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성희롱’ 계기로 ‘성희롱’ 법개정 투쟁 예고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 첫 산재인정...‘성희롱’ 전면적 투쟁 근거마련
윤지연 기자 2012.01.14 23:04
14년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근무해온 피해자는 지난 2년간 조장과 소장에게 반복적으로 성희롱을 당해왔다. 하지만 성희롱 사실을 문제제기하면서 부당해고를 당했으며, 해고 후에도 가해자와 사측으로부터 2차 가해를 받아왔다.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가 노동운동진영에서도 ‘사각지대’라 불리는 성희롱 문제로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성희롱 문제는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최초로 성희롱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인정을 이끌어내면서, 이후 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것 역시 성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도적, 조직적으로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과제는 남아있는 상태다. 특히 민주노조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여성 성희롱, 성폭력 문제를 전면적으로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및 부당해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지원대책위’는 13일 오후, 민주노총에서 투쟁평가 토론회를 열고 이후 성희롱 문제해결을 위한 전망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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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 산재인정...성희롱 문제 돌파구 마련
이번 성희롱 투쟁의 성과는, 직장 내 성희롱이 직장 내 위계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려낸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불평등한 고용 관계 속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감독자로부터 피해를 입는 것으로, 사회전반적인 고용구조의 모순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여성노동자가 피해사실을 폭로했을 때, 2차 가해를 포함한 해고, 음해 등이 뒤따라오는 것이어서 ‘성희롱’ 문제가 여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권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유현경 사노위 여성국장은 “이번 투쟁 과정은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 그 자체와 그로인해 여성노동자가 겪게 되는 2차 가해성 음해, 고용불안, 해고 등이 여성노동자 개인의 생존의 위협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이 자본의 착취전략, 현장통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이번 투쟁과정을 통해 드러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피해자 대리인으로 활동해 온 권수정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대부분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회사가 가해자를 지지하며 보호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2차 가해하며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라며 “자본은 직장 내 성희롱이 횡횡하는 사업장이 노동통제하기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권수정 조합원은 “하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아무리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라해도 성희롱당하며 살 수는 없으며, 현대자동차라해도 그것은 안된다라는 생산현장의 윤리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최초로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는 성과 역시, 이후 성희롱 문제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다. 유현경 국장은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도 산업재해에 해당함을 인정한 첫 사례”라며 “직장 내 성희롱이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노동권, 생존권뿐만 아니라 건강권까지 침해하는 행위임을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알렸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직장 내 성희롱 법개정 투쟁 나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접수된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직장 내 성폭력은 5년간 상담통계상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직장내 성폭력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25%의 비율을 차지하며 개선의 경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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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또한 통계를 성인피해자 중심으로 보면, 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는 성인 성폭력 피해자의 35% 정도가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직장 내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노동자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년 8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거나(25.6%),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여부를 모른다(20.9%)고 답변한 비율이 46.5%에 달했다.
때문에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후 노동운동진영에서 성희롱 문제를 사회적 의제화 시키고, 직장내 성희롱 관련한 법제도 개선 투쟁 등을 공세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권수정 조합원은 민주노조운동진영의 과제와 관련해 “직장 내 성희롱의 산재인정은 우리운동진영이 향후 투쟁을 기획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전장치같은 근거를 마련했다”며 “산업재해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내 성희롱 법제도 개선 내부 워크샵을 진행하며 개선안 마련에 돌입한 민주노총 역시 법개정 투쟁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민주노총이 ‘일 가정 양립 및 남녀고용평등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개정안 내용은 △고객 등 제3자에 의한 성희롱 피해를 정의규정에 포섭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구체적 보호조치 명시 △고용노동부가 성희롱 방지조치 점검, 결과 공표 및 부실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 사업주의 성희롱 방지의무 구체화 △인권위 권고와 남녀고용평등법상 과태료 처분과 연계성 확보 등이다.
