다. 성별화 되는 과정의 대표적 사례가 군대였다. 87년까지. 87년부터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제에 깊숙이 편입됐다. 박정희는 민족자본을 팔아먹진 않았는데 DJ는 민족자본을 팔아먹었다고 비판하는 좌파학자가 있었는데, 박정희 시대와 DJ 시대의 세계경제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이제는 덜 헐값으로 매각할 수 있는데도 그러고 있는 시대가 이명박 시대이고”
“87년 이후 기업에서는 ‘남자’보다 군대 안갔다 오더라도 영어 잘하고 능력있는 글로벌한 사람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개인 중심으로 취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집단 훈육으로 명령복종 체계에 길들여진 군대갔다온 남자가 쓰기 편했던 상황이 변화했다. 물론 아직도 남아 있긴 하지만 점점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유명한 경영학 연구사례가 있는데 A그룹의 한 회사 집단은 10명이 모두 경상도, 서울대 출신 남자로 동질적 집단이 있었다. B그룹 집단은 지역, 성별, 성장배경, 학력이 다양했다. A그룹은 90년도까지 일사분란하게 성과를 냈는데 IMF때 망했다. 소품종 다량생산주의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경영이 바뀌면서 다양한 구성원일수록 소비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노동운동도 구성원 성분이 비슷하다. 비슷한 경력에 비슷한 취향에. 사회가 이렇게 바뀌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백마탄 왕자 캐릭터도 사장, 부장에서 본부장, 팀장, 실장으로 변했다”
“80년대까지는 군사주의를 비판했다. 남성은 군대를 갔다와야 남성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민개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고종황제는 국민개병제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국가관으로는 국민이 무장해서 반란을 일으키면 어떡할까 걱정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개병제라고는 하지만 60%만 군대에 간다. 군대 가는게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군대 가면 강남 안사는 거구, 빽이 없는게 되는거다. 엄마가 계모냐고도 한다(웃음). 예전에는 군대 갔다 오면 완전고용이 보장됐다. 예전에는 방위가면 놀림 받고 그랬지만 지금은 똑똑한 애들, 약대 얘들이 방위를 간다. 현역은 찌질한 사람들이 가는걸로 돼있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결단을 해서 현빈 같은 애들이 해병대를 가거나 한다”
“이제 군대를 간 사람들은 높은 계급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이젠 군대에서 훈육도 안된다. 장교들이 주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김일병’이다. 보통 군대에서 총기사고 같은 것이 나면 30~40명의 장교들이 싹 날라간다. 무서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말 안들으면 패서라도 말을 듣게 했는데, 지금은 장교들이 일명 ‘부잣집 도련님’들 비위 맞춰주고 달래야만 한다. 훈련 시키면 분위기 망치니까 냉방시설 되는 곳에 가둔단다”
“또한 현재 우리가 잘 모르는 ‘자발적 기피자’가 엄청나게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도 다른 이들인데, 그냥 ‘거부자’다. 무적(無籍)자로 병무청에서 추적조차 불가능한 상태의 사람들이다. 청춘이 2~3년씩 대기상태로 있다는걸 생각해보라. 예전에는 국민에 등록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었는데 지금은 국민 이름에서 탈퇴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다. 사회는 이들에게 신경도 안쓰고. 이들은 10년쯤 아무 일도 안하고 지내다 재수없어 걸리면 군대가기도 한다. ‘자발적 낙오자’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문제는 페미니즘은 군사문화 비판하던 80년대 군대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그 프레임으로는 군대기피자, 그들의 피해의식을 해명할 수가 없다. 노동시장도 고용과 자본이 완전히 변했는데 페미니스트들과 똑같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믿는대로 볼 것인가? 본대로 믿을 것인가? 믿는대로 보는 것이 종교이다. 본대로 믿는 것이 유물론이고. 근데 본대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도그마, 종파주의 같은거다. 본대로 믿는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어떻게 볼 것인지를 보통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믿는 대로 보는 것으로 회귀를 하게 된다. 이건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19세기 영국 자본주의의 맹아가 된 도시들이다. 기차가 만들어지고 석탄이 생산된 공장지대의 대표적 도시 이미지들이다. 지배이데올로기 표현으로 산업혁명, 지리상의 발견으로 전세계 식민지화가 이뤄졌던 시기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됐던 시기이고. 우린 일본에 주권을 뺏기면서 쌀과 석탄을 뺏기고 노예(정신대, 강제징용)가 됐다”
