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어느 누가 소방노예이길 강요하는가
-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 시급하다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얼마 전 두 분의 소방관이 화염 속에서 순직했다. 올해만 6명 째고, 2008년 이전 10년 동안 순직한 소방관은 무려 204명에 달한다. 순직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반짝 관심을 보이며 소방관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언급하곤 한다. 누가 봐도 그 노동현실이 열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언론들의 관심은 대개 측은지심에 머물고, 처우개선의 칼자루를 쥔 정부도 면피성 보상 정도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해법을 달리 찾아야 할 때다. 처우개선에 있어 피해 당사자들 보다 절박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소방관 자신들의 목소리와 바람이 실현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방관들에게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권리를 부여해야 하며, 우선적으로 노동3권의 보장이 시급하다.
소방관의 노동현실은 그 어느 곳보다 심각해, 소방관들은 스스로를 ‘소방노예’라고 자조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체 소방관 중 34%인 1만여 명이나 건강관리가 필요한 C나 D등급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24시간 2교대의 중노동과 불규칙한 생활에 의한 고혈압과 간질환, 만성피로에 시달린다고 한다. 또한 39.7%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2008년 이후 자살한 소방관만 26에 달한다. 자살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평균 수명은 공무원 가운데 가장 낮다. 평균수명은 58.8세에 불과해 고령화 사회가 무색할 지경이다. 월 12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해도 예산부족을 이유로 수당조차 받지 못 한다. 최근 순직한 소방관의 기본급은 180만원 가량이고, 여기에 위험수당 5만원, 화재진압 수당 8만원을 받았다. 이러니 최근 5년 간 이직률이 20%에 이르고, 그 아무리 소명의식이 강하다지만 직업만족도는 매우 낮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는 희박해 보인다. 모 국회의원이 ‘2012년 소방방재청 예산편성안’을 검토한 결과 2012년 소방방재청 예산은 총 9400여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28% 증가했지만, 정작 소방관들 몫의 예산은 15%가 삭감됐다고 한다. 게다가 현행법상(소방법 14조2항) 소방관들은 화재진압 등의 고유 업무가 아닌 각종 대민지원 과정에서 숨지더라도 다른 공무원과 달리 국가유공자 혜택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119가 온갖 구조와 위급업무를 도맡아 해결해준다는 현실과 괴리된다. 실제 한 소방본부는 동물구조와 벌집 제거 등 월 평균 900여건의 민원을 해결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순직한 사례도 발생했다.
이러한 소방노동자들의 참담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지난 2008년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소방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정부여당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했다. 또한 실제로 소방공무원 당사자들이 단결권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현행 법률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2009년 헌재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면 사회적 폐해가 너무 크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지만, 이는 상식적으로 보거나 헌법정신에 따르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기본권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 사회공익을 저해한다는 지독한 편견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판결이었다. 게다가 단체행동권이 박탈된 공무원들의 상황에 비추더라도, 헌재의 판단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에 반해 당시 일부 재판관들은 "직종만을 이유로 전체 소방공무원에 대해 노동3권 전부를 박탈한 것은 기본권 최대 존중과 최소 제한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정하기도 했다. 어디 이 뿐인가.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정부에게 소방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권고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관련해 2008년 ILO 홍콩지부 사무처장은 "대한민국 정부는 2006. 3. 제295차 이사회 및 2007. 6. 제346차 이사회에서 소방공무원의 노동 단결권을 보장 하도록 ILO에서 권고 했지만 이를 비준조차 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며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소방공무원, 소방노동자는 우리 사회 희생의 대명사와 같다. 이런 그들에게 남부럽지 않는 대우는 못해줄망정, 누구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죽음을 감내하라는 것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 이상의 법률적 금지로부터 벗어나 소방공무원들 스스로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기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사실상 문제해결이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각성과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안타깝게 돌아가신 소방관들의 영정 앞에 언제까지 국화 한 송이만 놓고 돌아설 생각인가.
2011.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