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2002.06.12 성명서 1 >
여성 60명 집단단식 돌입
- 한국시그네틱스노동자들 11일 오전9시 여의도 노사정위 사무실 진입
- 파주 대신 출퇴근 3시간 거리 안산공장 출근 강요 … 사실상 정리해고
- 아이 딸린 아줌마들 유례 찾기 힘든 벼랑 끝 투쟁
1. 아이가 딸린 기혼 여성 60명이 무기한 집단단식에 들어가는 사상 유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0일 명동성당에서 단식에 들어간 한국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오늘 6월 12일 오전 9시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에 진입해 파주공장 고용 약속을 깨고 노동자들 일자리를 뺏은 영풍그룹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 마치 79년 YH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을 연상케 하는 시그네틱스 여성 60명의 집단 단식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부가 즉각 대책을 마련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정부는 사태를 방관해오던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는 영풍그룹 기업주를 즉각 구속하고 노동현장에서 상식이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계속 이번 사태를 방관한다면 어떤 사태가 올지 알 수 없으며 그 모든 책임은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기력하게 팔짱만 끼고 있는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에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3. 애기엄마들의 집단단식은 1년여를 끌어온 영풍그룹의 약속 위반과 집단 해고, 사용주의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방치해온 정부 노동행정에 맞선 처절한 벼랑끝 선택입니다. 회사는 빚을 갚기 위해 서울 염창동 공장부지를 팔고 대신 파주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단체협약까지 맺어놓고는 출퇴근 시간만 3시간이 넘는 안산공장에 출근할 것을 강요해 사실상 정리해고한 뒤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행정당국 또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방관해왔습니다. 파주공장 계속 고용을 요구하며 싸워온 지 오늘로 325일째,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가 고용한 용역깡패에 두들겨 맞고 어린이집을 강제폐쇄당하고 한강고공농성을 벌이고 심지어 경찰서에 끌려가 알몸수색까지 당하며 처절한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정부는 기혼여성 60명 집단단식이라는 사상초유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 최대한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정부당국이 끝내 수수방관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투쟁해나갈 것입니다. <끝>
* 자료 1
여성노동자들 한강대교 고공에서 밤샌 이유
한강대교 꼭대기에서 드리워 바람에 휘날리는 두 개의 현수막. 죽어가는 회사 살렸더니 전원해고 웬말이냐”“영풍그룹 장형진 회장은 파주 이전 이행하라”플래카드 위쪽 끝 한강대교 꼭대기에 네 명의 여성이 올라섰다. 출근 길 교통체증에 짜증난 일부 시민의 말처럼 이들은 정말 독하고 미쳤는가? “맞습니다. 물러서지 않으려면 우린 더 독해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러서면 우리 아이들도 가진 자들의 노예밖에 될 수 없을 거예요.”
고용안정투쟁 300일을 맞은 지난달 15일 금속노조 서울지부장과 옥중 조합원 등 3인의 단식으로 시작된 시그네틱스 여성 조합원들의 단식투쟁은 마침내 5월20일 여성 노동자의 ‘한강대교 고공시위’라는 목숨을 건 극한투쟁으로 이어졌고, 29일에는 4명의 여성 노동자가 밤을 새워 21시간 동안 한강대교 고공시위를 단행했다. 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310일 넘게 싸워야 하고 또 왜 이런 극한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한국시그네틱스 노동조합은 아이엠에프 사태 중인 1998년 거평그룹 계열사 시절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30년간 일해온 서울 염창동 공장 터를 팔아서 회사 빚을 갚고 파주공장으로 이전하기로 회사 쪽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파주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전제로 상여금 300%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호봉승급 6개월분 반납, 휴가 12개 반납, 주택자금 등 각종 복지제도 중단 등의 고통분담을 수용했다. 그러나 2000년 한국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영풍그룹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노동조합과의 협약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안산으로의 공장 이전 강행을 합의하면서 한국시그네틱스 사태는 시작되었다. 생활 근거지가 대부분 염창동 서울공장 근처이고, 직장 탁아시설에 아이를 맡겨야 하며, 밤 10시나 새벽 6시에 교대하는 근로조건에서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출퇴근 시간만 하루 3시간 이상이 걸리는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파주가 아닌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한 회사 쪽의 목적은, 조합원의 70%에 이르는 기혼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모성보호 비용 부담을 회피하자는 것이다. 