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2001년 제3회 서울국제노동미디어 개막 세션의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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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전략
최세진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
1997년 11월 첫 노동미디어 행사가 열린 후 어느새 만 4년이 흘러 올해 벌써 국제행사로는 세 번째, 국내행사를 포함하면 다섯 번째 행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노동형제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96-'97년 민주노총 총파업 이후 한국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역사상 처음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사건도 있었지만, 정권교체 후 새로 들어선 김대중 정권이 IMF 등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적극 수용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상황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처해있으며,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동지들이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한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세계화, 그리고 최근 비이성적인 미국의 보복전쟁은 전세계 민중들을 참혹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민중들 역시 한국의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에서 반세계화 투쟁,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제국주의 전쟁 반대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에 대한 유일한 해결방법은 노동자·민중의 연대와 투쟁 밖에 없습니다. 연대는 투쟁의 시작이며, 투쟁은 연대를 통해 더욱 강력해 질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도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때 정보통신 기술발전에 대한 노동자적 관점의 수립과 새로운 미디어 활용 경험의 공유는 노동자 투쟁의 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연대를 위한 강력한 사슬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이번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가 국제적인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을 더욱 긴밀하고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발제에서는 부족하나마 뉴미디어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의 원인과 영향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노동진영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1) 정치적 기술, 기술적 정치
첫째, 기술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힘에 따라 설계되고 배치된다. 둘째, 생산과정에서 기술이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은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실체에 의해 규정된다.
- Noble, Social Choice in Machine Design, 송성수,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녹두)에서 재인용
'97년 당시 한국 노동진영은 정보통신 활용에 있어서 모뎀을 이용한 피씨통신(BBS)을 막 사용하기 시작하여 문서를 겨우 주고받는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파업 투쟁에서 그 엄청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피씨통신의 이용으로 그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실시간 전국적 투쟁상황 점검을 할 수 있었고, 지도부의 지침을 전국 곳곳으로 동시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한국에 갓 보급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99년부터 노동조합에 홈페이지 개설붐이 일어 최근에는 수백개의 노동조합에서 홈페이지를 제작·운영하고 있으며, 노동조합과 일반 조합원들의 인터넷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민주노총 한글 홈페이지의 경우 히트수가 하루 평균 2-30만회에 달하고 있습니다. 의견게시판에는 하루 최고 약 5000여개의 글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들어서 노동조합들도 동영상과 음성, 문자 등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투쟁현장 속보를 신속하게 중계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선전과 조직 사업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통신의 활용은 투쟁 전술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올해의 경우 온라인 시위 등 사이버투쟁이 새로운 형태의 투쟁으로 자리잡았으며, 전술 구사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 구축하여 각 홈페이지로 제공되고 있는 연맹별 단체협약 데이터베이스는 이후 투쟁에 있어서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제 정보통신사업은 조직, 교육, 선전 등 전통적인 노동조합 업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본사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노동운동 진영의 주체적인 기술적 발전이나 투쟁 방식의 선진화라기 보다는 이미 자본이 그들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구축한 정보통신 기술을 뒤쳐져 수용해가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경우 이러한 기술의 도입에 있어서 그에 대한 정치적 고려나 전망없이 무비판적으로 허겁지겁 따라가기도 버거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와 사회, 기업에서의 정보통신기술 도입은 단순한 '효율성 증대', '생산력 향상'을 위한 기술발전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 문화, 생산과정 심지어 개별적 인간관계까지 중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노동진영 특히 노동조합에서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이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과 대응 전략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기적인 전술적 판단과 기술적 수용만 겨우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는 그 변화의 원인과 진행과정에 대해 노동자적 관점과 대응전략을 정리하고 제시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노동진영내 정보통신기술 도입을 위한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그러한 관점의 수립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이 단순하게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명하게도 정보통신기술의 변화는 