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미국 진보언론 편집인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김영희 편집위원] 9.11이후 미 전국을 걸쳐 일어난 반전평화운동을 통해
미국사회가 얻은 가장 큰 수확중의 하나는 베트남전이 끝난 70년대 이후 침체기에 빠져있던 진보진영의 재기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러시아와
동부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쇄락으로 특히 타격을 받았던 미국내 사회주의진영도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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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left>1959년에 창당되었으며 미국내 사회주의당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가장 친밀한 공식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자세계당(노세당; Workers World Party) 역시 힘찬 새기운으로 재출발하는 사회주의진영에 속한다.
민족통신은 최근
뉴욕에서 내려와 로스엔젤레스 노세당지부 주최의 공개강연회에서 “오늘의 중국”을 제목으로 하여 발표를 했던 노세당 창당 멤버이며 현재 전국
지도위원으로 주간 기관지의 편집인이기도 한 데이르드르 가스워드(Deirdre Gaswold)를 만나 보았다.
color=blue>민족; 한국계언론을 통해 노세당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같다. 우선 노세당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데이르드르 가스워드(이하 데 가); 1959년에 6명의 당원으로 창당되었는데 당시 병원 실험실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뉴욕, 그리고 공업도시인 버팔로와 영스타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조직운동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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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가인 셈 마시(Sam Marcy)가 창당당원이었으며 여성당원은 나까지 2명이었다. 셈 마시는 변호사이기도 했지만 개업은 하지 않았다. 6명의
창당당원 5명은 이미 모두 고인이 되어 나 혼자 남은 셈이다.
현재 노세당은 뉴욕에 총당사를 두고 미국내 19개 주요도시에 각각
지역당을 갖고 있다. 전국 지도부(Secretariat)에는 7명의 위원이 있는데 그중 4명이 여성위원이다. 노세당에서는 여성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 주간으로 발행되는 당 기관지 “Workers World Party”의 4명 편집위원중 3명도 여성이고 나도 그 중의 하나다.
color=blue>민족; 노세당은 사회노동당(Socialist Workers Party)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데 가; 그렇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당시 사회노동당에 속해 있던 우리 창당
당원들은 세계 투쟁의 핵심을 미국의 제국주의와 소련, 중국, 북한등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회주의 간의 대결에 두었다. 반면 사회노동당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과 아시아를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의 리더쉽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물론 우리 창당 당원들은 당시 사회주의국가들의
리더쉽이 완벽하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사회주의가 발전해 가는 진행과정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우리는 아시아를 지배할 욕심으로 일본에 원자탄을 터트린 미국이야말로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1956년에 항가리동란이
일어나고 소련이 개입하자 사회노동당과 우리 창당 당원들간에 근본적인 이견이 확연히 나타났다. 사회노동당은 항가리 민중에 대한 소련의 잘못된
내정간섭으로 보았던 반면 우리는 동란 자체를 우익 반동세력에 의한 것으로 느꼈다.
color=blue>민족; 소련
사회주의 붕괴의 주원인을 어디서 찾는가?
src="http://www.minjok.com/img/inmul/wwp-gaswold-2.jpg" width=145 align=left>데
가; 소련은 워낙 가난한 나라였고,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계속 소외당한 나라였다. 이와 더불어 제국주의의 끊임없는 방해와 관료주의로
흐른 소련 내부 지도자들간의 분쟁, 또 미국의 핵전쟁 위협도 중요한 원인이다.
또 중요한 원인은 레닌 사후 치열했던 혁명정신이
사그러지면서 제국주의를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흐르시쵸프는 무장해제등 미국에 대해 평화공존정책을 쓰며 사상투쟁을 약화시켰는데, 그는
이미 핵무기까지 사용한 미국의 제국주의가 얼마나 무자비한 줄 몰랐다고 본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요정책으로 실시했던 고르바조프는
결국 미국에게 마지막 문까지 열어주어 버렸다.
동구권, 소련의 사회주의가 무너질 때 민중들에게 투쟁을 부탁한 지도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 사실 역시 혁명정신이 그 동안 얼마나 약화되어 있었던가를 입증한다.
color=blue>민족; 동구권과
소련의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미국내의 여러 사회주의노선들도 큰 타격을 받은 것에 비해 노세당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데 가; 그렇다. 우리 당은 소련내의 반동적인 흐름에 대해 일찌기 파악하고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사회주의당 계열중에는 아예 해체까지 된 당도 있다. 냉전시대에 들어와 세를 잃었지만 1930년대에는 큰
정당이었던 ‘미국 공산당’은 90년대 이후 극도로 약화되었다.
color=blue>민족; 9.11이후 반전평화운동을
출발점으로 하여 미 제국주의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진보진영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정부와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인가 혹은 사회주의를 위시한 다양한 진보진영의 연대연합인가하는 논의도 주목을
받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데 가; 양쪽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는 광범위한 세계적 연대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전통적으로 반제국주의의 투쟁정신이 강한 사회주의자들이 앞장을 서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운동을 이끄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color=blue>민족; 나라마다 상황이 틀리기 때문에 각 나라의 사회주의노선에서 내세우는
슬로건도 서로 특색이 있다. 그런면에서 미국 사회주의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데 가; 주요특성중의 하나는 반인종주의를
들 수 있다. 미국은 알려진대로 인디안을 대량학살하며 나라를 세웠고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강제로 끌고와 노예로 부린 인종주의의 역사가 있다. 물론
초기의 인종주의보다는 나아졌지만 도처에서 아직도 심각한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또 다른 특성으로는 이민정책에 대한 큰 관심이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시작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불공평한 이민정책을 쓰고 있다. 장벽을 쌓고 경비대를 보강하는등 현재 미국은 남미계
이민자들의 입국을 상당히 봉쇄하고 있는데 미국은 역사를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택사스, 아리조나, 그리고 유타와 콜로라도의 일부는
원래 멕시코에 속해 있었다.