“150년 후 깃발만 독립하는 신식민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미군이 인천항에 처음 들어올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러 오는 서구인으로 알고 환영을 하러 나갔다. 정복자의 정체성을 갖고 들어온 미군들은 환영인파를 폭도로 오해해 다 쏴죽였다. 200여명이 죽은 이 사건이 우리나라 첫 미군범죄다. 형식적 주권은 독립했는데 문화, 군사, 경제는 모두 다 종속돼 있다. 인도가 400년간 식민지였지만 그때는 뉴델리 근처 정도만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그 외 지역은 인도 문화 그대로 삶을 유지했다. 지금은 어떤가? 마라도 같은 섬이나 산골마을까지 모든 곳으로 자본주의가 확대됐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제국>이라는 책에서 지금 인류가 새로 등장하는 전 지구적 제국과 이에 맞선 대항을 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와 지금 제국은 다른 것이다. 서구 사람이라 국가의 역할을 별로 인정하지 않아 그 책의 내용을 다 동의하진 않지만, 제국주의와 제국의 구분은 유의미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통치도구는 총칼이었다면, 제국의 통치도구는 독립과 자유다. 우리나라는 그것조차 실현이 되고 있지 않지만. 주권국가라고 하면서 그딴 쇠고기 수입하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뛰쳐나오는거 아닌가. 지금은 자유 자체가 통치의 도구가 된다. 자발적 복종을 의미한다. 누가 총칼로 위협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한나라당을 찍는다”
“이 자유 문제에 젠더가 겹치면 더 복잡해진다. 제국주의 시대에 쌀, 석탄, 노예가 이동했다면 지금은 여성의 보살핌 노동, 이주여성(결혼)이 이동하고 있다. 감정노동자의 이동이다. 대표적인게 아내(결혼이주여성)다”
“제국주의 시대에 주권을 빼앗았다면, 지금은 모든 것을 빼앗는다. 모든 것을 빼앗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밖이 없다는 것이다. 내 안에 자본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내가 겸손해서가 아니다. 내안의 가부장적 욕망을 내가 너무나도 잘알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노예노동(주로 남성)이 이동한 것과 달리 지금은 감정노동(주로 여성)이 이동한다. 강제적 이주노동이 자발적 성, 감정노동자로 이동한 것이다. 감정노동자를 송출하고 있는 송출국은 국가 내부의 젠더와 계급의 변화가 생긴다. 도미니카 국가의 가장 큰 수출품은 성매매다. 전세계 가정부의 70%가 필리핀 여성이다. 필리핀은 그 여성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국가경제를 유지해가고 있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성별분업 철폐가 목표다. 그러나 성별분업이 남자는 남자일 하고, 여자는 여자일 하는게 아니다. 남자는 남자일 조금 하고, 여자는 여자일, 남자일 모두 다 하는 것이 성별분업이다. 가부장제의 가장 큰 문제는 남자가 일을 안하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이다. 유엔 구호 중에 여성은 10배의 일을 하고 전세계 자산의 0.1%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있다. 남성은 극소수의 영역에서 아주 조금 일하고 있다. 그것이 ‘세상’이라고 정해놓고. 아는 남자후배가 전업주부로 일한지 6개월이 됐는데 남자들이 6개월간 전업주부로 생활하고도 안 바뀌면 그 사람은 인간의 DNA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더라(웃음)”
“현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근육이 필요한 일이 별로 없다. 아직까지도 여아 낙태가 가장 심한 곳이 경상북도이고 성비불균형이 가장 심각하다. 경상북도는 100대 127정도 된다. 그 지역 강의를 나갔을 때 경상북도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어떤 남학생이 농촌지역이라 농사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말도 안되는 소리다. 농사 지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농사가 대부분 여성의 일이다. 난 서울 출신이지만 여성이 밭도 다 맨다는 것을 안다. 남성들의 지적수준이 계속 정체되고 있다는건 정말 심각하다”