자본진영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들의 필요에 의해 전략적으로 배치되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냉전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고, 국제적인 인터넷의 발달이 국제금융자본의 급속한 발전과 시기적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보통신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자본과 권력의 의도를 꿰뚫어보는 것은 그에 대한 우리 투쟁의 시작이라고 할 것입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본격적인 등장은 실제로 서구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에 대한 자본의 대응전략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자본 축적 구조의 위기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통해 급속히 위축된 선진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성 제고와 새로운 시장 확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면적 구조 조정을 필요로 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정보통신기술을 세계 자본주의 위기 극복을 위한 도약대로 삼고자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이미 군사적으로 축적한 정보통신 부분의 성과를 민간 산업부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그 기술의 응용력을 보다 고도화하고 국제화함으로써 기술적 우위를 국제 사회에서의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적 요소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등장과 급속한 보급, 영향력 확대는 영미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채택·확산과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위 정보통신혁명은 국가간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지배·종속 모순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국가간 정보처리능력의 차이가 분석력, 문제 대응능력, 곧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주변구 국가간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기술과는 다른 정보기술·상품의 독특한 특성은 주변부 국가의 기술모방과 종속을 더욱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새로운 미디어 종속을 통한 문화종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의 극대화는 정보·통신 사업에 대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시장개방·규제완화 압력과 맞물려 주변부 국가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구조를 계획조차 하기 힘든 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정보통신기술의 본격적인 도입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전두환 정권에 의해 - 한국의 대부분 산업이 그렇듯이 - 국가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몇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의 재편성 요구에 대한 호응, 둘째 국제 자본 시장의 변화에 따른 국제 경쟁력 약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자본의 요구, 셋째 국내 경제 침체를 극복할 새로운 내수시장의 확보, 넷째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국가 운영 관리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정권의 요구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두환 정권은 '82년부터 시작된 6차 경제 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을 수정하여 그 목표 중 가장 주요한 부분을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수요 창출'로 잡고, '83년을 '정보산업의 해', '87년을 '정보통신의 해'로 지정하면서 대대적인 지원정책을 펼쳤습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국가기관들에 대한 정보화에 착수하여 국가전산망을 구축하고, 기존에 수집된 국민들의 정보를 디지털화하기 시작합니다. '86년에는 이미 국민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약한 신분증 '전자주민카드'를 기안하여 기술적 검토를 시작했으며, 수정을 거듭하다가 '96년 구체적 계획으로 현실화를 시도했습니다. 10여년에 걸쳐 준비된 그 사업은 당시 국민들의 저항에 밀려서 철회된 이후 현재까지도 '전자건강카드' 등 매년 새로운 명분과 새로운 이름으로 시도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국가주도의 이러한 정보통신정책은 일반 국민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자본가들과 국가 관료들만의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에 편중된 정보통신 정책으로 인해 정보통신에 대한 지역간, 세대간, 소득간, 성간 편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게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정보접근도, 정보분석력, 정보처리능력, 정보구매력 등의 간격으로 이어져서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다수의 민중은 정보통신기술의 혜택으로부터 완전히 탈락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 한국의 계층별 정보화 수준 현황 (단위: %)
정보통신기술은 조직이나 사회에 도입될 때 - 이를 둘러싼 새로운 투쟁이 없을 경우 - 일반적으로 기존의 권력구조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더 분권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권력집중이 강한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군사정권 당시 수립된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아직까지 유지하면서 국가주도로 사회정보화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체제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같은 목적아래 태어난 정보통신산업은 선한 가면 뒤에 무기를 감추고 환상적인 미래를 치장하며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은 전세계 민중을 짓누르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와 기술 정책은 분리하여 사고하여야 합니다. 기술의 도입과정이 지배계급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그 기술 자체에 대해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술이 최종적으로 갖게 되는 정치적 함의는 초기 지배계급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것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 투쟁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2) 정보통신을 둘러싼 투쟁들
