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달간 ‘지적 즐거움’과 ‘상상력’을 갖게 해줬던 성평등 연속강좌가 5월30일 막을 내렸다.
정희진 강사는 참가자들에게 이번 강좌에 대한 평가서 작성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직화와 평가에 대한 이야기로 마지막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은 모두 조직화나 평가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직화’나 ‘평가’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해관계가 있으면,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활동가가 매력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니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구걸하는 방식으로 조직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일 있을 때만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이 말도 이상하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면 일 있을 때만 연락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일 자체로 조직해야 한다. 난 좋아하는 말이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됨), 이합집산(離合集散, 모였다가 흩어진다)이다. 조직화는 사람을 대상화시킨다. 평가도 나중에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지 않나. 평가는 이미 다 사람들 마음 속에 있다. 평가 보다는 나중의 스케줄을 본인이 고민하면 된다”
정희진 강사 말로 평가서가 제출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착실히 많은 분들이 평가서를 제출했다. ^^
정희진 강사는 이날 강의의 대부분을 지난 강의부분을 정리하고 보충했다.
“이번 강좌가 여러분에게 자극이 되고 즐거움이 됐다면 난 충분하다고 본다. 본인이 변화하거나 뭔가를 실행하는 문제는 그 다음 문제다. 운동에 회의를 느끼게 되거나 당장 조직을 바꾸려고 하면 왕따 당한다. 좌파라 불리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인식은 모두 다르다. IS(국제사회주의자)부터 푸코맑스주의까지 현실인식이 모두 다르다. 나의 의견은 많은 의견 중 하나의 정보였을 뿐이다. 취사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취사선택의 장을 많이 여는 것이 사회의 몫이지만,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그것도 안된다. 민주노총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은 의미가 있다”
*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계급, 노동운동, 삶의 개념을 모색하는 것
“현재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인지 조차 의심스럽긴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페이스북 창시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20대에 이미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벌었다. 100조라고 치자. 이런 돈을 이렇게 빨리 제조업, 공장으론 만들 수가 없다. 이런 자본주의 시대에서 노동운동은 어떻게 하고,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우리의 고민이다. 현재 아이를 대학까지 보내려면 1억원 정도가 든다. 200만원이면 동남아 무전여행을 할 수 있다. 1천만원이면 1년 동안 세계 무전여행을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학교 보다 얼마나 많은 경험과 배움을 갖겠는가. 지금처럼 고용률이 낮은 상태에서 노동운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업자가 훨씬 많은 상태에서 고용된 사람들도 고용이 불안한데,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라는 말은 이제 맞지 않다. 노동자들의 입장과 처지가 너무나 다른데 어떻게 단결할 수 있겠나. ‘전 세계 불안한 노동자들이여, 공모하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맑스주의 이론은 이론적으로 완벽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맑스주의의 치명적 약점은 노동자간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점과 재생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백인남성, 흑인여성, 아시아남성이 있다. 이들 사이에는 인종과 젠더가 노사 차이 보다 훨씬 크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일본에는 NEET족(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고용도 교육도 훈련도 거부하는 집단), 탈력족(脫力, 힘드는건 아무것도 안하는 집단), 히끼꼬모리 등이 이미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한 발만 내딛으면 모욕과 경쟁에 내던져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다양한 인간종이 발현되고 있다. [하류지향]이라는 책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한중일 민족주의]라는 책이 있는데 극우 민족주의 젊은 남자들을 분석한 책이다. 