안산공장에서는 실제로 여고 실습생이나 비정규직 등 저임금 미숙련 채용으로 고용부담을 줄이고 있으며, 여고 실습생의 팔목이 잘리는 등 심각한 산재사고와 은폐기도가 벌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고용보장인 ‘파주 이전’을 위한 노조원들의 10개월이 넘는 끈질긴 투쟁에 대해 회사는 근로기준법상의 기본적인 해고회피 노력은 하지 않고, 용역 깡패와 포클레인을 동원한 수차례의 농성장 침탈과 폭행, 조합원 91명에 대한 재산 가압류, 두차례에 걸친 직장내 탁아소 철거, 쟁의 참가자 101명 전원 해고통보, 지도부에 대한 연이은 구속과 수배 등, 직간접의 모든 폭압적인 방식을 동원해 왔다. 그러더니 마침내 지난 4월2일 합법집회 중인 여성 노조원 20명이 강제 연행되어 그 중 7명이 구로경찰서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고, 심지어 1명은 생리혈이 흐르는 중에도 팬티와 생리대까지 벗기는 어이없고 치욕적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담당검사 김병현은 “그렇게 인권 유린을 당해야 재범을 하지 않는다”느니 “못 배워서 공순이밖에 못한다”느니 “태도가 불량해서 벌금을 올려야겠다”느니 하며 치욕에 떠는 여성들의 자존심을 짓뭉개는 파렴치한 행태를 계속해 왔다. 이러한 탄압과 치욕에 맞서 조합원들이 노동부, 여성부, 경찰청,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쫓아다녔지만 그들의 항변을 들어주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최근엔 신문사와 방송사들도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맞아 그들의 기나긴 투쟁에 먼저 지루해하며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 국면을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번째가, 임영숙 부지회장의 지방선거 서울 비례대표(민주노동당후보) 출마다. 투쟁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정치운동으로 발전해야 함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며, 지방선거를 맞아 자신들의 투쟁을 정치적이고 적극적으로 서울 전역에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어진 단식투쟁과 고공시위는 그들의 정당한 구호 “가자, 파주로!”를 귀막고 눈감은 세상을 향해 목숨걸고 외치는 막다른 선택이다. 최현숙/ 시그네틱스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 위원 [한겨레 6.5 왜냐면 투고글]
* 자료 2
한국시그네틱스 사태 전말
한국시그네틱스 노사 문제로 인해 300여일 넘게 여성 노동자들이 정든 일터,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몰려 있다. 2001년 4월 이후 한국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은 영풍그룹과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의 민주노조 파괴공작에 맞서 파주이전 수용, 민주노조 사수를 요구로 투쟁해왔다. 하지만 영풍과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업에 참여한 백여명이 넘는 조합원 전원을 해고시켰고, 지회장을 비롯한 2명 구속, 4명을 수배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시그네틱스 조합원은 지난 IMF 시절 산업은행과 영풍그룹,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의 워크아웃 약정서 요구시 상여금 반납, 각종 복지혜택 반납등 회사를 살리기 위한 고통분담을 감수하였다. 당시 산업은행과 영풍그룹,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은 조합원에게 파주공장 이전을 확약하였다. 하지만 약정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투자계획과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안산공장으로 이전을 강요하였다.
한편 우리 여성노동자는 300여일 동안 청와대, 노동부를 찾아가며 노사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영풍그룹과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이 벌이고 있는 노조탄압을 중지하고 파주이전 등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노사문제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어떠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IMF 시절 어려운 회사를 살리고자 고통분담을 감수한 노동자에게 해고와 구속의 쇠사슬을 옭아매는 현 정부의 노동운동탄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대다수가 국민인데 이러한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시그네틱스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영풍그룹, 그리고 산업은행의 적극적인 노력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약속된 파주이전을 이행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금속노조 한국시그네틱스지회]
* 자료 3 - 한겨레 21 [ 사람과 사회 ] 2002년06월05일 제412호
한강대교 아치 위에 걸린 절규
- 한국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호소…단체협약 어기고 근무 불가능한 곳으로 공장 이전하다니…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지난 5월29일 오후 5시. 강바람이 불어오는 10m 높이의 서울 한강대교 아치 위를 4명의 여성들이 사다리에 의지해 올라갔다. 아찔한 그 위에서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플래카드 4장을 내걸었다. “죽어가는 회사 살렸더니 정리해고 웬말이냐.” “장형진 회장은 파주 이전 수용하라.” 아치 아래에는 노조원 100여명이 모여 이들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이들은 반도체 조립회사인 한국시그네틱스의 여성 노동자인 임영숙(35), 윤민례(34), 정승현(34), 이미경(32)씨다. 아이가 둘셋씩인 이 ‘아줌마’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99년 회사가 노조와 약속한 임단협을 지켜 폐쇄된 서울공장 노동자들을 파주공장에서 고용해 달라는 것뿐이다. 회사의 실제 소유주인 영풍그룹이 약속을 지키라며 지난해 7월23일 파업을 시작한 166명의 조합원들은 파업 300일을 넘긴 지금 모두 해고된 상태다.
