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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대통령의 불공정한 노동관과 대기업 노동자 - 오마이뉴스 칼럼 / 정태석 교수

작성일 2003.09.05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3564
[오마이뉴스 2003년 9월4일]


대통령의 불공정한 노동관과 대기업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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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칼럼진 명단은 아래 덧붙인 글 참고) 이번에는 전북대 정태석 교수(사회교육학부)가 최근 노사문제에 대해 정부와 기업, 노동자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 고찰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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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초 현대자동차의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협상이 타결된 후 ‘고임금’과 ‘경영참여’에 대한 논란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감정적인 언쟁이 확산되었지만 차츰 구체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논의를 통해 불필요한 감정이 다소 진정된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쟁점들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지닌 문제점을 차분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노동자들의 경영참여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들의 생존과 작업환경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전적으로 자본가와 경영자들의 손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은 반민주적인 것이다. 비록 기업의 직접적인 목적이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의사결정자인 기업주와 경영자들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기업경영의 풍토 속에서 특정한 의사결정으로 중대한 영향을 받는 노동자 집단이 그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정당한 요구이다.


노동자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는 당연


지금까지 기업에서 기업주와 경영자들의 정책결정 실패의 부담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에 전가되어 왔다.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기업주들의 우려와는 달리 노동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함에 따라 권리를 공유하는 만큼 책임도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훨씬 신중한 정책결정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고임금 논란이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도 서서히 고임금 비난의 대열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들, 특히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은 점차 ‘귀족화’되고 있고 대기업 노조는 ‘압력단체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말하자면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상대적이며, 중요한 것은 입장에 따라 그 비판의 논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보수적, 친자본가적 입장에서의 비판과 진보적, 친노동자적 입장에서의 비판은 그 논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더불어 중요한 점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임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만든 다양한 역사적 맥락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수적 시각에서의 비난 대열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판단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각, 대안적 시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 친자본가적 입장에서 고임금에 대한 비판은 고비용으로 인한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대기업에서의 고임금이 이전의 기업성과, 말하자면 높은 노동생산성에 기반한 높은 이득에 대한 대가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초점이 빗나가 있다.

사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주5일근무제와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래의 경쟁력만을 생각하면 임금상승이나 노동시간 단축은 억제되거나 오히려 후퇴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가와 기득권, 보수언론과 지식인의 우스운 작태


하지만 임금상승이나 노동시간 단축이 과거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실에 대한 분배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래의 경쟁력만을 따지는 친자본가적 주장은 정당한 분배를 무시하는 아주 이기적인 발상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과거와 현재의 노동은 미래의 더 나은 삶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는 반면에, 친자본가적 사고 속에게 과거의 노동은 망각되거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 뿐이다.

한편 시장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사회적 형평성을 내세워 고임금을 비난할 어떠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소기업에 비한 대기업의 고이윤을 결코 비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에 따른다면, 기업들 간에 이윤의 격차가 있듯이 노동자들 간에도 기업별로 격차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기업들 간의 시장논리를 인정하듯이 노동자들 간의 시장논리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아마도 자본가들, 기업주들은 특정 기업의 고임금이나 임금격차보다는 이에 따른 전반적인 임금상승 압력이 두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해 온 자본가, 경영자 등 지배세력들이나 보수언론, 보수적 지식인들이 느닷없이 사회적 형평성을 내세워 고임금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우스운 작태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고임금을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인 없이 보수적 기득권층의 감정적 논조에 동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노동의 역사에 대한 망각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시간외 노동)과 임금구조(특근수당, 성과급)를 확인하기 전에, 그리고 과거의 노동의 기여를 되돌아보기 전에 막연한 선입견으로, 또는 우월의식으로, 또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임금을 감정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자동차의 고임금이 하청업체에 부담을 주거나 자동차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비난하면서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주장한다. 물론 생각할 수 있는 얘기다. 특히 고임금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면 더욱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로 인해 노동자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청업체에 부담을 주거나 자동차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부당한 이윤을 챙기려고 한 자본가와 경영자의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난은 그들이 받아야 한다. 또 노동자들의 고임금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대기업의 이사들이 노동자 임금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연봉(수십억 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비난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노동자들의 고임금 논란


여기서 우리는 왜 사람들이 사회적 강자들을 비난하고 불평등한 제도를 문제 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는지, 왜 사회적 강자들에 대해 이유 없는 관대함을 보이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 안정과 경제성장의 논리로 불평등을 정당화해 온 군사독재정권의 역사와 이 정권과 결탁하여 여론조작을 일삼아온 보수언론의 탓이 크다. 아니면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적 잔재로 인한 근거 없는 우월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 의약분업에 따른 갈등과정에서 의사들의 적정 소득이 문제시된 적이 있었다.

