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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회가 체포결사대를 주시하는 이유- [홍세화의 파리통신]

작성일 2001.02.28 작성자 <노동과 세계> 조회수 3586
*** 이 글은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 137호(2001년 3월 5일자)에 실린 홍세화님의 칼럼입니다. 알려진 대로 홍세화님은 이번 체포대 파리출국을 계기로 <노동과 세계>의 파리특파원 구실을 자청해 이미 제1신을 보내온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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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의 파리통신]
프랑스사회가 체포결사대를 주시하는 건…

임명장 없는 <노동과 세계> '파리특파원'이 되어 김우중 체포결사대에 관련된 소식을 전합니다. 체포결사대가 프랑스에서 벌이고 있는 구체적인 활동에 대하여는 박점규 대원을 통해 자세히 전해 듣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프랑스인들이 체포결사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당신들 스스로 잘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당신들은 프랑스인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시민단체인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연대)의 사무총장 타타르코프스키씨의 이 말은 과장된 게 아닙니다. 체포결사대 관련 소식은 프랑스의 제2텔레비젼(공영), 제3텔레비젼(공영), LCI(뉴스전문 케이블텔레비젼), <카날+>텔레비젼방송과 RTL, 프랑스INFO 등의 라디오 방송, 그리고 가장 정평 있는 신문인 <르몽드>와 <리베라시옹> 등을 통해 크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LCI는 중계차를 동원하여 생방송을 내보내기도 했고, <카날+>는 르포를 만들기 위해 체포대를 따라다니며 취재하고 있습니다. 3월11일과 18일의 시의회 선거를 앞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체포결사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회에 대하여 제법 알고 있다고 믿어온 나 자신조차 놀랄만한 관심도이기에 그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관심을 보이게 된 일면에는 두 가지 특수한 사연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즉, 5년 전에 프랑스 국영기업인 톰슨 멜티미디어를 단 돈 1프랑에 매입하려 했던 회사가 바로 대우였다는 점(지금 톰슨은 흑자기업으로 돌아섰습니다)과, 프랑스 석유회사인 엘프(ELF)의 제2인자였던 사람으로 뇌물수수 행위를 저지른 뒤 필리핀에 도피했던 알프레드 시르벤이 최근 붙잡혀온 일이 김우중의 도피와 대비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역사상 최대 스캔들이라고 불려지는 알프레드 시르벤 부패사건에 관련된 금액은 한국 돈으로 십억대를 넘지 않습니다. 김우중이 해외로 빼돌린 돈이 25조원에 이른다고 말하면 "그게 정말이냐?"고 모두 깜짝 놀라 혀를 내두릅니다.
이 두 가지 사연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의 진보적인 여론이 대우 구조조정과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신자유주의의 희생물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여론은 프랑스에서 꽤 높습니다. 말하자면 프랑스인들에게 대우사태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구체적인 본보기가 됨으로써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보다 기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의 시각입니다. 즉, 노동자들 모두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당연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노동자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노동자라 생각지 않습니다. 간혹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만 의식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또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내면으로는 스스로 노동자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체포대원들은 프랑스 판사노조의 조언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판사에게도 노조가 있다? 경찰노조도 있으니 판사노조도 있음 직하지만 그래도 체포대원들은 판사노조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판사노조가 있다는 말은 곧 판사들 스스로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판사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사회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려)는 사회…. 이 차이를 이해해야만 먼 나라에서 온 체포결사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높은 관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사노조를 비롯한 노조운동가들, 인권운동가 뿐만아니라 유럽의회 의원 한 사람도 체포결사대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짐짓 찾아왔습니다. 나는 투쟁 중인 대우노동자들한테 한국의 국회의원이 찾아와 요구사항을 경청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르몽드> 기자는 세 명의 체포대원을 따로따로 집중 인터뷰하여 대우 사태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심층적으로 취재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일입니다만, 가령 한국에서 지하철 파업이 일어나면 한국의 언론들은 노동자들이 왜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즉 파업을 하게 된 원인과 배경은 거의 무시하고 오직 파업의 결과만을 부각시켜 보도하곤 합니다. 즉,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한국인 기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한국언론이 보수-수구적인 데에는 기자들의 노동자 인식이 부족한 탓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지 않을 때 노동자의 정치의식이 생겨날 리 없고 또 노동자간의 연대감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체포결사대에 대한 프랑스 판사노조의 연대 표명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홍세화님은 파리에 파견된 '김우중 체포결사대'의 안내·통역은 물론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 이들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아울러 <노동과 세계>의 '파리특파원' 구실을 자청해 체포대의 활동상황을 알려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홍세화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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