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고 절규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가혹한 구형 21년 2개월. 사법부의 판단은 가장 낮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 상식과 정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여야 한다.
지난 2021년 11월 30일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면서까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에게 한 5년의 구형을 포함해 17명의 노동자에게 모두 21년 2개월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구형 했고 내일 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내려진 혹독한 구형의 근거는 공동주거침입과 공동퇴거불응이다. 서울고용노동청 민원실과 대검찰청 민원실에 대한 점거가 그 이유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장엔 고용노동청장실도 검찰총장실도 아닌 민원실을 점거하고 퇴거에 불응했는지에 대한 원인과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천형과 다름없다.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은 우리 사회 불평등의 대명사가 되었고 보편적으로 누릴 권리조차 제약당하는 2등 시민 아니 가려진 존재로 낙인찍힌 채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에 내몰린 채 고단한 노동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이를 바로 잡자는 것이 2016년 광장과 거리를 메운 촛불 시민의 열망이었고 요구였다. 이에 새롭게 들어선 정부의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일성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노동존중’이었다.
하지만 정권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지금, 정부의 발표만 보더라도 비정규직은 더욱 확대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심화 됐다. 전체 취업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정규직 일자리로 포장된 무늬만 정규직인 ‘자회사’, ‘무기계약직’만 늘어났다.
법원이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과 ‘고용승계’를 판결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사용자들의 횡포와 오만은 도를 넘어섰다. 차별을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이를 관리, 감독하고 이행을 책임져야 할 고용노동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고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를 해야 하는 검찰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책임과 시정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늘 묵살 됐고 마침내 선택한 것이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 이었다. 이 절박한 외침과 요구가 계속되는 과정에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었다. 아니 살해당했다.
‘대통령님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를 얘기하며 어두운 발전소 한켠 컨베이어 벨트에 청년 노동자가 살해당했다. 더 이상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 당연한 요구에 대통령도 주무 부처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사이 적폐의 몸통인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술잔을 부딪히며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고 구속됐던 국정농단의 주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감옥 문을 나왔다.
이러한 세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디에 기대고 무엇에 의지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재산인 몸뚱이를 고용노동부와 검찰청에 부딪히며 아우성치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민주노총은 법과 법원이 이 불안정한 노동의 굴레를 깨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사회에 만연한 노동혐오와 배제를 깨고 누구나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댓가를 받으며 보편적 권리를 누리는 세상으로의 첫걸음을 법과 법원이 떼기를 바란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극한의 불평등, 양극화 세상을 거부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는 세상을 요구했던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대한 처벌이 아니라 검찰 구형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를 되돌리는 무죄 취지의 선고를 요구한다.
민주노총은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2,000만 노동자의 정당하고 간절한 바람을 전하며 법의 기반인 상식과 정의의 판결을 요구한다.
2022년 2월 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