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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난 현대자동차를 살거다

작성일 2003.08.14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3344
[한겨레 2003.8.14 김선주 논설위원 칼럼]

난 현대자동차를 살거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13년차 고졸 생산직 노동자의 연봉이 6천만원이라면서 개탄하고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사정과 기업환경이 얼마나 어려운데 ‘전투적 노조’가 자기들의 배만 불렸다고 노조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거기에 동의한 사용자 쪽은 무책임한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저런 우려와 파장을 충분히 감안한대도 여론의 초점이 고졸 생산직이라는 직종이 이렇게 연봉이 많아서야라며 ‘고졸 생산직’에 맞춰져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도 드물 것이다. 고졸과 대졸은 엄연한 계급이다. 고졸 출신이라는 딱지는 어떤 사람이 취업하고 평생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낙인처럼 따라다닌다. 대통령이 그 어렵다는 사시를 통과해 변호사 경력을 가졌어도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대학 4년의 과정을 마쳤다는 거 그거 만만히 볼 일이 아니야’ 하며 대통령이 고졸 출신임을 들먹이는 식자들도 꽤 많다. 엊그제 나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고졸과 대졸 간의 임금차이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대졸자를 100으로 잡았을 때 고졸자는 대졸자의 56%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통계를 비웃듯 고졸 생산직 노동자들이 대졸 사무직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데 대해 마땅찮아하는 여론에는 학력을 숭상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알고 보면 연봉 6천만원이라는 것도 허수이며, 실제 본봉은 135만원이고, 각종 수당을 전부 챙겨서 최고로 받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2003년도에 인문계 고교의 대학 진학률이 90%를 넘어섰다. 실업계 고교의 대학 진학률도 60%에 이른다. 실업고는 중도탈락률도 높고 늘 정원 미달이다. 대안으로 자리잡은 특성화 고교는 입시 경쟁률이 인문계보다 훨씬 높다. 애초에 직업교육을 시킨다는 취지와 달리 대학 진학을 쉽게 하기 위한 특수학교로 변질되고 있다. 대학입시에서도 실업고 출신을 정원외 일정 비율을 뽑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온국민이 대졸자가 되리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자녀를 한 명 정도 낳는 저출산율 시대가 계속되면 자녀를 고등학교만 마치게 할 부모는 없을 성싶다. 머지않아 직종 구분에서 고졸 생산직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현장에서 일할 고졸 생산직 노동자를 찾지 못한다고 아우성들이다. 20, 30대는 찾아보기 힘들고 생산인력이 고령화한다는 것이다. 그 자리를 메우는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는 10년쯤 뒤에는 같은 대졸이라도 학벌을 따지게 되지 않을까. 개그 콘서트식으로 말하자면 “… 서울대도 못나온 것들이 … 월급을 많이 받기는 …” 식으로 개탄하는 날이 오지 마랄 법도 없다. 교육부가 이름도 거창하게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지만 그 이름에 걸맞게 고등교육의 미래나 학력 인플레 문제, 산업구조에 대한 예측을 하고 인력수급 전망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청년실업이 학벌인플레나 우리나라 교육정책과 무관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삼성전자의 이사 연봉은 52억원이다.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수준이다. 전자분야의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에 입이 벌어지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다. 세계 5대 자동차회사를 목표로 하는 현대자동차가 생산직 노조원들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배 아프지 않다. 비록 나의 연봉이 그에 못미친대도 말이다.

어쨌거나 8년째 타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나는 대만족이다. 겉모습이 상처투성이라 주변에선 차 좀 바꾸라지만 고장 없고 성능 좋은 차를 왜 버리겠는가. 차 수명이 다하면 나는 또 현대자동차를 살 거다. ‘기름을 치고 나사를 조이는 일’이 기계생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나로서는 생산직 노동자가 대우를 받는 회사의 차가 그렇지 못한 회사의 차보다 더 좋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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