자본과 정권에 의해 진행되는 정보 정책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기업단위의 생산현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국제적인 차원으로까지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생산현장에 도입된 신기술은 생산과정, 노동강도 등 노동환경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가간 권력 관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최근 생산기술의 정보화는 노동자 감시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자본가에게는 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노동자에겐 개별적 노동통제, 노동강도의 강화, 현장 작업자의 권한 축소, 고용불안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정책적인 준비가 부족하여 신기술이 현장에 도입된 이후 고용문제 등으로 불거진 이후에야 투쟁이 전개되는 양상이며, 이 마저도 아직 노동진영의 정책적인 전면적 대응이 아닌 개별적인 기업투쟁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정책적 접근은 올해 2001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금속산업연맹 등에서 생산자동화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한 지침을 내었으며, 민주노총에서도 이제야 '노동자감시 시스템'에 대한 대응을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고, 연말에 이에 관한 모범 단협안을 산하 조직에 내려보낼 계획으로 있습니다. 이후에는 인권단체 등과 연대하여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막기 위한 법안 재정·개정 운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신기술·기계의 설계과정부터 노동진영이 직접 개입하여 사전에 반노동적 기술을 차단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정책적 분석과 대응전략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진영의 독립네트워크 건설은 자본의 정보화에 대응하기 위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97년 첫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에서 진보진영의 독립네트워크 건설 논의가 시작되어 1년 후 '98년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진보넷)와 노동네트워크협의회(이하 노동넷)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진보넷은 400여개의 단체에 대해 저렴한 호스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민주노총의 홈페이지도 진보넷의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각 단체간 정보의 공유와 연대를 공고히 하는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보통신과 관련한 투쟁에서 정책을 생산하고, 직접 투쟁을 지휘하는 본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전문적인 지원활동은 진보넷과 노동넷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늘까지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독립네트워크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그러나 진보넷도 완전히 안전한 상태의 '독립' 네트워크는 아닙니다. 진보넷 역시 한국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최근 검열 관련 법안에 대한 항의로 정보통신부 서버에 대한 사이버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경찰이 진보넷을 수색한 일이 있으며, 정보통신부는 단지 정치적인 검열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진보넷의 회선을 차단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진보통신연합(APC, The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ions)이 각국의 단체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APC와 ICFTU 등에서는 국제 노동네트워크를 건설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96년 한국 정보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국민감시·통제 기술로서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려고 시도한 바 있으며, 진보진영은 이에 맞서서 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http://kpd.sing-kr.org/idcard)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운동의 성공을 발판으로 진보 진영은 그 성과를 주민등록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현재 지문날인거부운동(http://fprint.jinbo.net)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대국민 감시·통제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국가정책으로 적극 수용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나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제3세계 국가들에서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될 때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서 대부분 '국민 편의', '범죄 예방', '새로운 복지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본에 의한 정보/지식의 상품화를 저지하기 위한 정보공유 운동과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투쟁, 리눅스 등 Open Source, GNU, GPL 운동은 아직까지 미미하지만 현재 냅스터(Napster, 한국의 소리바다도 같은 경우임),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 등 몇 개 사안에 대하여 법적인 다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작업과 대중 홍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앞으로 '정보/지식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주제인만큼 주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자본에 의해 진행되는 정보화는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으며, 이에 대한 투쟁들이 각기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진행중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운동이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속적인 선전과 교육을 통한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3) 뉴미디어를 둘러싼 투쟁
과거 한국의 언론은 '정권의 나팔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문 기사의 배치, 내용 한줄 한줄까지 군사정권에 의해 철저히 감시·통제되는 상황에서 언론은 단지 군사정권의 선전도구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자·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기사는 사전에 철저히 검열되었으며, 불순분자들의 폭동으로 매도되었습니다. 민중들의 어려운 삶은 언론에 나올 수 없었고, 모든 방송 뉴스는 대통령과 그 부인의 하루 일과를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정권의 정책에 대한 홍보로 가득 차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진실을 알릴 '우리의 언론'을 진정 목마르게 기다렸습니다.
