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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77번 수인의 낚싯대 - <한겨레21> 1월2일자

작성일 2002.01.07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2928
[논단] 한겨레21 2002년01월02일 제391호

77번 수인의 낚싯대

그의 오른쪽 가슴에는 표찰이 붙어 있다. 4상1. 그것은 그가 거주하는 주거 겸용 원룸 오피스텔의 동과 호수다. 4동 상1방에서 그는 하루 24시간을 보낸다. 왼쪽 가슴에는 77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다. 오피스텔 입주자 번호다.

경기도 군포에 있는 서울구치소 4동 상1방에 거주하고 있는 77번 수인, 그의 이름은 단병호다. 20세기의 마지막 태양이 저물어가는 것을 그는 감옥의 창살 너머로 지켜보았고, 21세기 첫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감옥의 창살 너머로 지켜보았다.

1987년 노동자항쟁의 물결 속에서 동아건설 창동지부장으로 노동운동의 일선에 나선 그는 지금 여섯 번째 징역을 살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고통에 비해 투쟁은 온건했다


한 나라의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사람이 감옥에 갇힌 채 해를 넘기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아주 태연하다. 정치적 쟁점조차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노동운동가가 여섯 번째 징역을 살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민주노총의 위원장이라고 해서 구속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는 법을 어겼기 때문에 구속될 수밖에 없었고, 또 지나치게 비타협적이어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가 대표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지금 어떤 사람들을 대표해서 그가 갇혀 있는가?

IMF체제의 도래와 함께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치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것이었는가는 새삼스럽게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사회적 안전장치라고는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대책없이 직장에서 내쫓겼으며,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는가.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쓰라림에 비교해서 그들의 투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온건했다. 폭동이 있었는가, 테러가 있었는가, 린치가 있었는가. 도대체 노동자들이 그 이상 더 어떻게 온순하기를 바랄 수 있으며 민주노총과 그 위원장인 단병호가 그 이상 더 어떻게 타협적이기를 바란단 말인가.

노동자들은 3년 넘게 한국사회의 고통을 최종적으로 전담하며 견뎌냈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희망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아파트값의 폭등으로 강남의 집 가진 사람들이 수천만, 수억원의 재산을 불렸다는 얘기를 들으며 내년에 올려주어야 할 전셋값 걱정으로 눈앞이 캄캄하기만 한 그들이다.

정쟁으로 해가 뜨고 날이 지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줄 정치인 한명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다가 단병호 위원장은 여섯 번째 별을 달았다. 단병호 위원장만이 아니다. 최대의 산업별 노동자 조직인 금속산업연맹의 문성현 위원장도 같은 구치소에 수인번호 8번을 달고 역시 6성 장군이 되어 갇혀 있다. 한국통신 계약직노조의 임경상씨는 국회에서 항의시위를 한 혐의로 수인번호 3406번을 달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한석호 금속연맹 조직실장은 5009번의 수인번호를 달고 인천구치소에 수감중이며 류성석 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은 수인번호 27번을 달고 울산구치소에 수감중이다. 지난 한해에만도 24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구속되었고 이 순간에도 50여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감옥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자기 하나만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다가 거기에 가 있는 노동자들은 아무도 없다. 지금 감옥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이타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길게는 산업화의 전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희생했고 짧게는 지난 몇년간의 경제위기 아래에서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한 노동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에 속한다.


최소한의 예의, 그것은…


우리 사회는 단병호 위원장이 6번의 감옥살이를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을 수배에 쫓겨다니는 동안 그 가족이 치렀을 고통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부인이 야채가게를 하며 가계를 책임져야 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지 못한 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언제나 미안한 아들과 오붓한 부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작정하고 장만한 단병호 위원장의 낚싯대는 제대로 한번 사용되어보지도 못한 채 녹슬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감옥을 나와 먼지 낀 낚시가방을 들고 아들과 함께 겨울낚시를 떠나는 뒷모습을 담은 사진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노동자들이 발견할 수 있다면…. 나쁠까?


방현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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