이들은 직업 없이 인터넷만 하는 사람들이다. ‘실업’이 ‘민족주의’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20대 80의 사회에서는 저항이 가능했다. 지금은 0.1%와 99.9% 사회는 서로 분리돼 있다.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어 저항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공간이 분리된다는 것은 심각하다. 내가 아는 남성 진보활동가가 술먹다가 남자들 이야기한다고 여자들 먼저 가라는 이야기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예전에 미국에서 흑인들이 백인들 있는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던 시절과 똑같은 이야기 아닌가. 집창촌이나 소록도도 공간의 분리라는 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부의 창출의 변화와 빈부격차 문제 속에서 노동과 고용과 교육이 완전히 변화하고 있다. 노동과 고용과 교육을 어떻게 할까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민주노총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은 지역차별을 사회운동으로 삼은 적이 없다. 진보진영도 경상도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차별 가해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계급문제는 계급‘의식’인데, 지역문제는 지역‘감정’이라는게 웃기지 않나”
“신자유주의의 장점은 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사에서 시험을 보면 1등부터 10등까지 여성이다. 한겨레는 신문사 중에서 남녀 비율이 6:4로 여성비율이 가장 높다. 조선일보는 1등부터 10등까지 여성을 뽑고 11등부터는 남성을 뽑는다. 아직 우리 사회가 높은데 있는 사람들이 다 남자니 남자 연줄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겨레는 맨날 밀린다. 출산휴가로 공백 생기고...등등. 그런데 만약 한겨레가 조선일보처럼 기자를 뽑으면 진보진영이 가만 있겠는가. 진보가 무엇과 싸울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지난번 강의때 여성의 노동이 사교육으로 연결된다는 말에 ‘남자도 마찬가지’라고 누가 말씀하셨었다. 중요한 지적이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성과 남성에게 경제권이나 노동권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남성은 돈을 못벌어도 시민권을 가진다. 여성은 돈을 벌어도 시민권을 못가진다. 내가 아는 부부 중에 남성 전업활동가와 여성 교사 부부가 있다. 남성은 돈을 안벌고 여성은 돈도 벌고 가사노동도 하지만 여성이 더 인정을 못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성은 자본주의 이전에 가정을 떠나서 경제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과 보호할 가치가 없는 여성으로 나뉜다”
“예전에 법대 교수가 수업 시간에 등록금 없으면 남자는 노가다 하고 여자는 몸팔라는 성희롱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교수도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노가다는 낙인 찍히지 않는다는 거다. 남자는 돈, 지식, 기술 등으로 평가받는다. 여성은 나이, 외모, 몸매, 성으로 평가받는다. 남자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두가지다. 부정부패한 사람이거나 진짜 안씻는 더러운 남자. 여자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성적인 의미를 갖는다. 남자는 성적으로 득도를 하면 출가를 하고, 여자는 가출을 해서 성매매를 하게 된다. 노동권의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 사회(운동)과 개인의 ‘불행’을 식민성과의 관계에서 생각해보는 것
“민족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 민족이다. [만들어진 고대사]라는 책을 보면 잘 나온다. nation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는 국가로 해석되는데, 원래 민족이라는 해석이 적당하다. 우리나라는 국가와 민족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nation는 nate(낳다)에서 나온 말이다. 민족이란게 없다는게 아니라,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다큐영화가 있어서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웃겼다. 한 교수가 독도를 우리 땅으로 하기 위해서 독도에서 출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여성이 독도에서 출산을 하게 하기 어려우니까 독도에서 개가 새끼를 낳게 한다”