미디어를 '소통을 위한 도구'로 정의한다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이후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 바로 미디어일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센터 => 다수'의 일방적인 선전방식만 가능했던 체제에서 '다수 <=> 다수'의 다중간 쌍방향 소통방식의 도입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기술적 가능성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래를 예언하게 했으며, 민중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 역시 현실화하는 과정에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바로 '검열'이었습니다. 지난 '96년 미국의 통신품위법에 맞서서 전세계 민중들은 홈페이지에 블루리본을 달고, 검은 바탕화면으로 이에 대해 항의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보통신정책에 대한 전세계 연대 투쟁의 시작으로서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 검열법안이 11월 1일부터 적용됨에 따라 노동, 문화, 인권, 정치, 정보통신 등 각 단체가 연대하여 이에 대한 투쟁을 결의하고 10월 22일부터 60일간 릴레이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법안(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시행령)에 의하면 사이버 시위가 금지되고, 모든 홈페이지는 정보통신부 장관이 고지한 이용 등급을 전자적으로 설치하여야 하며, 공공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등급에 따라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야 합니다. 이미 적용된 등급 내용에는 현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몇몇 사회단체들의 자료와 동성애 관련 홈페이지를 차단대상에 포함하고 있어서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에 대한 검열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사례는 싱가폴, 중국 등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폭넓게 보이고 있으며, 민중들이 정보통신을 이용한 다른 가능성(쌍방향, 자유로운 소통의 가능성, 직접 민주주의)을 발견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탄압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경제적 차이에 의한 국가간·계급간 정보통신 미디어 접근도의 차이는 다시 한번 지배계급 소수에 의해 미디어가 장악되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정보독점과 우월한 양적 생산력은 정보의 흐름을 '일방향적 소통'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자본에 의한 정보화가 계속되는 한 그 격차는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정보의 상업화를 차단하고,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계층과 국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의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발굴하여 현실화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구로 개발하는 것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민중적 정보화의 새로운 모델 개발은 자본의 정보화에 대한 대응 못지 않게 중요한 투쟁입니다.
먼저, 정보통신 미디어를 활용한 토론기술의 개발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다수의 토론을 가능하게 하여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누이 언급했듯이 정치적 변화를 위한 기술의 활용은 그 기술 자체의 가능성보다는 계획하고 수용하는 주체의 정책에 의해 근복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조직 스스로 권위적인 운영 방식을 벗어던지고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통신 미디어는 현재 어떤 매체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뛰어난 선전 도구이며, 무차별 다수를 조직할 수 있는 훌륭한 조직 도구입니다. 이미 올해 4월 대우자동차 경찰 폭력 사태에서 우리는 그 효과를 충분하게 보았습니다.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투쟁 현장의 생생한 진실의 폭로는 일반시민들의 분노를 조직할 수 있었으며,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노동진영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4) 노동진영의 대응 전략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정보화가 단순한 기술 발전에 의해 진행되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의 장기적인 전략 속에서 배치된 주요한 토대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노동진영에게 당연한 임무일 것입니다. 정보화 과정에 구호처럼 따라다니는 '삶의 질 향상', '정보민주주의', '새로운 복지' 그 무엇도 그들의 정보화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시장과 통제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술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해나가는 과정, 그 과정이 우리의 적극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가장 먼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벌어지는 국가의 감시·통제 시도에 대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차단해야 합니다. 한번 감시체제가 구축되고 나면 민중의 일거수 일투족을 빅브라더 국가가 위탁관리하는 철저한 통제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그것이 결코 불가능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애슐론 등을 이용한 전세계 감시체제가 이미 들어섰으며, 한국에서는 전자주민카드가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말고 지속적인 투쟁이 필요합니다.
둘째, 국가 기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집행되는 사회 정보화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정보산업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국가전산망 사업, 초고속통신망 사업 등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정보통신회사에 대한 국가지원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그 과정을 철저히 감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돈으로 적들의 무기를 사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셋째, 국민의 '역감시권(The right of counter-surveillance)'을 수립하여 국가 정보에 대한 공개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권력과 자본을 국민과 노동자가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구축하여야 합니다.
넷째, 소수자·약자를 위한 정보정책을 수립하도록 강제하여야 합니다. 정보회사에 대한 투자를 소수자·약자 등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공공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차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국가정책에 관한 많은 자료들과 국가기관이 작성한 공공정보가 정보통신회사들에 의해 가공되어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미 법률정보나 날씨정보 등 국가가 생산한 정보들을 아주 비싼값에 사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품이 되어버린 공공정보는 지불능력이 없는 소외 계층의 접근을 차단할 것입니다.
이제 정보통신을 노동운동의 무기로 전환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보통신의 다양한 가능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무기, 조직화의 무기, 선전의 무기, 투쟁의 무기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을 이용한 자료의 축적과 분석은 정책사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올려줄 것입니다. 자본의 무기를 우리의 무기로 만듭시다.
