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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보세요.... ^_^ , 민주노총 자주통일선봉대 참가기 모음

작성일 2003.08.21 작성자 통일위원회 조회수 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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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번호 : 1797
글쓴날 : 2003-08-20 16:33:37
글쓴이 : 한라중대장 조회 : 32
제목: 보세요.... ^_^


안녕하세요.
자랑스런 민주노총 제4기 자주통일선봉대 한라중대장입니다.
희망새동지들께 원고청탁을 하나 받았는데, 8.15대회에 대한
후기를 써달라고 하셨는데, 온통 자주통일선봉대후기처럼되어
버렸어요. 짧게 쓰느라 문장이 매끄럽지도 못합니다만, 동지들의
끈끈한 동지애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03년 반전평화 8.15 민족대행진을 마치면서

뜨거운 8월, 15박 16일동안 분단의 아픈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힘차게 투쟁해온 순간 순간들이 너무도 벅찬 감동으로 나의 가슴에 되돌아 오는듯 하다.

매번 8.15 민족행사는 참석해서 듣고 보고하는 그리고 우리민족의 분단은 외세로부터 밟히고 있는 현실들을 느끼고 했던, 그저 노동자로서 커다란 당위만 가지고 행사에 참석했던 기억들 뿐이다. 그런 내가 2003년 3둴 10일 분단된 남쪽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 목적은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에 공공연맹을 대표하여 가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남북과 북미관계 등의 정세적 조건 때문에 몇번씩 방북이 연기되면서 드디어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했던것이다.

그때 평양에서 느꼈던 감정과 우리민족끼리 통일해야 한다는 남북 노동자들의 결의를 존중해서 조국의 통일을 좀 더 깊이있게 고민 할 수 있었다.
평양에서의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공공연맹 통일위원장으로서 나의 조국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2003년 민주노총 제 4기 자주통일 선봉대 전체일정을 참여하여 주체적으로 선봉대활동을 하기위해 8월 1일 배낭을 매고서 참가하였던 것이다.

8월 1일부터 8월 16일까지 남쪽 우리나라를 정해진 일정에 따라 돌아 볼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8.15대회를 그냥 참석해서 바라보았다면 2003년은 내가 주체적으로 참석해서 ‘우리 민족끼리의 왜 통일 안되어 왔던가’ ‘왜 수구보수세력이 통일을 가로 막고 있는가’ ‘외세가 한반도의 통일을 왜 가로막으려 하고 막고 있는가’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미국이라는 초강국은 세계를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여전히 패권적으로 세계를 손아귀에 틀어쥐려는 도발적 행위를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몹시 고된 일정이었다. 8월 1일 용산 미군부대앞의 출정식에서 8월 16일 용산미군부대앞 해단식, 긴 일정속에서 힘든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고 견뎠기에 나에게 2003년 8.15 대회는 어느때보다 가슴벅차게 느껴지는 것이다.

순간순간 선봉대의 규율에 따라서 투쟁하면서 느꼈던 대원들의 진한 동지애, 모든 대원들의 조국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결의를 확인하면서 투쟁할 수가 있었다.

‘너무도 많은 아픔과 고통’ ‘아!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분단의 현실이구나’‘전국방방곡곡 미군이 점령하듯 각지역의 요지를 지배하는 모습’ ‘수백만평씩 자기 주권과 자기 땅으로 착각하며, 조선민족을 지배하려고하는 모습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미군과 미국반대를 외치면서 전국의 8개 미군기지앞 타격 투쟁을 열심히 했던것이다.

중소 영세 사업장들의 투쟁도 어떠했던가. 가슴 절절하게 느껴지는 장기 투쟁 사업장들의 피눈물나는 고통도 감내하며 싸우는 동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땅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너무 깊이 상처가 패였구나. 느끼면서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내 가슴속에 더욱 깊숙이 각인해 보았다.