“진보와 보수를 설거지로 나눈다면 설거지 하는 남자와 설거지 하지 않는 남자로 나뉠 수 있다. 그런데 설거지가 사소한가?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가장 무섭다. 그런 확신은 소수자 그룹일수록 더 격렬해 진다. 통합진보당 당권파 폭력은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보니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다. 페미니즘 그룹, 동성애자 그룹, 장애인 그룹에선 훨씬 더 격렬하다. 그런 자기들만 옳다는 확신이 조직화 계기가 생기면 나찌즘이 되는거다. 600만명을 학살해도 박수 치게 되는. 어떤 인간이든 그렇게 될 수 있다. 예전 성매매방지법 논쟁이 벌어졌을 때 생긴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피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식민성은 정체성의 정치다. 우리는 하나라는 것. 페미니즘과 민족주의가 대표적으로 정체성의 정치다. 동티모르 민족주의와 나찌즘의 민족주의가 의미가 다르다. 일제시대 민족주의와 현재 이주노동자를 억압하는 민족주의는 의미가 다르다. 정체성의 정치는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정체성의 정치는 유동성이 있다. 흑인들이 ‘blak is beautiful(블랙 이즈 뷰티블, 검은색이 아름답다)’이라고 말할 때 흑인남성의 정체성과 흑인 여성을 구타할 때 흑인남성의 정체성은 다르다. 이런 정체성을 갖고 외부의 적을 전제하는 속에 조직 내 성폭력이 벌어져도 우리 내부의 단결을 말한다. 이화여대가 남자 대학과 관계 속에 이화여대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여대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학벌주의에 다름 아니다. 식민성은 고정된 존재를 상정한다”
“여러분이 여성문제, 페미니즘, 젠더를 이야기할 때 꼭 기억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보겠다. 처음에 페미니즘은 성별분업과 성역할을 비판했다. 감정의 성별분업, 언어의 성별분업 등 성별분업은 인간의 모든 삶을 규율한다. 이를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차원에서 비판했다. 요리를 하고 싶은데 왜 남자라고 못하게 하냐, (여성이) 왜 남자답게 하면 안되냐는 등. 문제는 분업이 아니라 위계라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등한 가치가 아니다. 같은 노동을 해도 여성임금이 남성 보다 적은 문제 등 여러분 모두 아실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차별받는다. 여성은 피해자고 남성은 가해자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성애자 특혜를 받는다고 비판하면 동의할 수 있나? 비장애인 특혜를 받는다고 비판하면 동의할 수 있나? 문제는 성별분업의 문제 이 정도 인식 자체도 우리 사회에 없다”
“다음은 구조를 이야기해야 한다. 젠더라는 제도가 사회조직화, 인간관계를 구성하고 자아를 형성한다. 미국사회 3대 조직요소는 계급, 인종, 성별이라고 한다. 젠더가 있어야 계급이 생산된다. 젠더 등이 자아형성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제주43항쟁에 젠더가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도 있다. 젠더를 빼고 논의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
“다음은 인식론이다. 맑스주의가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이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전 영역에 미친 이론이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세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보는 세계관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쉽게 내용이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른 이론은 누구편, 누구편인지가 밝혀진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박근혜를 지지하는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첨단학문이다. 여성은 가장 큰 타자 집단, 소외된 목소리로 우리 사회 가장 큰 영역이다. 페미니즘으로 우리 사회 이슈를 살펴보면 더 잘 보인다. 젠더이슈는 더 어려워지기도 하지만. [다른 목소리]라는 책에서 ‘평등보다 보살핌이 더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페미니즘 진영도 격렬하게 비판했고 남성들은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라고 했다.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조차 없었다”
“성별분업 문제, 구조의 문제, 인식론 이 세가지를 고려해서 사안별로 판단을 해야 한다”
1. 강남 지역과 ‘지방’의 수해에 대한 불평등한 국가의 대처를 어떻게 비판할까?
2. 나꼼수 비키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혹은 생각하지 말아야 할까?
3. 진보 진영은 자녀 교육에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4. ‘녹색당’, ‘성적 소수자당’, ‘여성주의당’, ‘학벌 타파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는?
5. 수시로 출몰하는 색깔론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6. ‘가벼운’ 성희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7. 온갖 젠더 이슈에 어떻게 판단, 개입해야 할까?