[원고가 길고 표와 주석이 많으므로 아래한글 자료를 다운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전략
최세진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
1997년 11월 첫 노동미디어 행사가 열린 후 어느새 만 4년이 흘러 올해 벌써 국제행사로는 세 번째, 국내행사를 포함하면 다섯 번째 행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노동형제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96-'97년 민주노총 총파업 이후 한국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역사상 처음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사건도 있었지만, 정권교체 후 새로 들어선 김대중 정권이 IMF 등 초국적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적극 수용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상황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처해있으며,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동지들이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한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세계화, 그리고 최근 비이성적인 미국의 보복전쟁은 전세계 민중들을 참혹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민중들 역시 한국의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에서 반세계화 투쟁,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제국주의 전쟁 반대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에 대한 유일한 해결방법은 노동자·민중의 연대와 투쟁 밖에 없습니다. 연대는 투쟁의 시작이며, 투쟁은 연대를 통해 더욱 강력해 질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도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때 정보통신 기술발전에 대한 노동자적 관점의 수립과 새로운 미디어 활용 경험의 공유는 노동자 투쟁의 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연대를 위한 강력한 사슬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이번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가 국제적인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을 더욱 긴밀하고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발제에서는 부족하나마 뉴미디어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의 원인과 영향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노동진영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1) 정치적 기술, 기술적 정치
첫째, 기술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힘에 따라 설계되고 배치된다. 둘째, 생산과정에서 기술이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은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실체에 의해 규정된다.
- Noble, Social Choice in Machine Design, 송성수,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녹두)에서 재인용
'97년 당시 한국 노동진영은 정보통신 활용에 있어서 모뎀을 이용한 피씨통신(BBS)을 막 사용하기 시작하여 문서를 겨우 주고받는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파업 투쟁에서 그 엄청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피씨통신의 이용으로 그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실시간 전국적 투쟁상황 점검을 할 수 있었고, 지도부의 지침을 전국 곳곳으로 동시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한국에 갓 보급되기 시작했던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99년부터 노동조합에 홈페이지 개설붐이 일어 최근에는 수백개의 노동조합에서 홈페이지를 제작·운영하고 있으며, 노동조합과 일반 조합원들의 인터넷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민주노총 한글 홈페이지의 경우 히트수가 하루 평균 2-30만회에 달하고 있습니다. 의견게시판에는 하루 최고 약 5000여개의 글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들어서 노동조합들도 동영상과 음성, 문자 등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투쟁현장 속보를 신속하게 중계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선전과 조직 사업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통신의 활용은 투쟁 전술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올해의 경우 온라인 시위 등 사이버투쟁이 새로운 형태의 투쟁으로 자리잡았으며, 전술 구사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 구축하여 각 홈페이지로 제공되고 있는 연맹별 단체협약 데이터베이스는 이후 투쟁에 있어서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제 정보통신사업은 조직, 교육, 선전 등 전통적인 노동조합 업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본사업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노동운동 진영의 주체적인 기술적 발전이나 투쟁 방식의 선진화라기 보다는 이미 자본이 그들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구축한 정보통신 기술을 뒤쳐져 수용해가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경우 이러한 기술의 도입에 있어서 그에 대한 정치적 고려나 전망없이 무비판적으로 허겁지겁 따라가기도 버거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와 사회, 기업에서의 정보통신기술 도입은 단순한 '효율성 증대', '생산력 향상'을 위한 기술발전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 문화, 생산과정 심지어 개별적 인간관계까지 중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노동진영 특히 노동조합에서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이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과 대응 전략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기적인 전술적 판단과 기술적 수용만 겨우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는 그 변화의 원인과 진행과정에 대해 노동자적 관점과 대응전략을 정리하고 제시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노동진영내 정보통신기술 도입을 위한 정책 수립에 있어서도 그러한 관점의 수립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이 단순하게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명하게도 정보통신기술의 변화는 자본진영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들의 필요에 의해 전략적으로 배치되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냉전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고, 