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1.7.23 7면에 실린 칼럼입니다.
[정동탑]단병호위원장을 위한 변명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24일째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이다. ‘노동탄압’에 대한 항의의 몸짓이지만 실은 경찰의 검거령을 피해 지도부와 함께 피신중이다. 며칠 전에는 성당측으로부터 이달말안으로 나가달라는 퇴거 통첩까지 받았다.
60만 노동자가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의 리더가 범법자로 전락해 경찰에 쫓기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다니, 안타깝다.
단위원장의 죄목은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1999년 형기 2개월을 남기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바 있다. 그 후 지난번 6·12 연대파업을 주도하면서 검찰이 형집행정지를 취소했고 다시 수배자 처지가 됐다.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온 그에게 도망자 생활이 새삼스러우랴. 필자가 사건기자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출입할 당시에도 그는 노태우 정권 밑에서 단골 수배자였다. 노동계 시위현장의 맨 앞줄에 언제나 그가 머리띠를 매고 있었다. 지금 민노총이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그때도 그의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던 모습이 선하다. 그 때문에 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과 서노협이 거처했던 남영동 주변에 경찰은 늘 수배망을 쳤고, 사건기자들은 그의 신출귀몰하던 행적을 쫓아다녔다.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그의 투쟁과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방법과 절차상의 위법성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노동운동도 바뀔 때가 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투쟁노선이 과격하고 원칙의 테두리를 벗어난다고 지적한다.
그렇더라도 현재 그의 노동운동을 법의 잣대로만 잴 수는 없지 않을까.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절박한 국가적 과제 앞에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철밥통’같은 일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에게야 실업자와 비정규직들의 불만, 민주노총과 같은 대리인 집단의 시위는 무능력자들이 벌이는 성가신 행동쯤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하지만 실업의 위기에 내몰려 있거나 하루 하루의 삶이 팍팍한 필부들에게는 그들은 노동3권을 대신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레이닝 스톤’(raining stones)을 본 독자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동네 실업자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고리채업자를 살해한 실업자 ‘밥’의 울먹이는 고해성사 말이다. 그는 세례식에 입고갈 딸의 옷을 장만할 돈을 빌렸다가 연체하게 되고 사채업자가 식구들에게 행패를 부리자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매일 기도했지만 하느님은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는 밥의 울부짖음 앞에 신부는 “당신이 한 행동은 정의”라며 고리채리스트를 불태우고 경찰 출두를 말리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민주노총과 정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다. 정부가 단위원장의 범법 사실을 들먹이며 대화자격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대화채널이 빨리 복원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노총 지도부에 대한 여권 수뇌부의 시각교정이 필요하다.
〈김해진 사회부차장 hjkim@kyunghyang.com〉
[정동탑]단병호위원장을 위한 변명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24일째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이다. ‘노동탄압’에 대한 항의의 몸짓이지만 실은 경찰의 검거령을 피해 지도부와 함께 피신중이다. 며칠 전에는 성당측으로부터 이달말안으로 나가달라는 퇴거 통첩까지 받았다.
60만 노동자가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의 리더가 범법자로 전락해 경찰에 쫓기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다니, 안타깝다.
단위원장의 죄목은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1999년 형기 2개월을 남기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바 있다. 그 후 지난번 6·12 연대파업을 주도하면서 검찰이 형집행정지를 취소했고 다시 수배자 처지가 됐다.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온 그에게 도망자 생활이 새삼스러우랴. 필자가 사건기자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출입할 당시에도 그는 노태우 정권 밑에서 단골 수배자였다. 노동계 시위현장의 맨 앞줄에 언제나 그가 머리띠를 매고 있었다. 지금 민노총이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그때도 그의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던 모습이 선하다. 그 때문에 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과 서노협이 거처했던 남영동 주변에 경찰은 늘 수배망을 쳤고, 사건기자들은 그의 신출귀몰하던 행적을 쫓아다녔다.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그의 투쟁과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방법과 절차상의 위법성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노동운동도 바뀔 때가 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투쟁노선이 과격하고 원칙의 테두리를 벗어난다고 지적한다.
그렇더라도 현재 그의 노동운동을 법의 잣대로만 잴 수는 없지 않을까.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절박한 국가적 과제 앞에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철밥통’같은 일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에게야 실업자와 비정규직들의 불만, 민주노총과 같은 대리인 집단의 시위는 무능력자들이 벌이는 성가신 행동쯤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하지만 실업의 위기에 내몰려 있거나 하루 하루의 삶이 팍팍한 필부들에게는 그들은 노동3권을 대신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레이닝 스톤’(raining stones)을 본 독자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동네 실업자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고리채업자를 살해한 실업자 ‘밥’의 울먹이는 고해성사 말이다. 그는 세례식에 입고갈 딸의 옷을 장만할 돈을 빌렸다가 연체하게 되고 사채업자가 식구들에게 행패를 부리자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게 된다. “매일 기도했지만 하느님은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는 밥의 울부짖음 앞에 신부는 “당신이 한 행동은 정의”라며 고리채리스트를 불태우고 경찰 출두를 말리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민주노총과 정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다. 정부가 단위원장의 범법 사실을 들먹이며 대화자격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대화채널이 빨리 복원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노총 지도부에 대한 여권 수뇌부의 시각교정이 필요하다.
〈김해진 사회부차장 h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