“관악구가 영등포와 가까운 쪽이 있고 강남과 가까운 쪽이 있다. 강남과 가까운 관악구에 살다 보니, 강남 수해 현장을 직접 봤었다. 다들 알겠지만, 그때 강남 수해와 동두천 수해에 대해 정부는 다르게 대응했다. 왜 강남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지방은 그렇지 않냐고 비판하는 것은 왠지 찌질한 요구처럼 들리지 않았나. 어쨌든 강남도 수해를 복구하긴 해야 한다. 이때 고상한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명박은 자꾸 수해나는 문산 사람들이 이사가지 않냐고 말했었다. 그게 이명박 수준이다. 국민을 자기 병(兵)으로 보는 태도. 언론에서 강남 수해는 도시계획의 문제, 지구온난화 현상 등을 동원해 분석했다. 철원은 자연재해라는 것이다”
“남녀 문제도 동일하게 대우받는다. 남자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고, 여자 문제는 사적인게 된다. 위원장들이 ‘여성조합원은 소극적이고 집만 생각한다’고 불평하지 않나. 그럼 ‘위원장부터 집에 가서 가사노동 하라’고 쏘아붙여야 한다”
“비판을 할때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도 봐야 한다. 이 빌딩도 100가지 위치에서 보면 100가지 모습으로 보인다. 이 빌딩은 이 빌딩 밖으로 나가야만 보인다. 제주도에 산방산이 있는데 항상 나오는 산방산사진은 딱 한 지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위치가 아닌 곳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산방산의 본모습이 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볼 때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더 다양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말을 했다가 맞을 뻔한 이야기인데, 인신매매나 성매매 외 원조교제 같은 경우 어떤 측면에서 ‘부의 재분배’다. 성매매가 젠더 문제에서 계급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성매매는 성산업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규명부터 해야 한다. 지금까지 남성의 입장이나 중산층 여성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돼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당사자들이 말할 수 있지 않다.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쓰고 여성활동가에게 ‘성매매 경험이 있냐’는 질문도 받아봤다. 그만큼 다른 목소리가 어렵다.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냐고 질문했을 때 넌 틀렸다는 반응이 많다. 다른 목소리가 곧 틀린 목소리가 된다. 실체적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없던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말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기존 논쟁구도를 바꿀 수 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선 첫 번째로 다른 목소리를 막지 말라. 특히 조직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막지 말라. 그런데 이미 여성들은 알아서 말을 하지 않는다. 조직내 신참의 목소리도 귀기울여야 한다”
“오늘 교안 맨 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을 산다는 문구가 있다. 레닌이 쓴 팜플렛에 있었던 문구다. 그 팜플렛을 달달 외웠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영어로 what is to be done이다. 미래형이고 수동형이다. 미래에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이 문구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그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날’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그날’은 없다. 그날이 왔다고 이젠 해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반동이 될 수 있다. 계속 억압받는 사람은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날’은 오면 안된다”
“밤 9시에 집밖에서 맥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퍼센트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나.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도 아이가 있어도 어려운 일이다. 굉장한 특권이다. 장애인 중 서른이 넘어서 처음으로 집밖으로 나온 이들이 몇퍼센트가 되는 줄 아는가. 내가 만났던 30대 장애인은 태어나서 가족 외에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해 본 여성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진보의 개념에서 시간관도 굉장히 중요하다. 미래(未來, 아닐미, 올래)는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미래는 영원히 현재다. 미래 개념이 진보를 막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자는 주장.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완성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계속적인 추구, 끝이 없다. 그래서 미래는 언제나 오늘이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미래는 현재의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생겼다. 파이가 커지면 그때 나눠주겠다, 우리가 해방되면 그때 해방시켜 주겠다 같은 논리들. 됐다 그래!”
“운동권에서 ‘우리의 나아가 길’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우리의 나아갈 길 같은건 없다. 우리가 모두 다르다. 입장이 동일한 ‘우리’는 없다. 미래나 노후를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늘을 살면 된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저축한 돈을 다 쓰거나 오늘 술을 죽도록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시간 개념은 차별도 만든다. 시간을 공간화해서 차별한다. 제3세계 국가를 일컬어 ‘그곳은 우리나라 60년대’라고 한다. 시간적 위계로 과학화하거나 정당화한다. 진보나 보수나 자본주의를 성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 시간이다. 진보는 보수에게 ‘시대착오’라 하고 보수는 진보에게 ‘시기상조’라 한다. 다들 자기 시간만 ‘정시’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직선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동시대에 살고 있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에 대한 집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의 열걸음 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라는 말은 의미가 있다. 막 앞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통 발목을 잡지 말라고 한다. 발목을 잡고 넘어트려서 어딜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식론적 자신감이 필요하다. 구조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유는 행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끼니를 걱정하면 쓸데없는 관념론이 나오기 힘들다. 끝으로 다시 한번 말하겠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 미래는 계속 현재다.”
6시가 좀 넘어서 가장 격정적이었던 5강이 드디어 끝났다....