국제적인 인터넷의 발달이 국제금융자본의 급속한 발전과 시기적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보통신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자본과 권력의 의도를 꿰뚫어보는 것은 그에 대한 우리 투쟁의 시작이라고 할 것입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본격적인 등장은 실제로 서구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에 대한 자본의 대응전략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자본 축적 구조의 위기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통해 급속히 위축된 선진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성 제고와 새로운 시장 확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면적 구조 조정을 필요로 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정보통신기술을 세계 자본주의 위기 극복을 위한 도약대로 삼고자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이미 군사적으로 축적한 정보통신 부분의 성과를 민간 산업부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그 기술의 응용력을 보다 고도화하고 국제화함으로써 기술적 우위를 국제 사회에서의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적 요소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등장과 급속한 보급, 영향력 확대는 영미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채택·확산과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위 정보통신혁명은 국가간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지배·종속 모순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국가간 정보처리능력의 차이가 분석력, 문제 대응능력, 곧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주변구 국가간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기술과는 다른 정보기술·상품의 독특한 특성은 주변부 국가의 기술모방과 종속을 더욱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새로운 미디어 종속을 통한 문화종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의 극대화는 정보·통신 사업에 대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시장개방·규제완화 압력과 맞물려 주변부 국가는 더 이상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구조를 계획조차 하기 힘든 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정보통신기술의 본격적인 도입은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전두환 정권에 의해 - 한국의 대부분 산업이 그렇듯이 - 국가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몇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는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의 재편성 요구에 대한 호응, 둘째 국제 자본 시장의 변화에 따른 국제 경쟁력 약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자본의 요구, 셋째 국내 경제 침체를 극복할 새로운 내수시장의 확보, 넷째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국가 운영 관리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정권의 요구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두환 정권은 '82년부터 시작된 6차 경제 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을 수정하여 그 목표 중 가장 주요한 부분을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수요 창출'로 잡고, '83년을 '정보산업의 해', '87년을 '정보통신의 해'로 지정하면서 대대적인 지원정책을 펼쳤습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국가기관들에 대한 정보화에 착수하여 국가전산망을 구축하고, 기존에 수집된 국민들의 정보를 디지털화하기 시작합니다. '86년에는 이미 국민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약한 신분증 '전자주민카드'를 기안하여 기술적 검토를 시작했으며, 수정을 거듭하다가 '96년 구체적 계획으로 현실화를 시도했습니다. 10여년에 걸쳐 준비된 그 사업은 당시 국민들의 저항에 밀려서 철회된 이후 현재까지도 '전자건강카드' 등 매년 새로운 명분과 새로운 이름으로 시도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국가주도의 이러한 정보통신정책은 일반 국민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자본가들과 국가 관료들만의 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에 편중된 정보통신 정책으로 인해 정보통신에 대한 지역간, 세대간, 소득간, 성간 편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게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정보접근도, 정보분석력, 정보처리능력, 정보구매력 등의 간격으로 이어져서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다수의 민중은 정보통신기술의 혜택으로부터 완전히 탈락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 한국의 계층별 정보화 수준 현황 (단위: %)
정보통신기술은 조직이나 사회에 도입될 때 - 이를 둘러싼 새로운 투쟁이 없을 경우 - 일반적으로 기존의 권력구조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더 분권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권력집중이 강한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군사정권 당시 수립된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아직까지 유지하면서 국가주도로 사회정보화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체제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같은 목적아래 태어난 정보통신산업은 선한 가면 뒤에 무기를 감추고 환상적인 미래를 치장하며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은 전세계 민중을 짓누르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와 기술 정책은 분리하여 사고하여야 합니다. 기술의 도입과정이 지배계급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그 기술 자체에 대해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술이 최종적으로 갖게 되는 정치적 함의는 초기 지배계급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것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 투쟁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2) 정보통신을 둘러싼 투쟁들
