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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계노동절대회 대회사]

작성일 2014.05.01 작성자 대변인 조회수 3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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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계노동절대회 대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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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겨울은 따뜻했습니다.

다섯 살 여동생에게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입히고 엄마를 찾으러 나간 여섯 살 오빠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깊은 바다 속 추위와 어둠, 다가오는 죽음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로의 구명조끼 끈을 묶는 것이 전부였던 열일곱 살 아이들은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언니가 죽을지도 몰라. 네 옷 다 가져와서 미안해” 죽음을 목전에 둔 가난한 언니는 동생의 옷가지를 챙겨온 게 못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가라앉는 배 안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봄의 길목에서 마주한 이 허망한 비극에 비하면, 차라리 지난겨울은 못 견디게 따뜻했습니다.

 

이것은 학살입니다.

여객선 운행 나이를 30년으로 연장해 20년 낡은 배를 사도록 한, 엉터리 안전 점검으로 적재량 세 배의 짐을 싣게 해준 규제완화가 만든 학살입니다. 사고 뒤 만 하루가 지나서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구성되고, 객실에 진입하기까지 닷새가 걸린, 허술한 재난대응 체계가 몰고 온 학살입니다. 세월호 선원 15명 중 8명이 비정규직, 아마도 이들은 스스로를 ‘1년짜리 승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윤을 위해 안전과 책임의식도 내팽개치는 자본의 탐욕이 부른 학살입니다. 퇴직한 해수부 관료가 해운조합 간부가 되고, 사고를 낸 해운업체와 계약을 맺은 구조업체의 이익을 위해 정작 필요한 구조는 지체됩니다. 가해자와 조력자, 수익자가 회전문처럼 돌아 등장하며, 국민 목숨을 현금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건 학살입니다. 정권과 자본이 죽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죽거나 실종된 억울한 목숨이 302명, 이들 대부분이 노동자의 자식이며 형제․자매입니다. 하루 평균 8명, 1년이면 2천4백명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어나갑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은 25명에 이릅니다. 손배․가압류에 절망하고, 노조탄압에 항거하고, 정리해고에 고통 받는 노동자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죽습니다. 활동보조를 받지 못한 장애인은 집에 불이나 화마 속에 죽고, 가난을 견디지 못한 세 모녀는 열 평 지하 방에서 번개탄을 피워 죽었습니다. 세 모녀가 남긴 유언은 ‘죄송합니다’였습니다. 세 모녀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가난을 사과해야 합니까. 대한민국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 애처롭고 위태로운 생사의 줄타기입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그리고 얼마 전 경주리조트 참사. 무려 20년이 흘렀지만 이윤을 위해 희생된 죽음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 모두 그저 지난 일입니까. 시민 안전을 내팽개친 채, 가진 자의 배를 더욱 불리기 위한 민영화가 강행되는 한 우리 안전은 요원합니다. 민영화를 막지 못한다면, 바다에서 벌어진 참사가 철로 위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재현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입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목소리가 ‘종북’으로 몰리고,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이 ‘전문 시위꾼’으로 낙인찍히는 나라에서 참사는 막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목숨보다 자신의 권력을 소중히 여기는 대통령이 있는 한 참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금쪽같은 아이들 목숨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노동자가 나섭시다. 억울하고 분하니 함께 싸워달라는 참사 희생자 가족의 절규에 응답합시다. 규제를 풀고 위법을 눈감아준 권력, 비용절감과 생산성을 위해 인명을 내던진 자본에 의해 저질러진 사회적 살인행위를 멈춥시다.

 

세계 노동절은 죽음으로 항거한 미국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민주노총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비롯한 산업재해, 정리해고, 비정규직, 장애, 빈곤 등 모든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한 번 선언합니다. 권력과 자본의 탐욕과 횡포로부터 노동자-민중의 목숨과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평등과 인권을 향한 끈질긴 싸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박근혜를 향한 투쟁을 끝끝내 이어 나아갑시다.

 

 

2014년 5월 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신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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