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편집 2003.08.22(금) 20:20
‘미국 제국’은 지속 가능한가
미국의 일부 보수 인사들이 최근 ‘공화당을 위한 위원회’라는 대중교육 모임을 만들었다. 뉴욕에 있는 중동평화발전연구소 소장인 스티븐 코언, 독립전쟁 지도자 패트릭 헨리의 후손인 기업가 존 헨리 등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과거 로마 등의 제국주의적 행태가 나라를 얼마나 약화시켰는가를 뜯어보는 세미나 개최와 비영리 단체 결성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이 준비 중인 선언문은 “미국은 힘보다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계를 이끄는 건국 전통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서구에서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가장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을 그렇게 부르는 나라나 집단은 적이자 악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안팎의 비판자는 물론이고 집권 공화당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미국 제국론이 얘기된다. 조지 부시 대통령 등 행정부내 인사들이 한사코 부인하는 가운데 미국은 어느새 자타가 인정하는 제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제국화는 부시 행정부가 공세적으로 추구하는 신세계질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신세계질서의 주요 내용이 미국의 제국화이며, 거꾸로 미국의 제국화는 21세기 신세계질서 구축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 애초 신세계질서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옛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프바초프였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받아 신세계질서의 기초는 유엔의 틀에서 구축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시에 이어 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신세계질서 구축을 국가 의제로 삼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속도를 높여 미국의 지배권이 유지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지금의 부시는 아버지 부시의 국제주의 지향과 클린턴의 경제 중심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부시 행정부가 군사 중심주의와 일방주의를 주요 수단으로 삼아 새로운 장기 패권 구조를 구축하려 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제국의 앞날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신세계질서의 국내 기반이다. 클린턴은 전통적인 산업보다는 컴퓨터, 정보통신, 영상·미디어 등 첨단산업과 전략적인 동맹을 맺었다. 세계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각국 자본의 상호 침투와 제휴가 불가피하므로 타협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노선을 걸었다. 당연히 국내의 대중적 기반도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대도시와 동·서부 인구 밀집지역이었다. 이에 비해 부시 행정부는 다시 전통 산업과 손을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군확 노선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군수·석유 산업이다. 경제외적인 방법으로 자원과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이익을 키울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대중적 기반도 변화를 꺼리는 남부와 중소도시의 중간층 중심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계화와 현대화의 피해자이며 미국적 가치가 갈수록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시가 지향하는 신세계질서는 미국 바깥에서 압도적으로 거부되고 있다. 베트남처럼 돼가는 이라크의 상황과 지구촌의 높은 반부시 정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길게 볼 때 미국 제국을 좌초시킬 암초는 결국 미국 안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자본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들의 입장에서 세계화는 막을 수 없는 대세다. 그런데 지금처럼 갈등이 일상화하고 세계 경제의 규범이 흔들려서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몇몇 산업이 이익을 본다지만 전체로 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몫은 계속 줄고 있다. 대중적인 기반이 굳건하게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이들을 묶어주는 미국의 우월성과 미국 예외주의는 흔히 흔히 2차대전 이전 독일인의 자민족 중심주의와 비교된다. 진취적인 의미보다는 자기도취의 성격이 강하고 뚜렷한 외부의 적이 없으면 흔들리기 쉽다. 이들의 흐트러지는 만큼 대항 세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내 보수 세력 가운데 구보수파는 오래 전부터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비난해왔다. 온건보수파와 신자유주의자도 미국의 제국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지되기 어렵다고 본다. 반면 신보수파는 제국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기독교 우파도 제국이라는 말을 잘 쓰지는 않지만 정서를 공유한다. 지속될 수 없는 제국을 추구하는 주체가 이들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미국 제국’은 지속 가능한가
미국의 일부 보수 인사들이 최근 ‘공화당을 위한 위원회’라는 대중교육 모임을 만들었다. 뉴욕에 있는 중동평화발전연구소 소장인 스티븐 코언, 독립전쟁 지도자 패트릭 헨리의 후손인 기업가 존 헨리 등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과거 로마 등의 제국주의적 행태가 나라를 얼마나 약화시켰는가를 뜯어보는 세미나 개최와 비영리 단체 결성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이 준비 중인 선언문은 “미국은 힘보다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계를 이끄는 건국 전통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서구에서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가장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을 그렇게 부르는 나라나 집단은 적이자 악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안팎의 비판자는 물론이고 집권 공화당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미국 제국론이 얘기된다. 조지 부시 대통령 등 행정부내 인사들이 한사코 부인하는 가운데 미국은 어느새 자타가 인정하는 제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제국화는 부시 행정부가 공세적으로 추구하는 신세계질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신세계질서의 주요 내용이 미국의 제국화이며, 거꾸로 미국의 제국화는 21세기 신세계질서 구축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 애초 신세계질서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옛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프바초프였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받아 신세계질서의 기초는 유엔의 틀에서 구축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시에 이어 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신세계질서 구축을 국가 의제로 삼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속도를 높여 미국의 지배권이 유지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지금의 부시는 아버지 부시의 국제주의 지향과 클린턴의 경제 중심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부시 행정부가 군사 중심주의와 일방주의를 주요 수단으로 삼아 새로운 장기 패권 구조를 구축하려 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제국의 앞날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신세계질서의 국내 기반이다. 클린턴은 전통적인 산업보다는 컴퓨터, 정보통신, 영상·미디어 등 첨단산업과 전략적인 동맹을 맺었다. 세계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각국 자본의 상호 침투와 제휴가 불가피하므로 타협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노선을 걸었다. 당연히 국내의 대중적 기반도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대도시와 동·서부 인구 밀집지역이었다. 이에 비해 부시 행정부는 다시 전통 산업과 손을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군확 노선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군수·석유 산업이다. 경제외적인 방법으로 자원과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이익을 키울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대중적 기반도 변화를 꺼리는 남부와 중소도시의 중간층 중심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계화와 현대화의 피해자이며 미국적 가치가 갈수록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시가 지향하는 신세계질서는 미국 바깥에서 압도적으로 거부되고 있다. 베트남처럼 돼가는 이라크의 상황과 지구촌의 높은 반부시 정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길게 볼 때 미국 제국을 좌초시킬 암초는 결국 미국 안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자본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들의 입장에서 세계화는 막을 수 없는 대세다. 그런데 지금처럼 갈등이 일상화하고 세계 경제의 규범이 흔들려서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몇몇 산업이 이익을 본다지만 전체로 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몫은 계속 줄고 있다. 대중적인 기반이 굳건하게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이들을 묶어주는 미국의 우월성과 미국 예외주의는 흔히 흔히 2차대전 이전 독일인의 자민족 중심주의와 비교된다. 진취적인 의미보다는 자기도취의 성격이 강하고 뚜렷한 외부의 적이 없으면 흔들리기 쉽다. 이들의 흐트러지는 만큼 대항 세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내 보수 세력 가운데 구보수파는 오래 전부터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비난해왔다. 온건보수파와 신자유주의자도 미국의 제국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지되기 어렵다고 본다. 반면 신보수파는 제국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기독교 우파도 제국이라는 말을 잘 쓰지는 않지만 정서를 공유한다. 지속될 수 없는 제국을 추구하는 주체가 이들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