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고용노동부에 보내는 공개서한
고용노동부는 헌법의 정신, 국회의 입법 방향, 인권위 권고에 귀를 열고,
해고의 고통과 싸우는 노동자의 현실에 눈을 열어야합니다.
한해 평균 십만에 가까운 노동자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해고의 고통은 쌍용차에서 한진에서 보워터코리아에서 수십 명 노동자 가족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회계조작을 통한 위기조작, 물량 빼돌리기를 통한 공장이전, 유상증자, 노조탄압이 버젓이 정리해고의 배경으로, ‘경영상 이유’로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통제도 관리도 방기한 채 외면해 온 정리해고의 실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을 증진할 의무’를 밝히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정리
해고의 요건 강화와 정리해고자에 대한 재취업 및 생계안정 대책‘ 마련을 권고했습니다. 국회정치권은 ’정리해고 요건강화 및 재고용 범위와 의무 강화‘를 핵심으로 한 정리해고 관련 근기법 개정안을 발의 상정해 놓고 있습니다. 재계와 고용노동부만 귀를 닫고 있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최근 인권위원회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정리해고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 요구를 전면 거부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주장과 근거는 조목조목 노동자의 현실과 요구와 엇나가고 있어 고용노동행정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드러냈습니다.
노동자의 기본권 보다 기업의 선택 폭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엄격히 제한할 경우, 기업 회생 수단 자체를 제한 할 것이라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일방적인 기업 편들기입니다. 정리해고 전에도 기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다양한 회생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 과정엔 집단해고인 정리해고를 제외한 인적구조조정도 포함하고 있으며, 명예퇴직,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으로 일터에서 밀려나는 노동자는 집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경영상 필요를 제한하지 못하는 현행법 때문에, 민주노총 소속 정리해고사업장 15개 사업장 가운데 매출흑자를 기록한 8개 사업장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정리해고가 남발됐습니다. 심지어 회계조작이라는 탈법을 동원한 쌍용차와 같은 사례가 벌어졌습니다.
노동자의 최소 권리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을 놓고도, 기업을 먼저 걱정하는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수년간 길거리에서 투쟁해온 정리해고 노동자의 상처를 들쑤시고 있습니다.
해고 회피 노력에서도 노동자의 노력만 명시했습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라 경영의 책임으로 빚어지는 해고입니다. 부득이 정리해고가 벌어진다면, 고용노동부와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희생을 피하고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해고 회피 노력에 ‘업무재조정, 무급휴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자의 노력만을 회피노력으로 제시했습니다. ‘노동자의 희생을 줄이는 방안으로 노동자의 다른 희생’을 내세운 꼴입니다.
국회에 올라 있는 정리해고 관련 근기법 개정안 6개 중, 고용노동부처럼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노력만 명시한 개정안은 없습니다. 정부여당조차도 자산매각, 임원임금 삭감 등 경영진의 노력을 명시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재계를 대신해서 의견을 낸 것이 아니라면 즉시 수정해야 할 의견입니다.
해고대상 ‘선택권’이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 관련한 기준 마련 요구를 외면했습니다. 그 이유로 상대적 ‘선택’의 문제를 들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상황에서, 노동부가 이야기 하는 해고 대상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누구란 말입니까?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경영진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숱한 정리해고 과정에서 확인한 대로, 노동조합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노동자를 우선 해고대상에 올리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혹은 ‘해고는 살인’인 현실에서 노동자들끼리 살아남기 위해 극도의 생존경쟁을 치루라는 것과도 같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의견서로는 이미 일자리 경쟁이 만연된 노동시장의 ‘정글화’를 방조하겠다는 뜻 외에 다른 해석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어, 일률적 기준은 마련하기 어렵지만 사업장별 현실에 맞는 기준을 만드는 것을 의견으로 냈습니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정리해고가 벌어지는 현황을 종합 혹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까? 정리해고에 대한 정확한 통계라도 갖고 있습니까?
고용노동부가 정리해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정리해고를 결정한 사용자가 정리해고계획을 고용노동부에 접수한 경우뿐입니다. 해고 계획이 접수되지 않은 정리해고 상황은 고용노동부에게 감지도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해고 대상을 선정하는 사업장별로 기준을 방법을 찾는다고 하니, 감나무 열매를 돌보라는 요구에 감열매 전체를 관리하는 것은 부적절 하니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면 손에 쥐고 관리하겠다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요구하는 애써 외면한 채 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무책임한 고용행정이 노동자의 절망을 짙게 만들고 있습니다.
수년째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보십시오.
우선 재고용대상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은 찾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실질적인 긴박한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가 진행된 경우라면 기업정상화를 위해서는 최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정한 시간이 경과했다면 기업도 환경도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는 기업과 노동환경 속에서 재고용 범위를 ‘해당업무’로 국한하는 것은 사실상 재고용 경로를 극도로 제한하는 것과 같습니다.
노동자의 동의를 전제로 우선재고용이 이루어진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대상업무를 ‘관련업무’로 확대해서 생겨날 혼란은 충분히 조절 가능한 문제일 것입니다. 경영의 책임으로 생겨난 해고의 원상회복 방안은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역할입니다.
실효성 없는 우선재고용 방안과, 검토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사회안전망 확충에 관한 고용노동부의 의견서면 어디에도,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년째 투쟁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수 십 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문제해결과 제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찾을 수 없는 고용노동부의 정책변화가 시급합니다. 정리해고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촉구합니다.
민주노총과 정리해고사업장 조합원들은 10월 8일로 계획한 ‘민주노총 결의대회’ 까지 고용노동부의 변화된 의견과 공개서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합니다.
2013년 9월 2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 정리해고사업장 대표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