회사 살리려 고통분담 했건만
곧이어 어둠이 깔리고 쌀쌀해진 밤공기가 밀려들었지만 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밤샘농성을 벌였다.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사다리차를 타고 아치에 올라간 윤민례씨의 남편 김선희(37)씨는 “아내에게 내려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내가 내려가면 후대에도 노동자는 가진 자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애들의 미래를 위해서 내려갈 수 없다’고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66년 설립된 한국시그네틱스는 꼼꼼하고 섬세해야 하는 반도체 조립의 특성상 생산직의 70% 이상이 여성들이며, 대부분이 10∼20년씩 이곳에서 일해온 기혼 노동자다. 필립스 계열이던 회사를 95년 인수한 거평그룹이 무리하게 부채를 끌어 파주에 대형 공장을 짓다가 98년 구제금융 위기를 맞아 워크아웃 기업이 되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상여금 300%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호봉승급 6개월분 반납, 주택자금 등 복지제도 중단 등의 고통분담에 동의했다. 그리고 서울 염창동 공장 부지를 팔아서 회사 빚을 갚고 파주공장으로 이전하자는 회사 계획에 따라 파주공장으로 옮겨 계속 고용을 하기로 회사 쪽과 99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0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한 ‘모범생’이 된 회사를 채권은행이 나서 영풍그룹에 매각한 뒤 문제가 생겼다. 회사가 노조와의 협약을 무시하고 안산으로의 공장 이전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생활근거지가 대부분 서울공장 근처이고, 밤 10시나 새벽 6시에 교대하는 근로조건에서 가사·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만 하루 3시간 넘게 걸리는 안산공장 이전이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였다.
게다가 노조가 2001년 5월 입수한 투자계획서에서 파주공장에는 300억원의 투자계획이 잡혀 있지만 안산공장에는 투자계획이 전혀 없는 것이 확인됐다. 회사의 주력인 파주공장은 현재 생산직 450여명 모두 시그네틱스가 99.7%의 주식을 가진 하청회사 STI에 소속돼 간접고용 용역직으로 일하고 있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에도 인력업체를 통해 용역직을 계속 충원하는 광고를 냈다.
이 때문에 노조는 회사가 생산능력도 거의 없는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을 발표한 것은 서울공장의 노조를 깨고 기혼여성 장기 근속자들을 정리해고하려는 조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영풍그룹은 “그룹은 책임이 없으며 시그네틱스 양수재 사장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양 사장은 “인사권은 사장의 권한인데 무조건 가라면 가는 것”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용역깡패의 가혹한 린치
파업은 노조원들에게 가혹했다. 서울공장에서 철야농성을 하던 지난해 8월9일 새벽에는 100여명의 용역깡패들이 들어와 노조원들을 폭행하고 성추행했다. 올해 2월에는 회사가 30여명의 아이들이 다니던 직장 어린이집을 두번에 걸쳐 완전히 부숴버렸다.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노조 간부 6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조합원 91명이 재산을 가압류당했다. 4월2일에는 채권단인 산업은행 앞에서 항의농성을 벌이다 연행된 여성 노조원 가운데 7명이 구로경찰서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농성 시작 이튿날 오전 경찰이 노조원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아치 위에 있던 이들은 “노조원들을 다치게 하면 뛰어내릴 것”이라고 절규했다. 결국 경찰이 영풍그룹에 연락해 회사가 6월1일 면담을 약속하고서야 내려온 이들은 용산경찰서로 곧장 연행됐다. 아치 위 농성 시작 21시간 만이었다. 영풍그룹 쪽은 약속한 면담일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룹 쪽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지구촌 축제는 막이 올랐다. <끝>
여성 60명 집단단식 돌입
- 한국시그네틱스노동자들 11일 오전9시 여의도 노사정위 사무실 진입
- 파주 대신 출퇴근 3시간 거리 안산공장 출근 강요 … 사실상 정리해고
- 아이 딸린 아줌마들 유례 찾기 힘든 벼랑 끝 투쟁
1. 아이가 딸린 기혼 여성 60명이 무기한 집단단식에 들어가는 사상 유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0일 명동성당에서 단식에 들어간 한국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오늘 6월 12일 오전 9시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에 진입해 파주공장 고용 약속을 깨고 노동자들 일자리를 뺏은 영풍그룹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 마치 79년 YH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을 연상케 하는 시그네틱스 여성 60명의 집단 단식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부가 즉각 대책을 마련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정부는 사태를 방관해오던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는 영풍그룹 기업주를 즉각 구속하고 노동현장에서 상식이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계속 이번 사태를 방관한다면 어떤 사태가 올지 알 수 없으며 그 모든 책임은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기력하게 팔짱만 끼고 있는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에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3. 