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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보도

[회견]한진중 곽재규 동지 사망관련 보완 자료

작성일 2003.10.31 작성자 교육선전실 조회수 2199
* 30일 오전 회견 후 대책위가 내용을 보완한 자료입니다.

고 곽재규 동지 관련 기자회견

고 곽재규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대책위는 고인이 돌아가신 후 주위 동료와 미망인 진술 등 여러 가지 조사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 사고 현장: 한진중공업 사내 4도크, 높이 11미터, 난간 높이 80센티

- 고인 인적 상황
곽재규(55년생)
75년 입사
미망인(정갑순 55년생)과 두 여(경민 17세, 영욱 15세)
주소: 영도구 동삼3동 주공 아파트 401-404
현재 부서: 탑재부 탑재2과
고인의 신장 164cm(경찰 측정)


1. 사고 직후 정황

15:50 "사람 떨어졌다"라는 외침을 듣고 조경석(전국금속산업연맹 조직부장)이 최초로 사고현장으로 내려감
15:55 김인수 사무장 상황실에 보고, 고지훈 기획부장 119에 신고
16:00 류장현 언론홍보팀장 4도크 사고 현장으로 내려감, 조00, 박00, 안00 등 조합원 몇 명 있었음
16:05 119 도착,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시신을 바로 눕힘,사망확인
16:08 경찰 도착
16:40 검시 - 옷을 벗기고 경찰과 공동으로 확인, 우측 이마 좌열창, 두개골 골절 없으며 내부 출혈 추측, 그 외 골절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음

과학수사단 도착 - 시신과 벽과 떨어진 거리 측정, 76cm

이후 검사 도착, 인의협 의사 도착 - 같이 검시/ 검사는 부검이 필요하다고 했음. 검사는 대책위한테 부검과 관련해서 유족과 협의하라 하고 갔음.

23:00경 경찰 부검을 위한 영장발부: 대책위에 통보, 시신 안치장소 동아대병원 명기



2. 사고 당일 고인의 정황
(경찰이 조사한 내용과 대책위에서 별도조사한 내용 취합 - 경찰 30일
저녁7시부터 9시까지 동료와 미망인을 조사해 진술서 받아 갔음)

오전9시52분: 고인의 휴대폰 내역을 보면 오전9시52분과 오전11시57분 집에 전화(고인 사후 경찰과 공동으로 휴대폰 통화내역 조사결과) - 고인이 아이들과 통화를 하였다고 함
오전 10시: 고인 부서 동료3명과 함께 크레인 조문, 조문하면서 우셨다고 함,
다른 동료 3명이 고 김주익 지회장이 자결한 곳을 볼 때 고인은 다른 곳에 서 있었다고 함
오전 10시 00분: 고인 크레인 조문 후 동료 한명과 탑재2과 천막 옆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했음. 고인은 "창수도 죽고 주익이도 죽고 좋은 놈들 다 죽었는데 참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가 전부 죄인이다." 동료는 "해결할 때까지 지켜주면 안되냐? 니 혼자 죄책감 가지지 마라."고 답변/크레인 조문 후에 오늘 더 말이 없어짐
오전 11시경: PD수첩 취재팀에서 김인수 사무장한테 명휴수당 받고 파업
참가하지 않은 조합원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 있던 중. 그 순간에 고인이 옆을 지나갔고, 김인수 사무장은 "형이 인터뷰 할래요?"라고 물었음.
고인은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고 지나갔음. PD수첩 취재팀은 먼저 가족대책위를 취재하러 갔음.
오전 11시 52분: 오전11시57분 고인이 미망인에게 "애들 학교 갔냐? 오늘
곽재규에게 무슨일이 있을 것이다. 형님에게 전화를 해라"고 했다함. 미망인이 "무슨 소리냐?"고 물음, 그러나 고인은 그냥 전화를 끊었다고 함(오전9시52분 통화는 26초 통화, 오전11시 57분 통화는 1분 11초 통화/ 통화내역 기록 있음)
낮 12시 51분(통화내역 확인): 고인이 부서 대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볼일 있어 집에 가겠다고 함.(원래 고인은 30일 오후1시 시민선전전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음) 대의원이 집에 가라고 함/ 그러나 고인은 집에 안가고 오후 내내 현장에 있었음
낮 12시10분∼15분: 고인은 탑재부 부서 전 총무였음, 고인은 현재 부서 총무를 하는 후배하고 같이 부서장부를 확인하였다고 함, 지불한 금액과 올 2월 총무 인수 시 남아있던 금액을 확인했다고 함
오후2시20분: 고인 사물함 정리정돈. 부서 후배가 사물함 안에 밀감이 썩었다고 고인에게 이야기했음. 고인은 부서 후배에게 옷걸이를 주었다함. 부서 후배는 고인에게 배즙을 가졌다 주었음. 고인은 잘 먹었다고 함
오후3시경: 부서 후배가 생활관 앞에서 보았을 때 고인이 너무 초췌해서
샤워하라고 했다고 함
오후3시11분(통화내역 확인): 김인수 사무장이 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PD수첩 취재팀이 왔으니 이쪽으로 무대 뒤로 오이소"라고 했음. 이에 고인은 "지금 못하겠다"고 답변.
사고 약 30분전: 기장부 조합원 부서 천막에서 생선 구워먹고 있을 때, 고인이 들어왔다고 함
고인이 생선을 하나 들고 부서 천막으로 들어갔다고 함