자본과 정권에 의해 진행되는 정보 정책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기업단위의 생산현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국제적인 차원으로까지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생산현장에 도입된 신기술은 생산과정, 노동강도 등 노동환경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가간 권력 관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최근 생산기술의 정보화는 노동자 감시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자본가에게는 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노동자에겐 개별적 노동통제, 노동강도의 강화, 현장 작업자의 권한 축소, 고용불안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정책적인 준비가 부족하여 신기술이 현장에 도입된 이후 고용문제 등으로 불거진 이후에야 투쟁이 전개되는 양상이며, 이 마저도 아직 노동진영의 정책적인 전면적 대응이 아닌 개별적인 기업투쟁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정책적 접근은 올해 2001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금속산업연맹 등에서 생산자동화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한 지침을 내었으며, 민주노총에서도 이제야 '노동자감시 시스템'에 대한 대응을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고, 연말에 이에 관한 모범 단협안을 산하 조직에 내려보낼 계획으로 있습니다. 이후에는 인권단체 등과 연대하여 노동자 감시 시스템을 막기 위한 법안 재정·개정 운동을 전개할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신기술·기계의 설계과정부터 노동진영이 직접 개입하여 사전에 반노동적 기술을 차단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정책적 분석과 대응전략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진영의 독립네트워크 건설은 자본의 정보화에 대응하기 위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97년 첫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에서 진보진영의 독립네트워크 건설 논의가 시작되어 1년 후 '98년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진보넷)와 노동네트워크협의회(이하 노동넷)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진보넷은 400여개의 단체에 대해 저렴한 호스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민주노총의 홈페이지도 진보넷의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각 단체간 정보의 공유와 연대를 공고히 하는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보통신과 관련한 투쟁에서 정책을 생산하고, 직접 투쟁을 지휘하는 본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전문적인 지원활동은 진보넷과 노동넷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늘까지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독립네트워크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그러나 진보넷도 완전히 안전한 상태의 '독립' 네트워크는 아닙니다. 진보넷 역시 한국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최근 검열 관련 법안에 대한 항의로 정보통신부 서버에 대한 사이버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경찰이 진보넷을 수색한 일이 있으며, 정보통신부는 단지 정치적인 검열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진보넷의 회선을 차단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진보통신연합(APC, The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ions)이 각국의 단체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APC와 ICFTU 등에서는 국제 노동네트워크를 건설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96년 한국 정보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국민감시·통제 기술로서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려고 시도한 바 있으며, 진보진영은 이에 맞서서 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http://kpd.sing-kr.org/idcard)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운동의 성공을 발판으로 진보 진영은 그 성과를 주민등록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현재 지문날인거부운동(http://fprint.jinbo.net)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대국민 감시·통제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국가정책으로 적극 수용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이나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제3세계 국가들에서 정보통신기술이 도입될 때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서 대부분 '국민 편의', '범죄 예방', '새로운 복지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본에 의한 정보/지식의 상품화를 저지하기 위한 정보공유 운동과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투쟁, 리눅스 등 Open Source, GNU, GPL 운동은 아직까지 미미하지만 현재 냅스터(Napster, 한국의 소리바다도 같은 경우임),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 등 몇 개 사안에 대하여 법적인 다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작업과 대중 홍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앞으로 '정보/지식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주제인만큼 주요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자본에 의해 진행되는 정보화는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으며, 이에 대한 투쟁들이 각기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진행중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운동이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속적인 선전과 교육을 통한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3) 뉴미디어를 둘러싼 투쟁
과거 한국의 언론은 '정권의 나팔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문 기사의 배치, 내용 한줄 한줄까지 군사정권에 의해 철저히 감시·통제되는 상황에서 언론은 단지 군사정권의 선전도구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자·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기사는 사전에 철저히 검열되었으며, 불순분자들의 폭동으로 매도되었습니다. 민중들의 어려운 삶은 언론에 나올 수 없었고, 모든 방송 뉴스는 대통령과 그 부인의 하루 일과를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정권의 정책에 대한 홍보로 가득 차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진실을 알릴 '우리의 언론'을 진정 목마르게 기다렸습니다.