애기엄마들의 집단단식은 1년여를 끌어온 영풍그룹의 약속 위반과 집단 해고, 사용주의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방치해온 정부 노동행정에 맞선 처절한 벼랑끝 선택입니다. 회사는 빚을 갚기 위해 서울 염창동 공장부지를 팔고 대신 파주공장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단체협약까지 맺어놓고는 출퇴근 시간만 3시간이 넘는 안산공장에 출근할 것을 강요해 사실상 정리해고한 뒤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행정당국 또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를 방관해왔습니다. 파주공장 계속 고용을 요구하며 싸워온 지 오늘로 325일째,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가 고용한 용역깡패에 두들겨 맞고 어린이집을 강제폐쇄당하고 한강고공농성을 벌이고 심지어 경찰서에 끌려가 알몸수색까지 당하며 처절한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정부는 기혼여성 60명 집단단식이라는 사상초유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 최대한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정부당국이 끝내 수수방관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투쟁해나갈 것입니다. <끝>
* 자료 1
여성노동자들 한강대교 고공에서 밤샌 이유
한강대교 꼭대기에서 드리워 바람에 휘날리는 두 개의 현수막. 죽어가는 회사 살렸더니 전원해고 웬말이냐”“영풍그룹 장형진 회장은 파주 이전 이행하라”플래카드 위쪽 끝 한강대교 꼭대기에 네 명의 여성이 올라섰다. 출근 길 교통체증에 짜증난 일부 시민의 말처럼 이들은 정말 독하고 미쳤는가? “맞습니다. 물러서지 않으려면 우린 더 독해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러서면 우리 아이들도 가진 자들의 노예밖에 될 수 없을 거예요.”
고용안정투쟁 300일을 맞은 지난달 15일 금속노조 서울지부장과 옥중 조합원 등 3인의 단식으로 시작된 시그네틱스 여성 조합원들의 단식투쟁은 마침내 5월20일 여성 노동자의 ‘한강대교 고공시위’라는 목숨을 건 극한투쟁으로 이어졌고, 29일에는 4명의 여성 노동자가 밤을 새워 21시간 동안 한강대교 고공시위를 단행했다. 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310일 넘게 싸워야 하고 또 왜 이런 극한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한국시그네틱스 노동조합은 아이엠에프 사태 중인 1998년 거평그룹 계열사 시절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30년간 일해온 서울 염창동 공장 터를 팔아서 회사 빚을 갚고 파주공장으로 이전하기로 회사 쪽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파주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전제로 상여금 300%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호봉승급 6개월분 반납, 휴가 12개 반납, 주택자금 등 각종 복지제도 중단 등의 고통분담을 수용했다. 그러나 2000년 한국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영풍그룹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노동조합과의 협약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안산으로의 공장 이전 강행을 합의하면서 한국시그네틱스 사태는 시작되었다. 생활 근거지가 대부분 염창동 서울공장 근처이고, 직장 탁아시설에 아이를 맡겨야 하며, 밤 10시나 새벽 6시에 교대하는 근로조건에서 가사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출퇴근 시간만 하루 3시간 이상이 걸리는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파주가 아닌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한 회사 쪽의 목적은, 조합원의 70%에 이르는 기혼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모성보호 비용 부담을 회피하자는 것이다. 안산공장에서는 실제로 여고 실습생이나 비정규직 등 저임금 미숙련 채용으로 고용부담을 줄이고 있으며, 여고 실습생의 팔목이 잘리는 등 심각한 산재사고와 은폐기도가 벌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고용보장인 ‘파주 이전’을 위한 노조원들의 10개월이 넘는 끈질긴 투쟁에 대해 회사는 근로기준법상의 기본적인 해고회피 노력은 하지 않고, 용역 깡패와 포클레인을 동원한 수차례의 농성장 침탈과 폭행, 조합원 91명에 대한 재산 가압류, 두차례에 걸친 직장내 탁아소 철거, 쟁의 참가자 101명 전원 해고통보, 지도부에 대한 연이은 구속과 수배 등, 직간접의 모든 폭압적인 방식을 동원해 왔다. 