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관련 정부 부처협의안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정부는 중대재해를 근절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가? 국민이 죽지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의지가 있는가? 중대재해의 범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른 유예적용,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면탈, 인관관계 추정의 삭제와 공무원 처벌의 형예화 등 핵심이 빠진 누더기 법안으로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이게 중대재해기업면제법이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인가? 집어치우고 10만의 노동자, 시민이 발의한 원안이 온전하게 반영된 정부안을 제출하라!]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원청, 발주처와 마주 앉아 두는 장기판에서 차 떼고, 포 떼고 그것도 모자라 상도 떼고 마도 떼고 심지어 졸도 한두개 떼어내면 장기는 무엇으로 두나? 이래가지고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기업을 처벌할 수 있나?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나?
우선 떼어진 차를 보자. 제출된 협의안에 들어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범위가 너무 좁다. 1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재해인데 이 숫자를 조정하여 ‘2명 이상 동시에’로 규정하는 안도 올라와 있다. 정부안에 의하면 혼자 일하다 죽은 태안화력의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은 중대재해가 아닌게 된다. 구의역 김군도 마찬가지다. 급성중독은 ‘5명 이상 동시’여야 하니 이대로라면 삼성과 LG 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 사고도 중대재해가 아니다. 정부안에 담긴 대로 사외하청도 제외시키면 원청기업들은 사외하청 형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려 할 것 아닌가?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기업에 꼼수를 유도하고 불법을 저지를 여지를 남겨주는 것 아닌가?
떼어진 포는 이렇다. 50인 미만 4년 유예도 절대 수용할 수 없는데 여기에 더해 100인 미만은 2년간 유예한다고 한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주 최대 52시간 노동시간 적용유예에 대한 근로기준법 개악의 폐혜를 이미 경험하고도 전혀 학습효과가 없다. 근데 또 이런 유예를 둔다면 이 법은 또 얼마나 유명무실해질까? 전국 사업체의 99.5%가 100인 미만 사업장인 현실에서 사고사망자의 86.1%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게 무슨 죄라도 되는지 묻고 싶다.
떼어진 상은 이렇다.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규정하면서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한 내용을 삭제했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결정을 경영책임자가 내리고 당연히 그로 인한 사망사고의 책임을 경영책임자가 지는 것이 당연한데 이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한다. 발주처가 공기단축 등을 지시했을 때 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도 삭제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천 한익스프레스 사망사고에서 공기단축을 요구한 발주처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는가? 2017년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참사에서 설계를 변경하여 사고를 유발한 발주처의 책임은 어떻게 물을 것인가? 산재사망의 다수를 점하는 건설현장이나 조선소에서 발주처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으란 말인가?
떼어진 마는 이렇다. 인과관계 추정조항도 삭제한다. 인과관계 추정조항이 위헌이라는데 이미 ‘환경법죄 등의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에서 인관관계 추정에 대한 조항이 담겨져 있다. 반복적 법 위반, 증거은폐, 조사방해 등 그동안 산재를 막기 위한 여러 노력을 가로막고 중대재해를 방치해 온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리고자 하는데 이것을 가중처벌로 돌리려고 한다. 입증책임의 전환은 가중처벌도 대체될 수 없다. 전형적인 물타기 아닌가?
거기에 마지막 남은 졸까지 떼어낸다. 공무원 처벌도 ‘직무유기’로 인한 경우로 바꿔 특례로 넣자고 한다. ‘직무유기’의 뜻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고 있는가? 공무원이 불법부당하게 인, 허가를 내주고 그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그게 직무유기인가? 이는 직무유기가 아니라 불법이고 부당행위다. 공무원이 공무원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자는데 왜 이런 꼼수를 부리는가?
우리는 이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드시 담겨야 할 아래와 같은 7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첫째, 재발방지를 위해 말단관리자와 노동자 처벌에서 경영책임자가 처벌되어야 한다.
둘째, 기업의 비용으로 처리되는 벌금형이 아니라 하한형이 있는 형사처벌이 되어야 한다.
셋째, 소규모 하청업체 처벌이 아니라 원청을 처벌하고, 공기단축을 요구하는 발주처가 처벌되어야 한다.
넷째, 산재사망과 시민재해를 모두 포함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어야 한다.
다섯째, 재난사고의 주요 원인인 불법적 인허가에 대한 공무원 책임자 처벌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경영책임자 실질 처벌을 위해 반복적사고, 사고를 은폐하는 기업에 대한 인과관계 추정이 도입되어야 한다.
일곱째, 사망사고와 직업병, 조직적 일터 괴롭힘에 의한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이 온전히 담겨야 한다. 그래야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안전한 나라로 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정부안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촉구하는 내용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온전하게 즉각 입법하라.
지난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개악한 노조법도 정부안이다.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온전한 제정을 막는 개악안도 정부안이다. 아니 돌아보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도 이 정부에서 벌어졌고 주52시간 적용유예도 이 정부에서 이뤄졌다. 모든 개악의 내용이 자본, 재계의 이해이고 요구다. 이러고도 노동존중을 말할 수 있는가? 정부에 묻고 제안한다. 남은 임기를 어떻게 마칠 것인지 진중하게 고민하길 바란다.
미적지근한 정권의 행보 아니 노골적 친자본 친재벌 행보를 보이는 정권에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피곤해하고 분노하고 있음을 직시하길 바란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사실을...
2020년 12월 2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