송은정 민주노총 여성부장은 “이밖에도 ‘고용관련 성희롱 금지법(가칭)’ 같은 별도 법안을 만들어 내용을 더 풍부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으며, 개선안이 마련되면 올해 총선국면에서 이슈화 시킬 것”이라며 “또한 민주노총이 오랜 논의 끝에 올해 성평등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만큼, 민주노총 내부 지원프로그램 등 구체적인 논의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세상]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인터뷰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2009년도부터 관리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박모(47)씨. 2010년 9월 3일 참다못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 하지만 하청업체는 이를 빌미로 박씨를 징계해고 한다. 결국 2011년 5월 31일부터 박씨는 대리인 권수정(41)씨와 함께 상경 농성을 시작한다. 11월 25일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첫 산업재해 판결을, 12월 14일에는 피해자 원직복직과 가해자 해고라는 합의를 얻어낸다. 박씨가 성희롱 부당해고에 맞선 지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박씨가 원직복직 합의를 얻어낸 지 한 달이 지났다. 1월 13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박씨를 만났다. 이날 박씨의 투쟁에 대한 평가 토론회도 마련되었다. 복직으로 2월부터 일터로 돌아가는 박씨는 차분하고 편안해 보였다. 회의실은 지원대책위의 활동가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로 뒷자리까지 가득 찼다. 박씨는 함께 천막 농성을 한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등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믿는 종교, 같이 해준 대리인, 지원대책위 많은 활동가들이 마음의 지지대였어요”라고 박씨는 입을 열었다. 이번 투쟁의 특징은 수많은 단체들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참여한 단체만 18개였다. 성희롱 피해자의 공개 투쟁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희망으로 1년 4개월을 견디었을까. “지금 포기하면 억울하니까 포기할 수 없었어요. 한 순간으로 그간의 노력이 무너지니까요. 그래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되겠지’라고 되뇌었어요. 결국 그런 마음 속 믿음으로 하나, 둘씩 풀려나갔죠. 인권위 결정문이 나오고 산재 판결이 나고...”
박씨의 싸움은 힘든 순간도 많았다.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2평 남짓한 텐트가 철거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어쩌면 사회가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성차별적 문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나같이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도 견뎌냈어요. 우리나라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을 상대로요. 다른 여성들은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기운 잃지 말고 이번 투쟁을 바탕으로 승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또 “적어도 ‘아산 공장 안은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성희롱을 문제제기하고 싸웠기 때문에 남성들이 좀 더 조심할 것이라고 보고요. 나 한 명의 복직으로 끝나지 않고 산재라는 판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도 물었다. “남은 인생 조용히 살 겁니다. 무엇보다 내 의지로 선택한 투쟁이 아니니까요. 가정과 일터로 돌아가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거예요. 평탄한 삶을 살고 싶어요”
토론회 사회를 맡은 나영 사무국장은 “성폭력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노동계는 성희롱을 여성문제가 아닌 고용환경 구조라는 측면에서도 고민했으면 한다. 또 성희롱은 어느 한 쪽이 조심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권력 관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성희롱은 직장 내 위계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유현경 사노위 여성국장은 “직장 내 성희롱은 생존권을 흔들며 통제하는 ‘노동’의 문제이다. 또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여성노동권사업을 주변화시킨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활동가는 “일터 안·밖에 여성 노동자 커뮤니티가 많이 형성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을 외부로 들어내지도 지지받지도 여성노동자는 고립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망이 필요하다. 정부의 성희롱예방 정책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조와 여성단체에서 이를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피해자 대리인이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권수정씨는 ‘직장 내 성희롱은 같은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직장 내 성희롱은 효과적 생산 통제를 위해 회사의 옹호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는 40%에 이른다고 밝혀졌다. 특히 비정규직일수록 더 많고 높은 강도의 성희롱을 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노총 송은정 여성부장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법제도 개선안을 소개했다. “첫째, 고객 등 제3자도 가해자 범위 안에 포함한다. 둘째, 피해를 진술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피해자를 해고할 경우, 불리한 조치로 간주한다. 셋째,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방지조치를 점검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등 성희롱 방지의무를 구체화한다. 넷째, 성희롱에 대한 인권위 권고 결정 시 관할 노동청은 과태료를 부과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