“1차 세계화 때는 사회주의 블록이 존재했다. 2차 세계화 상황은 자본주의가 전일적으로 관철돼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내 남성들 사이에서도 계급의 차가 엄청 커졌다. 금융자본가들이 근육 있는 남성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금융 노동자를 도와줄 여성노동자가 필요할 뿐이다. 연변은 여성노동자가 없는게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 송출국가에서는 ‘보살핌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성별분업이 깨지면 남성들은 일을 안하고 술과 노름에 빠진다. 대응하는 것도 여성들과 너무 다르다. 필리핀의 최근 사회문제는 근친상간이기도 하다. 여성은 남성이 전쟁에 나가면 어떻게 해서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웠지, 섹스상대가 없다고 아들을 강간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인구와 교육, 고용 문제를 살펴보자. 0년부터 4800년 동안 인구가 10억으로 늘어났다. 4800년에서 5000년까지 200년 동안 인구가 65억으로 늘어났다. 봉천동 인구가 3~4만인데, 충남 서천군 전체 인구가 5만명이다. 집중이 이렇게까지 되면 모든게 비정상이 되기 마련이다. 공장과 자본이 급격하게 발달할 때는 노동자가 부족했다. 지금은 ‘일자리 나누기’가 화두다. 전 사회적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군대와 학교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3대 장치가 군대, 학교, 병원이다. 현재 10,000명이 졸업하면 1명이 취업된다. 현재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학교라는 인프라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 군대도 필요없다. 고용이 필요 없으니 학교가 필요 없어진거다. 학생들도 1명을 위해 99명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국민권리 중 하나가 교육이었다. 말 안들으면 학교 안보낸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었다. 제3세계 카페트 짜는 일 하는 어린이에게 교육은 권리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1318 청소년에게 교육은 억압과 중노동일 뿐이다. 이것을 못견디고 나쁜 짓 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노동자가 불필요하게 된 상황에서 아직도 노동계는 완전고용, 정규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 자체가 남성 가장 중심의 이데올로기다. 노동해방은 사실 모든 이의 비정규직화다. 비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를 말해야 한다. 지금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도 완전한 정규직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모든 이를 정규직으로 하는게 대안일까? 환자, 노인, 여성, 임산부, 장애인, 이건희 모두 하루 4시간 일하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모두가 이재용 같은 사람이 돼서 16시간씩 일하는 것을 상정하고 정규직을 주장하는게 답일까?”
“최근 이야기되고 있는 로컬기업이나 사회적기업은 대안이 아니라 미래모습이 돼야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해방’의 근본적 개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삼성에 다니는 정규직 이사를 알고 있는데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서 새벽 4시에 나간다. 연봉은 3억쯤 된다고 한다. 그렇게 돈을 벌어도 돈 쓸 시간이 없다. 그 돈은 물론 부인이 쓴다.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남편이 바람 안피고, 구타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0.00001%나 될까? 근데 이렇게 일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바람을 피게 돼있다.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말동무가 필요한 법이다. 이런 관계에 대한 기대는 신화에 가깝다는 것이다. 근데 그런 여성이 있는 한 페미니즘은 불가능하다”
“남성 사이에 계급 투쟁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젠더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각 6시가 되자) 시간이 이렇게 지난줄 몰랐다. 오늘 강의내용은 정리해서 나눠드리겠다. 나머지 내용은 다음 시간에 정리하겠다”
정희진 강사는 이날도 “이 강좌의 목표는 ‘변화’가 아니라 지적 쾌락 같은 자극과 즐거움이다”고 했다. 그런데 왠지 이 강의를 다 듣고 나면 내가 좀 ‘변화’될거 같은 즐거운 느낌이 든다. 송은정 여성부장
ps: 이 글에 대한 궁금한 점이나 의견은 정희진 강사님 이메일(tobrazil@naver.com)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날 강의에서 아이디 tobrazil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와 지식거리를 많이 들었지만 그건 강의에 참가한 사람들만 공유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