그러더니 마침내 지난 4월2일 합법집회 중인 여성 노조원 20명이 강제 연행되어 그 중 7명이 구로경찰서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고, 심지어 1명은 생리혈이 흐르는 중에도 팬티와 생리대까지 벗기는 어이없고 치욕적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담당검사 김병현은 “그렇게 인권 유린을 당해야 재범을 하지 않는다”느니 “못 배워서 공순이밖에 못한다”느니 “태도가 불량해서 벌금을 올려야겠다”느니 하며 치욕에 떠는 여성들의 자존심을 짓뭉개는 파렴치한 행태를 계속해 왔다. 이러한 탄압과 치욕에 맞서 조합원들이 노동부, 여성부, 경찰청,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쫓아다녔지만 그들의 항변을 들어주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최근엔 신문사와 방송사들도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맞아 그들의 기나긴 투쟁에 먼저 지루해하며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 국면을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번째가, 임영숙 부지회장의 지방선거 서울 비례대표(민주노동당후보) 출마다. 투쟁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정치운동으로 발전해야 함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며, 지방선거를 맞아 자신들의 투쟁을 정치적이고 적극적으로 서울 전역에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어진 단식투쟁과 고공시위는 그들의 정당한 구호 “가자, 파주로!”를 귀막고 눈감은 세상을 향해 목숨걸고 외치는 막다른 선택이다. 최현숙/ 시그네틱스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 위원 [한겨레 6.5 왜냐면 투고글]
* 자료 2
한국시그네틱스 사태 전말
한국시그네틱스 노사 문제로 인해 300여일 넘게 여성 노동자들이 정든 일터,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몰려 있다. 2001년 4월 이후 한국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은 영풍그룹과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의 민주노조 파괴공작에 맞서 파주이전 수용, 민주노조 사수를 요구로 투쟁해왔다. 하지만 영풍과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업에 참여한 백여명이 넘는 조합원 전원을 해고시켰고, 지회장을 비롯한 2명 구속, 4명을 수배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시그네틱스 조합원은 지난 IMF 시절 산업은행과 영풍그룹,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의 워크아웃 약정서 요구시 상여금 반납, 각종 복지혜택 반납등 회사를 살리기 위한 고통분담을 감수하였다. 당시 산업은행과 영풍그룹,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은 조합원에게 파주공장 이전을 확약하였다. 하지만 약정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투자계획과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안산공장으로 이전을 강요하였다.
한편 우리 여성노동자는 300여일 동안 청와대, 노동부를 찾아가며 노사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영풍그룹과 한국시그네틱스 사측이 벌이고 있는 노조탄압을 중지하고 파주이전 등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정부의 노사문제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어떠한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IMF 시절 어려운 회사를 살리고자 고통분담을 감수한 노동자에게 해고와 구속의 쇠사슬을 옭아매는 현 정부의 노동운동탄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대다수가 국민인데 이러한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시그네틱스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영풍그룹, 그리고 산업은행의 적극적인 노력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약속된 파주이전을 이행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금속노조 한국시그네틱스지회]
* 자료 3 - 한겨레 21 [ 사람과 사회 ] 2002년06월05일 제412호
한강대교 아치 위에 걸린 절규
- 한국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의 호소…단체협약 어기고 근무 불가능한 곳으로 공장 이전하다니…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지난 5월29일 오후 5시. 강바람이 불어오는 10m 높이의 서울 한강대교 아치 위를 4명의 여성들이 사다리에 의지해 올라갔다. 아찔한 그 위에서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플래카드 4장을 내걸었다. “죽어가는 회사 살렸더니 정리해고 웬말이냐.” “장형진 회장은 파주 이전 수용하라.” 아치 아래에는 노조원 100여명이 모여 이들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이들은 반도체 조립회사인 한국시그네틱스의 여성 노동자인 임영숙(35), 윤민례(34), 정승현(34), 이미경(32)씨다. 아이가 둘셋씩인 이 ‘아줌마’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99년 회사가 노조와 약속한 임단협을 지켜 폐쇄된 서울공장 노동자들을 파주공장에서 고용해 달라는 것뿐이다. 회사의 실제 소유주인 영풍그룹이 약속을 지키라며 지난해 7월23일 파업을 시작한 166명의 조합원들은 파업 300일을 넘긴 지금 모두 해고된 상태다.