이제 감동과 분노속에서 진행된 16일간의 대장정도 마무리 되었다.
그 어느 해의 8.15대회보다 가슴깊이 각인했던 2003년 8.15대회였다.
대장정의 기간동안에 아직도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전근대적인 노동정책으로 고통받는 이 땅의 노동자들의 아픈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간이었다.
2003년 8.15는 통일운동의 끝이 아니라 노동자가 선봉에서는 통일운동의 시작이다.
전쟁과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노동자, 민중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외세와 남한 민중내의 반통일 수구세력과 협잡하여 우리 민족의 공조과 조국의 통일을 노동자의 노동해방을 모두 가로막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땅의 진보민중세력의 가장 중심인 우리 민주노총의 노동자들이 적극적이고 보다 대중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다짐과 결의로써 8.15 대장정을 마무리 하였다.




번호 : 1791
글쓴날 : 2003-08-19 12:17:08
글쓴이 : 4기노동자 통선대 한라중대2소대 예상희 조회 : 42
제목: 그리운 시간입니다.


처음 통선대를 뛰기 전에 불안하고 초초했던 마음이 생각이 납니다.
처음 이틀은 일정 적응을 하기위해 무척 긴장했었죠.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고 빨리 말을 걸고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많은 사람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15박 16일이라는 시간이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더군요.
언제부터인가는 많은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도 사람들과 이야기할수도 있었고
많은 동지들과 끈끈함을 나눌수도 있었구요.

방수가 되는 조끼를 입고 다녀서 무척 더웠지만...
내 평생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려본적도 없었지만
하루 하루를 생각하면 소중하고 동지들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갈때마다 잠자리와 더운날 잠깐의 샤워를 할수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신 사업장... 모두 그립습니다.

통선대 일정을 뛰면서 여중생 사고현장에는 스케줄때문에 못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낙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옆에서 위로해주셨던 우리 서원철 소대장님...
소대원으로 많은 것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도움도 못드리고... 태클만 넣고.. 죄송합니다.

우리 한라중대~~~ 어느 중대보다 끈끈한 마음을 가지고
자주 중대의 구호를 한번더 보기위해 장난을 걸던 우리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련하게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리지요.

많은 사업장중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사업장이 있답니다.
대구 영남금속, 김천 한국오웬스코닝, 부산 한진중공업, 울산 태광산업
천안 중부도시가스와 광혜병원, 여주의 스카이밸리 남여주G.C 테트라팩
안산 상록운수 이구산업, 성남 인하병원, 춘천 장례식장, 석촌도자기
청구성심병원....
너무 화가 나서 열딱지가 나서 참여했던 집회들입니다.
서민들이 살기에는 노동자가 살기에는 너무 더러운 이세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업장마다 우리의 어설픈 율동을 보면서 다시한번 기력 충전을 하시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스스로에게 왜 통일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자립적이지 못한 정권체제와 경제체제를 가지고
신자유주의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인간 이하의 대우로 직장생활을 해야하고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말하면 자본가들의 폐업이라는 무기에 의해
직장을 잃어버리는 그 암담함을 보면서...
한 여름의 뜨거운 땡볕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우리 가슴에 심어놓은것 같습니다.

- 쏱아지는 땡볕속에 썬텐을 하고
자욱한 연기 속에 호흡을 고른다
반도의 8월은 달아오른다
심장에 아로세긴 조국 통일 만만세
더욱 쏟아져라 땡볕아
더욱 발악하라 이놈들아
.
.
미군기지 타격투쟁은 너무 미숙했고 부족했지만
다시한번 해보고 싶은 통선대였습니다.
4기 노동자 통선대 대원 여러분 보고싶습니다. *^^*



자유게시판
번호 : 1801
글쓴날 : 2003-08-22 14:38:34
글쓴이 : 백두중대 조회 : 20
제목: 통선대부산지역일정을 함께하고 나서

안녕하세요.
아직도 가시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더위와 싸우며 열심히 투쟁하고 계실 동지들 반갑습니다. 날씨가 덥고 짜증나지만 북녘에서온 우리의 동생이자 누이이고 딸과 같은 응원단 대학생들을 만날생각을 하니 이까짓 더위 쯤이야 일없습니다. 작년 부산 아시안 게임때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 나는것 같아서 마음을 주체 할수 없을 지경입니다. 꼭 11개월만에 다시 우리 미녀 응원단을 보게 될 줄이야 이게 꿈인가 싶습니다.

