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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피도 눈물도 없는' 민영화 - 경향 <유시민 칼럼>

작성일 2002.03.26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2186
[유시민칼럼]‘피도 눈물도 없는’민영화 - 경향신문 2002.03.27

〈시사평론가〉


24일 밤 발전노조 파업 노조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던 연세대 정문 앞은 화염병이 춤추는 불바다였다. 그 자신이 한때 해고 노동자였던 방용석 노동부장관의 파업 중단 호소와 몇몇 야당 국회의원들의 중재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다음날 새벽 파업 노동자보다 더 많은 경찰 진압병력이 진입해 농성을 분쇄했고, 6개 발전회사 사장단은 이미 해고한 197명과 해고절차를 진행중인 404명뿐만 아니라, 25일 아침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3,912명에 대해서도 해고 절차에 들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조원 5,591명 가운데 4,500여명이 직장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노사정위원회를 도입한 사람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노사관계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5일 근무제를 비롯한 노동자 복지 증진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도 자신이 사용자가 되면 달라지는 모양이다. 여섯개의 회사로 독립한 발전회사들은 한전의 자회사다. 한전은 정부가 지배주주로 있는 공기업이다. 직접 사용자 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나가지는 않지만 대통령은 발전산업의 사용자를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런가. 지난 3월19일 발전노조 파업에 대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우리가 지난 시대에 흔히 보았던 재벌 총수나 공안당국자들의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발전노조 파업은 부당하고 불법적인 파업이다. 발전산업 민영화는 절대 철회해서는 안된다. 노조가 경영에 간섭해서는 안되고 그럴 권리도 없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계속하거나 일하려는 노동자까지 견제하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거나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올 한해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성의 있는 대화를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라는 지시는 순전히 ‘면피용’에 불과했다. 노동부와 산자부 등 관련 부처 책임자들이 한 ‘성의 있는 대화’는 공권력 투입 경고와 해고 위협이 전부였다. 대통령이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는데 감히 어느 누가 딴 소리를 할 수 있으랴.

정부는 불법파업이라 ‘법대로’ 경찰력을 동원했다. 발전회사 사용자들은 역시 ‘법대로’ 파업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파업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 노조원들의 재산을 남김없이 압류하려고 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중심을 잡고 정정당당하게 대응해 나가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가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고’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노동조합 섬멸정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좋다. ‘법대로’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놈의 ‘법대로’가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한테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접어두자. 하지만 발전산업에 대한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인식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발전산업이 계속 적자를 내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정부는 시장원리에 따라 확실히 해나갈 것이다”

도대체 언제 발전산업이 적자를 냈다는 말인가. 한국전력은 부실 공기업이 아니다. 한전은 지난 4년 동안 해마다 1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냈다. 시장원리에 따른다는 것도 그렇다. 독점 공기업을 민간 독점기업으로 바꾸면 공기업 특유의 비효율성은 제거할 수 있겠지만 그 대신 소비자인 국민은 시장을 지배하는 민간 독점기업에 착취당할 위험에 노출된다.

나는 대통령이 왜 그토록 민영화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설혹 발전산업 민영화가 국민경제에 약간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할지라도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공기업 민영화가 경제개혁의 잣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


〈유시민 warum@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2년 03월 26일 20: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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