사실 우리사회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노동에 대해 얼마만큼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적절하고 또 정당한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시장논리에 따른 비판이든 감정적 비난이든 임금수준을 문제 삼기 위해서는 특정한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의 대가가 얼마나 정당하게 배분되었는가 하는 점이 우선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학력의 문제도, 귀족의 문제도 아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분배적 정의라는 차원에서도 정당하다.

그런데 고임금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진보적 시각에서 본다면 뭔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더 남아있다. 그것은 과거에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위해 투쟁했던 노동자 계급이 내부의 불평등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임금을 비난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 문제이다.


노동자들의 내부 격차는 왜 심화됐나


이 점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했던 역사적 맥락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가 심화되었는가? 이 뿌리를 찾으려면 과거 박정희 정권 이후의 경제성장 전략과 노동조합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심화시켰으며, 산업별 노조의 기업별 노조로의 전환과 노조의 관변화는 노동자들 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국가의 억압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중소기업에서 노조의 결성은 매우 힘들었으며, 노동조합 운동은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조건들이 오늘날까지 노동자들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조건이 되었다. 사실 과거 대기업 노조는 억압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희생을 무릅쓴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힘을 강화시키고 또 노동조건의 개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과거가 오늘날 강한 노조의 기반이 되어 임금 협상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배적 정의를 위해서는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이 지불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노동자들 내부의 분화를 심화시켜온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것은 더 이상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늦게야 산업별 노조가 허용되었지만 이미 분화된 노동자들이 연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고, 중소기업은 저임금에 의존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비정규직 노동자의 팽창으로 인해 문제는 더욱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의 자기반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때


그렇다면 노동자 내부의 연대를 강화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국가(정부)는 비록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나름대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대기업과 하청업체들 간의 불공정한 거래를 법적으로 엄격히 규제한다면 차별이 줄어들 것이다. 정부가 중소기업들을 적절히 지원한다면 기업규모별 격차가 줄어들면서 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국가복지의 강화를 통한 강력한 재분배 정책은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여기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해야 한다. 사실 기업의 이윤은 사회를 통해서 형성된다. 사회의 구성원들인 노동자들과 소비자들(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생산도 판매도 할 수 없으며 이윤도 획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업은 사회에 의존하는 만큼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복지나 환경보호와 같은 전반적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의 자기반성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보다는 대기업 노조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대통령은 “노동운동은 노동자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명분과 사회 빈민층과 서민들의 주거문제 사회안전망 등 생활안정에 관한 문제들을 주장해야 하는데 지금 운동은 그렇지 않아 참으로 난감하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얘기다.

그런데 이것들은 노동운동에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법적인 권리를 약화시키고, 비정규직 보호와 국가복지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가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려면, 대기업 노조의 고임금이나 조직노동자들의 권리 향상 노력을 비난하기 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노동자들 내부의 연대와 격차 해소를 도와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책임감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과거에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 사회정의,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투쟁하고 노력했던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 연대와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내세우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자기희생을 감수할 때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고임금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노동자들의 폭넓은 단결과 사회적 연대 노력 절실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자의 고임금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이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기업주들의 몫을 부당하게 늘려주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다른 기업들에서도 노동자들의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정당한 고임금을 확보한 후 이 부를 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실업자들, 빈곤층들을 위해 과감히 나누려고 하는 연대 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대자동자 노동자들의 고임금에 대한 지배 세력의 감정적 비난은 전혀 도덕적인 근거가 없으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시장논리와도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데에는 과거 정권들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 전략 및 억압적 노동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노동운동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결코 공정하지 못하다. 고임금의 문제는 이런 비난들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기업 차원에서의 분배적 정의와 노동자들 내부의 불평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은 서로 단결할 때 부정의와 불평등에 대항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또 사회적 약자들과 폭넓게 연대할 때 투쟁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들,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폭넓은 단결과 사회적 연대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정태석 기자 (ohmynews@ohmynews.com) -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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