회사 살리려 고통분담 했건만
곧이어 어둠이 깔리고 쌀쌀해진 밤공기가 밀려들었지만 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밤샘농성을 벌였다.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사다리차를 타고 아치에 올라간 윤민례씨의 남편 김선희(37)씨는 “아내에게 내려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내가 내려가면 후대에도 노동자는 가진 자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애들의 미래를 위해서 내려갈 수 없다’고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66년 설립된 한국시그네틱스는 꼼꼼하고 섬세해야 하는 반도체 조립의 특성상 생산직의 70% 이상이 여성들이며, 대부분이 10∼20년씩 이곳에서 일해온 기혼 노동자다. 필립스 계열이던 회사를 95년 인수한 거평그룹이 무리하게 부채를 끌어 파주에 대형 공장을 짓다가 98년 구제금융 위기를 맞아 워크아웃 기업이 되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상여금 300%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호봉승급 6개월분 반납, 주택자금 등 복지제도 중단 등의 고통분담에 동의했다. 그리고 서울 염창동 공장 부지를 팔아서 회사 빚을 갚고 파주공장으로 이전하자는 회사 계획에 따라 파주공장으로 옮겨 계속 고용을 하기로 회사 쪽과 99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0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한 ‘모범생’이 된 회사를 채권은행이 나서 영풍그룹에 매각한 뒤 문제가 생겼다. 회사가 노조와의 협약을 무시하고 안산으로의 공장 이전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생활근거지가 대부분 서울공장 근처이고, 밤 10시나 새벽 6시에 교대하는 근로조건에서 가사·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만 하루 3시간 넘게 걸리는 안산공장 이전이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였다.
게다가 노조가 2001년 5월 입수한 투자계획서에서 파주공장에는 300억원의 투자계획이 잡혀 있지만 안산공장에는 투자계획이 전혀 없는 것이 확인됐다. 회사의 주력인 파주공장은 현재 생산직 450여명 모두 시그네틱스가 99.7%의 주식을 가진 하청회사 STI에 소속돼 간접고용 용역직으로 일하고 있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에도 인력업체를 통해 용역직을 계속 충원하는 광고를 냈다.
이 때문에 노조는 회사가 생산능력도 거의 없는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을 발표한 것은 서울공장의 노조를 깨고 기혼여성 장기 근속자들을 정리해고하려는 조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영풍그룹은 “그룹은 책임이 없으며 시그네틱스 양수재 사장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양 사장은 “인사권은 사장의 권한인데 무조건 가라면 가는 것”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용역깡패의 가혹한 린치
파업은 노조원들에게 가혹했다. 서울공장에서 철야농성을 하던 지난해 8월9일 새벽에는 100여명의 용역깡패들이 들어와 노조원들을 폭행하고 성추행했다. 올해 2월에는 회사가 30여명의 아이들이 다니던 직장 어린이집을 두번에 걸쳐 완전히 부숴버렸다.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노조 간부 6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조합원 91명이 재산을 가압류당했다. 4월2일에는 채권단인 산업은행 앞에서 항의농성을 벌이다 연행된 여성 노조원 가운데 7명이 구로경찰서에서 알몸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농성 시작 이튿날 오전 경찰이 노조원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아치 위에 있던 이들은 “노조원들을 다치게 하면 뛰어내릴 것”이라고 절규했다. 결국 경찰이 영풍그룹에 연락해 회사가 6월1일 면담을 약속하고서야 내려온 이들은 용산경찰서로 곧장 연행됐다. 아치 위 농성 시작 21시간 만이었다. 영풍그룹 쪽은 약속한 면담일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룹 쪽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지구촌 축제는 막이 올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