미디어를 '소통을 위한 도구'로 정의한다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이후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 바로 미디어일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센터 => 다수'의 일방적인 선전방식만 가능했던 체제에서 '다수 <=> 다수'의 다중간 쌍방향 소통방식의 도입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기술적 가능성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래를 예언하게 했으며, 민중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 역시 현실화하는 과정에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바로 '검열'이었습니다. 지난 '96년 미국의 통신품위법에 맞서서 전세계 민중들은 홈페이지에 블루리본을 달고, 검은 바탕화면으로 이에 대해 항의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보통신정책에 대한 전세계 연대 투쟁의 시작으로서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 검열법안이 11월 1일부터 적용됨에 따라 노동, 문화, 인권, 정치, 정보통신 등 각 단체가 연대하여 이에 대한 투쟁을 결의하고 10월 22일부터 60일간 릴레이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법안(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시행령)에 의하면 사이버 시위가 금지되고, 모든 홈페이지는 정보통신부 장관이 고지한 이용 등급을 전자적으로 설치하여야 하며, 공공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등급에 따라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야 합니다. 이미 적용된 등급 내용에는 현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몇몇 사회단체들의 자료와 동성애 관련 홈페이지를 차단대상에 포함하고 있어서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에 대한 검열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사례는 싱가폴, 중국 등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폭넓게 보이고 있으며, 민중들이 정보통신을 이용한 다른 가능성(쌍방향, 자유로운 소통의 가능성, 직접 민주주의)을 발견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탄압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경제적 차이에 의한 국가간·계급간 정보통신 미디어 접근도의 차이는 다시 한번 지배계급 소수에 의해 미디어가 장악되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정보독점과 우월한 양적 생산력은 정보의 흐름을 '일방향적 소통'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자본에 의한 정보화가 계속되는 한 그 격차는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정보의 상업화를 차단하고,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계층과 국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의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발굴하여 현실화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구로 개발하는 것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민중적 정보화의 새로운 모델 개발은 자본의 정보화에 대한 대응 못지 않게 중요한 투쟁입니다.
먼저, 정보통신 미디어를 활용한 토론기술의 개발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다수의 토론을 가능하게 하여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누이 언급했듯이 정치적 변화를 위한 기술의 활용은 그 기술 자체의 가능성보다는 계획하고 수용하는 주체의 정책에 의해 근복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조직 스스로 권위적인 운영 방식을 벗어던지고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통신 미디어는 현재 어떤 매체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뛰어난 선전 도구이며, 무차별 다수를 조직할 수 있는 훌륭한 조직 도구입니다. 이미 올해 4월 대우자동차 경찰 폭력 사태에서 우리는 그 효과를 충분하게 보았습니다.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투쟁 현장의 생생한 진실의 폭로는 일반시민들의 분노를 조직할 수 있었으며,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노동진영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4) 노동진영의 대응 전략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정보화가 단순한 기술 발전에 의해 진행되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의 장기적인 전략 속에서 배치된 주요한 토대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노동진영에게 당연한 임무일 것입니다. 정보화 과정에 구호처럼 따라다니는 '삶의 질 향상', '정보민주주의', '새로운 복지' 그 무엇도 그들의 정보화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시장과 통제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술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해나가는 과정, 그 과정이 우리의 적극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가장 먼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벌어지는 국가의 감시·통제 시도에 대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차단해야 합니다. 한번 감시체제가 구축되고 나면 민중의 일거수 일투족을 빅브라더 국가가 위탁관리하는 철저한 통제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미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그것이 결코 불가능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애슐론 등을 이용한 전세계 감시체제가 이미 들어섰으며, 한국에서는 전자주민카드가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말고 지속적인 투쟁이 필요합니다.
둘째, 국가 기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집행되는 사회 정보화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정보산업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국가전산망 사업, 초고속통신망 사업 등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정보통신회사에 대한 국가지원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그 과정을 철저히 감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돈으로 적들의 무기를 사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셋째, 국민의 '역감시권(The right of counter-surveillance)'을 수립하여 국가 정보에 대한 공개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권력과 자본을 국민과 노동자가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구축하여야 합니다.
넷째, 소수자·약자를 위한 정보정책을 수립하도록 강제하여야 합니다. 정보회사에 대한 투자를 소수자·약자 등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공공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차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미 국가정책에 관한 많은 자료들과 국가기관이 작성한 공공정보가 정보통신회사들에 의해 가공되어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미 법률정보나 날씨정보 등 국가가 생산한 정보들을 아주 비싼값에 사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품이 되어버린 공공정보는 지불능력이 없는 소외 계층의 접근을 차단할 것입니다.
이제 정보통신을 노동운동의 무기로 전환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보통신의 다양한 가능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무기, 조직화의 무기, 선전의 무기, 투쟁의 무기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을 이용한 자료의 축적과 분석은 정책사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올려줄 것입니다. 자본의 무기를 우리의 무기로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