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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보도

[자료]업무복귀명령제 민주주의 심각한 후퇴 - 민변

작성일 2003.08.30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2852
* 민변 성명서

[성명서]

업무복귀명령제 도입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이다.


최근 정부는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에 대응하여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업무복귀명령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5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시 정부가 화물연대를 겨냥하여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위기관리를 위한 특별법'제정을 고려하겠다고 하던 것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업무복귀명령제란 화물운송 지입차주들이 집단적으로 운송거부에 들어갈 경우 정부가 업무복귀를 명령하고 이에 복종하지 않으면, 형벌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업무복귀명령제는 2002년 10월 미국 서부 항만노조 파업 당시에 부시 대통령이 발동한 태프트-하틀리법상의 파업중단명령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태프트-하틀리법은 그 이전에 제정되었던 와그너법이 지나치게 노동조합의 권한을 확장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미국 공화당이 다수당이었던 의회에서 제정한 것이다. 즉 위 법은 적용대상자들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파업중단명령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은 극우집단의 로비에 밀려 미국의 노동헌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와그너법을 개악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에서조차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업무복귀명령제와 유사한 법규정으로는 국가공무원들의 경우 상관의 직무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규정과 의사 및 약사 등이 집단으로 휴업 등을 하는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들은 국가공무원 등 신분을 보장받는 공공부문 종사자들이나 의사 등 생명을 다루는 직군에 한하여, 그들이 갖는 일정한 공적 의무(국민에의 봉사의무, 진료의무 등)를 근거로 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국민에게 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경우란 그 강제를 감수해야만 하는 공적의무를 전제로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화물운송 지입차주들의 경우에는 이에 비견하는 공적의무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화물운송이라는 영업수행의무(혹은 근로제공의무)와 같은 것이 과연 국가가 개별 국민에게 강제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성질의 공적의무인 것인가? 운송거부의 결과가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공적의무를 갖는 업무라 할 수는 없다. 예컨대, 화물운송업체가 저가의 운송료로 인하여 영업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휴업을 할 경우, 그리고 그 휴업이 집단적이라고 하여, 그들의 영업행위가 공적의무를 갖는 업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간 화물운송 지입차주들은 정부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였다. 정부는 화물운송 지입차주들의 경우는 근로자가 아닌 독립된 개별사업자로 단정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지입차주들은 노동조합조차 결성하지 못하는 열악한 지위를 감수해야 하고, 비인간적인 운송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당하였다. 정부는 지입차주들이 노동법상의 보호를 호소할 때에는 개별사업자에 해당한다고 하며 산재보험조차 적용할 수 없다고 해 놓고선, 그들이 운송거부라는 최후적 수단을 사용하자,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이 그들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고 협박하고 나아가 '업무복귀명령제'란 희안한 제도를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권리가 없는 곳에 의무도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정부가 얘기하는 경제적 필요성을 백분 이해하더라도, 지입차주들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사고이고,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도 명백히 배치되는 언동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오로지 '경제'라는 목표에 종속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가 얘기하던 '참여'라는 것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방적인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것이어서도 안될 것이다. 정부는 몇가지 은혜적인 조치를 거론하며 화물연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있으나, 민주사회의 시민은 국가로부터 시혜적인 조치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투쟁으로서 쟁취하는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화물운송 지입차주들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입차주들이 노동조합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자신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때에만, 그들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지 여부가 고민될 수 있을 따름이다. 지금 정부가 거론하는 대책들이란 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하는 것이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에게 '업무복귀명령제'란 국적불명의 제도를 들어 화물운송 지입차주들을 협박하는 것을 중단하고, 그들이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향유할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2003. 8. 30.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최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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