3. 파업 동안의 고인의 정황
고인은 7월 22일 전면파업 이후 계속 참여하다가 추석 이후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음
고인은 추석 이후 음식을 잘못 먹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함
미망인의 진술에 의하면 해동병원에 잠시 입원도 했다고 함. 9월 30일 밤 12시에 쓰러져 해동병원 응급실
에 갔음. 당시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새벽5시에 깨어났다고 함.
부서 대의원 진술에 의하면 추석 이후 허리도 안 좋았고,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자주 들렀다고 함. 부서 대의원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고인이 장모의 병원비를 보태기 위한 것이라고 함,(장모는 평소 때도 몸이 안좋아 병원을 다녔다고함, 미망인 무남독녀) 대의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함. (사측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조합원에게 명휴수당 지급했음)
고 김주익 지회장인 돌아가신 10월 17일 아침, 다시 파업 농성장에 결합
파업 농성장에 결합한 후 주위 동료에게 미안하다면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함 부서 대의원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사과도 했다고 함, 지회장을 자기가 죽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함/ 지회 임원에게 식당에서 절하면서 미안해 했다고도 함
고인은 파업 농성장 재결합 후 부서 천막에서 잠을 자지 않고 생활관에서 주로 잤다고 함
고인은 10월 27일 서울상경투쟁단에 참가하려 했으나 장모 몸이 아파서 가지 못하겠다고 했음
고인은 며칠 전부터 유난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함
고인이 어제는 부서 천막에서 잤으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부서 동료 증언
고인이 29일 밤 85호 크레인 올라가려고 했으나 조합원 만류로 올라가지 못했음


4. 고인의 노조 활동
2000년 9월 ∼2001년 10월 고 김주익 위원장 때 문화체육부장
노조 활동에 적극적, 상임집행위원과 대의원 활동
2002년엔 현재 부서 대의원이 노조활동을 좀 쉬라고 권유, 그렇게 권유한 이유는 고인이 노조간부 활동하다 보면 무노동 무임금에 걸리는 등 생활의 어려움이 많이 생겼기 때문

5. 고인과 고 김주익지회장과의 관계
아주 친한 사이였다고 함. 지회장을 매우 좋아했다고 함


6. 미망인 진술(30일 저녁 경찰과의 진술 내용)
미망인과 고인의 오전 전화 진술 ""애들 학교 갔냐? 오늘 곽재규에게 무슨일이 있을 것이다. 형님에게 전화를 해라"
고 김주익 지회장 집들이 때도 왔고 시어머니 초상 때도 왔다고 함
미망인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실족사는 아닌 것 같다."


7. 유족의 입장
미망인은 고인이 오전에 전화 했을 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다고 함. 30년 다닌 직장에서 실족사일리는 없다고 함. 유족은 전화통화 내용을 미뤄볼때 고인이 자살한 것으로 판단함. 따라서 유족은 부검이 필요 없다고 함. 유족은 만약 부검을 꼭 해야 한다면 주위 동료가 다 보는 현장에서 해야 한다고 함


8. 대책위 입장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스스로 몸을 던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유족은 어제 전화 통화 내용인 "오늘 곽재규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형님에게 전화해라"를 유언으로 여기고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유족은 "고인이 자살한 것이 명확하므로 부검이 필요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편 한진중공업 사내에서 20년 동안 도크 위에서 도크 바닥으로 실족사는 없었다고 한다.
대책위는 어젯밤 경찰에게 현장에서 부검할 것을 통보했다. 또한 대책위는
경찰에게 현장 부검의 조건을 전달했다. 대책위는 경찰에게 우리측 의사 입회하에 부검하고, 시신은 곧바로 유족에게 인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동안 한진재벌은 조합원들에게 엄청난 심적,경제적 고통을 주었다. 고인의 죽음은 한진재벌의 노동탄압의 결과이다. 대책위는 사인을 분명히 규명하기 위해 노력 할 것이다. 그러나 대책위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며, 또한 대책위 역시 투쟁 과정에서 돌아가신 조합원은 현장에서 모든 문제가 명확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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