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은 노래한다] / 김연수 씀 / 문학과 지성사
문학보다는 사회과학을, 소설보다는 비소설류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워 소설 읽을 기회를 애써 외면하는 편이다.
이런 내가 김연수란 작가를 처음 독자로 만난 건 작년 말쯤이다.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하 네가 누구든)>이란
책을 보는데 역사적 배경은 좀 필요하나 과연 스타작가답다.
아는 것도 많고 문장도 끝내준다” 란 메일이 도착한 때.
구미를 돋우는 흥미로움에 이끌려 <네가 누구든..>을 구입해
밤사이 단숨에 읽게 된 게 그 때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다듬으며 한 장 한 장 넘겨야 할 만큼
현란하며 사변적인 문체들은
우연에 승한 역사의 필연을 따라가는 숨 가쁜 줄거리들과 만나
질릴 지경에 이르렀다.
마지막장 책을 덮으며 김연수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속단했다.
그러던 중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책을 권하고 있으니
역시 속단은 금물이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게 된 건 남한 최초 민생단 소설이라는
소재의 무게감과 독특성 외에도
그에 대한 찬사와 칭찬으로 도배한 언론의 힘도 컸으리라.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에서 대작가 박완서는
“김연수라는 작가를 질투하며 한편 존경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 한신대교수였던 김상일 교수 역시
“2008년 가을 내내 이 소설을 읽고 또 다시 읽는 것으로 보냈다”고 말하는가 하면,
「시사 IN」(2008년 12월 20일자)은
“김연수의 대표작은 늘 그의 최신작”이라 하면서,
“거시적 프레임과 미시적 집중력 사이에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균형감각은
경탄스럽다"라고 상찬했다.
이만하면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든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시끄러웠다.
불편한 진실의 단면을 보아 버린 까닭도 있겠고,
식민의 역사에서 쓰레기처럼 배출된 변태성과 마주해야하는 까닭도 있겠다.
그러나 가장 불편했던 점은 답이 없는 모호함이다. 진리의 불가지론이다.
한홍구 교수는 해제를 통해, 그 사건 자체가 깊이를 모를
혼돈과 암흑의 심연 속에서 벌어진 기막힌 모호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빛도 어둠도 아니면서 동시에 빛과 어둠의 모호한 세계"였기에
"정답이 없다"라고 했지만,
나는 읽는 내내 과연 그럴까? 의문의 부호를 달아야 했다.
김연수란 작가는 정의의 이름으로 성급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어제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행위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한 듯하다.
왜? 현재는 이미 변한 오늘이니까.
오독하지 않았다면 「작가의 말」을 통해 확인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p345)"
난 여전히, 과연 그럴까? 의심한다.
세상을 바꿔보려는 역사의 진보 위에 좌,우경 오류의 격랑을 헤치면서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몸부림과 상식의 깃발을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른 세계를 대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해독하기 어려운 진실의 모호함은 그대로 둔 채
먼발치에서 직시하며 재단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는지는 모르나
우리가 어제와 다른 세계를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는 짐짓 눈감은 듯 했다.
조정래의 소설과 다른 맛이 나는 이유다.
민생단은 끝났고 역사의 무덤 속에 잠들고 있다.
우리가 모른 척 눈감는다 하여도,
민생단을 끝내기 위한 숱한 눈물의 사연이 있었으리라.
옳고 그름을 알기 어려운 암흑 속 포연이 쓸고 간 자리에서도
정의의 이름을 굳이 들먹이지 않는다 해도,
눈물을 닦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끔찍한 노력이 있었으리라.
이 책에서는 전혀 그려지지 않은...혹은 그려질 필요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르는...
아쉬움과 허전함을 뒤로 하고 김연수 작가에게 고맙다.
일제치하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굽이굽이 역사의 물줄기에
어이 이름 없는 곡절과 사연이 있을까?
하 많은 역사가운데 동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
남쪽 뇌리에는 기억상실증처럼 절반의 땅, 절반의 역사로 완전히 지워진 반면
북쪽 뇌리에는 혈연적 대가족공동체를 맺는 트라우마와 상처(한홍구 해제 p337)로
남겨졌다고 한다면
김연수란 작가는 <밤은 노래한다>를 통해 망각한 혈로를 따라
단절된 역사를 이으려 시도한건지도 모른다.
4월의 봄, 한 번쯤 시간을 내어 그 아린 길을 천천히 산책함도 괜찮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