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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펌] "이제 최문순 사장의 결단만 남았다" - 전국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

작성일 2005.08.20 작성자 대외협력 조회수 6223
"이제 최문순 사장의 결단만 남았다"  
  [기고]MBC가 'X파일' 육성을 방영해야 할 8가지 이유

  2005-08-20 오전 9:14:33  프레시안      
  
  7~8년 전의 일이다. 명절을 앞둔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일간지 회장과 그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검찰 고위간부로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전화 받는 사람의 대답을 통해 이른바 촌지(사실은 뇌물)를 전달 받은 검찰 간부가 '배달 확인' 인사를 하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이 회사 회장이 전달한 돈의 액수도 궁금했거니와 규모가 더 크거나 재정상태가 더 좋은 다른 언론사 사주들은 얼마나 더 큰 '떡값'을 돌렸을지 내심 궁금했다. 제4부로 지칭되며 정치권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사주가 그런 판인데 삼성 같은 재벌이 검찰에 돌린 '떡값'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구구한 변명, 누가 그 말을 믿어줄까"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불법 도청 테이프에서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거나 전달하는 데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전·현직 검찰 간부 7명의 실명을 공개했고 일부 언론은 19일자에서 이들의 반응이나 해명을 실었다.
  
  사표를 제출한 김상희 법무차관은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없지만, 차관으로 계속 있으면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손상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사직한다"고 답변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고위간부로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다. 이상호 기자의 X파일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알고 있는 국민들이 어느 정도 그의 말을 믿어줄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다른 전직 검찰 고위 간부들도 삼성측과 접촉한 사실조차 없다거나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중 한사람은 현직에 있을 때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예전의 생생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건희 게이트'로 불리는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및 뇌물 제공 사건과 보도를 보면서 분노와 울분을 참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또 잘못과 책임에 대해 고해성사하고 국민과 당사자에게 속죄해야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필자는 이 두 그룹 모두에 속하는 경우다.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도록 언론의 자유를 지키거나 실천하는 데에 가장 앞장서야 할 단체 중의 하나를 대표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MBC가 이른바 X파일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고 방영토록 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앞으로 '이건희 게이트'의 진상 규명과 관련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설 생각이다.
  
  "이건희 왕국의 쿠데타,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이제 '이건희 게이트'를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을 얘기해야겠다. 정확하게 말하면 왜 MBC는 문제의 도청 테이프를 그대로 방영해야 하는지, 왜 도청 테이프를 통해 드러난 '이건희 게이트'의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고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지 필자의 생각을 밝힌다.
  
  첫째, 이번 '이건희 게이트'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흔히 이번 사건을 '정-경-언-검 유착'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진상규명과 관련자 수사·처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정당이나 진보적인 시민단체 간부들조차 이렇게 규정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사건의 본질을 잘못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착'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삼성과 이건희 일가(홍석현과 중앙일보 포함)가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을 바탕으로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려고 기도한 쿠데타나 다름없다. 다시 말하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참정권을 가진 국민들이 직접·비밀 투표를 통해 나라를 경영할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금력과 기자 등을 이용해 결과를 바꾸려고 했고, 그것도 철저하게 사적인 이익추구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헌정질서를 유린한 쿠데타로 볼 수 있다.
  
  둘째, '이건희 게이트'는 과거(1997년)의 사건이 아니라 활어(活魚)처럼 펄펄 살아 있는 오늘의 사건이다. 이건희 일가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사슬에서 에버랜드를 지배함으로써 상장업체인 삼성전자를 포함해 전 그룹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장남인 이재용에게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법원과 검찰에 계류 중인 사건들이 있다. 검찰과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할 이유와 목표가 분명한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기도 한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도 있다. 그는 현 정부에 의해 주미 대사로 임명돼 현재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고, 그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경력 관리 차원에서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유엔 사무총장직 도전 의사를 주미 대사에 부임하기도 전에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중앙일보를 비롯한 족벌신문들은 한나라당과 합작해 KBS와 MBC 등 공영방송 체제를 파괴하고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지상파TV 채널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지난해 정기국회에 이어 올해에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등을 담고 있는 신문법 개악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상파TV 채널을 제외하고 케이블채널 등 모든 미디어를 다 갖고 있는 완벽한 복합미디어그룹이다. 언론에 관한 한 모든 수직·수평 계열의 회사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잡지만 15개가 넘고, 50%에서 100%까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26개, 30%~5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2개, 10% 이상 보유한 회사가 15개나 되는 등 관계회사만 55개가 넘는다. 게다가 홍석현씨 등 4형제가 지배주주로 있는 보광그룹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재력과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과제가 지상파TV 채널을 갖는 것이다.
  
  셋째, 이번 사건은 정치자금법이 아니라 헌법을 유린한 죄목이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죄 등을 적용해 처벌해야 할 사건이다. 물론 공소시효(10년)는 남아 있다.
  
  넷째, 이번 사건은 사실상 권력 장악을 기도하고 있는 삼성과 이건희, 그리고 한국의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의 수상)를 꿈꾸는 홍석현의 정치 야망(총리 또는 대통령)이 빚어낸 완벽한(?) 합작품이다. 이는 마치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과 노태우가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인 것과 같다.
  
  다섯째, 이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삼성과 이건희 왕국'이 돼 있다. 참여연대가 1차로 발표한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들먹이거나 국회 재경위원회 소속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고발과 증언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도청테이프 육성 방영이 곧 '구국의 결단'"
  
  여섯째, 한국 사회의 미래가 이번 사건 처리 향배에 달려 있다. 만의 하나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관련자를 처벌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 삼성과 이건희는 성역이 되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왕국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삼성은 개헌 논의에 편승해 내각제 개헌 등을 통한 제도적인 정치권력 장악에 나설 것이다. 국회에서 삼성이 마음먹은 일이 성공하지 못한 일이 없었다.
  
  일곱째, 이상호 기자와 MBC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MBC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만 볼 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국민에게 방영하지도 않은 테이프를 검찰에 넘겨 준 것부터 잘못이다. 스스로 언론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지경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을 운운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런 경우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 아니다. 1971년 펜타곤 비밀보고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나, 1993년 교직원 간부 사이의 불법 도청 테이프를 방영한 펜실베니아의 한 라디오방송국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2001년 미 연방 대법원 판결 등을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여덟째, 다른 모든 언론사들도 '이건희 게이트' 보도에 관한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도둑질을 발견했으면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하물며 사실상의 쿠데타 기도를 적발했는데 '네가 먼저 발견했으니 너 혼자 처리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번 사건은 국민 알 권리 차원만의 문제도,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만도 아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쿠데타'로 볼 수 있는 사건이고, 나라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다. MBC는 테이프를 그대로 방영해야 한다. 최문순 사장의 고뇌에 찬 결단을 촉구한다.  
      
  신학림/전국언론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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