여하튼 동지들 대구에서 다시 뵙구요. 지난 7,8월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는 전일정을 참가하지 못하고 마산에서 울산까지 참가한 '부산지역 노동자 자주통일실천단' 단원입니다. 15박16일 전일정을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잠시 같이 했던 2박3일은 정말 소중한 시간들 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동지들과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을 갖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건데 타지역 동지들을 만날수 있어서 무척 값진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우리백두중대 1소대대원들이 다시 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 긴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국통일에 대한 열정만으로 만나서 함께 투쟁하고 생활했던 우리 소대원들 그리고 통선대 대원들을 만날수 있었다는것이 가장 소중한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투쟁사업장을 가더라도 모범적이고 선도적인 투쟁을 했고 사업장의 동지들에게 혹시나 패나 끼치지 않을까, 힘들은 좀 받았는지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 었습니다. 부산에서 한창 투쟁중인 한진중공업동지을 만났을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56일간 고공 크레인에서 혼자 농성중이신 한진 지회장님의 소식을 들었을때 가슴이 착찹하고 뭔가 말할수 없을 전율같은것을 느꼈고 한진동지들과 뜨거운 연대의 정을 나누고 싶었졌습니다. 아침에 하청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파업텐트에서는 파업대오에 참가하는 동지들이 부산하게 움직임이고 있고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이 자꾸들었습니다. 아침에 한진중공업 동지들과 그뜨거운 햇살속에서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온몸을 다받쳐서 했던 율동은 한진 동지들에게 큰힘 되었을겁니다. 그리고 한진 중공업에서 아침에 파업텐트에 가서 얻어 먹었던 밥은 잊을수 없습니다. 파업한다고 힘이 부칠때로 부칠건데 그래도 전국에서 온 통선대 대원들을 위해서 밥을 준비해준 동지들을 볼때 역시 노동자는 하나라는것을 백번 말보다 한번에 느낄수 있었습니다. 부산에서의 일정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하야리아 미군부대에서의 투쟁이 가장 가열차고 힘찬 투쟁이었습니다. 비록 미군부대 정문에 장미꽃을 꽂지는 못했지만 부산지역에 있는 동지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통선대가 아니고서는 부산에서 그런 싸움을 하기가 여가 쉽지가 않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에서의 백미는 당연히 부산역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던 통일 한마당 행사 였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부산역에서 그렇게 기차놀이하며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었던것 같습니다. 이것또한 통선대 동지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거지요. 그리고 우리 부산지역 동지들도 준비 많이 했습니다. 잠자리 하나 부터 먹는것 까지 정말 부족함이 없이 준비할 려고 했는데 만족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통선대 일정중에서 뷔페로 식사를 해결한적이 없었을것 같은데....

울산에서 일정을 마치고 광주로 떠나는 동지들을 볼때 나도 광주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부산에서 해야 할 일 들이 더 중요하기에 아쉬움을 삼키고 부산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해야 했습니다. 8.15대회 때 부산지역에서 뒤늦게 올라가는 바람에 통선대 대원들 제대로 다시 보고 인사는 할수 없었지만 멀리서 무대위에 당당하게 올라서서 인사하고 율동하는 동지들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담에는 내가 저자리에 서서 율동하고 인사해야지 하는 각오를 하게 하던군요

잠시나마 함께 했던 우리 동지들이 다시 보고 싶습니다. 아마 조만간에 민주노총 통일학교 하면 한번쯤 다시 만날수 있으것 같기도 하네요. 다시 만날 그날 까지 몸들 건강하시고 조국통일 되는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고지가 저기 보이는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서 합시다.
노동자 통일 선봉대 만세
조국통일 만만세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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