강의가 모두 끝난 후 남은 참가자들은 서로 수료증을 나누고, 소감을 나누며 행복했던 이번 강의를 마무리했다.
정희진 강사는 지난번 강의 때 약속한 대로 5번 모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강의 중에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희진 강사는 항상 선물을 먹는 것으로 한다고 한다. 이날 선물은 직접 주문했다는 수제쿠키였다.
이날 수료증에는 이렇게 적었다.
수료증
동지는 매력적인 활동가가 되기 위한 2012년 여성위원회 성평등강좌(5월2일~30일)에 성실하게 참석해 여성주의의 힘으로 상상력과 용기를 키웠기에 이 수료증을 드립니다.
5강 개근 : 김상호 공무원노조 사이버국장, 이경은 공공운수노조연맹 교육국장, 우듬지 공공연구노조 핵융합지부, 진현미 홈플러스테스코노조 여성국장, 최현미 홈플러스테스코노조 조합원, 최선영 중소기업중앙회노조 사무차장, 김양순 시그네틱스 부분회장, 윤선애 시그네틱스 사무국장, 총연맹 안진 재정국장, 손은화 성평등위원회 담당, 송은정 여성부장, 박승희 여성위원장, 노우정 부위원장(13명)
정근(4회 출근) : 심선혜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보육분회장, 이수경 공공운수노조연맹 여성국장, 권윤희 현대해상화재보험 부위원장, 이근정 민주노총 인천본부 총무부장, 김순희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 이은정 건설산업연맹 총무부장(6명)
수료증 전달식이 있은 후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하고 이번 강의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씩 나눴다.
“페미니즘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있었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많이 배웠다. 아직 결혼 안한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자유롭고 편안해졌다.”
“10년 동안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자녀교육 문제도 생기면서 투쟁에 회의가 들었던 시기였다. 1순위가 투쟁이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아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과 투쟁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겠다.”
“우리 사회에서 자식을 키우는 고민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나중에 이런 교육기회가 온다면 꼭 다시 참석하겠다.”
“처음엔 강의내용이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들을 때마다 새로웠다. 처음엔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서 다시 한번 듣고 싶다.”
“해고노동자로 살아 가기 위해 남편과 계속 투쟁해왔다. 남편과 투쟁에서 승리한 줄 알았는데 요새 다시 투쟁 중이다. 노조활동을 계속 할지, 결혼생활을 계속 할지 고민이 들 때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갈등의 원인과 갈등해소의 결론이 모두 그 속에서 벌어졌던 것 같다. 노조간부들과 끝까지 함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민주노총에서 4년째 상근하면서 이번 강의를 들은 것이 제일 잘한 일 같다. 교육을 많이 받는게 제일 중요하다. 정말 즐거웠다”
“학벌없는 사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여성학자가 정희진 선생님이다. 강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 처음 참석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해 노동운동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최근 저의 화두다. 교육이 여성의 의무처럼 돼있는데 치맛바람이라고 욕먹고 있다. 직접적 당사자는 현장 노동자다. 고민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
“반성매매 인권운동단체 ‘이룸’에서 일하고 있다. 정희진 선생님 강의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누군가 그러더라. 정희진 선생님 강의는 배우는게 아니라 순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웃음) 그동안 제가 함께 해오던 분들이 아니라 새로운 분들과 함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심리상담 업무를 하면서 희망연대노조와도 일하고 ‘이룸’과도 일하고 있다. 이번 강의가 뭘 하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강의도 좋았지만 참가자들과 지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정말 좋다.”
“지역사회운동노조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민주노총이 전략적 과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미조직 조직화를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조운동을 해보고 싶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우리 조합원들이 고용보장 투쟁을 해도 집에 돌아가면 사교육과 사보험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환경적 가치, 성평등, 인권적 가치를 삶의 가치로 하고 있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 직업장과 지역의 결합을 고민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함께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싶은데, 20년 이상 한국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어렵긴 하다. 우리 조합원과 대화하고 작은 변화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정희진 선생님이 우리 조합원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여성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진보진영에서도 반핵활동은 되는데 장애인 문제에는 관심 없는 등 모순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노조 내 가부장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송은정 여성부장(only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