자본은 온 세상을 마음대로 돌아 다니는데 노동자에게 비자를 요구하며 거주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불공평한 이민정책이다.
노세당은 노동자를 비롯하여 이민자, 여성, 소수민족, 장애인,동성애자등 압박받는 모든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사회주의도 시대와 그 사회여건에 따라 창조적이어야 한다. 맑스는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했지만 그 뒤의 레닌은 노동자와 모든
압박 받는 자들의 단결을 주창했다.
color=blue>민족; 노세당은 지난 12월 초 뉴욕에서 ‘사회주의의
부활’(Revival of Socialism)을 주제로 전국대회를 열었는데 반응은 어땠는가?
데 가: 엄청난 폭설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할 정도였는데도 3백여명이나 모였다. 노세당원이 아닌 이도 상당수였는데 그 태도들은 참으로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 당시
날씨 사정때문에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다시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앞으로 더 많은 공식행사들을 열어 사회주의 활동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color=blue>민족; ; 브라이언 베이커씨등 노세당 당원들은 9.11이후 미국의 반전평화운동을 주도해
온 인터내셔널 앤써(A.N.S.W.E.R.)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평화운동 초기시절
“인터내셔널 앤써뒤에는 노세당이 있다. 노세당은 북한의 김정일을 지지하는 좌익이다.”라는 식의 색깔론(Red-bait)기사가 미국언론에 보도되어
문제가 되었다. 색깔론에 있어서 미국언론과 한국 몇몇 언론은 매우 비슷했다. 미국언론의 색깔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데 가;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는 미국내의 좌익탄압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50년대 매카시 선풍으로 노골적으로
됐다. 좌익탄압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미국언론은 항상 대기업의 편에서 좌익을 공격하며
사회주의를 뭔가 끔찍스러운 이데올러기로 변색하여 일반 미국인을 반공으로 세뇌시켜 왔다. 미국언론의 이런 경향이 한국으로 수입됐다.
color=blue>민족; 대개의 서구 사회주의진영도 그렇고, 미국내의 여러 사회주의 진영도 북한체제에 대해서 무척
비판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주의 진영이 출판하는 신문이나 홈 페이지를 보면 일반 미국언론들 처럼 북한정권을 스탈리니스트
정권(Stalinist Regime)이라고 부르며 매도하고 있다. 왜 그런가?
데 가; 일반 사회주의자들조차도 북한에
대해 왜곡과 편견에 찬 미국언론의 세뇌작전에 물들 수 있다.
color=blue>민족; 노세당은 북한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유는?
데 가; 미국은 사회주의국가가 성공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과의
반전시상황에서 그 군사적 경제적 위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전인민을 위한 무상의료제도, 무상교육제도등을 실시하고 있는 명실공히 사회주의국가로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
이와 더불어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미국정부가 한반도문제에 개입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과 함께 절대적인 책임감을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북이 미국의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원한다. 미국과 북한사이에 다시 전쟁이 나면 코리안들에게 뿐 아니라 미국내 노동자들에게도 막대한 불이익이 난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바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color=blue>민족; 북한의 사회주의제도는 동구권과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보는가?
데 가; 북한은 매우 독립성이
강한 나라로 러시아의 혁명이데올러기에 의존하지 않았다. 독자적인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북한의 고유한 (Indigenous) 사회주의가 그
힘이라고 본다.
color=blue>민족;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데 가; 세번
방문했다. 마지막 방문은 2002년 연두교서를 통해 부쉬가 북을 ‘악의 축’이라고 부른 후였다. 당시 우리 노세당은 미국정부의 강경한
반북발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계속 지지하고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직접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다.
1990년에 방문했을 때는
김일성주석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동구 유럽의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러시아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때였는데 김주석은
무척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무척 따뜻한 느낌을 주었던 그는 식탁에서 유모어를 섞어가며 당시 세계정세를 평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김주석이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가진 세계의 뛰어난 혁명지도자중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90년 방문 때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다.
판문점근처의 어느 미술관에 갔다가 우리 어머니와 양부가 찍혀 있는 사진을 뜻밖에 발견했다. 1970년대에 뉴욕 유엔빌딩 근처에서 ‘미국은
코리아에서 떠나라’(U.S. Out of Korea)는 슬로건으로 열린 시위에서 찍은 대형의 흑백사진이었는데, 시위대의 맨 앞줄에 우리 어머니와
양부가 서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사회주의자였고 양부는 제철공장의 노동자출신이었다, 90년 바로 전해에 어머니와 사별한 나는 예기치 않던
장소에서 어머니사진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그만 울어 버렸다.
물론 나를 안내하던 북의 관리도 우리 부모가 그 시위사진에 들어 있는
줄 몰랐다. 그 관리는 점심시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술잔을 올려주었다. 그의 자상함도 평생 잊을 수 없다.
color=blue>민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주어 매우 고맙다.
[민족통신 1/18/2004 김영희
편집위원]
민족통신 1/18/2004 minjok@minj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