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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4. 투쟁시기 정보통신 활용

작성일 2000.09.15 작성자 정보통신 조회수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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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시기 정보통신 활용
: 이용근 (노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그 늘어나는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정보통신'과 '인터넷'만큼 빠른 속도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노동/사회운동진영은 정보통신과 통신공간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 통신공간을 단지 일방적인 선전선동의 공간으로 보는데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통신공간을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또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 인식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사회적 공간으로서 통신공간은 고유의 문화가 있고 특성이 있다. 그 속에서 노동/사회운동진영이 영향력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활용'의 관점에서 한발짝 나아가 통신공간의 일원이 되어 보다 의식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 투쟁시기 정보통신 활용의 변천사

▶ 95년 한통노조 CUG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에서 정보통신의 위력을 최초로 절감한 계기는 역시 투쟁 시기였다. 우선 95년에 정부와 정면 대결을 벌인 한국통신노동조합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 정부는 '국가전복' 운운하며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배령을 내리는 등 전면탄압했으나, 수배된 지도부가 CUG(하이텔, go KTTU)를 통해 투쟁지침을 하달함으로써 전국 각지 수백개 지부 5만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투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 96∼97년 총파업 통신지원단

한편 96년 12월 26일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96년말∼97년초에 전개된 전국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 때 통신공간의 지지여론을 선도하고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첨병이 된 [총파업 통신지원단]의 활동은 노동조합운동의 정보화에 한 획을 긋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정보통신운동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인 통신인들의 참여 유도를 통해 구성한 총파업 통신지원단은 당시 온라인 상에서 '블랙리본 운동'과 '[파업지지] 말머리 달기 운동'을 전개했었다. 그 결과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의 글이 올라가는 통신망의 여론광장인 'PLAZA' 난에는 파업초기 70% 이상의 글이 [파업지지]라는 제목을 단 글로 뒤덮이게 된다. 또한 통신지원단에 집계된 숫자만도 300개가 넘는 통신 동호회·포럼과 105개의 홈페이지가 블랙리본을 대문에 게시하는 블랙리본운동에 동참했으며, 온라인으로 전개한 노동법 안기부법 철폐 서명운동에 7천여명의 국내외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대기록을 남기게 된다.
나아가 세계 최초로 만든 '총파업(STRIKE) 홈페이지'(http://kpd.sing-kr.org/strike/)는 외국에서 국내 투쟁 소식을 접하는 가장 유력한 창구가 되면서 인터넷 메일을 통한 국제적인 지지여론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처럼 총파업 통신지원단은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통신공간에 총파업 지지여론을 유도하고 국제연대를 확산하는 활동을 진행하면서 국내외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 「한국노동네트워크」 건설로까지 이어진다.

▶ 99년 서울지하철 총파업때 멀티미디어 활용

노동네트워크는 96년 총파업 통신지원단의 전통을 이어 매년 노동자 집중투쟁 시기가 되면 '통신활동단'과 같은 것을 구성하여 운영해 왔다. 99년 4월에 진행된 서울지하철 총파업 시기에도 노동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통신단 상황실이 되어 24시간 투쟁현장의 상황을 접수하고, PC통신 BBS와 인터넷 웹페이지 등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신속히 알리며,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활동을 했다.
특히 99년 서울지하철 총파업때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이전에 비해 발전된 경험을 남겼다. 그 하나는 총파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정보통신 활동가들과 현장간에 사전 결합과 준비가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투쟁현장의 속보를 텍스트로 신속히 공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진과 음성,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매체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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