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병호 위원장이 옥중에서 민주노총 중앙 사무총국 식구들에게 보낸 편지 전문입니다.
사무총국 동지들께
청량한 가을 하늘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가을의 풍요가 메마른 수감자의 가슴에도 한 줄기 따사로운 정감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오늘 운동장에 나갔더니 어저께 뒤늦게 꽃을 피웠던 민들레가 떠나갈 길이 멀고 바쁜지 채비를 서두르는 듯 잎사귀가 노르스름하게 물들어 가더군요. 이제 높은 하얀 담벼락을 넘어 또 겨울은 찾아오겠지요.
동지들과 헤어진지 벌써 70일이 되었습니다. 허영구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동지들 그리고 사무총국의 모든 동지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죠? 동지들과 편지를 통해서 또 인편으로 그리고 매일노동뉴스 등 지면을 통해서 동지들의 활동소식 전해듣고 있습니다. 지금은 또 제 문제로 명동성당에서 임원들이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국에 새로운 동지가 함께 일하게 되었더군요. 비록 일면의 기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민주노총에서 일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4일부터 앞으로 얼마가 될지 아직은 기약할 수 없는 새로운 징역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의 아낌없는 애정과 염려가 있기에 항상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며칠간은 좀 황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가 사라진 데서 오는 작은 실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구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혼란과 실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잔여 형기가 끝나갈 무렵까지 검찰에서 소환하지 않아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모든 감정이 말끔히 정리되었습니다. 잠시나마 국가권력의 속성과 현 정권의 성격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동지들!
상당기간은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지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뿐이고 또 소망일 뿐, 이제 동지들의 활동을 조용히 지켜보며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록 떨어져 있지만 동지들과 항상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동지들!
앞으로는 직무대행인 허영구 수석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서 모든 사업이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사무총국 동지들 모두가 각별히 유념하고 또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들이 우리를 구속하고 수배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적 책임(저들은 불법적인 행위라고 말하지요)을 묻겠다는 것 보다 도리어 그렇게 함으로써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기게 하고 위협을 느껴 움추러 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탄압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아무리 구속하고 수배를 한다고 해도 우린 그 곳에 빈자리를 만들지 않고 힘있게 채워내는 것이 저들의 탄압으로부터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직무대행을 중심으로 해서 힘있게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당부 드립니다.
하반기에 많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서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교육·언론을 비롯한 개혁의 과제,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의 문제 등 제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과제와 그것의 중요성을 동지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11∼12일 중집위와 16일 대의원대회를 거쳐 이후 투쟁방향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동지들이 결정을 힘있게 집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정사항에 대한 통일적인 인식과 역량의 집중이야말로 사업의 승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대중조직의 다양성과 민주성의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정과 집행이 힘있게 연결되지 못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는 하지 않지만, 동의는 했지만 하는 태도를 보이며 방관함으로써 조직적 결정이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자유로운 토론과 결정에 대한 충실한 복무'라는 민주주의의 일반적 원칙을 저해하는 다양성의 요구는 조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조직의 최고 가치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통일된 인식과 방침하에 혼신의 열을 다하는 동지들의 활동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지들!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앞으로 나가서 일을 하게 되면 총국 동지들과 보다 많은 대화도 하고 술자리도 좀 자주 가져야겠다고 새삼 생각했더랬습니다. 철들 때는 늦었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한참이나 뒤로 미뤄둬야 할 것 같습니다.
떨어져 있는 기간이 비록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보다 큰 성숙과 많은 보람을 만드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아쉬움을 달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생활하고자 합니다. 항상 밝고 힘차게 살아갑시다. 동지들의 건투를 빕니다. 2001년 10월 6일 단병호
사무총국 동지들께
청량한 가을 하늘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가을의 풍요가 메마른 수감자의 가슴에도 한 줄기 따사로운 정감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오늘 운동장에 나갔더니 어저께 뒤늦게 꽃을 피웠던 민들레가 떠나갈 길이 멀고 바쁜지 채비를 서두르는 듯 잎사귀가 노르스름하게 물들어 가더군요. 이제 높은 하얀 담벼락을 넘어 또 겨울은 찾아오겠지요.
동지들과 헤어진지 벌써 70일이 되었습니다. 허영구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동지들 그리고 사무총국의 모든 동지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죠? 동지들과 편지를 통해서 또 인편으로 그리고 매일노동뉴스 등 지면을 통해서 동지들의 활동소식 전해듣고 있습니다. 지금은 또 제 문제로 명동성당에서 임원들이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국에 새로운 동지가 함께 일하게 되었더군요. 비록 일면의 기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민주노총에서 일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4일부터 앞으로 얼마가 될지 아직은 기약할 수 없는 새로운 징역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의 아낌없는 애정과 염려가 있기에 항상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며칠간은 좀 황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가 사라진 데서 오는 작은 실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구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혼란과 실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잔여 형기가 끝나갈 무렵까지 검찰에서 소환하지 않아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지금은 모든 감정이 말끔히 정리되었습니다. 잠시나마 국가권력의 속성과 현 정권의 성격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동지들!
상당기간은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지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뿐이고 또 소망일 뿐, 이제 동지들의 활동을 조용히 지켜보며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록 떨어져 있지만 동지들과 항상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동지들!
앞으로는 직무대행인 허영구 수석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서 모든 사업이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사무총국 동지들 모두가 각별히 유념하고 또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들이 우리를 구속하고 수배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적 책임(저들은 불법적인 행위라고 말하지요)을 묻겠다는 것 보다 도리어 그렇게 함으로써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기게 하고 위협을 느껴 움추러 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탄압이라고 규정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아무리 구속하고 수배를 한다고 해도 우린 그 곳에 빈자리를 만들지 않고 힘있게 채워내는 것이 저들의 탄압으로부터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직무대행을 중심으로 해서 힘있게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당부 드립니다.
하반기에 많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서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교육·언론을 비롯한 개혁의 과제,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의 문제 등 제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과제와 그것의 중요성을 동지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11∼12일 중집위와 16일 대의원대회를 거쳐 이후 투쟁방향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동지들이 결정을 힘있게 집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정사항에 대한 통일적인 인식과 역량의 집중이야말로 사업의 승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대중조직의 다양성과 민주성의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정과 집행이 힘있게 연결되지 못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는 하지 않지만, 동의는 했지만 하는 태도를 보이며 방관함으로써 조직적 결정이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자유로운 토론과 결정에 대한 충실한 복무'라는 민주주의의 일반적 원칙을 저해하는 다양성의 요구는 조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조직의 최고 가치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통일된 인식과 방침하에 혼신의 열을 다하는 동지들의 활동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지들!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앞으로 나가서 일을 하게 되면 총국 동지들과 보다 많은 대화도 하고 술자리도 좀 자주 가져야겠다고 새삼 생각했더랬습니다. 철들 때는 늦었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한참이나 뒤로 미뤄둬야 할 것 같습니다.
떨어져 있는 기간이 비록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보다 큰 성숙과 많은 보람을 만드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아쉬움을 달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생활하고자 합니다. 항상 밝고 힘차게 살아갑시다. 동지들의 건투를 빕니다. 2001년 10월 6일 단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